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_list
맨체스터 시티목요일 5시

엘 클라시코 리뷰

온태 2015.03.25 23:47 조회 4,211 추천 17
졌으니 이런저런 통계나 그림 대신 감상 위주로...





1. 경기 준비는 참 잘했습니다. 전술적인 준비도 그렇고, 선수들의 집중력이나 태도, 단결력도 최근 경기들 중 가장 좋았죠. 그게 최대치로 발현된 것이 전반전이었습니다. 아틀레티코를 탈탈 털어먹던 빠른 드리블러들을, 우리는 너끈히 제어해냈죠. 이는 강한 전방압박과 미드필더 시프트를 통해 볼 전개의 스피드를 끌어내리고, 이후 빠른 리트리트를 통해 견고한 블록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마스체라노가 나오면서 생긴 단점을 너무나도 잘 활용했죠. 미드필더 세명이 유기체처럼 시프트를 형성하는 모습과 베일의 빠른 리트리트도 인상적이었구요. 그간 계속 떠들어왔던 내용인데 직접 실현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론 참 뿌듯했습니다.



2. 다만, 안첼로티에겐 전반전에 라모스와 페페에게 너무나 쉽게 카드를 꺼내든 심판이 못내 아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페페는 명백한 헐리웃의 피해자이고, 라모스는 좀 대놓고 밀치긴 했지만 위험 지역도 역습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 그랬겠지요. 이 두 선수가 소극적으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팀은 후반전 바르셀로나의 전술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미드필더는 본인들의 수비 라인에 붙이고, 공격수들은 우리팀 수비 라인에 붙이면서 메시를 메디아푼타처럼 활용했습니다. 사키와 크루이프의 축구가 태동하기 이전인 80년대 분업화 축구를 연상케 하는 대형이었는데, 볼 운반 방식마저 미드필더의 드리블러들을 생략하고 롱패스에 의존하는, 상당히 바르셀로나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후반전에 임했죠. 이는 비겨도 승점에서 앞설 수 있다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대처였으며, 전술적으로도 마스체라노의 단점은 가리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러한 축구에 대처하기 위해선 높은 라인을 유지하며 메시와 상대 미드필더 사이를 끊어놓은 채 롱패스를 방해하는 방법이 있고, 수비 라인과 압박 라인을 내려 뒷공간을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 있습니다. 분위기 쇄신과 순위 역전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기에 후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전자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기엔 위에서 언급했듯 두 센터백의 카드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높은 라인을 유지했지만 두 센터백은 경합 상황에서 몸을 사릴 수 밖에 없었고, 중앙 미드필더들은 메시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서 전반만큼 높은 위치로 전진해서 롱패스를 방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실점 장면은 이 애매함이 빚어낸 결과였죠. 평소의 라모스였다면 미리 수아레스쪽의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해도 과감하게 오프사이드 트랩 후 쫓아가는 방식을 택했겠지만, 거친 플레이가 불가능했기에 미리 패스를 끊어내려다 화를 불렀죠.

제가 정말 아쉬웠던 건 사실 실점보다도 그 이후의 상황이었습니다. 실점했지만 시간은 아직 35분이나 남아있었고, 전반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주도권을 되찾았어야 했는데 너나할것없이 급해지더군요. 선수들이 슬금슬금 전진하기 시작하는데 패스미스는 많아지니 역습은 계속 허용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는 항상 일정한 수 이상의 수비 숫자를 갖추고 있으니 성과 없이 체력만 계속 소모했죠. 정신적인 압박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을 테구요. 안첼로티가 인터뷰에서 체력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은 이렇게 체력적 우위를 스스로 없애버렸기 때문이겠죠.



3. 이케르 얘기를 안할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짧게나마 하자면, 두번째 실점에 관한 제 의견은 정켈메님 글(http://realmania.net/bbs/zboard.php?id=openbbs&page=2&sn1=&divpage=12&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6074)과 완전히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두번째 골이 이케르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이 밑의 내용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을 듯 싶네요. 거슬릴 것 같으면 스킵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물론 저 실점만이 이케르에 대한 비판의 원인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케르를 싫어하시는 분들도 꽤 계실 거고, 최근의 썩 미덥지 못한 퍼포먼스에 실망하신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 겁니다. 당장 샬케와의 2차전만 해도 저도 막 욕하면서 봤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실점보다도 더 얼빠진 모습들이 많았거든요. 팀 전체가 막장이어서 이케르 개인에게 가는 비난은 좀 덜했습니다만...

그러나 이번 경기에 한해서는, 저는 이케르가 지금의 분위기보다는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졌지만 많은 분들이 이번 경기를 희망의 계기로 삼고 계신 이유는 좋은 경기력으로 '아깝게' 졌기 때문이겠지요. 그 '아깝게'라는 표현은, 한골이라는 스코어차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오지 않을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반 막판에 팀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그 스코어차이나마 지켜낸 것은 분명 이케르의 공이죠.

예. 분명 널리 자랑할 만한 거리는 아니에요. 제 3자가 보기에는 두골 먹으나 세골 네골 먹으나 지는건 똑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죠. 그러나 이 경기를 통해 희망을 보신 분들이라면, 막판 그 두어 차례 세이브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 일전에 썼던 프리뷰 얘기도 좀 하자면, 평소 예상은 박펠레급 정확도를 자랑했었는데 이번엔 생각보다 많이 맞췄습니다! MSN과 BBC의 대결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로 수아레스와 벤제마를 꼽았더니 경기에서도 굉장한 활약을 했고, 부스케츠와 하메스의 공백을 메울 키 플레이어로 꼽은 라키티치와 이스코는, 그러나 그들의 활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지 못했죠. 그렇기에 다득점이 나지 않고 점수 많이 내봐야 팀당 한두골이라는 것까지 맞췄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승패 맞추기를 못했으니 어디다 써먹을까요...

이중 라키티치와 이스코 얘기를 좀 하자면, 이 둘은 개인적으로 꼽는 각 팀의 워스트 플레이어들입니다. 라키티치는 메시를 돕는다는 본인의 기본 롤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고, 두번째 실점 직전 라모스 앞에 위치해 라모스의 정신을 약간 사납게 한 것 이외에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들지 못하며 가장 먼저 교체되었죠. 이스코는 몇차례 유려한 테크닉을 뽐낸 장면이 있었지만 탈압박 이후 다음 선택지를 고르는 시간이 너무 늦어 팀에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적극적인 드리블 시도로 본인 주변의 상대 선수들을 제압해내지도 못했습니다. 빌드업 시 애매한 위치선정과 불안정한 볼 터치로 팀의 원활한 전진을 늦추는 장면도 간혹 있었죠. 전반엔 벤제마가 혼자서도 마스체라노와 두 센터백을 완전히 제압했기에 이러한 부진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후반에 바르셀로나가 라키티치와 이니에스타를 내려 벤제마가 활동할 공간을 크게 줄였을 때 벤제마를 돕지 못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나마 블록 형성에 있어서는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이건 이번 경기 미드필더들이 전부 다 잘한 부분이라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듯...
format_list_bulleted

댓글 24

arrow_upward 이라크 폭탄테러로 이라크 U-23 대표 압둘라 자흐만 사망. arrow_downward [AS]다닐루\"저는 어떤 도전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