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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리빌딩 이슈에 대한 생각

라그 2021.02.02 17:15 조회 3,006 추천 18





1. 

 저는 이번 시즌 특히나 자주 보이는, '탱킹 시즌'이라는 용어로 대표되는, 리빌딩과 성적은 양립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납득이 안갑니다. 유망주를 기용하면 성적이 안 나온다, 리빌딩을 하려면 성적은 포기해야 한다... 이런 얘기 말이죠.    


 리빌딩과 성적은 독립된 것 같으면서도 독립된 사안은 아닙니다. 제가 기억하는 선에서, 어느 구단이 리빌딩을 명목으로 더 하락한 성적을 용납하나도 싶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정말정말 양보를 해도 페레스가 다시 부임해서 페예그리니 이후부터는 다들 성적과 선수단을 매년 개선하면서 팀을 이끌었지, 리빌딩을 전제로 부진한 성적을 면피해준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무관이면 자른다, 우승해도 엉망진창이면 자른다' 라는 마드리드의 숨겨진 기조가 '독이든 성배'로 많은 비판을 받을지언정 우리 구단이 축구 역사에서 누구보다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린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칼데론이 망친 그 스쿼드로도 페예그리니는 리그 승점 90점대를 따내는 등 항상 우승을 목표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원래 리빌딩은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인위적으로 팀의 주전을 7명~8명 이렇게 바꾸지 않아요. 부자연스럽게 잘하는 베테랑을 내리고 유망주를 기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아요. 주전의 부상, 혹은 로테이션으로 나온 경기에서 잘하면서 차츰 비중을 늘려가고, 기존 주전과 경쟁하면서 주전 자리를 따냅니다. 리빌딩이라고 인위적으로 못하는 선수를 내보내고 잘하는 선수를 벤치에 앉히고.. 이런 경우는 저는 본 적이 일단 없네요. 우리 팀에 있는 현재 주전 중 누가 못하는데 의도적으로 주전을 배제하고 올라와서 자리 잡고 성장했나요. 


 이미 우리는 18/19 시즌부터 지금까지 팀의 리빌딩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해로 3년째입니다. 




2.

 우리 팀의 가장 큰 문제는 최근 영입이 대다수 실패로 돌아갔다는 점입니다. 2018년 이후로 쿠르투아 정도를 제외하면 매우 큰 돈을 투자했는데도 외부 영입 중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자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패로 돌아간건, 구단이나 감독의 부족한 안목도 있을 것이고 선수 개인 기량이나 의식의 문제도, 불운한 사건사고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사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비판하기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많아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보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입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도 임대나 선수 기용, 전술 등 구단이 좀 더 신경쓰고 고쳐야할 부분이 많다는건, 이미 많이 얘기가 나왔으니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인과 관계가 잘못 인식된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유망주를 기용했다 성적이 안 나와서 베테랑을 쓰고 있다' 라는 겁니다. 


 구단이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탈락에 직면한 이후 주장단의 조언을 받아들여 주전 위주의 경기 진행을 하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주전'과 '비주전'의 로테이션이지, '베테랑'과 '유망주'의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승점을 잃은 경기에서 유망주 위주로 나온 경기는 애시당초 거의 없습니다. 


 멘디(95년생)을 기준으로 이보다 어린 선수를 아직 검증 안된 유망주라고 했을 때 이번 시즌 패배, 무승부한 경기의 선발 라인업 중 95년생보다 어린 선수가 다수 포함된 경기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기껏 해봐야 코파 알코야노 전이나, 샤흐타르와의 홈, 원정 경기 정도죠. 사실 주전 급인 멘디와 발베르데, 그리고 명확한 주전이 없는 양 윙어(비니시우스, 아센시오, 호드리구)를 제외하면 나머지 어린 선수들은 이번 시즌 거의 애시당초 출전을 못했습니다. 초반 성적의 부진이 '로테이션' 탓일지는 몰라도 '유망주 기용' 탓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유망주를 기용하다가 성적이 안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 이게 누군가의 책임을 회피해주려는 논리로만 받아들여진다면 제가 너무 과민한걸까요? 


 지난 시즌 결과를 복기하면서 제가 했던 얘기가 비주전과 주전 간의 경기력 격차가 너무 크다. 주전 의존도가 높아지면 팀의 과부하로 이어진다. 이런 늬앙스의 얘기를 했었는데 이게 이번 시즌에도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3. 

 우리는 꼭 과도하게 비싼 선수만이 아니더라도 좋은 선수를 잘 데려오고 검증하고 내보내고 또 데려오고 이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무리뉴, 안첼로티, 지단을 거쳐서 하나의 왕조를 만들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그 왕조를 유지하고 보강해야 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썼지만 실패했고 점점 그전만큼 못 씁니다. 당연히 그래서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실패도 더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정말 인내심이 없는 분이 아니라면 동의할 겁니다. 


 제가 클롭을 신격화하는 여론에 대한 반발로 클롭도 리버풀 6시즌간 이끌면서 리그 1 챔스 1이 고작이다 이런 말을 하긴 합니다만, 리버풀은 리그는 30년, 챔스도 십몇년을 우승 못하고 방황하던 팀입니다. 피르미누나 헨더슨 정도를 제외하면 완전히 스쿼드를 갈아엎을 기세로 영입하고 손발을 맞추면서 매 시즌, 그 전 시즌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였기에 리버풀 팬덤이 클롭을 용납하고 성적을 낼 때까지 기다려준거죠. 유로파 준우승, 챔스권 확보, 챔스 4강, 챔스 준우승, 챔스 우승, 최고 승점 리그 우승.. 이게 매년 클롭이 발전된 성과를 보여줬기에 유임된겁니다. 물론 클롭도 불운과 실책을 겪으면서 본인이 신이 아니라는걸 증명하고는 있지만요.


 지난 시즌 트레블한 바이에른 뮌헨은, 마지막 챔스 우승, 하인케스의 12/13 부터 7시즌이 걸렸습니다. 근데 그럼 바이언은 다 포기하고 리빌딩하는게 7년이 걸린걸까요? 아닙니다.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선수단을 바꾸면서 계속 유럽무대에 도전하면서 꾸준히 성적을 냈습니다. 12/13 트레블을 경험했던 선수는 지금 바이언에 딱 5명입니다. (노이어, 알라바, 보아텡, 뮐러, 하비). 그러면서 지금 다시 한번 19/20 트레블에 성공했죠. 바이언은 분데스리가에서 독주하니까 그런거 아니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겠고 그런 부분도 당연 있습니다만, 12/13 트레블을 하기 전까지 10/11, 11/12 모두 무관일 정도로 분데스리가조차 그렇게 쉬운 리그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과도한 투자 없이 극도로 압축된 재정을 운영하는 팀이기도 하고요.


 리버풀이나 바이언이 쌓아올리는 과정과 비교하면, 우리는 3시즌간 진보가 없습니다. 그 와중에 따낸 우승컵 하나, 그것도 특수한 상황을 거쳐서 얻어낸 우승 하나 가지고 면피할 상황도 아니고요.




4.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지나치다' 라는 얘길 하곤 합니다. 그 부분에는 일정 부분은 동의를 하지만, 그건 팬이 결과에 대해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구단을 기다려줘야 한다는 얘기지, 구단이 잘못하고 있는데 관대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단은 계속 도전을 하고, 승리와 우승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 노력의 결과가 실패로 돌아왔을 때 그걸 납득하고 수용하는 것도 팬이 할 일입니다. 운이 없어서, 정말 해도해도 안되서 생긴 결과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근데 성적이 안 나온다, 잘못하고 있다, 그 비판의 입을 막는데 쓰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 보드진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이번 시즌을 잘 운영하면서, 이번 시즌보다 다음 시즌이 더 기대되는 팀을 만들 것.  그리고 지금 팀이 전자와 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상황은 아닌거 같습니다. 저는 지단이 계속 하든 아니든 간에 팀에 새로운 비전과 장래성이 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책임 면피를 위해서 팀의 성적이 안 나오고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을 당연하다고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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