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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화요일 5시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마드리디스모

Zlatan In Bernabeu 2008.11.30 13:14 조회 2,012 추천 5
 최근 본 경기는 오늘의 헤타페전뿐이지만, 눈과 귀가 있으니 지금 레알의 암울한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골과 동의어인 크로스를 올려주던 배컴은 떠나갔고, 경기장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플레이메이킹 이상의 '게임메이킹'을 해주던 지단 또한 이제는 옛 영웅이 되었죠. 훌륭한 인간성과 압도적인 축구 센스로 찬양을 받던 마드리드의 아들에겐 이제 여전히 훌륭한, 그러나 짝을 잃은 인간성뿐인 듯합니다. 왼쪽을 지배하던 카를로스의 작은 그림자에 비하면 마르셀로가 드리우는 신기루 같은 그림자는 너무나 불안합니다. 철벽이 될 듯 하던 페페도, 좌우를 찢어발기던 로벤도, 거함의 함포처럼 한방 내갈기던 니스텔루이도 부상으로 아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에겐 무엇이 남았을까요?
 레알에게 남은 것은 레알 마드리드라는 이름, 마드리디스모라는 반려자뿐입니다.

 라울이요? 부진합니다. 전성기 때에 비하면 형편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 솔직히 불만스런 경기력입니다. 넣을 골도 못 넣고, 실속도 없이 뛰어다니기만 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모스? 세계 최고란 이름에 걸맞지 않아요. 몇 경기 잘 뛰다 오늘 털리네요. 시종일관 오른쪽을 누비며 상대의 공격수와 수비수 모두를 위협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카시야스? 이거야말로 너 뭥미, 이거네요. 못 막을 골도 딱딱 쳐내던 그의 모습은 환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의 경기만 보면 그야말로 '레알급이 아닌' 선수였어요. 오늘 처음 마디리드의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아니, 저런 선수가 어떻게 레알에?' 라고 놀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그들은 마드리디스타입니다. 우리는 마드리디스모입니다.
 "카시야스 폼 떨어졌네. 쟤 왜 저래" "라울 이제 늙었어. 못 믿겠어" "라모스 저놈 왜이래" "저, 저 미친 가고 자식이" "슈스터 ㅆㅍ" "칼데론 미친X" "미야토비치 물러나" 라는 말보다,
 "힘내요 카시야스" "믿습니다, 라울" "라모스 잘 해라" "가고, 조금만 더 신중히" 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마드리디스모들이 모인 팬사이트입니다.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은 다 똑같겠지요. 그러나 답답함은 일기장에 토로해요. 우리는 답답한 경기력에 울분을 토하고 선수들의 부진함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선수들의 폼 회복을 기도하며 응원해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응원한다고 떠들어 봐야 뭐가 바뀌나? 하시는 분들은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생각해 주세요. 여기서 경기력이 부족하다, 누구를 영입하자 해봐야 바뀌는 게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어차피 실제로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면 보다 긍정적인 말들을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물론 선수들에 대한 비판, 경기력에 대한 불만 등에 대해 입을 다물란 소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칸트의 정언명령을 적용해 보죠. 스페인의 현지 팬들이 경기장에서 "늙은이 라울" "경기를 망치는 가고" "카시야스 한심하다" 등의 말을 외쳐대면 어떨까요. 비록 불굴의 정신력을 지닌 레알 선수들이지만, 정신적 반려자나 다름없는 팬들의 비난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후벼 놓을 것입니다. 래매의 게시판에 "노쇠화된 라울" "폼 하락 카시야스" 등의 글을 적는 것이 그것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마디리디스모입니다. 최고의 팀을 좋아하는 만큼 최고의 팀이길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두 시즌의 부진은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팀이 부진할 때도 우리는 레알을 사랑하잖습니까? 모든 비판의 말이 다 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래도 비판보다는 응원을 했으면 합니다.

 게시판에 비판글은 한가득인데 응원글은 하나도 없어서 잠깐 적어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마드리디스모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 순간도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를 사랑하는 마드리디스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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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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