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TV, Real Albiol
알비올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세 번째 시즌을, 그리고 조세 무리뉴와 함께하는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 코파 델 레이를 정복한 이 수비수는, 이제 리가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새로운 싸움을 앞두고 있다. 대표 팀과 함께 유로와 월드컵을 들어 올린 이 선수가 이번 Real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스쿼드의 진화에 대해 설명하였다. “팀은 전보다 훨씬 콤팩트하고 공격에서나 수비에서나 강해졌어요. 또한 우리는 위너 멘탈리티와 집중력도 얻었고요.”
Percy Sledge의 "When A Man Loves A Woman"이 오늘 라울 알비올이 인터뷰의 시작을 위해 선택한 노래군요. 레알 마드리드 TV를 방문한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왜 이 노래를 선택했나요? 물론 아내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드는데요, 친구 때문에 이런 노래를 고르지는 않을 테니까요.
네, 실은 제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저도 아주 좋아하고요. 그래서 이 노래로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게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RealAlbiol 인터뷰를 하러 올까 말까 망설였다면서요, 웃음을 멈추질 못할까봐서요.
네, 저는 꽤 많이 웃어요...방송이 잘 나갈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거야 당연히 잘 나가겠죠. 맞아요, 당신은 늘 웃고 있죠. 그게 라울 알비올의 삶 아닌가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경기에 뛸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당신은 매일 웃고 있어요. 선수가 꾸준히 뛰지 못하거나, 혹은 팀이 경기에서 졌을 때라면 보통은 표정이 바뀌기 마련이죠. 하지만 당신은 늘 웃고 있어요, 마치 ‘스페니쉬 마르셀로’같다고요.
뭐, 늘 웃음을 유지하려고 하기는 해요. 가능한 가장 행복하게 지내려고 하고요. 하지만 모두들 그렇듯 저도 덜 좋은 날들이 있고, 슬픈 날들도 있어요. 하지만 매일 삶을 즐기려고 해요. 특히나 제 직업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죠. 그러니 최대한 즐겨야죠, 그렇죠?
그래서 즐기는 데까지 도달했어요?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있나요?
네, 저는 레알 마드리드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이 클럽에서 매일매일 즐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은 특권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좋죠. 최대한 즐겨야 해요. 왜냐면 시간은 흐르고 미처 깨닫기 전에도 시즌은 끝나버리거든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아르벨로아 없이 알비올을 데려오는 게 가능할까? 아르벨로아 없는 RealAlbiol을 진행할 수 있을까?” 왜냐면 RealArbeloa는 벌써 했거든요. 당신들 두 명은 떼어놓을 수가 없어요. 꼭 형제처럼요.
괜찮아요. 여기 가까이 있네요.(아르벨로아의 사인을 가리킴) 어...네, 저는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요. 서로 만난 건 유로 2008에 가기 전, 대표 팀에서였는데, 제 축구계에서의 천생연분(media naranja)같은 존재가 됐죠. 앞으로도 오랫동안 같이 지낼 수 있기를 바라요.
알비올에겐 분명 특별한 점이 있을 거예요. 저는 라커룸에 그렇게 빨리 녹아드는 선수를 거의 본 적이 없거든요. 당신은 그걸, 오로지 당신이라는 사람의 특성만으로 해냈어요.
제 생각에는, 저는 아주 훌륭한 동료들을 갖고 있어요. 아주 좋은 사람들이에요. 저한테 바로 팔 벌려 환영해주고, 저를 잘 대해주는 그런 라커룸에 들어오게 된 건 행운이었죠. 정말 좋아요. 저는 늘 평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그냥 늘 그래왔던 것처럼요. 곁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요. 라커룸에서 제가 문제를 겪었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앞으로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요.
게다가 동료들이 당신 이야기를 할 때면 다들 이래요. “라울 알비올은 진짜 좋은 사람이야.”라고.
동료들이 저에 대해 좋게 이야기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죠. 특히 인간으로 서라면 더더욱요. 이미 말했지만 저는 여기 라커룸이 정말 좋아요. 처음 들어오던 날이 생각나는데, 처음엔 레알 마드리드의 라커룸은 어떤 곳일지, 사람들은 어떨지 몰랐었죠. 하지만 이후엔 쉽게 적응했고, 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치 집처럼요.
사람들에게 라울 알비올의 출신에 대해서 조금 알려주고 싶어요. 알비올은 발렌시아의 작은 마을, 비야마르챤테 출신이죠. 당신이 평생 머무르고 싶어 하는, 아주 예쁜 마을이요. 비야마르챤테 사람들은 어떤가요?
뭐, 비야마르챤테는 작은 마을 이예요. 최근 몇 년간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인구는 8000을 넘지 않고요. 거기에 저희 부모님 가게가 있고요, 벌써 20년이나 됐네요. 마을 대로에 있어요.
복권을 파는 곳이죠?
네, 복권 판매소요. 그리고...제가 거기로 돌아갈 때면 꼭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죠. 거기 공원서, 그리고 길가에서 친구들하고 축구를 하던 그 때로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나곤 해요.
라울 알비올의 가족들은 어땠어요? 알비올이 어린이였을 때, 자라난 그 가정은 어떤 곳이었는지 이야기 해주세요. 예를 들면 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좋아요, 우리는...처음에는 그 마을에 있던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나중에 또 다시 이사를 했어요. 집을 세 번 바꿀 동안요. 물론 막판에는 제 동생 브라이안도 태어났기 때문에 작은 집에선 살 수가 없었죠. 그래서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늘 학교가 끝나면 거기서 부모님 가게로 가서, 가게 앞 길에서 놀고, 축구를 하다가 집에 돌아가곤 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늘 그런 생활을 했죠. 학교, 가게, 집. 저희 부모님하고 형제들은 늘 아주 가정적이고 화목했어요. 좋았죠. 거기서 자라서 행복해요.
당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어머니가 집안의 보스라면서요.
네, 저희 어머니는...아버지도 그렇지만 어머니는 저한텐 참 중요한 분이세요. 제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치셨거든요. 제 성격이나, 겸손함, 노력, 늘 남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 끼치지 않는 것...제가 축구 선수가 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든 걸 다하셨어요. 그러니 좋은 순간이나 나쁜 순간이나 늘 그분들이 제 곁에 계셨죠. 저는 그분들을 사랑하고, 늘 보살펴드려야 해요. 나중에 제 딸들도 저한테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물론 그러겠죠. 그리고 당신이 축구선수가 된 데에는 어느 정도 아버지의 책임이 있죠?
네, 왜냐면 아버지가 축구를 하셨거든요. 메스타야에서도 뛰셨었고, 그런 다음에는 세군다 리가의 사바델에서도 뛰셨어요. 그러니 늘 집안에 축구가 떠나질 않았죠.
센터백이셨나요?
아뇨, 미드필더요. 그런데, 그 당시엔 일도 하셔야 했고, 축구도 하셔야 했던 거예요. 여러 가지를 병행하셔야 했죠. 지금 우리처럼 축구에만 전념할 수가 없으셨어요. 그리고 저희 형도 축구를 하는데, 그래서 집엔 늘 축구공이 있었고 그 두 사람이 저에게 축구를 가르쳤어요.
제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 형 이름은 미겔이고, 동생이 브라이안이죠? 동생 이름이 브라이언 라우드럽에서 따온 거고, 형하고 당신이 부모님을 설득해서 붙인 이름이라는 게 정말이에요?
네, 그게 브라이언은 사고로 태어났거든요.(웃음) 저희 어머니가 거의 마흔이 다 되셨을 때 태어났어요. 저희는 동생이 갖고 싶긴 했어요. 저는 늘 동생을 원했는데, 기대하지는 않았죠. 엄마 나이를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그 놀랍고 기쁜 일이 생겼고, 아버지가 저희더러 이름을 골라도 된다고 하신 거예요. 그 때 형하고 저는 덴마크 대표 팀을 좋아했어요. 마이클 라우드럽을 좋아했거든요. 제 동생 브라이안이 태어난 게 1994년인데, 1992년에 덴마크가 유로에서 우승을 했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그 때 라우드럽 형제를 엄청 좋아했어요. 마이클은 스페인어로 미겔이고, 동생한테 브라이언을 이름으로 붙이자고 결정 내렸죠. 물론 좀 미국스런 이름인 건 알지만...(웃음)
(웃음)비야마르챤테에 이름이 브라이안인 애들은 별로 없겠죠.
네, 결국은 우린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혹시나 세례를 못 받게 할 까봐 비야마르챤테 신부님과 대화를 해봐야 했죠. 다행히 신부님이 마을 모두의 친구 같은 분이셔서 문제는 없었어요.
어린 시절에 어머니, 혹은 아버지께 들었던 조언 중 최고는 어떤 거였나요?
가장 좋은 조언이라...늘 겸손하라는 것, 그리고 일이 잘 풀릴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같은 선을 유지하라는 거요. 저는 늘 일에 있어서 그 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꾸준함이요.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모두를 존중하는 것, 또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요. 힘든 순간들에도 계속 싸우고, 최선을 다해야죠. 그런 것들이 제가 축구에서 지금 여기까지 오는 데에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계속 이대로 해야죠. 저는 제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할 게 많아요.
어렸을 때의 당신은 겉으로 보기만큼 착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요. 어린 시절에 당신이 조명이며 음료수, 카세트, 그런 것들을 가지고 어린이들 파티를 조직했던 적이 있다면서요. 각자 돈을 걷어서, 조명이랑 음료, 카세트를 사고 조금 남은 돈으로 비디오 콘솔 게임 샀죠?
그거는...뭐 대충 그래요. 어떻게 된 이야기냐면, 저희 집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는데요, 제가 몇 살 때더라, 아마 열세 살, 열네 살 때였을 거예요. 거기다가 일종의 디스코텍을 만들었어요. 친구들하고 학교 여자 친구들더러 주말에, 토요일 오후에 와서 춤도 추고 그러라고요. 포커며 카세트며 그런 거 사려고 저희 각자 500페세타씩 냈는데, 제가 물건들을 사러 갔어요. 그런데 돈이 꽤 남은 거예요. 저는 그 때 당시에 8000페세타, 9000페세타 그 정도 하던 플레이스테이션을 사기로 했죠. 저는 당연히 그걸 살 돈이 없었는데, 그 친구들한테 걷은 돈 남은 거로 게임을 산거예요. 당연히 나중에 친구들이 돈 어디 있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게임 샀다고 그랬죠. 할 수 없이 걔네는 매일 저희 부모님 가게로 가서 저희 어머니한테 돈을 받아갔어요.(웃음) 불쌍하게도 저희 어머니는 걔네들한테 조금씩 돈을 주셔야 했죠. 결국 그 게임이 저한테 말썽거리를 치르게 한 거죠.
그리고 라스 파야스(※'파야'라고 부르는 구조물에 불을 붙이는 발렌시아 지방의 축제) 기간이 되기도 전에 파야 인형을 태워버린 것도요, 그럴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저하고 제 친구 하나가 교실에서 쫓겨났었어요. 제 기억으론 교리 문답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영성체를 받기로 되어있었죠. 아무튼 거기서 쫓겨나서 둘이 조금 화가 나서 나왔어요. 저희는 그 전에 라스 파야스 축제용으로 인형 만들기에 참여했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죠. 라스 파야스가 얼마 안 남았을 때였어요. 가서 미리 불을 붙이기로 결정했죠. 당연히 교실에서 내쫓았던 사람들은 그걸 보고 화를 냈죠.
어린이들 장난이죠 뭐. 라울 알비올이 그 복권 판매소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어떤 거예요? 제가 추측하기론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네, 제가 말했듯이 학교가 끝나면 가게로 갔으니까요. 가까웠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가게가 닫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어요. 오후 다섯 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거기 있었죠. 가게 앞에 있는 길에서 놀면서요. 그렇게 매일 가게에서 보냈어요. 저한테는 두 번째 집 같은 곳이죠. 거기로 돌아가면 많은 기억들이 떠올라요. 거기에 있는 벤치에 앉을 때마다, 어렸을 때에 공을 가지고 달리며 놀던 기억이며 많은 것들이 생각나요. 제가 네 살, 다섯 살 때부터 이미 거기서 공을 가지고 놀았어요. 또 기억이 나는 게, 저 공갈젖꼭지를 되게 좋아했거든요. 공 가지고 놀다가 그거 입에 물러 가게에 들어가곤 했어요. 가서 5초 동안 물고 있다가 다시 나가서 놀고, 다시 들어가서 물고요. 꼭 공갈젖꼭지가 저한테 힘을 주는 것처럼요. 계속 들락날락했죠. 그러다가 하루는 부모님이 거기다 매운 걸 발라놓으셨는데 그 때부터 끊었어요. 공갈젖꼭지 물기엔 벌써 많이 컸었죠.
알비올이 처음으로 뛰었던 경기장은 어땠어요? 광장일 수도 있겠고, 거리일 수도 있겠고...
처음엔 마을에서 뛰었었죠, 그러다가 여덟 살, 아홉 살 때쯤에 리바로하에 있는 클럽에 등록을 했어요. 옆에 있는 동네였는데, 비야마르챤테에는 그렇게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 없었거든요. 거기서 한 2년 정도를 있었고, 그런 다음 다시 비야마르챤테로 돌아와서 1년을 거기 있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아침에 경기가 끝나면 가서 점심도 사먹고요. 학교 친구들이며 모두하고 즐겁게 보냈죠. 그러다 열두 살 때 발렌시아 입단 테스트를 받아볼 기회가 생겼어요. 그 때부터는 발렌시아 인판틸에서 훈련을 받았죠.
비야마르챤테에서 알비올과 함께 축구를 했던 그 친구들은 지금 뭘 하고 지내나요?
뭐, 일하고 있죠. 각자 자기 나름의 출구를 찾았고요. 걔들이 행복하게 잘 지내는 걸 보면 저도 기분이 좋아요. 항상 연락 유지하고, 고향에 갈 때면 늘 얼굴 보려고 노력해요.
거기에 있으면 알비올도 그냥 한 명의 친구일 뿐이죠, 비야마르챤테를 방문하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 라울 알비올이 아니라요.
그럼요, 전혀 아니죠. 저도 똑같은 한 명일 뿐이에요. 여러 달, 여러 해 동안 얼굴을 못 보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참 좋아요. 어릴 때부터 알아왔던 사람들을 만나면 늘 감정적이 되죠. 언제고 가능할 때면, 휴가를 받으면 늘 비야마르챤테에 가요.
제가 늘 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심지어 대답들도 대부분 비슷비슷하더라고요. 질문은, “당신이 그 친구들 그룹 사이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였나요?”인데, 그러면 대답들이 그래요.“아뇨, 정말 잘하는 애가 하나 있었는데...”
뭐, 좋아요. 꽤 잘하는 애 하나하고 저랑 대립이 있었죠. 시골에선 왜 늘 애들끼리 누가 제일 잘하는지 이야기하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어떤 애들은 걔라고 하고, 다른 애들은 저라고 하고 그랬어요. 애들 일이죠 뭐. 저는 어릴 때는 축구선수가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주 긴 여정이고 중간에 많은 일들이 생길 수 있거든요. 정반대가 될 수도 있어요. 별로 잘하지 않는 것 같던 애가 갑자기 훌쩍 성장해서 모든 게 변하기도 해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발렌시아 인판틸에 들어간 게 저한텐 큰 도움이 됐죠.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조금씩이요. 아주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계속 중요한 한 발짝씩을 내딛으면서, 상위 카테고리로 올라가고, 그렇게 오늘날까지 온 거죠.
어린 시절 꿈은 뭐였어요?
축구 선수가 되고 1부 리그에서 뛰는 거요. 저는..집에서 경기를 정말 많이 보곤 했어요. 토요일 저녁이면 밖에도 안 나가고 아버지랑 같이 축구를 보곤 했죠. 베팅도 했던 기억이 나요. 부모님이 복권 판매소를 하셨으니 뭐, 쉬웠죠. 그래서 베팅을 하고는 경기를 보면서 제가 맞췄을지 못 맞췄을지 지켜보고 그랬어요. 그게 제 주말일과였어요. 그 텔레비전에 언젠가는 제가 선수로 뛰는 모습이 나왔으면 하는 꿈을 갖고 있었죠.
어떤 선수처럼 뛰고 싶었어요? 어떤 선수에 시선을 쏟으면서, “와, 저렇게 뛰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저희 집에서는, 아버지는 늘 페르난도 이에로를 좋아하셨어요. 저한테 늘 이에로 이야기를 하셨죠. 저는 마이클 라우드럽, 사모라노도 좋아했고요...제가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레알 마드리드요. 그리고 또...그런데 제가 선수를 자주 바꾸긴 했어요. 그때그때 한동안 좋아하다가, 또 조금 지나면 다른 선수를 좋아하고. 그렇게 여러 선수들 바꿔가며 좋아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라울 알비올을 레알 마드리드의 센터백으로 알고 있지만, 알비올은 미드필더로 시작했었죠?
네, 벌써 꽤 예전 일이네요.사실상 제 인생 대부분을 미드필더로 뛰었죠. 1부 리그 데뷔까지도 미드필더로 했으니까요. 지금은 거의 거기서 뛰기가 힘들 정도지만.(웃음)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가 저를 센터백 자리에 놓은 인물인데, 사실 저도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포지션에서 많이 배우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해요.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요.
발렌시아가 당신을 주목하고는 비야마르챤테에서 데려오고, 계속 계단을 밟아 올라가면서, 조금씩 라울 알비올이라는 선수가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열여덟 살의 나이로 발렌시아 1군에 데뷔를 하죠. 제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아마 유에파 컵 경기에서였죠?
네, 그런데 영입을 한 건 아니고 제가 입단테스트를 받았죠. 발렌시아 인판틸에서 2주간 테스트를 받았는데 그 기간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던 걸 기억해요. 엄청나게 긴장했었거든요. 뭐, 통과할지 어떨지 몰랐으니까 당연한 일이죠.
2주 동안 훈련을 같이 한 거예요?
네, 같이 훈련을 했어요. 그런 다음에 발렌시아 인판틸에 남게 될지를 말해줬죠. 첫날 저는 반바스텐 9번이 새겨진 밀란 셔츠에, 그 때 당시 알폰소가 신던 joma의 하얀 축구화를 신고 갔어요. 저한테 넌 발렌시아에서 뛰는 거지 밀란에서 뛰는 게 아니니까 셔츠는 바꿔 입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리고...네, 나중에 열여덟 살 때에 데뷔를 했죠.
그 2주간의 테스트에서 몇 명이나 선발됐나요?
당시 스쿼드가 스무 명 정도였는데, 제 기억으론 일곱 명, 여덟 명 정도가 뽑혔던 것 같아요. 거의 서른 명 정도가 테스트를 받았는데, 나중에 한명씩 불러서 발렌시아에 남게 될지 여부를 말해줬죠. 데뷔는 라파 베니테스가 감독으로 있을 때였어요. 저는 유스팀에 있었는데, 그가 저를 자주 1군 트레이닝에 참가시켰죠. 그러다 하루는 절더러 스웨덴에서 있을 유에파컵 AIK Solna전에 저를 소집했다고 말했어요. 사실 저는 1분 뛰었는데, 그래도 영광스런 1분이었죠. 경기장에 나가자마자 끝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저는 아주 어렸으니까. 그리고 당시 팀에는 좋은 선수들도 많았고요.
그리고 이후에 발렌시아에서 헤타페로 임대를 가게 되죠. 우리가 또 그 사고 이야기를 빼놓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당신에게 일어났던 나쁜 일을 다시 상기하자는 게 아니라, 제가 추측컨대 그 시기에 배운 것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요. 어떤 기억들을 갖고 있나요? 그 때 여기 마드리드로 오는 중이었죠? 헤타페 선수로서 입단식을 가지려고요.
네, 거의 전부 기억해요. 저는 아마 오후 여섯시인가에 헤타페에서 입단식을 하기로 되어있었어요. 짐을 다 싣고, 축구화며 다 챙겨서 집에서 나와서는 가고 있었죠. 반쯤 갔을 때...처음엔 아버지 차로 가려고 했었는데 고장이 나서 에이전트 차로 가고 있었어요....아무튼 반쯤 갔을 때 저는 신문을 읽기 시작했어요.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는데, 중간에 배낭에 뭐를 넣어왔는지 확인하려고 벨트를 풀었죠. 제가 뭘 두고 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신문을 읽느라 다시 안전벨트를 하는 걸 잊어버린 거예요. 그 날은 비가 내렸던 게 기억이 나요. 신문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자가 비명을 지르는 게 들렸죠. 그런 다음엔 큰 충돌이 있었고...그 다음부턴 기억이 없어요. 그 다음으로 눈을 뜬 후의 기억은 헬리콥터를 타고 가는 거였어요. 사실...음..나쁜 순간들이었죠.
힘들었나요?
네, 힘들었죠. 왜냐면 저는 어렸고, 1부 리그에서 뛰는 것과 헤타페에서 데뷔하는 걸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요. 3일 후면 알리칸테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경기가 있었어요. 지단이며, 피구, 그런 스타 선수들을 상대로요. 그 경기에서 뛰는 걸 많이 기대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기고...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잘 모르고...병원에서 거의 한 달을 보냈어요. 힘든 순간이었죠.
저는 한 가지를 상기시키고 싶어요. 삶이 어떤지를 보자고요. 당신을 슬프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삶이 어떤지를 이야기하려는 거예요. 갑자기 한순간에 모든 게 끝난 것 같이 보이고, 그 스타 선수들을 상대로 뛰지도 못하고, 헤타페 입단식도 못하게 되었지만, 지금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세요. 그 한 달 동안 뭘 배웠나요?
많은 강함을 얻었죠. 저는 가족들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정말 힘들게 보냈어요. 저 때문은 아니었죠. 물론 저는 살고 싶었고, 다시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그보단 부모님이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때문에 괴로웠어요. 헬리콥터며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 까지, 부모님이 절 안고 계시는 걸 알았어요. 그 때 제가 부모님을 괴롭게 한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참 많이 아팠어요.
배운 거라면, 정말 많은 걸 배웠죠. 특히나 생각할 시간이 많았으니까. 첫 주에 저는 집중치료실에 있었기 때문에 방문자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간호사가 가끔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하루 종일 혼자 지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이 성숙하고, 예전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게 되었죠. 처음으로 제가 한 질문은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지였어요. 눈을 뜨자마자 저의 꿈은 축구를 다시 하는 거였어요. 네...정말 힘들었죠. 그래도 제 생각엔 긍정적인 부분도 있긴 해요. 신의 가호로 저는 그 사고에서 회복했지만, 불행하게도 사고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리고 병원에서 저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도 만났고요.
알비올과 가족들의 강함 덕분에,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진 또 다른 하나의 신화 덕분에 당신은 회복하게 되었죠. 약 15~17kg 정도 살이 빠지면서 잃어버린 근육량을 되찾기 위해서 아버지가 그 유명한 말고기를 먹였다면서요.
네, 18kg에서 20kg정도가 빠졌었어요. 병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화가 있죠. 처음으로 병원 복도에서 걷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복도로 나갔는데, 60대 노인 분들이 무슨 비행기처럼 저를 막 앞질러 가시더라고요. 아버지한테 이렇게 해서는 다신 축구를 못하겠다고 말했죠.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니까요.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어요?
이제 겨우 첫 걸음이고,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그러셨죠. 저는 그 때 화장실을 가거나 그런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이후에, 다시 체중을 복구해야 했어요. 할아버지하고 아버지가 아시는 말고기 정육점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늘 말고기를 많이 드셨었어요. 좋은 고기죠. 그리고 또 회복기에 좋았던 거는, 아무거나 막 먹을 수 있었어요. 햄버거도 먹을 수 있고...아무 때나 먹어도 됐죠. 그게 회복의 좋은 점이었어요. 뭘 먹어도 살을 찌우기 위한 거니까. 나쁘지 않았죠.(웃음)
그렇게 서서히 걷기 시작하고, 회복해서 처음으로 잔디를 밟던 날 어땠어요? 언제 처음으로 다시 축구선수로 돌아왔다고 느꼈었나요?
음...10월에는 집에서 지내면서 겨우 오후에 걷곤 했어요. 자켓이며 외투, 모자까지 쓰고 산책을 했죠. 제가 그렇게 마르고 약해진 모습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요. 한 시간정도 마을을 산책하곤 했죠. 첫 달은 그렇게 보냈어요. 걷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죠.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힘을 주었으니까, 좋았어요. 그런 다음 조금씩 회복해서, 처음으로 잔디를 밟았을 때는...상상해보세요, 저는 막 전력질주를 하고 싶었죠. 뭐든 다 하고 싶었어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잔디를 밟은 곳이 어디였어요?
발렌시아의 시우다드 데포르티바였죠.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했는데, 사람들이 65kg 정도 나가는 제 모습을 봤어요. 보통 저는 80kg 조금 넘거든요. 그러니 엄청 마른 모습을 본 거죠.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유감을 느끼게 되잖아요. 저는 걱정 끼치기 싫은데. 그래서 처음 며칠은 좀 어려웠어요.
그리고 나중에 점점 신체적으로도 힘을 회복하고, 다시 공을 터치하게 되고...그래서 그 다음은 어디로 가요?
저는 의욕에 가득차 있었어요. 다시 헤타페로 돌아갔죠. 또 차를 타고 갔어요!(웃음) 겁이 안 나더라고요. 아버지 차를 타고 다시 헤타페로 갔어요. 1월이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헤타페에서 소집된 경기가 발렌시아에서 열렸어요. 레반테전이었죠. 레반테 원정경기였는데, 그 경기에서 뛰지는 못했어요. 벤치에 앉아있었지만, 저한테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상을 받은 것 같았죠. 오랜 기간 고통을 겪고, 노력한 결과에 대해 상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1부 리그 경기장의 분위기를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게요. 키케와 당시 수석 코치였던 프란 에스크리바가 저를 믿어준 게 저한텐 정말 중요했어요. 저한테 조금씩 출장 시간을 주었고, 제가 1부 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되었죠.
그런 다음엔 발렌시아로 복귀해서, 발렌시아에서 훌륭한 몇 년을 보내죠. 그러다 2009년에, 레알 마드리드가 라울 알비올의 문에 노크를 해요.
꿈이죠, 그렇지 않나요. 모든 어린이들, 모든 선수들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걸 꿈꾸잖아요. 세계 최고의 클럽에 영입되는 걸요. 그러니 그런 순간에는 초조해지죠. 빨리 영입이 완료되길 바라니까요. 저는 그 때 컨페더레이션 컵 대회 때문에 대표 팀에 가 있었어요. 며칠 만에 모든 게 다 완료가 되었고, 좋았죠. 사람들이 모두 축하 해주는 걸 보면서요. 이게 중요한 무언가이고, 커리어에서 한 발을 내딛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2009년의 그 7월에 대해 어떤 기억들을 갖고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신문을 보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영입되어있고, 다른 날은 또 바로 벤제마가 영입되어 있고...(웃음)
그리고 하루는 알비올이 영입된 게 실리고요.(웃음)
네, 그렇지만 보통은 저보단 다른 선수들에 더 집중하잖아요. 아무튼 그 여름에 기억나는 건, 많은 기대들, 그리고 클럽을 위해 일하고 싶은 의욕...그리고 크리스티아누와 모두와 라커룸을 공유하게 된 것...모두가 저를 잘 맞아주었죠. 그리고 프리시즌엔 아르벨로아와 샤비 알론소가 도착했고요. 대표 팀에서 알던 사람들이라 좀 도움이 됐어요.
레알 마드리드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뭐였나요?
무엇보다도 이 클럽이 전 세계에 걸쳐 차지하는 넓이요. 가는 곳이면 늘 많은 팬들과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기대에 차서 우리를 맞아줘요. 이 클럽이 얼마나 거대한 지를 보게 되죠. 이 클럽의 역사와, 그리고 최고의 스쿼드 중 하나인 이 클럽의 현 스쿼드의 일부분이라는 것은 선수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해요.
이 팀은 어떤 능력이 있나요? 선수들과 팬들 사이에 많은 교감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어요. 그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점점 더 드러나고 있죠.
네, 제 생각엔 우리는 가장 많은 장관을 보여주는 팀이에요. 매 경기 관중석이 가득차고, 관중들이 즐거워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올해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난해보다 더 나아졌고,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관중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목표를 이뤄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목표를 이뤄야 하잖아요. 저는 팀이 지금 그 궤도에 올라있다고 생각하고요, 잘할 거에요.
사람들은 당신들이 관중을 가장 즐겁게 하는 팀이라고 말해요. 종적이고, 빠르고...
겨우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이 팀은 골을 넣거나, 혹은 그런 찬스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어요. 아주 짧은 시간 만에요. 사람들은 그런 걸 원한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홈구장에서는, 팀이 공격을 하고 관중을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고요. 제 생각에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종적인 팀이에요. 우리가 몇 초 만에, 터치 몇 번민에 만들어내는 골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죠. 그게 이 팀이 갖는 미덕 중 하나에요.
다시 메스타야, 발렌시아로 가는데, 아마 당신에겐 특별한 경기겠죠.
특별한 경기죠. 왜냐면...왜냐면 저는 발렌시아 사람이고, 발렌시아 학교에서 자랐고, 메스타야에서 많은 경기를 치렀으니까요. 다시 방문하는 건 언제나 특별한 일이죠. 이미 뛸 기회가 있었는데, 최근 몇 년간 메스타야에선 우리한테 좋은 결과가 있었죠. 이번 토요일에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같이 뛰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에요.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우리가 라울 알비올과 가봤을 땐 말이죠, 다들 당신을 좋아하던데요.
(웃음) 네네, 저는 늘 모두와 잘 지내요. 관계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늘 인사를 나누고...발렌시아에 가면 그런 일이 생겨요. 모두와 잘 지내거든요. 다들 저한테 참 친절하고...발렌시아로 돌아가는 건 늘 기대되는 일이에요. 아주 예쁜 도시거든요.
메스타야는 코파 델 레이를 우승한 장소이기도 해요. 우연의 일치죠!
네, 레알 마드리드는 오랫동안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하지 못했는데, 그걸 라이벌인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우승했어요. 그러니 멋진 날이었죠. 굉장한 경기였고, 우리 모두가 정말 즐거워했어요. 특히나 팬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를 보면서요.
올 시즌의 레알 마드리드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나요? 다들 축구적인 측면에서 성장했고, 지난 시즌보다도 낫다고들 평가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느끼기엔 훨씬 콤팩트하고, 공격에서나 수비에서나 강한 팀이 됐어요. 많은 측면에서 성장했죠. 정신적인 측면에서도요. 팀은 지난해에는 우리가 중요한 승점들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고, 리가에서 우승하고 싶다면 올해는 그런 일이 생겨선 안 된다는 걸 알아요. 특히나 위너 정신과 집중력의 측면에서도 나아졌어요. 우리는 많은 경기에서 승리했는데, 그게 우릴 더 강하게 만들었죠. 또 올해는 감독님과의 두 번째 해이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좀 더 잘 아는 것도 있고요.
팀이 정신적인 측면에서 성장했다고 했는데요, 거기에는 감독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죠. 무리뉴는 당신들에게 무엇을 주었나요?
개성과 위너 멘탈리티, 집중력을 줬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최대치를 요구하고, 단 1분도 멈춰선 안 된다는 걸 알게 하고, 강한 훈련을 실시하고, 언제나 깨어있게 하고...만약 잘 하지 못하면, 언제고 뒤에 풀 충전된 다른 선수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게 모두를 준비가 된 상태로 만들죠. 우리는 이미 무리뉴가 좋은 감독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왜냐면 그가 이전 팀들에서 증명해낸 것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매일매일 그는 그걸 점점 더 보여주고 있죠. 부디 시즌 말미엔 우리가 원하는 모든 타이틀을 따내고 축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가 말하길 당신은 축구에 대해 엄청 잘 아니까 좋은 스포르팅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고 하던데요. 당신이 그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대화하는 거 제가 봤어요.
저는 축구에 대해 아는 걸 좋아해요. 경기나, 선수들에 대해서 아는 거요. 경기를 많이 했으니까 결과나 골들이나 역사가 기억이 나기도 하고요. 그걸 감독님하고 나눌 때도 있죠. 하지만 감독하는 건 저한텐 멀었어요.(웃음)
당신의 아내인 알리시아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분명 수많은 축구 경기를 라울 알비올 때문에 참고 봐왔고, 앞으로도 참아내야 하겠죠. 집에서는 뭘 해요? 트레이닝이 끝나고 집에서 알마, 아사하라, 알리시아랑 있으면 뭘 하나요? 축구는 빼고요.
저는, 되게 집에 있는 타입이에요. 제 아내가 절더러 애들 바람 쐬게 밖에 좀 나가자고 그럴 정도죠.(웃음) 물론 제 아내, 그리고 두 딸들은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해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제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존재죠. 제 가족이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지금은 걔들이 저한테 축구를 못 보게 해요. 애니메이션 보거든요. 그래서 요새는 축구를 보는 게 좀 어려워졌죠.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으니, 친구들 이야기도 해야죠. 산 베르나르디노요!
(웃음) 네, 그 친구는 사람들한테 농담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데요. 웃기지만 동시에 좀 피곤한 친구이기도 해요. 왜냐면 매일 아침에 전화를 한단 말이에요. 알게 된 건 발렌시아에서였는데, 저한테 농담을 했어요. 그 농담 이후로 알고 지내게 되었는데, 엄청난 축구팬이더라고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좋은 관계로 지내요. 사실 그가 하는 농담 때문에 정말 많이 웃어요.
그리고 페르난도도 있잖아요.
페르난도도 크리스티안, 그니까 산 베르나르디노 때문에 알게 됐어요.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페르난도는 원래 산 베르나르디노의 우상이었어요. 페르난도가 예전에 라디오에서 개그를 했었거든요. 산 베르나르디노는 페르난도처럼 되고 싶어 했고요. 그러다 하루는 서로 알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친한 친구가 된 거에요. 그런데 오늘날 산 베르나르디노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세요. 그 일을 하고 있잖아요. 페르난도는 저하고 친한 친구고, 지금 오르미게로에서 일하기 때문에 여기 마드리드에 살아요. 모두 가깝게 지내죠.
아내에게 프로포즈 할 때에 문이 닫혀있는 성에서 하고 싶어했다는 게 정말이에요? 성에, 레드 카펫에 막 준비해놨는데 문이 닫혀있었다고요.
저는 그런 거 준비하는 거엔 늘 서툴러요. 이벤트 준비하는 거 어려워요. 네, 사실..(웃음)성에서 프로포즈 하고 싶었는데, 완전 복잡해졌죠. 망했어요. 결국엔 성 바로 바깥에서 프로포즈를 해야 했어요.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대답이잖아요, 예스를 받는 거요. 아내는 좋아했어요. 제가 생각한 대로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제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며 페이스북을 통해 팬들에게 받은 질문들을 할 거에요. 예를 들면 노에미가 한 질문인데요, “안녕, 라울. 첫째로..”
안녕.
“...첫째로 당신은 정말 좋은 수비수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생각할 때면 사람들은 늘 세계 최고의 팀이고 가장 중요한 클럽이라고들 하잖아요. 당신이 도착했을 땐 무엇이 당신에게 이 클럽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나요?”
저는...선수들에 대한 대우 역시 그랬다고 생각해요. 선수들과, 또 그 가족들...그리고 클럽이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의 중요성도 그렇고요. 교육이나, 모범이 되는 측면에서도요. 왜냐면 제가 말했듯 레알 마드리드는 전 세계에 닿아있는 클럽이니까요. 그러니 책임감을 가져야 해요. 최선을 다하고, 목표를 이루고...그런 것들이 당신이 세계 최고의 클럽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리고 카를로스가 보낸 질문이에요. “당신에게는 누가 세계 최고의 선수인가요?”
저한테는 당연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죠. 그는 매일 점점 더 완전한 선수라는 걸 증명해보이고 있어요. 슛, 헤딩, 스피드, 개성... 그는 언제나 이기고 싶어 하고, 가끔은 우리한테 화를 낼 때도 있어요.(웃음) 바로 그게 그를 가장 훌륭한 선수로 만들고 목표들을 이루게 하는 거죠, 개인적인 목표나, 팀의 목표나. 그와 같은 라커룸을 썼다는 건, 나중에 제가 늙었을 때에 “내가 예전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과 가까이에 있었지”하고 말할 수 있는 멋진 기억이 될 거예요.
이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콜롬비아에서 보낸 질문인데요. 이케르 카시야스랑 사이가 정말 좋아보인대요. 카시야스는 늘 SNS에서 당신 이름을 언급한다고요.
(한숨)매일매일 페이스북에 올리는 거 이제 좀 지겨워요.(웃음) 이케르는 저한텐 특별한 존재예요. 일단 제가 처음으로 프리메라 리가에서 골을 넣은 상대가 이케르였죠. 의심의 여지없이 그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이고, 모든 기록을 깰 거예요. 저는 언제고 “내가 걔한테 한 골 넣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거고, 그건 늘 만족스러울 거예요.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케르를 알게 되면서, 얼마나 솔직하고 겸손한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보게 되었죠. 저 역시 이케르처럼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많이 눈여겨봐요. 카시야스를 주장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건, 우리들에게 아주 긍정적이고, 레알 마드리드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마칠 때 테이블에 사인하는 거 이미 알고 있을 거예요. 동료들이 해놓은 사인 이미 봤죠?
네, 벌써 봤어요. 아르벨로아 사인 옆에다가 할래요. 걔가 화내지 않게요.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들이 라울 알비올에 대해서, 라울 알비올에게 레알 마드리드는 어떤 의미인지, 라울 알비올의 삶은 어떤지를 분명 조금 더 알게 되었을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웃음)
비록 당신은 웃지만요, 당신이라는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에 있어서 참 영광이란 말을 하고 싶어요. 첫째로는 모든 동료들이 말하듯이, 훌륭한 센터백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둘째로는 인간적인 측면에서요. 동료들, 감독, 그리고 당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곁에 있다는 건 굉장한 기쁨이랍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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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팬 2011.11.21선 추천하겠습니다. 반쯤 번역하시다가 파일이 공중분해되셨다고 들었는데 수고하셨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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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즈 2011.11.21또 늦었...의역 오역 개드립 이번에도 많아요. 줄정렬은 또 왜이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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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쥬 2011.11.21보면서 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알비올은 그 차 사고로 인생이 참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그래도 본인이 항상 밝아보여서 천성적으로 잘 극복한 것이려니 했는데 60대 할아버지가 바람처럼 지나쳐가더라는 말에서 본인 마음이 어땠을지 갑자기 확 와닿네요ㅋㅋㅋ 잘 이겨내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그나저나 동생 이름이 스페인 사람 안같네..이러고 있었는데 미카엘 라우드럽 동생 이름 따붙였엌ㅋㅋㅋ 아르비도 그렇고 알비올도 형제들끼리 이름 관련 재밌는 일화들이 있네요ㅋㅋ 귀엽당ㅋㅋㅋ 예전엔 아르벨로아 짜증난다면서 또 냉큼 옆에다 사인하는 것도 뭔가 깜찍(?)ㅋㅋㅋ 정말 수고하셨습니다~감사히 잘 읽었어요 -
릴팬 2011.11.21잘 읽었습니다. 공갈젖꼭지에서 빵터졌ㅋㅋㅋㅋㅋ 선수들이 사고나 수술에서 이겨낸 이야기는 항상 짠하고 감동인것 같아요.. 언제나 번역 감사하게 보고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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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영웅맥카 2011.11.21수고하셔습니다.
알비올에 대하여 많은걸 알게됬네요...ㅊㅊ -
Raul.G 2011.11.21히ㅣ닌니니ㅣㅣㅣ닌니니니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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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경&호날두 2011.11.21무조건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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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ssure 2011.11.21잘 읽었습니다. 알비올 멋지네요 폼 끌어올려서 자주 나왔으면 좋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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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쩐다 2011.11.21알비올 ㅎㅎ 알비올 대단하네요 중환자실에 있다가 재활해서 다시 축구를 할수 있었다니... 보통 결심으로는 힘들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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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hand 2011.11.21와 잘읽었습니다. 읽는데도 오래걸리는 이걸 번역하시느라 고생하셨네여..
우리선순데도 이전에 저런 일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네요 ㅠㅠ -
뽀송 2011.11.21스페니쉬 마르셀로ㅋㅋㅋ 알비올 답네요 ㅎㅎㅎ 알비올이 교통사고를 당했었네요ㅠㅠ 레알에 오래오래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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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w 2011.11.21가장 재밌게 본거 같네요. 여태까지 다른 선수들꺼랑은 다르게 ㅎㅎ
ㅊㅊ!! 고생하셨습니당.!! -
라모 2011.11.21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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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ño-Cuoco 2011.11.21비올아 오래오래 함께 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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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7 2011.11.21알비올 화이팅~! 이제 간지나는 황금색 유니폼입은 모습 내가 봐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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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날레수 2011.11.21스패니쉬 마르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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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르 2011.11.21아 좋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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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룰렛 2011.11.22큰 사고가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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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2011.11.22ㅇㅇ다행인듯하넹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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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stian 2011.11.22제발 폼 찾자.레알에서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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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2011.11.23멘탈 갑... 더더욱 성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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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래매 2011.11.23레알의..수훈갑이.되길 ㅠ나중에 피케..알비올 졈뭇 보고 싶네요 라모스는 전 개인적으로 라이트풀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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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2011.11.25동생 라우드럽 ㅋㅋㅋ
조금 만 더 분발합시다!ㅠㅠ -
zOzoz 2011.11.27알비올 화이팅!^-^! 알비올 말대로 아르벨로아,알비올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레알 마드리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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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맏으리 2011.12.01맨탈 좋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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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2011.12.03오랫동안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