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 리뷰
졌으니 이런저런 통계나 그림 대신 감상 위주로...
1. 경기 준비는 참 잘했습니다. 전술적인 준비도 그렇고, 선수들의 집중력이나 태도, 단결력도 최근 경기들 중 가장 좋았죠. 그게 최대치로 발현된 것이 전반전이었습니다. 아틀레티코를 탈탈 털어먹던 빠른 드리블러들을, 우리는 너끈히 제어해냈죠. 이는 강한 전방압박과 미드필더 시프트를 통해 볼 전개의 스피드를 끌어내리고, 이후 빠른 리트리트를 통해 견고한 블록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마스체라노가 나오면서 생긴 단점을 너무나도 잘 활용했죠. 미드필더 세명이 유기체처럼 시프트를 형성하는 모습과 베일의 빠른 리트리트도 인상적이었구요. 그간 계속 떠들어왔던 내용인데 직접 실현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론 참 뿌듯했습니다.
2. 다만, 안첼로티에겐 전반전에 라모스와 페페에게 너무나 쉽게 카드를 꺼내든 심판이 못내 아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페페는 명백한 헐리웃의 피해자이고, 라모스는 좀 대놓고 밀치긴 했지만 위험 지역도 역습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 그랬겠지요. 이 두 선수가 소극적으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팀은 후반전 바르셀로나의 전술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미드필더는 본인들의 수비 라인에 붙이고, 공격수들은 우리팀 수비 라인에 붙이면서 메시를 메디아푼타처럼 활용했습니다. 사키와 크루이프의 축구가 태동하기 이전인 80년대 분업화 축구를 연상케 하는 대형이었는데, 볼 운반 방식마저 미드필더의 드리블러들을 생략하고 롱패스에 의존하는, 상당히 바르셀로나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후반전에 임했죠. 이는 비겨도 승점에서 앞설 수 있다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대처였으며, 전술적으로도 마스체라노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러한 축구에 대처하기 위해선 높은 라인을 유지하며 메시와 상대 미드필더 사이를 끊어놓은 채 롱패스를 방해하는 방법이 있고, 수비 라인과 압박 라인을 내려 뒷공간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분위기 쇄신과 순위 역전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기에 후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전자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기엔 위에서 언급했듯 두 센터백의 카드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높은 라인을 유지했지만 두 센터백은 경합 상황에서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고, 중앙 미드필더들은 메시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반만큼 높은 위치로 전진해서 롱패스를 방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실점 장면은 이 애매함이 빚어낸 결과였죠. 평소의 라모스였다면 미리 수아레스쪽의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해도 과감하게 오프사이드 트랩 후 쫓아가는 방식을 택했겠지만, 거친 플레이가 불가능했기에 미리 패스를 끊어내려다 화를 불렀죠.
제가 정말 아쉬웠던 건 사실 실점보다도 그 이후의 상황이었습니다. 실점했지만 시간은 아직 35분이나 남아있었고, 전반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주도권을 되찾았어야 했는데 너나할것없이 급해지더군요. 선수들이 슬금슬금 전진하기 시작하는데 패스미스는 많아지니 역습은 계속 허용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는 항상 일정한 수 이상의 수비 숫자를 갖추고 있으니 성과 없이 체력만 계속 소모했죠. 정신적인 압박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을 테구요. 안첼로티가 인터뷰에서 체력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이렇게 체력적 우위를 스스로 없애버렸기 때문이겠죠.
3. 이케르 얘기를 안할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짧게나마 하자면, 두번째 실점에 관한 제 의견은 정켈메님 글(http://realmania.net/bbs/zboard.php?id=openbbs&page=2&sn1=&divpage=12&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6074)과 완전히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두번째 골이 이케르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이 밑의 내용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을 듯 싶네요. 거슬릴 것 같으면 스킵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물론 저 실점만이 이케르에 대한 비판의 원인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케르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꽤 계실 거고, 최근의 썩 미덥지 못한 퍼포먼스에 실망하신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 겁니다. 당장 샬케와의 2차전만 해도 저도 막 욕하면서 봤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실점보다도 더 얼빠진 모습들이 많았거든요. 팀 전체가 막장이어서 이케르 개인에게 가는 비난은 좀 덜했습니다만...
그러나 이번 경기에 한해서는, 저는 이케르가 지금의 분위기보다는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졌지만 많은 분들이 이번 경기를 희망의 계기로 삼고 계신 이유는 좋은 경기력으로 '아깝게' 졌기 때문이겠지요. 그 '아깝게'라는 표현은, 한골이라는 스코어차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오지 않을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반 막판에 팀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그 스코어차이나마 지켜낸 것은 분명 이케르의 공이죠.
예. 분명 널리 자랑할 만한 거리는 아니에요. 제 3자가 보기에는 두골 먹으나 세골 네골 먹으나 지는건 똑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 경기를 통해 희망을 보신 분들이라면, 막판 그 두어 차례 세이브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 일전에 썼던 프리뷰 얘기도 좀 하자면, 평소 예상은 박펠레급 정확도를 자랑했었는데 이번엔 생각보다 많이 맞췄습니다! MSN과 BBC의 대결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로 수아레스와 벤제마를 꼽았더니 경기에서도 굉장한 활약을 했고, 부스케츠와 하메스의 공백을 메울 키 플레이어로 꼽은 라키티치와 이스코는, 그러나 그들의 활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지 못했죠. 그렇기에 다득점이 나지 않고 점수 많이 내봐야 팀당 한두골이라는 것까지 맞췄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승패 맞추기를 못했으니 어디다 써먹을까요...
이중 라키티치와 이스코 얘기를 좀 하자면, 이 둘은 개인적으로 꼽는 각 팀의 워스트 플레이어들입니다. 라키티치는 메시를 돕는다는 본인의 기본 롤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고, 두번째 실점 직전 라모스 앞에 위치해 라모스의 정신을 약간 사납게 한 것 이외에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들지 못하며 가장 먼저 교체되었죠. 이스코는 몇차례 유려한 테크닉을 뽐낸 장면이 있었지만 탈압박 이후 다음 선택지를 고르는 시간이 너무 늦어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적극적인 드리블 시도로 본인 주변의 상대 선수들을 제압해내지도 못했습니다. 빌드업 시 애매한 위치선정과 불안정한 볼 터치로 팀의 원활한 전진을 늦추는 장면도 간혹 있었죠. 전반엔 벤제마가 혼자서도 마스체라노와 두 센터백을 완전히 제압했기에 이러한 부진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후반에 바르셀로나가 라키티치와 이니에스타를 내려 벤제마가 활동할 공간을 크게 줄였을 때 벤제마를 돕지 못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나마 블록 형성에 있어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이건 이번 경기 미드필더들이 전부 다 잘한 부분이라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듯...
댓글 24
-
James Rodriguez.10 2015.03.25*정말정말 잘봤습니다.언제나 온태님이 쓰시는 글 잘보고 있습니다.정말정말 죄송하지만.. 어려운 용어는 쉽게 풀어서 얘기해주심 안될까요?리트리트,메디아푼타?...,읽으면서 무슨 단어지 했다능...
-
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5.03.26@James Rodriguez.10 리트리트는 목적성을 두고 최종 수비라인을 뒤로 후퇴시키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바르셀로나가 일정 수준 이상 전진하면 전방압박을 포기하고 내려와서 블록을 형성하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쓴 단어구요. 메디아푼타는 공미나 세컨탑등을 총칭하는 스페인어 단어입니다. 제가 쉽게 풀어 쓸 어휘력이 부족해서... 신경쓴다고 하는데 많이 모자라네요. 죄송합니다ㅠㅠ
-
subdirectory_arrow_right James Rodriguez.10 2015.03.26@온태 아 아닙니당ㅜㅜ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Rea.l M 2015.03.26*@James Rodriguez.10 저도 이 댓글 공감하는게 죄송한 말이지만 좋은글에 너무 어려운 단어들로 범벅을 시킨 느낌이랄까? 좀 더 읽기 쉽고 편한 우리나라 말 써도 충분할텐데 ㅜ
너무 전문가 느낌의 글이여야 한다는 강박감 갖지 마시고 편하시 쓰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혹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5.03.26@Rea.l M 제가 뭐라고... 그러려던 건 절대 아니고, 정의된 단어의 뜻을 언어 그대로의 의미보단 관념적?추상적?인 이미지 위주로 기억하고 있는 게 많아서 그걸 다시 풀어쓰자니 의미 전달도 완전히 명확하게는 안될 것 같고 글도 너무 지저분해지는 경향이 있더군요. 글에 그 개념을 계속 사용해야 할 경우엔 지나치게 글이 난잡해지고... 그래서 그냥 쓰고 따로 여쭤보시면 답변드리는 식으로 글을 써왔는데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었군요. 정말로 신경 많이 쓰겠습니다. 댓글 감사해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14_Guti.Haz 2015.03.26@온태 리트릿은 그냥 단어 뜻 자체가 후퇴
-
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5.03.26@14_Guti.Haz 기본적인 의미를 모르셔서 여쭤보시진 않았을 것 같고, 저도 사키이즘에서의 리트리트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 설명이 부족했나보네요. 부족한 능력으로 자꾸 의문의 여지를 남기는 것 같아 아예 링크 남깁니다.
<a onfocus='this.blur()' href=http://blog.naver.com/wakano4/90163847046
target=_blank>http://blog.naver.com/wakano4/90163847046
</a>
<a onfocus='this.blur()' href=http://blog.naver.com/wakano4/90179921233 target=_blank>http://blog.naver.com/wakano4/90179921233</a> -
전뱀 2015.03.26사랑합니다
-
윤보미 2015.03.26솔직히 다들 온태님 리뷰 기다렸죠?
-
한영진 2015.03.26크....역시 온태님!
-
이스코사코 2015.03.26잘 읽었습니다. 아주 공감되는 글이네요.
-
Ronnie.9 2015.03.26*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카드 누적이 경기를 갈랐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카드를 받은 상황들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역습 상황도 아니었고 수비수들에게 불리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너무 쉽게 헌납한 느낌... 특히 페페는 수아레즈에게 완벽하게 당했는데 수아레즈의 연기에 주심이 속은거라 이 점은 어쩔 수 없었던 거 같네요. 그래도 지난번 처럼 퇴장은 안 나와서 다행이었지만 뭐 아무튼 수아레즈 네이마르는 앞으로도 조심해야 할 거 같네요. 살짝만 스쳐도 역으로 이용하는 선수들이라 무섭네요
-
Silent 2015.03.26좋은 글 잘봤습니다 ^^ 이스코는 압박을 벗겨내는 능력은 참 좋은데 패스의 선택지와 타이밍 선택이 참 아쉽내요.
이러한 패스웍과 무브를 하메스가 참 잘 이행했는데 이번 경기에서 하메스의 빈자리가 많이 아쉽더군요... -
알샤밥 2015.03.26심판이 치즈를 뿌려대서 진 경기. 좀더 너그로운 심판이였다면 어땠을까싶네요 아니 아무리그래도 진짜 모든선수에게 카드줄기세여서 안타깝네요 참
-
호렌지캬라멜 2015.03.26*이사람은 말이 안됨 ㅊㅊㅊㅊ
-
패션왕날둥 2015.03.26*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카드도 아쉽고.... 후반전은 진짜 그냥ㅠ 이스코를 너무 다들 극찬을 해서 전 이상했는데... 수비도 열심히 하고 드리블로 압박을 벗겨내는건 좋은데... 쓸데없는 드리블로 역습 흐름을 끊을 때도 많아서 결국 베일과 호날두를 잘 활용하지 못하거나 빼앗겨서 역습을 허용해서 위험할 때가 많더라구요. 거기다가 패스 선택도 머뭇거리다가 늦을때도 많고 크로스도 너무 부정확하고.... 아직은 크게 될 기대되는 선수라고는 보는데... 다들 벌써 팀 에이스라며 극찬을 하셔서.... 이상하긴 했었는데...개인적으로 빠른 패싱의 축구를 좋아하다 보니... 제겐 안맞다보니 더 그런면이 보여서 그럴 수도 있고요ㅋ
-
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5.03.26@패션왕날둥 당장 볼을 예쁘게 돌릴 선수가 크로스 한명밖에 남지 않았을 땐 팀 먹여살린 게 맞긴 하죠. 그땐 볼을 좀 끌더라도 그 드리블과 무빙으로 인해서 해결되는 팀의 문제들이 꽤 많았으니까요. 다만 지금처럼 이스코에게만 의존할 필요가 없을 때엔 그 효용이 떨어지는게 사실이고, 이를 지난 시즌을 거치며 간결한 플레이로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런 타이트한 게임에서 먹힐 정도의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같네요. 굳이 드리블 이후에 패스나 중거리슛 등으로 찬스를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대를 벗겨낸 직후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연동 작업을 벌일 수준만 되더라도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하메스와 함께 뛸 때처럼 본인과 궁합이 잘 맞는 선수들과 조합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안첼로티가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모르겠네요.
-
kr8s 2015.03.26이스코가 모드리치가 돌아오면서 죽는 모습이 보이네요
-
Always 2015.03.26공감합니다. 카드가 정말 아쉽네요
-
Tonisco 2015.03.26기다리고 기다리던 리뷰가 나왔네요 ㅎ_ㅎ 잘읽고갑니다~
-
김범수 2015.03.26후반전 뒷심이 심각해요 안첼로티 전술을 90분간 선수들이 이행하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후반 70분이후에 레알이 강팀상대로 밀어붙인적이 올시즌엔 거의 단 한차례도 없다고 봅니다 리드 잡힌체로 70분 이후되면 그대로 지고 동점으로 70분 넘어가면 무승부나 역전패
저도 2:1 스코어는 맞췄는데 솔직히 당초 예상보다는 전반전 마르셀로가 메시견제잘하고 공격도 깔끔했죠 후반되자 반대가 되고 경기를 말렸지만요 경기 뛰는거리 보면 바르사나 레알이나 별차이 없는데 왜 레알선수들만 뒷심이 떨어지는지 참 의문이네요 -
Vanished 2015.03.26이번경기 베일은 여전히 투박한 볼터치가 있었으나 스피드와 좋은 침투로 좋은 찬스를 몇번 맞이 했었죠. 아깝게 취소된 골이나 오른발로 걸린 개발슛이 있었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함에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고 이스코는 저도 워스트로 꼽고 싶네요. 이스코에 대해 꾸준히 주장하는 바이지만 드리블로 탬포 잡아 먹는 스타일에 패스 선택은 항상 아쉽고 결정적으로 물리적 스피드가 너무 느리죠. 플레이 스타일이나 지능적인 부분은 경험이 해결해 준다 해도 물리적은 스피드는 절대 극복이 안되는 부분이고 말라가 시절이나 모드리치 없는 상황에서 본인이 미들의 중심을 맡으면 좋은 온더볼 능력으로 빛을 발하나 지금처럼 조연 역할을 할때에는 모든 장점이 죽어버리죠. 오프더볼 상황에서 본인이 팀을 위해 크게 해줄수 있는 부분도 없고요.
-
Raul 2015.03.26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BBCJ 2015.03.28진짜 이스코 기대많이 했는데...템포 빠르게 가져가는거랑 판단력은 개선이 시급합니다 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