축구 역사를 바꾼 10가지 사건
10. 바르셀로나-메시의 냅킨 계약

2000년, 유소년이던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입단 테스트를 보았으나,
메시는 성장에 장애가 있었고, 그때문에 2달이 넘도록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측에 연락을 주지 않았다.
리오넬 메시의 아버지 호르헤 메시는 이에 분노하여
바르셀로나의 기술진 렉샤흐를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고,
지금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아르헨티나로 돌아갈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이에 렉샤흐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진다는 내용의 계약을 냅킨에 하게 된다.
그 후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169cm까지 성장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며 렉샤흐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9. 칼치오폴리 스캔들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
인테르의 피구와 모라티가 유벤투스의 루치아노 모지와 심판진간의
모종의 관계에 대해 의심을 품게되어 사건이 시작된다.
그러던 중 텔레콤 이탈리아가 모지의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사건인 즉슨, 토리노 경찰청에선 사건을 일축했지만
리그 차원에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하게되고,
그 결과 모지와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축구선수에이전시 GEA World가
심판과 부적절한 접촉을 통한 승부 조작행위가 이루어졌음이 밝혀진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던 세리에A 리그가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하는 길을 걷게된다.
8.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이적 공방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디 스테파노를 영입하기 위한
레알마드리드 - 바르셀로나간의 장외 엘클라시코였다.
CD 로스 미요나리오스 소속이던 디 스테파노의 소유권은
리버 플레이트와 미요나리오스 두 클럽이 가지고있었다.
바르셀로나는 디 스테파노를 이적시키기 위하여 리버 플레이트와
협상을 진행하였고, 디 스테파노를 영입한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소유권을 지닌 미요나리오스와는
협상을 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미요나리오스는 이에 분개하고
때문에 바르셀로나와의 이적 협상은 차질을 빚게 된다.
그런데 이 때, 바르셀로나의 회장이던 카레토는
디 스테파노의 이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되고, 이 사이
레알 마드리드가 미요나리오스와 협상에 성공하게 된다.
즉 디 스테파노는 이중계약 상황이 되어버리게 되었다.
이에 스페인 축구 협회는 1년씩 양 팀에서 번갈아가며 뛰게 하는
중재안을 내놓지만, 바르셀로나 측에서 이에 반대를 하게 되고
레알 마드리드가 이적료를 지불하고, 소유권을 가져옴으로써
긴 이적 공방에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 후 디 스테파노는 레알마드리드의 핵심 선수가 되어
1950년대 유러피언 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5연패를 비롯하여
레알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의 주역이 된다.
7. 수페르가의 비극 - 카테나치오의 발단

1940년대 최강의 팀, 토리노 FC는 세리에A 리그 5연패를 앞두고 있고,
선수 대부분이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 소속일 정도로
그야말로 그 당시의 갈락티코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벤피카와 친선 경기를 하고 돌아오던 중,
기상악화로 인하여 비행기가 수페르가 언덕 성당에 충돌하게되고,
발렌티노 마쫄라를 비롯한 선수 전원이 사망하게된다.
바로 직전 2연속으로 월드컵을 우승할정도로 최고의 팀이었던
이탈리아 국가 대표팀은 주전 선수를 대부분 잃어버렸고
다시 전력을 회복하는데 20년이란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몰락하게된다.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을 비롯한 이탈리아 축구계 인사들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강력한 수비 축구를 지향하게 되고,
이에 생긴 전술이 빗장수비, 카테나치오 전술이다.
더하여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은 지아친토 파케티를 필두로
공격하는 풀백의 개념까지 제시하여 그란데 인테르를 성공적으로 이끈다.
6. 알렉스 퍼거슨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임

뮌헨 비행기 참사를 겪고, 재기에 성공하여
보비 찰턴,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와 함께 황금기를 달리던
맷 버스비 감독이 사퇴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암흑기에 접어든다.
맷 버스비 감독과 같은 스코틀랜드 국적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에버딘 시절보다 더 열악한 조건을 제시한 맨유 감독직을
맷 버스비 감독을 위하여, 그리고 팀의 미래를 위하여 받아들인다.
그렇게 팀의 미래를 착실하게 계획했던 그는
퍼거슨의 아이들로 대표되는 유스 긱스,스콜스,베컴,네빌,니키 버트 등과 함께
98/99시즌 잉글랜드 축구 클럽 역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한다.
그는 1986년 부임 이후 2013년 감독직을 내려놓기까지 27년의 기간동안
13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비롯하여
38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5. 승부차기의 도입

( 199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로베르토 바조)
승부차기는 1970년에 도입되었다.
그럼 그 전에는 120분 내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어떻게 했을까?
재경기를 갖거나, 우습게도 동전 던지기를 통하여 승자를 판별하였다.
1968년 유로 대회에서 소련과 이탈리아가 4강에서 120분 내에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자, 동전 던지기로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하고,
이에 문제가 있음을 실감한 축구 관계자들은 승부차기 제도를 도입하고
1970년 이후 클럽간 경기에서부터 서서히 도입하여
1976년 유로 대회,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공식 채택된다.
4. 마라카낭의 비극 - 한 소년의 결심

1950년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선
최종 리그를 통하여 우승국을 가려내었다.
최종 리그에 진출한 브라질, 우루과이, 스페인, 스웨덴 중에서
스페인과 스웨덴은 일찌감치 우승에 실패하고,
승점 4점의 브라질, 승점 3점의 우루과이간의 리그 마지막 경기로
최종 우승국을 가려내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브라질 입장에서는 비기기만 해도 우승인데다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고, 압도적인 전력을 지녔으므로
우루과이 선수들을 제외한 전 세계가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2 : 1로 브라질이 패배하고 준우승에 머무르게된다.
이 때, 경기 결과를 라디오로 듣고 눈물을 흘리는 한 가장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꼭 조국을 월드컵에서
우승시키겠다는 꿈을 갖게 되고, 축구선수로 성공하여
무려 3번의 월드컵 우승을 조국에 품에 안긴다.
그 아들의 이름은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펠레다.
3. 교체 제도의 도입

예전 축구에는 선수 교체라는 개념이 없었다.
만약 경기 도중 선수가 부상당하게 되면, 퇴장을 당한것과 똑같이
10명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했고, 이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이에 1958년 공식적으로 선수 교체 제도가 생기면서
양팀은 최대 3명까지, 친선경기에선 합의 하에 추가로 교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부상을 당한 선수는 교체 카드가 남아있다면
언제든 그라운드를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전술적 변화를 주고자
새로운 선수를 투입하는 경우도 가능하게 되었다.
2. 아리고 사키의 철학 - 존 프레싱의 창시

(왼쪽부터 반 바스텐, 아리고 사키, 바레시, 베를루스코니, 레이카르트, 굴리트)
파르마의 감독이었던 아리고 사키는 베를루스코니의 부름을 받아
명문팀 AC밀란의 감독이 된다.
그의 철학은 선수들이 각각 전담한 지역을 중심으로 상대팀을 압박하여,
선수 간격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고, 3~4차례에 걸친 압박을 통하여
상대팀의 공격 전개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이 사키즘은 당대뿐만 아니라 현대 축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가령, 03-04시즌 무패 우승의 아스날식 4-4-2 전술이나
심지어 펩 과르디올라 시절 티키타카 바르셀로나까지
아리고 사키의 압박 전술을 토대로 하였다.
물론 당대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렌지 삼총사, 바레시, 말디니 등 선수들을 이끌고
마라도나의 나폴리, 마테우스의 인테르를 제치고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88/89 , 89/90시즌 최후의 챔피언스리그 2연패 달성에 성공한다.
그 후 반 바스텐,베를루스코니와 불화로 AC밀란을 떠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1994년 FIFA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한다.
1. 리누스 미헬스 - 토탈 사커의 시작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
알렉스 퍼거슨, 엘레니오 에레라, 마르첼로 리피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감독중 한명인 그는 토탈 사커을 창시했다.
예전 축구에선 공격시에는 수비수들의 역할이 줄어들고,
반대로 수비시에는 공격수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은데
이를 인지하고, 공격시엔 수비수의 공격가담,
수비시에는 공격수의 수비 가담 시스템을 고안한것이
바로 리누스 미헬스이다.
그의 철학에 있어서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가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요한 크루이프였다.
요한 크루이프를 필두로 리누스 미헬스는 토탈 사커 전술을 통해
AFC 아약스를 챔피언스 리그 3연속으로 제패하였으며,
나아가 토탈 사커 전술은 현대 축구 전술의 기반이 되었다.
앞서 설명한 아리고 사키의 존 프레싱도 이 토탈사커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미헬스와 같은 새로운 전술적 혁명가가 나오기 전까지
세계 모든 축구는 이 토탈 사커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글 : 레알매니아 최유정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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윾 2017.03.08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역시 예상대로 토탈사커가 1등이군여. -
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윾 이 글을 쓸때 처음부터 토탈사커를 1등으로 찍어놓고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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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or 2017.03.08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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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Edor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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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비녹차맛 2017.03.08잘 읽었습니다.
퍼거슨의 아이들을 본 세대라 다행이랄까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가루비녹차맛 저는 호날두의 맨유를 본 세대라 ㅠㅠ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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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윾 2017.03.08@최유정 저는 데파이의 맨유를 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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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Stéfano 2017.03.08토럴싸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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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A.DiStéfano 버터영어를 하시네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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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이 2017.03.08추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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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로얄이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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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영웅맥카 2017.03.08재밌는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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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나의영웅맥카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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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 2017.03.08토타루 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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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라그 일본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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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쿠 2017.03.08풋뽈 또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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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블랑쿠 이건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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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블랑쿠 2017.03.08@최유정 에스빠뇰입니당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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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das 2017.03.08좋은글 앞으로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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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Adidas 좋은글이라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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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ronaldo 2017.03.08호날두의 레알이적도 들어갈만 한것 같은데...
10위로 호날두 레알이적 ㄱㄱ -
블랑쿠 2017.03.08개인적으로 1위2위가 바뀌어야된다고생각하네요
토탈사커가 사키이즘의 기반이 된건맞지만
현대축구까지 지대한영향을 미치는건 사키이즘이라고봐서 -
subdirectory_arrow_right 최유정 2017.03.08@블랑쿠 충분히 일리가 있네요
요즘 압박이라는 개념이 더욱 부각되었으니..
전 토탈사커가 없었으면 사키이즘도 없었다고 생각을 해서
토탈사커를 1위로 두었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
Raul 2017.03.13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