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_list
헤타페화요일 5시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이 갖는 정체성

피오호 2009.03.16 23:48 조회 1,915 추천 6
챔피언스 리그에서 연이어 미끌어진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만큼 팬들은 승리에 굶주려 있죠. 그래서인지 이기기만 한다면 뭐든 용서할 수 있나 봅니다. 남자의 팀이라는 스포르팅 히혼을 보면서 오히려 과거의 레알 마드리드를 떠올려봅니다. 승패를 떠나 언제나 경기의 주인공이었던 그 레알 마드리드를 말이죠. 비록 경기에서 패할지라도 구차하게 승점 1점을 위해 수비에만 전념하지 않는,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골문 앞에 빽빽히 들어서 공을 걷어내기 급급한 팀이 아닌 화끈한 공격을 말이죠.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A매치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경기로 98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을 꼽고 싶습니다. 5:0으로 대패한 네덜란드 전이 아닌 1:1 무승부를 기록했던 바로 그 경기 말입니다. 네덜란드 전에서 대한민국은 비록 대패했습니다만, 적어도 상대를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벨기에전에서는 오로지 수비뿐이었죠. 몸을 날리고 그라운드에 나뒹굴면서 상대의 바지 가랭이를 잡고 늘어졌죠. 사람들은 이걸 투혼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엔 비참한 패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미국에서 독일에게 3:2로 패했을 때, 전세계의 언론은 승리자인 독일이 아니라 패자였던 대한민국을 주목했습니다. 비단 세계 최강이라는 독일에게 아쉽게 졌기 때문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철처하게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그들의 정신 말이죠.

축구는 골을 적게 허용하고 많이 넣으면 이기는 경기입니다. 지난 한 세기동안 레알 마드리드는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왔던 팀입니다. 몇 골을 허용하건간에 그 이상의 골을 넣음으로써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을 세계에 알려왔던 것이죠. 한 골이면 충분하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카펠로가 두 번이나 리가에서 우승시키고도 경질당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언제나 최고였던 클럽의 서포터들 답게 말이죠.

레알 마드리드는 언제나 공격하는 팀이어야 하고, 언제나 많은 골을 넣어야 합니다. 그 경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상대팀이 아닌 레알 마드리드에서 나와야 하고,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승리여야 하는 클럽입니다. 비록 졌지만 훌륭한 경기를 했다? 이런 건 하위권 팀들에게나 통하는 말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팀에게는 그런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말 자체가 나와서는 안되는게 바로 레알 마드리드입니다.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1차전. 2:0으로 졌고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졌지만 잘해줬다라고 평가했죠. 레알 마드리드는 그래선 안됩니다. 상대가 우리의 골문을 위협적으로 노리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상대를 위협할 수 있어야 하는 팀입니다. 공격은 팬을 부르고, 수비는 승리를 부른다고 합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레알 마드리드에게 있어서 공격은 곧 팬이고 곧 승리이며 레알 마드리드 그 자체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정신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정신은 이겁니다. 11명의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상대를 압도하는 것. 그 경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스포르팅 히혼의 선수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혼의 선수들은 비록 경기에 패배할지라도 절대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선제골을 넣었다고 해서 잠그는 전술로 바꾸지 않습니다. 히혼과의 1차전을 생각해보죠. 우리는 5골을 넣었지만 히혼은 그러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1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관중석의 서포터들은 마치 경기에서 이긴 양 환호합니다. 4점차로 벌어져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이길 수가 없는데 그들은 기뻐합니다. 약팀으로서 강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환호하고 그들에게 더욱더 힘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환호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그러한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1:0이건 5:0이건 이기기만 해주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기기만 하면 경기내내 카시야스를 둘러싸고 수비만 해도 좋아할 분위기입니다. 그게 이긴 것일까요?
format_list_bulleted

댓글 14

arrow_upward 제가 리베리를 원하는 이유 arrow_downward 호날두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