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디 스테파노, 한 구장에서 만나게 된 날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 세상을 떠났다.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마술적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이며 저널리스트, 사회 운동가로도 활동했던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지난 17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카데나 세르>는 축구계의 거장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한 특별한 하루에 관한 기사를 통해 고인을 추억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1부 리그의 축구단 주니오르 드 바랑키야의 팬이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50년 <엘 에랄도>에 주니오르와 그들의 라이벌 밀리오나리스의 시합을 직접 관전한 내용에 관해서 글을 기고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밀리오나리스에는 젊은 시절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경기 내내 그의 온 몸을 휩쓸던 경기장의 전율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그러면서도 특유의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기록했다.
"처음에 나는 주니오르가 밀리오나리스를 압도한다고 생각했다. 전반전 동안 주니오르 측 골문은 물론 하프 코트 쪽으로도 공이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참에 아예 축구 해설가로 데뷔해볼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당시 주니오르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엘레노 데 프레이타스를 '작가'에 비유하여 묘사하기도 했다.
"엘레노는 틀림없이 탁월한 범죄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분석 능력, 활기 넘치는 움직임, 그리고 마침내 놀랄 만한 결과를 만들어 내서 팀에 기여하는 그 모습은 새로운 탐정 소설의 창작자에 걸맞는 능력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날 경기장에서 보여준 자신의 엄청난 열정과 행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 문명인이라고 볼 수 있는 흔적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싸그리 지워버린 미치광이.
글의 마지막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러한 모습을 "변치 않는 팬들의 형제애"라고 표현했으며 축구광들의 종교를 만들어서 더 많은 팬들이 서로의 열정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1950년의 그날 오후, 바랑키야에서는 훗날 역사에 이름을 남길 두 천재가 함께 했다. 한 사람은 그의 발로 이름을 남겼고, 또 한 사람은 그의 손으로 이름을 남겼다. 디 스테파노의 발이 만든 수많은 골은 레알 마드리드를 20세기 최고의 축구단으로 이끌었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손이 남긴 수많은 글은 20세기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6 March 1927 – 17 April 2014)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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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티 2014.04.19전세기 최고 수족의 만남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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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우뤠췌 2014.04.19@토티 말 겁나 잘하신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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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Raul 2014.04.20@토티 우와 ㄷㄷㄷ 멋있는 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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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베일을벗겨라 2014.04.21@토티 소름돋네진짜 작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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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algado 2014.04.19등장인물 이름 난이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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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날두신 2014.04.19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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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mantle 2014.04.19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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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드리드 2014.04.19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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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족마드리드 2014.04.20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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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TICO 2014.04.20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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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무취이야라 2014.04.20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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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gb 2014.04.2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