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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레알 마드리드 TV, Real Di María

번즈 2011.10.23 23:51 조회 4,622 추천 12
  노력과 겸손은 앙헬 디 마리아를 가장 잘 정의하는 단어이다. 이 두 가지야 말로 현란하고, 테크니컬하며 골도 넣을 수 있는, 그러나 삶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에 도달하기 까지 많은 투쟁을 거쳐야 했던 선수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그 때문에 디 마리아는 아주 감사하고 있다. 첫째로는 그가 축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힘들게 일했던 가족들에게,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의 소울 메이트, 평생의 친구들이며, 그의 축구 커리어를 지켜봐주는 ‘페드리엘 밴드’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아내 호르헬리나에게. 이 셋은 레알 마드리드의 22번에게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 모두의 지지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의 제가 아닐 거예요. 그 모두와, 그리고 희망, 겸손함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때문에 행복합니다.” Real Di María편의 주인공은 이러한 사람이다.

디에고 토레스의 “Color Esperanza”가 오늘 디 마리아가 인터뷰를 위해 선택한 노래군요. 사실 저도 참 좋아하는 노래예요. 안녕하세요, 레알 마드리드 TV에 온 걸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사실 이 노래는 제 여자친구, 아니 아내도 많이 듣는 노래예요. 저는 이 노래를 희망(Esperanza) 때문에 선택했고요, 삶이 저희 둘에게 준 것이죠. 한편으론 이 노래를 제  아내에게 바치고 싶기도 한데요, 참 아름다운 노래예요.

아르헨티나의 작은 동네에 살던, 앙헬 디 마리아라는 이름의 소년에게 희망이란 어떤 것이었나요?
에, 그건 아주 아름다운 무언가죠. 매번 제가 고향에 돌아갈 때 마다, 친구들을, 제 평생의 이웃들을 만나러 갈 때 마다 말이죠. 그건 참 멋진 일이에요.

그 동네는 어떤 곳이에요? 앙헬 디 마리아와 대화를 할 때면 늘 그 고향을 언급하곤 하는데, 거의 동경과 같아요. 디 마리아의 그 평생의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우리를 거기로 데려가 봐요!
(웃음) 그건 어렵죠. 멀리 있으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그 동네가 지금 사람으로서, 그리고 축구 선수로서의 저를 형성했어요. 길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곤 했는데, 지금도 그 친구들과 친구로 지내죠. 제가 그냥 무명인 선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친구인 애들이니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저는 지금 이 기회에 어젯저녁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 헤레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데요. 그 친구한테는 할아버님이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셨죠. 그 애한테 여기서나마 포옹을 보내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감정적이 되네요. 왜냐면 그 친구들이 당신에겐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잖아요. 그렇죠, 앙헬?
네, 사실은 정말 그래요.

여기서나마 우리 모두 그 친구에게 위로를 보낼게요. 그런 다음엔 이제 당신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데요, 당신도 말했다시피, 그냥 무명이던 시절부터 이제 ‘콤마 사이에 들어가는 누군가’가 된 지금까지 계속 있어준 친구들이라고 했잖아요. 결국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은 직업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닐까요. 그 친구들은 앙헬 디 마리아가 축구 선수가 아닌 날이 되더라도 거기에 있어주겠죠. 하지만 일단 고향 이야기를 해보자고요. 당신이 아직도 어린이였고, 낮은 높이의 작은 집들이 있던...그 동네는 어떤 곳이었어요?
아주 소박한 동네였죠. 아주 소박한 집들이 있고...사람들은 근면하고요. 그곳 사람들은 자기의 것을 갖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해요. 저는 바로 거기서 한 개인의 삶의 가치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겸손함, 삶에서 누군가가 되는 것, 또 적게 벌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그런 것들요.

자기의 것, 이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요? 자기의 먹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끼니를 때울 만큼, 또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딱 그만큼을 갖는 것, 그런 거요. 저희 부모님도 그러셨던 것처럼. 저희 아빠하고 엄마는 저한테 필요한 것을 주고 축구를 할 수 있게 하시려고 일을 하셨죠.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이 어린 시절에 겪은 것들 중에 절대 잊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네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정말로 지금 당신이 있는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뇨, 하지만...

왜, 어렸을 때는 다들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 하잖아요.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어린이들이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곤 하지만, 지금 당신이 도달한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죠.
사실을 말하자면 모든 게 정말 빠르게 벌어졌어요. 로사리오 센트랄, u-20 월드컵, 벤피카, 그리고 벤피카에서 여기까지...이 모든 게 4-5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죠. 모든 게 정말 빨랐어요. 어떤 소년이 이런 일들을 꿈꿀 때는, 중요한 것은 즐기는 거예요. 필드 위에서나, 밖에서나 마찬가지로. 제가 지금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일도 그거고요.

페페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어린 시절에 페페는 물고기를 키웠다고 하죠. 그걸 팔아서 집에 돈을 보태주기 위해서요. 하지만 하루는, 물고기를 판돈을 집에 가져다주지 않았는데, 대신에 그 물고기를 레알 마드리드의 셔츠와 바꿨다는 거예요. 디 마리아는 어린 시절에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가 될 거라고 상상했었나요?
아뇨,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때때로는, 1부 리그에서 뛰는 상상만 해봤죠. 레알 마드리드까지는 아니고. (웃음) 하지만 일이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또 제가 아내와 고른 노래처럼 언젠가는 모든 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현실이 되었죠. 그게 제가 지금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그리고 선수로서나 인간으로서나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해 온 것이에요.

저는 항상 당신들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가족들의 덕분이라는 말을 하죠. 디 마리아의 가족들은 어땠어요?
아주 소박하고, 늘 같이 있는 가족이었죠. 토요일이나, 주말이면 같이 식사를 하려고 늘 가족들 전체가 모이곤 했어요. 때로는 가족들이 그렇게 멀리 있다는 게 힘들기도 해요.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게요. 하지만, 다들 제가 몸은 여기에 있지만, 거기에 같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그런 걸 알기 위해서 자주 대화를 해요.

일단은 먼저 당신의 아버지인 미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탄광에서 일하셨죠, 아마도 자식들에게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분이신가요?
저희 아빠는 제 실수들을 지적하시고 또 제가 잘한 일들도 말해주시는 분이죠. 거의 프로축구선수가 되실 뻔 하셨었는데, 거의 거기까지 도달하셨다가 고향에서 뛰던 중에 무릎을 다치셨어요.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다가 고향에 남으려고 돌아오신 다음이었는데요...

어떻게 된 거에요?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셨다고요? 어느 카테고리에서요?
리저브에 계셨어요. 거의 1부 리그에서 뛸 뻔 하셨죠. 1군하고도 몇 번인가 같이 트레이닝을 받으셨고, 코치들도 마음에 들어 했었대요. 사실, 꼭 저하고 비슷하셨거든요. 빠르고 테크니컬하고..

아버지도 왼발잡이셨어요?
아뇨, 오른발이요. 아무튼,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는데, 가족들을 많이 그리워하셨기 때문에 로사리오에서 뛰려고 고향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친구들과 뛰다가 무릎에 부상을 당하셨고, 그 때는 지금처럼 레이저나 그런 발달된 기술 같은 게 없어서 선택지가 수술밖엔 없었어요. 그래서 결국 축구는 그만두셨고, 뭐 쉰 두 살이지만 지금도 축구는 때때로 다른 베테랑들하고 하세요. 하지만 두 세 경기 뛰실 때마다 무릎 때문에 멈추셔야 하죠. 아빠는 저에게는 저를 정말 많이 도와주신 분이고, 참 많은 걸 배우게 하신 분이고, 또...아직까지도 제가 정말 많은 걸 빚지고 있는 사람이죠.

그러니 참, 삶이 어떤지를 봐요. 축구선수로 거의 1부 리그에 데뷔할 뻔 했는데, 갑자기 무릎에 문제가 생기고, 탄광에서 일하게 되죠.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축구 선수가 되다니. 마치 삶이 그분께 앗아갔던 가능성들을 대신에 당신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 같잖아요.
네, 그런 얘기를 늘 해요. 엄마가 특히 저한테 늘 그 얘기를 하세요. 제가 플레이를 할 때마다, 아빠에게 보상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아빠가 원하셨던 것들을 말이죠. 아빠는 축구를 정말 사랑하세요. 제가 말한 것처럼 쉰 둘 이신데도 여전히 축구를 하실 정도죠. 탄광에서는 16년간 일하셨는데 진짜 힘든 일이죠. 슬레이트 지붕이라 겨울엔 춥고...
제가 1부 리그에 데뷔하자마자 제일 먼저 원했던 게 아빠가 일을 그만하시는 거였어요. 그리고 제가 벤피카로 이적했을 때에는 드디어 아빠한테 “아빠, 이제 일 그만 하셨으면 좋겠어요”하고 말할 기회를 갖게 되었죠. 삶에서 처음으로, 조금은 편해지시기를 바랐어요.

당신도 그 탄광에서 일했었나요?
네, 열한 살이 채 안됐을 때였죠. 열 살...그 땐 아빠를 조금 도와 드렸었고요. 나중에 한 열네 살, 열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땐 아빠 일을 많이 도왔죠. 석탄을 나누고, 봉투를 채우고...일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우리에겐 그 일밖엔 없었으니까, 먹을 것을 구하고 필요한 것들을 사려면 최대한 거기서 일을 해야 했죠.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일하면서 어떤 기억들을 갖게 되었나요? 그런 기억들은 잊지 못하는 것이죠.
제가 말한 것처럼 저는 아빠에게 많이 배우면서 자랐어요. 아빠가 하시던 희생, 가족들을 위해서 하시던 것들...그래서 지금 저는 호르헬리나와 가족을 형성하고, 자식들을 갖기 시작하면서 꼭 아빠처럼 되고 싶어요. 아빠가 절 키우신 것처럼 저도 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요.

살면서 미겔이 앙헬에게 주었던 최고의 조언은 어떤 것이었나요?
글쎄요, 이건 아마 모든 아버지들이 다 늘 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저한테 늘 여러 가지 충고를 주시곤 했죠. 하지만 그 중 하나가, 제가 벤피카에 가던 때였어요. “아들아, 기차는 단 한 번밖엔 오지 않는 법이란다. 올라타서, 앞으로 가야만해.”라고 하셨죠.

그리고 모든 어린이들에게 약점은 우리의 어머니죠. 당신의 경우에는, 당신의 어머니인 디아나였겠죠? 세뇨라 디아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줄 건가요?
모든 엄마들이 다 그렇지만, 정말 놀랍고, 유일무이한 분이죠. 매 경기 전마다 저를 축복해주는 사람이고, 제 아내와 더불어 경기 전에 제게 힘을 주는 사람이고요. 또 언제나 제 뒤에 존재하는 분이죠. 비록 제가 결혼을 하긴 했지만, 지금도 그래요. (웃음)

얘야, 잘 챙겨먹고, 잘 해야지. 차 조심하고, 운전 너무 빨리 하지 마라, 막 그런 거 말이죠.(웃음)
(웃음)그거 전부 다요. 하지만 엄마니까요. 50, 60, 70세가 되어도 늘 제 뒤에서 보살펴주시면서 똑같은 말씀을 하실 거예요. 아빠도 늘 제 뒤에 있어주시는 분이었지만 저희 엄마는요, 우리가 로사리오 센트랄 구장 옆을 지나갈 때면 늘 제게 이런 말씀을 하던 분이시죠. “언젠가는, 네가 여기서 뛸 거란다.” 정말 그렇게 되었어요.

경기 전마다 늘 축복해주신다고 했는데, 정말로 산 엑스페디토(※성 엑스페디투스)에게 촛불을 바치시는 거예요? 매 경기마다 그러신다면 굉장히 독실하신 분인데. 그 기도가 당신에게 힘을 주나요?
네, 사실 그래요. 저한테 정말 힘이 돼요. 제 아내도 역시 산 엑스페디토나 혹은 신에게 제게 힘을 주도록 촛불을 바치곤 하는데, 저도 믿음을 갖고 있고, 그래서 필드 안에서 많은 힘을 얻어요.

그런 기도가 결과는 보장해주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필드 위에서 당신이 갖는 힘만큼은 명확한 것 같아요.(웃음) 아니 진짜 말이 안 되잖아요, 평범한 게 아니라고요. 당신은 도대체 멈추지를 않아요. 축구를 하고 있을 때면 당신은 쉬지를 않고 뛴다고요.
저는 매 경기 제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 그걸 수비수들도 알아본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저한테 뛰는 거 멈추지 마라, 넌 지치질 않는구나!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거든요. 또 그런 게 바로 계속 뛰고, 계속 팀을 돕고자 하는 의욕을 가장 북돋워주는 것 같아요.

여자형제들인 바네사와 멜린도 앙헬과 비슷한 성격들을 갖고 있나요?
바네사는 아빠랑 더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완전 너무 차분하죠. 지나칠 정도로(웃음) 진짜 조용해요. 다른 하나는 네, 활발하고 축구도 좋아하고 모든 종류의 스포츠를 좋아해요. 하지만 바네사는 진짜 차분해요. 지나치게요.(웃음) 저랑은 많이 달라요.

디 마리아의 집은 어땠나요? 여자형제들하고 방을 같이 썼나요?
음, 거실하고 식당이 붙어있는 형태에요, 부엌은 다른 구역에 조금 분리되어 있었고요. 그리고 방은..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여자형제들하고 방을 같이 썼었고, 그러다 나중에는..거실-식당 옆에 쪼끄만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 옆에는 또 외부로 난 방이 하나 있었어요. 아마 제가 한 열세 살, 열네 살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빠가 그 외부로 난 방의 벽을 허물어서 방 하나로 만드신 다음에 거기를 제가 할아버지하고 같이 쓰게 하셨죠. 그래서 뭐,(웃음) 제 방이 생겨서 조금 기뻤어요.

그래서 그 방은 어땠어요? 벽에 축구선수들 사진을 붙여놓았나요? 디 마리아가 축구 선수가 되는 꿈을 꾸던 그 방은 어떤 곳이었어요?
작은 텔레비전이 있고요, 침대는 되게 작았고, 정원 쪽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고...네, 그리고 제 사진도 있었고 머리맡에는 제 영혼의 팀인 로사리오 센트랄 깃발을 붙여놨었죠.

어렸을 때 디 마리아의 어머니에게 사람들이 “부인, 쟤를 뭐든 운동을 좀 시켜보세요. 견딜 수가 없어요. 애가 도대체 멈추지를 않네요.” 라고 했다는 게 정말이에요?
(웃음) 네,네. 저희 엄마는, 제가 네 살, 다섯 살일 때 이미 제가 집안에 있는 걸 다 부수는 데에 질려버리셨죠. 서너 살 때 벌써 집안 물건들을 다 망가뜨리고 다녔어요. 그래서 하루는 절 의사선생님께 데리고 가셨죠. 그랬는데, 엄마하고 진찰실 안에 같이 있는 동안에도 제가 계속 빙빙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의사선생님이 “쟤는 뭐든 운동을 해야겠네요. 확실합니다.”그러셨죠. (웃음) 그래서 결국 네 살에 동네에 있던 클럽에서 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 친 제일 심한 장난은 뭐였어요?
뭐, 엄마가 저한테 늘 말씀하시는 게 하나 있는데요. 저희 가족이 그 집으로 막 이사 온 직후였는데, 집이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어요. 그리고 정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아장아장 걸어가 가지고 우물에 빠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구출했죠. 바로요. (웃음)

어머니 이야기를 했는데, 어머니가 늘 훈련장에 데려가시곤 하셨다고 했잖아요. 그것도 자전거로요.
네. 집에서 동네 클럽에 500미터 정도 거리였던 때는 둘이 걸어서 가곤 했어요. 가끔씩 동료들이나, 코치님이 지나가실 때면 저 데려가시기도 했고요. 왜냐면 엄마도 아빠랑 같이 일을 하셨으니까요.

어머니도 탄광에서 같이 일하셨어요?
네. 저보다 훨씬 많이 일하셨죠. 저는 아직 어렸을 때니까. 엄마가 아빠 일을 많이 도우셔야 했어요. 그리고 제가 아까 바네사가 차분하다고 말했는데, 바네사는 둘째고 집에서 제일 많이 집안일을 도맡았거든요. 그러다보니 갑자기 성숙해진거죠.

어머니와 둘이 훈련장까지 걷던 그 시간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예쁜 기억이죠. 제가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뛰기 시작한 게 여섯 살, 일곱 살 그 즈음이었는데, 로사리오 센트랄 스포츠 센터까지 가려면 30분을 자전거로 가야했어요. 뭐 좋았기는 한데, 겨울이 되거나 비가 오면 힘들었죠.

비가 오는 날에도 둘이서 자전거를 탔어요?
네. 그리고 제 둘째 동생이 있을 때에는 걔를 앞에 부착하는 좌석에다 앉히고, 제가 뒤에 타고 그렇게 셋이서 훈련장까지 갔어요. 30분을 가면 훈련하는 곳인 스포츠 센터에 도착했죠. 그렇게 대충 6,7년을 계속했어요.

어렸을 때 집이 어려워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걸 들었어요. 그 어려운 형편에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당신의 축구화를 사셨다고요. 여동생들은 선물을 많이 받지 못했고요. 당신이 그런 특혜를 누린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그 때문에 엄마께는 집을 사드렸고 또 동생들에게는, 지금 제가 선물하는 것들이며 또 동생들이 사고 그런 것들을 즐기게 하는 거죠. 어렸을 때 제가 축구를 하려면 부모님은 축구화를 사주셔야만 했어요. 그리고 비록 저한테 말씀은 안하셨지만, 그 때문에 동생들은 다른 걸 못 산다는 걸 알고 있었죠. 축구화 비싸잖아요...아무튼 지금은 행복해요. 저한테 모든 걸 주었는데, 지금은 제가 아빠나 엄마, 동생들한테 줄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보답이 되는 건 돈보다도 긍지겠죠. 그렇게 밀어주었던 당신이 지금 여기 이 위치까지 도달했다는 자랑스러움 말이에요.
네, 맞아요. 사실 그게 가장 아름다운 일이죠. 엄마아빠가 17년, 18년 동안 제가 중요한 선수가 되도록 제게 쏟아주셨던 것들을 이제는 보답할 수 있는 거요. 그리고 부디, 계속 이대로 제 커리어가 끝날 때까지 쭉 보답할 수 있기를 바라요.

다시 어린 시절 동네 이야기로 돌아가서, ‘페드리엘 밴드’ 친구들 이야기를 해볼까요. 알렉시스, 니콜라스, 브라얀, 헤레, 마우리, 디에고, 그리고 앙헬. 이 친구들이 당신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죠?
네, 또 하나의 가족이죠. 제 친구들은, 제가 아무도 아닌 그냥 무명선수일 때부터 절 보러 와주고 늘 곁에 있어주고, 제 골을 축하해주곤 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그래요. 제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경기를 뛸 때마다 예전과 똑같이 축하해주고 멀리서나마 늘 제 경기를 보고요. 몇몇 친구들은 벌써 여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도 왔었어요. 몇몇은 아직까지 못 와봤는데 또 올거고요. 아무튼 늘 다들 TV로 지켜보고 있고, 이것 또한 제게는 자랑스러운 일이죠.

디 마리아의 친구가 되려면 가져야 하는 특질은 뭐가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겸손함이죠. 소박하고, 상냥하고...제가 말했듯이, 저한테 겸손함이란 가장 기초적인 무언가에요. 저희 동네는 굉장히 소박한 곳이죠. 제 친구들, 이웃들도 그렇고요. 제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늘 하는 말이 진짜 친구는 좋은 순간이 아니라 나쁜 순간에 드러난다는 거죠. 우리가 인터뷰 초반에, 당신의 친구인 헤레에게 일어난 일을 조금 이야기 했었는데요. 지금 친구들 모두가 그와 함께 있어주고 있죠?
네. 친구들 모두가 그와 밤새도록 있어줬어요. 그리고 저는 여기서 대화를 했죠. 메시지도 보내고, 답장도 받았는데, 제가 전화 걸어주고 메시지 보내줘서 정말 좋았다고 해서 참 기뻤어요. 왜냐면 제가 함께 있다는 걸 걔도 아니까요.

디 마리아가 그 친구들과 함께한 순간 중에 잊지 못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어, 한 순간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워요. 왜냐면 저희는 늘 같이 붙어 다녔거든요. 매일매일, 아침, 점심, 저녁, 계속 공 가지고 놀면서...학교가 끝나면 집에 소지품만 가져다 놓고 바로 나가서 놀곤 했죠. 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제가 포르투갈에 살던 때 처음으로 리스본에서 돌아갔던 때에요. 크리스마스 기간에 고향에 돌아갔는데, 6개월 만이었죠. 저한텐 참 힘든 6개월이었어요. 처음이었고 사실 정말 많이 힘들었죠. 하지만 돌아갔을 때는, 그 여섯 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르헨티나에서 4일을 보냈는데, 4일 내내 잠도 안 잤죠. 내내 다 같이 지내면서 섬에도 가고, 축구도 하고, 같이 뭐 먹으러 가고,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그 순간이 늘 기억에 남을 거예요. 6개월 만에 돌아갔는데, 여섯 명이 저를 잘 왔다고 안아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그리고 일곱 명 모두가 타투를 갖고 있다면서요? 누가 그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건 제가 포르투갈로 갈 때 했던 건데요, 제가 타투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여기서 수십만 킬로미터 거리에 있더라도 친구들을 제 피부에, 핏속에 간직하고 싶다고요. 우리가 어디에 있건 같이 있게요. 제가 이야기를 하자마자 다들 “그래 가자”그랬죠.(웃음) 그래서 첫 날은 네 명이 타투하고, 그 다음날은 나머지 세 명이 했어요. 아직도 아르헨티나에서 같이 장난치고 웃고 떠들고 할 때면 꼭 타투 얘기가 나오죠. “너 그 때 우리 타투 하던 그거 기억 나냐? 진짜 미쳤지”하면서요. (웃음) 왜냐면 그 때 저희는 겨우 열여덟 살 정도였고 몇 명은 나이 때문에 타투를 받으러 갈 때 아버지가 서명을 하러 동행하셔야 했어요.(웃음) 아무튼 재밌는 경험이었죠. 그리고 어디에 있건 우리는 ‘페드리엘’이라는 걸 아니까 좋아요.

그 일곱 명 중에서 당신이 제일 축구를 잘 했나요?
(웃음) 그 중에 몇몇은 꽤 잘했어요. 하지만 늘 운이란 게 작용하죠. 저는 여섯 살, 일곱 살 때 저하고 계약하고 싶어 하는 클럽이 있었고 거기로 가서 성공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얼마 전까지도 축구를 했더라도 스물 둘, 셋이 되면 이제는 어떤 클럽도 계약을 원하지 않는 법이잖아요. 벌써 다 컸으니까. 그러면 이제 자기의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직업에 종사해야 하죠.

당신이 사랑하는 클럽인 로사리오 센트랄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에는 당신의 우상인 킬리 곤살레스가 뛰고 있었죠.
저는 언제나 그가 대표 팀에서 뛰는 걸 보았고, 제가 뛰는 포지션에서 뛰는 데다,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나온 선수이기 때문에 그를 우상으로 여겼어요. 강렬하고 강한 선수라고 생각했고요. 저 스스로 대해서도 제가 그와 같은 애티튜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게도 저는 그와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1년 동안 같이 뛸 기회가 있었는데, 제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죠. 제 우상의 바로 옆에서 뛰는 거요...저한테 “잘했어, 앙헬리토!” 이러는 걸 듣고..저한텐 정말 멋진 일이었고 잊지 못할거에요.

그런 이후에 유럽으로 도약하죠. 디 마리아는 아르헨티나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여러 팀들이 당신을 원해요. 그리고 유럽에 진출하죠. 당신은 혼자 지낸 게 처음이라서 그 시기를 처음엔 힘들게 보냈다고 말했죠.
네, 저는 유럽에 아빠하고만 단 둘이 갔었어요. 엄마랑 동생들은 아르헨티나에 남았고요. 처음엔 힘들게 보냈죠. 아빠가 우시는 걸 보는 것도 영향이 컸고요. 저희 가족은 한 번도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둘 다 아주 힘들어했어요. 게다가 저는 거의 뛰지를 못해서 더더욱 나빴죠. 저한테 뛰게 될 거라고, 선발로 뛰게 될 거라고, 그렇게 말했었는데 갑자기 저는 명단에서 제외되고 벤치로 가기 시작했어요. 축구에선 그런 일이 종종 생기죠. 아무튼 많이 괴로웠어요. 저 때문보다도 아빠 때문에 더 그랬죠. 밤마다 엄마가 그리우셔서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요.

그리고 당신을 믿어주었던 가족들의 지지 덕분에, 드디어 벤피카에서 경기에 나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입에 디 마리아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하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구였을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당신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누가 하는 거예요.
제가 말한 것처럼, 겸손함과 희망을 갖고 있으면 많은 걸 배워가게 되고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 해에 저는 아주 좋았죠. 가족들은 멀리에 있지만 저는 이미 호르헬리나와 지냈으니까요. 일도 잘 풀렸고, 제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족들도 더 안심했고, 저도 그걸 알았기에 더 침착할 수 있었고요. 점점 더 일은 저에게 좋은 쪽으로 풀려나갔죠.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 바로 그 일이 일어날 때 까지요.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에 사인을 하는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나요?
솔직히 말하면 바로 그 순간까지도 제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제 친구들은 가끔 그런 말을 해요. “너 지금 네가 어디서 뛰는 지 깨닫고는 있냐? 어느 구장에서 뛰는 지 아는 거야?” 그 애들한테 제가 베르나베우에서 뛰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제 아내한테 들은 건데, 제 친구 중 한 명인 니코는 베르나베우에 경기를 보러 왔을 때 심지어 울더래요. 베르나베우 구장을 보고, 제가 거기서 뛰는 걸 보면서요. 그런 게 한 사람을 꽉 채워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을 하고, 뛰고, 또 뛰고, 매 경기마다 죽어라 노력하는 거죠. 제 아내,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모두가 경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요. 모두를 위해서 그 모든 걸 해요.

베르나베우 관중들이 당신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나요? 당신이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 열심히 뛰는 것, 그런 것들을요. 역사적으로 베르나베우의 관중들은 늘 이 셔츠를 위해 목숨을 걸고 뛰는 듯 한 그런 선수들을 사랑해왔죠. 베르나베우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알아요?
네, 사실은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말해준건데, 제가 나올 때 마다 사람들이 멈춰서 박수를 치고 제 이름을 연호하더래요. 그건 저를 정말 뿌듯하게 해주는 일이에요. 팬들이 선수가 하는 희생을, 필드 위에서 하는 노력을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비록 가끔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더라도, 더 뛰고 싶고 더 팀을 돕고 싶고 더 발을 내딛고자 하는 욕구에 플러스가 되어주죠. 그런 게 바로 사람을 채워주는 것이고 그래서 저는 필드 위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관중들도 역시 입장료를 내고, 마드리드의 소씨오가 되려면 치러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요. 제 생각엔 바로 그 때문에 팬들이 경기장에 올 때면, 강하고 날카로운 팀을 보기를 원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팬들이 흡족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가 필드 위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제 모든 걸 다 바치려고 해요.

입장료 얘기를 하는 걸 들으니까 제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네요. 왜냐면, 정말 그래요. 사람들은, 정말 많은 사람들은 경기장에 오기 위해서 큰 노력을 하고 있고 그래서 당신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바라죠. 디 마리아는 올해의 팀을 어떻게 생각해요?
작년보다 훨씬 더 나아졌어요. 지난해에도 우리는 아주 좋았죠, 정말 좋았지만, 올해는 팀으로서 더 성장했는데 이건 우리가 벌써 1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죠. 새로 들어온 선수들도 아주 빠르게, 잘 적응했고요. 예를 들면 파비우는 처음부터 경기에서 정말 잘했고, 다른 선수들도 조금씩 올라오고 있죠. 팀은 정말 강한 상태고 우리가 더 단합했다는 걸 필드 위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누가 골을 넣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모두가 그걸 알고 있고, 뭐가 되건 올해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아요.

저는 이 인터뷰를 할 때면 늘 선수들에게 라커룸 분위기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요, 왜 얼마 전까지 몇몇 언론들에서는 라커룸 분위기가 나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내보냈었잖아요. 여길 거쳐 간 모든 선수들이 실제로 라커룸 분위기는 정말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네, 제가 말한 것처럼 선수들 간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트레이닝에서 보면 모두가 같이들 있는 걸 볼 수 있고요, 안에서나 밖에서나...우리가 같이 식사를 할 때도 볼 수 있죠. 팀은 지금 아주 좋은 상태에요, 이건 작년과 마찬가지지만, 올해는 새로 온 선수들이 있으니까 더 강하죠. 그리고 누구도 그 누구와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어요.

그 모두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조세 무리뉴라는 이름의 남자인데요. 무리뉴가 당신이 접해본 최고의 감독인가요?
저한테 많은 걸 가르쳐주었죠. 저를 팀에 원했던 인물이고, 그러니 제가 여기에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서 필드 위에서 모든 걸 다 바치려고 해요. 계속 저에 대해 똑같은 의견을 가졌으면 좋겠고, 영입한 보람이 있다고 말하길 원해요.

무리뉴가 이 팀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다요. 제 생각에 무리뉴는 경기를 뛰는 선수나, 뛰지 않는 선수나, 모두에게 똑같이 대하는 사람이에요. 감독에게 그건 아주 중요하죠. 왜냐면 뛰지 않는 선수는 뛰기를 원하기 때문에 언제나 심리적으로 조금 처져있기 마련인데, 무리뉴는 늘 그런 선수들에 주의를 기울이거든요. 제가 뛰지 않던 시기에도 늘 제 위에 존재했고, 제가 베티스전에 뛰게 되었을 때는 저더러 “가! 가서 필드를 먹어 치워! 네가 할 줄 아는 것을 하는 거다!”라고 했어요. 이런 게 우리에겐 힘이 되거든요. 왜냐면 비록 뛰지 않는 선수였다 해도 감독이 당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알면 기운이 나죠.

리옹 전에서 승리하고 이제 말라가 전을 앞두고 있는데, 아마 굉장한 경기가 되겠죠. 보기 드물게 훌륭한 팀이에요.
네, 아마 아주 힘든 경기가 될 거에요. 말라가는 좋은 팀을 갖고 있고 또, 전혀 나쁘지 않게 해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하는 대로만 계속 치열하게, 이만큼의 파워와 날카로움을 가지고 해나간다면야 저는 우리가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당신은 올해 팀이 다시 시벨레스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보나요? 물론 아직 너무 이르고,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이미 거기에 가봤잖아요. 이미 시벨레스에 가는 게 어떤 건지 겪어 봤잖아요. 그렇죠? 시벨레스에 올 시즌 다시 가는 꿈을 꾸나요?
네, 당연하죠. 부디 우리가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요. 한 번만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갔으면 좋겠어요. 그럼 정말 멋지겠죠. 다른 팀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올 시즌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을 볼 때 저는 우리가 시벨레스에 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셨듯이 아직 앞으로 많이 남아있지만, 우리는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모든 레알 마드리드 가족들이 기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지난 시즌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이 디 마리아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최고의 순간이었나요?
네, 저는 좋은 경기들을 여럿 했지만, 그게 모든 경기 중 최고였던 것 같아요. 절대 그 크로스와, 크리스의 헤딩을 잊지 못할 거에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골을 넣었을 때 저는 소리를 질렀는데, 생전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제 첫 타이틀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제가 여기서 드는 첫 코파 델 레이였고요. 저한텐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어요.

혹시 그 저녁에, 울기도 했어요? 디 마리아는 축구 때문에 울어본 적이 있나요?
운적은 없어요. 하지만 승리한 후에 소름이 돋거나, 혹은 눈물을 글썽거렸던 적은 있죠. 그런 적은 있어요. 아니다, 거짓말이에요. 저 실은 한 번 운적이 있어요. u-20월드컵에서 칠레를 상대로 세미 파이널 경기를 뛰는 중에 부상을 당했었을 때요. 저는 다른 선수가 된 것처럼 뛰던 중이었고, 막 선발이 된데다가, 4경기 동안 3골을 넣었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결승전을 부상 때문에 놓치게 된 건 정말 충격이 컸고 눈물이 났죠. 그래서 그 날 울었어요.

당신은 또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감정적이 되는 걸 볼 수 있었는데요, 아내인 호르헬리나 이야기도 빼놓고 가고 싶지는 않네요. 늘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호르헬리나가 당신의 삶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큰 사랑과 애정이요. 제가 더 침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그녀의 모든 걸 바쳤고요. 늘 제 옆에 있으면서 저를 지지하는 사람이고, 뒤에서 살펴주는 사람이며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하는 사람이죠.

당신이 매 번 골을 넣을 때마다 하는 하트 제스쳐는 그녀에게 바치는 거군요.
네, 포르투갈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건데, 왜냐면 호르헬리나는 언제나 제 곁에 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늘 저를 지지해주었으니까요. 골을 넣을 때마다 그 골을 그녀에게 바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녀가 늘 저와 함께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아주길 바라요.

하지만 아내에게 한 가지 빚진 게 있어요. 신혼여행 가야죠. 결혼은 했는데 신혼여행은 안 가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건 말이 안 돼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감독님 잘못이라고요.(웃음) 우리는 사실 원래 코파 아메리카 결승에 도달할거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랬는데 그 전에 탈락했고, 뭐, 사실 그걸 생각하면 감독님은 저한테 휴가를 정말 많이 주셨어요. 피파(이과인)보다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결혼을 할 수 있었고...뭐 좋아요. 신혼여행 건은, 올해 안에 꼭 갈 겁니다. 꼭이요. 확실해요. 제가 죽지 않는 한은요.(웃음)

그럼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볼까요,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를 통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뉴욕에서 이런 질문을 보냈어요. “디 마리아, 당신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넣은 골 중 어떤 골을 가장 좋아하나요?”
지난 시즌에 데포르티보전에서 넣었던 골이요. 헤딩으로 넣었는데 헤딩골은 제 커리어 사상 처음이었거든요.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적어도 1부 리그에선 확실히 처음이었어요.

또 다른 질문은요, “디 마리아는 학교 다닐 때 좋은 학생이었나요?”
아뇨. 완전 나쁜 학생이었죠.

아주 나빴군요.(웃음) 그리고 다른 질문은,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데, 슬픈 날에는 어떻게 기분전환을 하나요?”
아내가 큰 힘이 되어주죠. 제가 잘 지낼 수 있게 많이 도와주고요. 저는 울고 싶으면 울 수 있게끔 옆에 누군가가 있으니까요.

그럼 이제 싸인을 하면서 인터뷰를 마치기로 해요. 그리고 이 노래, 디에고 토레스의 “Color Esperanza”의 가사처럼, 레알 마드리드의 모두가 당신이 여기서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길 희망한답니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고, 저는 당신의 성품과 매 경기 나타내는 축구에 대한 열정이라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커다란 존재가 될 거라고 확신해요.
감사합니다. 레알 마드리드 tv 여러분께도 오늘 인터뷰 감사하고요,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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