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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레알 마드리드 TV, Real Pepe

번즈 2011.09.10 20:44 조회 5,971 추천 32

  비록 어린 시절에는 아무도 그가 프로축구선수가 될 거라고 예상치 않았으나, 케플레르 라베란 리마, 페페라고 더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헌신과 희생으로써 마드리디스모의 마음 또한 얻어내었다. 축구선수로서의 모습 뒤에는 겸손하고 쾌활하며, 직업적으로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역사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적인 사람이 숨어있다. “올해가 여태까지 본 중 가장 팀이 강한 모습인 시기 같다”고 페페는 말한다. 어린 시절 맥마나만의 셔츠를 생선 몇 마리와 바꿔 받으면서 시작된 그의 꿈은, 흰 셔츠를 입은 채로 승리하는 것이다.

Chrishan의 'Like u do'는 페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요. 이유가 뭐죠?
저에게 영감을 주고, 경기를 준비하게 하는 노래에요. 동기를 부여하는 노래이기도 하고요.

오늘은 당신과 아주 가까운 어떤 이에게는 특별한 날이죠. 오늘 여기 나와준 걸 감사해야겠어요. 왜냐면 9월 8일은, 당신의 여자 친구인 소피아 생일이잖아요…
맞아요, 그녀의 생일이죠. 저에게는 여기서 이 순간을 모두와 나누는 게 기쁨인걸요. 오늘이 그녀에겐 인생의 또 하루이자, 제가 그녀와 함께하는 또 다른 1년이 되겠죠. 오래오래 함께하게 되길 바라요.

짐작컨대 뭔가 특별한 걸 준비해뒀겠죠, 아닌가요? 페페는 로맨틱한 사람이잖아요.
(웃음) 그거는 소피아가 집에 도착하는 때가 될 거에요. 심플한 거긴 한데요, 하지만 우리의 관계에 아주 큰 중요성을 갖고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페페가 여자 친구를 위해 했던 일 중에 가장 멋졌던 건 뭐에요?
몇 가지 있죠. 그 중 하나는 제가 소피아랑 사귀었던 때였어요. 휴가기간에 포르투갈에서 브라질까지 세 번을 갔었죠. 마지막 세 번째에 그녀에게 나 혼자 브라질에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어요. 소피아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국가시험을 보고 있었는데, 시험이 끝나고서 우리는 비행기를 잡아타고 브라질로 떠났죠.

그녀를 정복하기 위해선 Willy Fog(※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를 차용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여행해야 했었군요?
(웃음) 뭐 몇 가지를 했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여자고 늘 제 곁에 있는 사람이에요.

좋은 순간이나 나쁜 순간이나 늘 당신을 지지해주는 특별한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아주 중요한 일이죠. 제가 좋은 일을 할 때뿐 아니라 나쁜 일을 할 때에도, 소피아는 늘 제 곁에 있었고 제가 뭔가 나쁜 짓을 했을 때는 한 번도 저에게 동의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깨닫게끔 해주고, 절더러 고치라고 말해주곤 했죠. 지금 제가 여기 마드리드에 있을 수 있도록, 그리고 여기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녀가 해 준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저에게 정말 많이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페페도 특별한 사람이고요. 페페를 진짜로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늘 그렇게 말한답니다. 사람들이 왜 실제의 페페와는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하나요?
필드 위에서의 저는 필드 밖의 저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경기장 안에서 저는 팀을 돕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지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 제가 하는 일에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고, 저는 제가 하는 일에 많은 감정을 갖고 있어요.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제가 하는 플레이를 두고 다른 해석들을 하곤 하죠. 왜냐면 제가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플레이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기고, 또 제 팀을 돕기 위해서요.

페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죠. 아주 행복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가족들과 또 친구들과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게 가장 중요한 일들이에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 하려고 해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제게 영감을 주고 제 길을 계속 걸어갈 힘을 주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페페는 어린애 같다”고 항상 말하곤 해요. 왜냐면 늘 장난치고, 웃고 있고…
그건 사실이죠. 저는 진지하게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많은 즐거움과 겸허함을 가지고 삶을 바라보고 있어요. 제가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생각 중 하나는, 미소 뒤에는 언제나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거죠.

브라질에서 태어난 어린 페페에서, 지금의 다 자란 페페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요?
겸손함이요. 저에겐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저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죠. 어느 날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신 게 기억이 나네요. 직업을 빼고는 제 삶에서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고, 그러니 언제나 그대로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죠.

어린 시절의 페페는 어땠어요?
차분하질 않은 아이였어요. 길에 나가 노는 걸 엄청 좋아했고 도대체가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좋아했던 적이 없어놔서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늘 친구들하고 놀거나, 그 나이또래의 애들이 하는 것들을 하곤 했어요. 브라질에서 참 좋은 유년기를 보냈었어요. 그 이후엔 포르투갈에서.

당신이 축구를 처음으로 시작했던 그 동네는 어떤 곳이었나요?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다 아는 소박한 동네였죠. Benedito Bentes라는 곳이에요. 대문을 닫아둘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는 친구들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있곤 했죠. 'sotapipa'를 가지고 많이 놀았었는데, 브라질에서 많이들 하는 거예요. 연처럼 하늘에다가 띄우는 종류의 하나인데, 저는 되게 좋았어요. 어머니는 안 좋아하셨죠. 전깃줄들 때문에 위험하다고 늘 그러셨거든요.

친구들은 어땠어요? 누구였죠?
Everthon이라고 저랑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있는데 아주 친했죠. 그리고 Toro, Marcelo...늘 같이 다니면서 농담하고 그랬어요. 오늘 날에도 그 우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네요.

그 친구들은 뭘 하고 있어요?
하나는 시큐러티 쪽에서 일하고, 다른 하나는 직업이 없어요. 브라질에선 좀 어렵죠. 하지만 중요한 건 건강이죠, 나머지는 건강하면 또 오는 거니까. 언젠가 걔들을 제가 도울 수 있다면 진심을 다해 도울 거예요.

처음으로 뛰었던 축구 경기장은 어땠어요?
흙바닥이었죠. 저는 그 때 8살 아니면 9살이었고 15살, 16살짜리들하고 같이 뛰었는데, 저희 아버지는 걱정하셨어요. 저한테 아빠 말 안 들었으니 부상당해서 오면 때려줄거라고 그러셨죠. 저는 더 나이 많은 애들하고 뛰는 거 정말 좋아했어요. 그게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저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맞서는 용기를 주었죠.

그 나이 대에 더 나이 많은 사람들하고 뛰는 게 어떻게 가능할 수가 있었죠?
집에 도착하면 공을 가지고, 힘을 기르려고 벽에다 슛을 하곤 했었어요. 그렇게 더 나이 많은 형들에 맞설 파워를 길렀죠.

어린 시절에는 아무도 당신이 프로 축구 선수가 될 거라는 것에 기대를 걸지 않았었죠.
좀 이상한 일이었죠. 저희 가족 중에선 한 번도 축구 선수가 나왔던 적이 없거든요. 아버지는 감독이 되셨었고 저는 지역 팀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었어요. 나이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책임감이 강하고 규율도 잘 지켰죠. 저는 언제나 더 남아서 훈련을 했는데 사람들은 제 태도를 마음에 들어 했어요.

어린 시절의 페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세이오의 해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되죠. 당신은 그 바닷가에서 훈련하는 걸 정말 좋아했잖아요…
저는 감독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연습하는 걸 좋아했어요. 점프나 속도를 올리기 위한 연습들이요. 친구들하고 뛰려고 동네에 갔을 때는, 그 친구들보다 제가 더 잘 준비가 되어있었죠. 저는 모래 위에서 속도 훈련을 하고 물속에서 무릎에 무게를 단 채로 점프 연습을 했었으니까요.

그건 제가 말하게 만들고 싶었던 비밀인데요…
물속에서 무릎에 무게를 추가하고 점프했었어요. 물 밖에서는 무게를 더 달고 하기도 하고 없이 하기도 했고요. 그런 식으로 지금의 점프를 얻어낸 거죠. 그걸 12살, 13살 때 했는데 저를 형성하는 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당신은 늘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었죠.
저나,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요. 방법이 없을 때면 아버지가 일을 멈추고 훈련이며 경기장까지 저를 태워다 주시곤 했죠. 언제나 가족들이 저를 보러 오곤 했어요. 처음에는 가족들 전부가 다 오는 게 부끄럽기도 했었죠. 제가 잘하는 날이면 아버지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셨어요.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다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었죠.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둘 필요가 있어요…
맞아요, 왜냐면 가족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고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베이스니까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사람들이고, 또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는 사람들이죠.

당신이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가족들의 역할은 어느 정도였나요?
가족들은 아주 중요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하고 축구는 나중에 하길 바라셨는데, 왜냐면 축구계에서 불공평한 일들을 많이 보셨기에 그걸 원치 않으셨던 거죠. 하루는, 경기를 마치고 제가 집에 돌아가면서 이제 축구 더는 하기 싫다는 말을 했어요. 그날 경기 중에 벌어졌던 일 때문이었는데요. 어머니는 그 말에 놀라시더니 저한테 이제는 축구를 해야 한다고, 그게 네가 선택한 것이니 계속 앞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물리치료 공부를 했던 적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맞아요, 1년간 그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죠.

처음으로 경험한 진짜 팀은 어디였어요?
세기베에서 처음으로 테스트를 받아봤던 때가 되겠네요. 교통비랑 식사를 지원해줬어요. 하루에 두 번 훈련을 받았고요. 중요한 클럽이었어요. 거기서 해변 연습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제가 상파울루에서 챔피언십을 뛸 수 있게 해주었으며 선수로서의 형성에도 기여했죠.

가난한 동네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앞서 했는데요, 차표를 음식이랑 바꾸고는 자전거로 훈련장까지 가곤 했다는 게 정말이에요?
(웃음) 저하고 같이 뛰던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마르코스였어요. 가까이에 살았고요. 우리는 버스 담당하는 애하고 거래를 하곤 했었죠. 클럽에서는 저희한테 티켓을 두 장씩 줬었어요. 가는 편 하나, 오는 편 하나를 줬는데 우린 배가 고팠던지라 그걸 먹을 걸로 바꿨었죠. 그날의 메뉴 1인분으로요. 우리는 두 명인데, 기껏 고기 한 조각 주곤 해서 두 명분을 달라고도 협상해보고 그랬어요. 그 친구한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 모든 걸 저하고 함께 공유했으니까요. 좋은 것들이건 나쁜 것들이건.

또 학교에도 자전거로 다녔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 들어버리는 날도 있었다면서요.
그게, 저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거든요. 아버지는 여섯 시 반이면 집을 나서셨는데 같이 나가려고요. 훈련장에서 한 오후 여섯 시쯤에 나서서 일곱 시에 학교에 갔어요…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또 자전거 타고… 학교에 도착할 때면 벌써 초죽음이 되어있었죠. 잠이 들어버릴 때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차분한 어린이도 아니었다면서, 훈련 외에도 학교도 가고, 자전거도 가지고 나오고, 거기에 물고기랑 새를 키우는 시간까지 있었다고요. 무엇 때문에 그걸 했던 건가요?
(웃음) 부모님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있었어요. 일이 쉽게 풀리지가 않았었고, 그 상황에서 저는 어머니가 빵을 사게끔 집에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낸 거죠. 집에다 새를 키우고 물고기들을 키울 곳을 만들었어요. 

그 돈으로 가족들을 도왔군요…
그게 필요했으니까요.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먹기 위해선 뭐든지 하게 돼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건 자기 생각만 하는 건 안 되죠. 언제나 정직해야 해요. 그게 제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에요.

배고픔에 시달렸나요?
시달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오늘날에 제가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을, 그 때는 갖고 있지 못했죠. 먹는 음식의 종류도 달랐고요. 부모님 두 분 다 일하셨고 어머니는 저희를 키우시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새벽이면 일하러 나가셨는데 그러면 저희 남매들끼리 남았죠. 집을 꾸리고 또 밥을 먹기 위해서 각자가 맡는 집안일이 있었어요. 

그 중엔 당신이 유일한 남자아이였고요. 그러니 아마 보호자의 역할도 맡아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버지는 언제나 저한테 그러셨죠. 아빠가 집에 없을 때는, 네가 여자들 네 명을 보호해줘야 한다고요. 또 제가 하는 말은 뭐든 다 아버지가 하는 말도 된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저는 늘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족들에게 받은 모든 것들에 보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맞아요, 정말 그렇죠. 꼭 금전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애정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정말 멋진 가족을 가졌고 그들에게 제 삶을 바칠 수 있어요.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셨을 때에 저는 축구를 시작하고 있었고 돈을 좀 벌 수 있게 되었었죠. 그래서 걱정하시지 말라고, 내가 축구선수가 될 거니까 더는 일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버는 돈은 살림에 쓰고 누나(동생)들 옷도 좀 사고 하라고 어머니 드리곤 했어요. 누나(동생)들도 그랬고요. 그러다 포르투갈로 계속 축구를 하기 위해 갔는데, 어머니는 저한테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언제고 집에 돌아와도 된다고 하셨죠. 저에겐 그건 커다란 행복이었어요.

좀 감정적이 되네요…
그렇죠, 왜냐면 이런 것들이 삶에서 일어나고, 또 깊게 남는 것들이니까요. 저는 참 여러 번 울었어요. 마데이라에서 혼자 슬펐지만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전화해서 모든 게 다 좋다고 말해야 했어요. 살다보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죠.

절대 잊지 못할 조언이 있나요?
아주 많죠. 가족들은 늘 저에게 조언을 해주었어요. 아버지는 언제나 절더러, 네 가족을 보호하고 또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충고하셨어요.

다친 다리로 마리티모로 떠났었어요…
브라질에서 두 경기가 남은 상태에서 마리티모와 계약을 했어요. 무릎이 부러지기 한 달 전이었죠. 브라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88분에 당한 태클을 당해 무릎이 부러졌어요. 병원에 갔고, 사람들은 제가 수술을 받길 원했지만 어머니는 제가 17살이기 때문에 수술하지 않으셨으면 했어요. 많은 보살핌을 받고, 영양섭취를 잘 하면서 회복했죠.

그 무릎이 낫는 데에 얼마나 오래 걸렸어요?
6개월요. 마리티모에 도착해서 계속 물리치료를 받았죠. 그곳 팀 닥터가 저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뼈가 잘 붙었기 때문에 이제는 수술이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 그런 다음엔 모든 게 다 빨리 됐어요. 저는 후베닐 팀에 들어가서 12경기, 아니면 14경기를 뛰었어요. 그 때, 1군 감독님이 마지막 경기 명단에 우리 센터백 두 명을 부르셨죠. 저희에게 경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목요일 전에 뭔가를 증명해 보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규율을 지키고 훈련이 끝났을 때 코치님 한 분하고 남곤 했어요. 결국은 감독님이 저희를 다시 부르셔서 토요일 경기에 나갈 자격이 있는 건 저라고 말씀하셨죠. 그 때부터는 1군에 쭉 남았고 4경기를 뛰었어요.

마리티모에서 가족과 떨어져 보낸 첫 몇 달은 어땠어요?
제 생애 최악의 순간들 중 하나였죠. 저한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는 작은 마을을 떠나 유럽으로 갔었죠. 언어는 같았지만 완전히 다른 문화였어요. 다른 최악의 순간은 여기(마드리드)서 무릎부상을 당했던 때였고요. 그 두 순간이 제 커리어에 자국을 남겼고 저를 더 성장하게 했죠.

그 두 순간에 무엇을 배웠나요?
삶을, 순간을, 그리고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많은 중요성을 두지 않는 것, 특히나 어떤 사람들은 언제고 당신에게 나쁜 말들을 하고 싶어 하죠. 예전에는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더 침착하고, 일관된 방법으로 축구를 대합니다. 

마리티모에서 성공한 이후에 포르투로 이적하게 되었죠. 그곳에서 이제 정말로 뭔가가 시작되기 시작했고…
마리티모와 마지막 경기를 뛰었고, 스포르팅(리스본)이 센터백을 영입하고 싶어 하는 중이었는데, 그 때 크리스티아누를 알게 됐죠. 그러다 나중에 포르투 회장님이 저에게 만약 제가 그대로만 계속 한다면 영입하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정말 기뻤죠. 포르투는 유에파컵을 우승한 직후였거든요. 포르투가 타이틀을 우승한 팀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저는 열심히 했고 그렇게 포르투로 갈 수 있었어요.

유럽의 많은 팀들이 페페에 집중했는데 페페는 레알 마드리드를 선택했어요. 당신에게 레알 마드리드에서 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많은 의미가 있어요. 브라질에서부터 레알 마드리드를 봤으니까요. 브라질에서 우리는 물물교환을 하곤 했는데, 저는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어떤 애랑 맥마나만 셔츠를 교환했었죠. 저는 늘 레알 마드리드 셔츠를 갖고 싶었고, 그 셔츠를 얻으려고 물고기를 몇 마리나 줬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줄 가치가 충분히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했거든요.

재계약은 어떤 의미가 있었죠?
역시나 많은 의미를 갖고 있죠. 거기, 재계약의 날까지 오기 위해 제가 했던 모든 것들을 저는 클럽에 대한 최대치의 애정을 가지고 해왔어요. 재계약을 하던 날은 저를 꿈에 부풀게 했고 새로운 계약에 서명을 했죠. 저는 지금 세계 최고의 클럽에 있으며, 저에게 이 클럽이 최고의 기관인 만큼이나 제 동료들 역시 최고의 선수들이에요.

마드리드에서의 행복 중 일부분은 당신의 처제인 호르헤 때문이기도 하죠.
그는 늘 저와 함께 있어요. 아주 인내력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혼자서라도 늘 제가 훈련하는 걸 보러 와요. 거기 있는 걸 참 좋아하더라고요.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하고 함께 말이죠.

당신의 집 안에는 특별한 물건들로 이루어진 작은 박물관이 있다면서요, 예를 들면 페르난도 이에로의 셔츠와 같은…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협회 사람들하고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페르난도 이에로가 저에게 셔츠를 선물했어요. 저는 또 이케르의 장갑도 가지고 있답니다. 여기서 보낸 첫 해에 그가 선물해준거죠. 우리가 챔피언이 되었던 때요. 저에겐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선물들이에요.

훈련하지 않을 때는 뭘 하는 걸 좋아해요?
저는 마드리드를 참 좋아해요. 아주 피곤할 때는 집에 있으려고 해요. 소피아랑 외출을 하고요. 길거리의 사람들하고 닿는 걸 좋아해요. 모두가 다 대화를 하고 삶을 즐기던 브라질의 사람들이 생각나죠. 또 집의 여러 가지 물건들을 사러 쇼핑가는 것도 좋아해요.

정기적으로 비행기를 타는데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페페가 좋아하는 건 아니라면서요…
바로 그 때문에 제가 소피아를 참 높게 평가해야한다니까요.(웃음) 마리티모에선 비행기를 많이 탔었는데 전 그게 무서워요. 하지만 타야만 하죠.

비행기가 당신을 많이 겁나게 했었나요?
네, 마데이라에서요. 경기가 끝나고 포르투로 가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착륙을 하려고 했는데 못한 거예요. 위로 다시 올라갔다가, 다시 착륙을 하려고 했지만 또 성공하지 못했죠. 왜냐면 속도를 시간 맞춰 줄일 수가 없었고, 활주로는 끝나가는데 바다가 있었어요. 우리는 푸에르토 산토 섬으로 가서 날씨가 나아지길 기다려야만 했죠. 세 번째로 다시 시도했지만, 또 성공하지 못했어요. 결국은 리스본으로 갔는데, 왜냐면 연료가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축구에서 은퇴하고 난 후의 꿈은 뭐에요?
클리닉을 여는 거요. 소피아는 약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게 우리 꿈이에요. 그녀는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고 우리는 미래에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마르셀로가 말하기론 당신의 다른 꿈 중 하나는 캐러밴으로 세계일주 하는 거라던데요…
(웃음)저는 고속도로를 진짜 좋아해요. 아버지가 운전사셨죠. 소피아하고 그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아들을 캐러밴에 태우고 싶어요. 걔가 세상을 만나볼 수 있게요. 저는 그러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랑 마르셀로가 저한테 이걸 당신한테 보여주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bafao'하네, 뭐 그런 비슷한 말인데 이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이번 휴가 기간 중에 카시야스가 브라질에 갔었는데, 카시야스가 간 곳이 제가 살던 곳에서 되게 가까운 곳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 제가 이케르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스페인어를 안 쓴지가 한참 됐었죠. 거기 날씨가 참 습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브라질에선 그걸 ‘bafao’하다고 하거든요. 마르셀루가 그 때 마침 옆에 있었는데, 그 때부터, 모든 게 다 ‘bafao’한 게 됐어요.

라커룸 분위기가 좋은가봐요, 그렇죠?
팀은 아주 강하고 분위기는 좋아요. 우리는 최고의 스쿼드를 갖고 있죠. 마드리드는 전보다도 더 강한 팀이고, 저는 우리가 모든 타이틀을 두고 경쟁할 거라고 믿어요. 매 경기마다 우리는 우리가 좋은 상태라는 걸 증명하고 있죠.

카르발류와 페페의 관계를 꼬이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마드리드를 질투하고 있죠. 저는 그와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건 카르발류의, 대표 팀에서 있었던 일이고, 우리는 동료이자 친구에요. 그리고 저는 카르발류에게, 그가 축구선수로서 한 일들에 대해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고요. 그는 모범이 되는 선수에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페페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라커룸 안의 모두에게 지지를 보내준다는 거예요. 그게 스타 선수이건, 어린 선수들이건 말이죠…
그래요, 왜냐면 그들도 저에게 똑같이 해주니까요. 칸테라의 어린 선수들에게,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지지를 해주려고 해요. 저에게는 늘 제게 와서 이야기를 해주는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죠. 저 역시 도와주려고 노력하는데, 왜냐면 마드리드가 좋으면 저도 좋잖아요.

올 시즌의 레알 마드리드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아주 좋아요. 제가 여기서 보낸 시즌들 중에선 가장 많은 희망이 생기는데 왜냐면 지금 우린 아주 강하거든요.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고 서로 충분히 잘 이해합니다. 무언가 일이 생기면, 언제나 손을 내밀어 도와줄 친구가 옆에 있어요.

그리고 이 배를 끌어가는 이상적인 선장은 무리뉴고요…
우리를 아주 잘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서 최고의 것들을 끌어낼 줄 아시는 분이에요. 

페페는 어떻게 베르나베우의 관중과 그런 연결을 갖게 되었나요?
사람들은 제게 참 잘해줘요. 처음에 제가 여기 왔을 때, 처음 몇 달간은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클럽에 대한 저의 헌신을 보이자 팬들도 저를 인정해줬죠. 저를 아주 잘 대해주어 왔고, 마드리디스모의 그 애정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건 좀 이른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페페는 올 시즌,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시벨레스에 갈 꿈을 꾸나요?
레알 마드리드와 역사를 만드는 꿈을 꾸지요. 열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 리가 우승... 모든 타이틀을 두고 경쟁할 준비가 된 클럽이에요. 우리는 모든 것에 준비가 되어있으니, 열심히 싸울 겁니다. 

페페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팀의 차원에서 갖고 있는 올 시즌의 소망은 뭐에요?
첫째로 저는 개인적인 것 보다는 팀을 앞에다 둬요. 만약 팀이 잘 된다면, 저 개인적으로도 잘 되죠. 우리는 몸과 마음을 모두 마드리드에 바칩니다. 지난해에 그걸 보여주었고, 올해도 같은 흐름을 유지할 거예요. 마드리드가 이긴다면, 우리 역시 많은 것을 얻는 거니까요. 

마드리디스모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어요?
지난 스페인 슈퍼컵 결승이 끝난 후에, 저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일 하나가 기억에 남았어요. 마드리디스모가 정말로 무엇인지를 느꼈답니다. 바로 그 정신을 우리가 가져야만 하죠. 만약에 우리 모두가(선수들, 보드진, 그리고 팬들) 하나로 뭉친다면, 그 누구도 우리 가족이 흩어지게 끼어들 수 없을 거예요. 우리는 마드리디스모의 지지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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