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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

***4대 스트라이커와 로니***

네오 2006.11.10 16:02 조회 1,584 추천 1
4대스트라이커 & 4대스트라이커거리는데. 진정한 4대스트라이커의 말은 95년에 나왔다. 

17살의나이로 93년 자국리그인 브라질에서 60경기 58골로 브라질 월드컵 엔트리23인에 뽑히고 94년.95년 2년간 네덜란드리그에서 뛰며 56경기동안 55골을 집어넣은 어린소년은 단숨에 시어러 & 클린스만 & 바티스투타와함께 95년 12월 유럽축구잡지에 4대스타라이커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때 이 소년의 나이는 고작 19살이었다.

그리고 이 소년이 드디어 20대를 맞이한 96년. 이 소년은 바르셀로나로 이적을했고 10대의 미성숙한 굴레에서 벗어났던건지 당시(물론 지금도) no.1리그였던 프리메라리가에서 이소년은 리그 37경기동안 34골을 집어넣으며 단 1년만에 4대스트라이커(클린스만&바티&시어러)를 종식시키고 축구황제&스트라이커의 지존자리에 올랐다. 이때부터 스트라이커 = 호나우두의 공식을 전세계에 알렸다.(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축구 몰르는 사람들은 호나우두는 알정도) 

96-97시즌 프리메라리가 34골은 라리가 마지막 30골이자 50년동안 깨기 힘들기록으로 평가받고있다. 반바스텐은 이때 100년이 지나도 못깬다고 할정도로 극찬을 한바있다.


이소년의 이름은 호나우두였고 그 후 97년엔 인터밀란으로 이적을 해 리그 34경기동안 27골을 몰아쳐넣는등 압도적인 숫자로 공격포인트(골+어시스트) 세리에 전체1등을 기록했다.

그리고 호나우두는 96년 & 97년 사상최초로 2년연속 fifa올해의선수상과함께 97년엔 100년역사상 최초로 비유럽선수로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당시까진 발롱도르는 유럽선수에게만 허용이 된상이었는데 호나우두가 라리가&세리에를 장악하며 유럽전체를 뒤흔들자 협회는 급히 조건을 유럽전체->유럽리그에서뛰고있는 모든선수들로 수상조건의 법을 바꾸는 초유의 넌센스한 일이 일어났던것이다. 


자존심강한 축구종주국 유럽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발롱도르도 호나우두 하나에 의해 무너진것이다. 100년역사도 호나우두 하나에 무너져내린것이었다. 이 사건을 두고 펠레는 그(호나우두)가 월드컵을 
우승해야 나와 비교될것이다라고 둘러댔고 & 마라도나는 고작 19살소년에게 언론이 너무 설쳐댄다고 독설을 해댔다.

호나우두는 98년도 월드컵에서 4골 & 3어시스트 & 준우승을 이끌며 월드컵 MVP(골든볼)마저 거머지웠고 99년엔 컨페드레이션 컵에서 브라질을 우승과함께 5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만 4년간 축구황제로 군림한 호나우두를 신이 시기했던 것일까. 신은 호나우두에게 무릎부상과함께 2년의 휴식을 내렸고 긴 재활의 터널끝에서 호나우두는 2002월드컵에 출전해 8골 & 팀우승 & 골든슈를 거머지우며 브라질을 5번째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했다. 다시 황제의 역사가 시작된것이다. 그리고 2003년 레알로 이적하자마자 전설의 3샷3킬을 맨유와의 챔스8강2차전에서 보여줬고 그걸로 그경기 평점10점을 받기도했다. 호나우두는 레알로가자마자 & 팀우승과함께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2004-2005리그에서 호나우두가 23골로 2골차로 에투에게 라리가 득점왕을 빼앗기자 언론은 대충격에 휩쌓였고 호나우두에게 부진이라는 수식어를 이때부터 달고 살게 되었다.


23골로 부진이라는 단어를 얻은건 어쩌면 황제에겐 당연한것일지도.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4대스트라이커가 다시 번지게 되었으며(앙리 세브첸코 반니스텔루이) 이와중에도 호나우두는 2006월드컵에서 3골을 보태며 15골로 월드컵 100년 역사상 최다골의 기록을 수립하게된다. 더군다나 호나우두가 수비의 틀이 짜여진 현대축구시대의 선수였다는점을 감안하면 이기록은 정말 엄청난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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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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