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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라울호 우승 과정과 선수들 이야기

토티 2020.08.30 21:19 조회 1,967 추천 28

라울의 유스 챔스 우승과정이랑 짧은 생각 몇 가지 정리해서 올려봐요. 막 대단한 거 해냈다고 좋아하고 오두방정 떨었는데 우승하기까지 이런 배경도 있었구나 정도만 봐주세요.


#1 저평가 세대

아무도 우승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은 세대입니다. 세대 대표급 에이스도 없고 전력 자체가 이전 4강 선배들보다 낫다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죠. 직전 시즌 성적이 8강인데, 그 조기탈락 세대가 여전히 상당수 포진해있는 팀이니 당연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올해엔 특출난 에이스가 없는게 컸는데요. 세간의 평가도 그랬고 기록으로 봐도 팀 득점은 조별리그 기준 32개팀 중 4번째(16골, 최다 잘츠부르크 19골), 토너먼트 기준 결승까지 11골(준우승 벤피카 12골)로 꽤 준수한데도 개인득점 탑10에 우리 선수가 한 명도 없습니다. 팀 내부로 봐도 최다득점자가 4골x2(라타사, 미겔)이고 그 아래로 3골x1(파블로), 2골x4 등 폭넓게 분포돼있고요. 우승팀이 득점왕은 고사하고 열손가락에 드는 선수 하나 안 가졌다는게 흔하진 않잖아요.

조별리그(포야토스 체제)와 토너먼트(라울 체제)가 아예 다른 팀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토너먼트로 한정해서 이번 우승은 팀 단위 시너지가 만든 결과물입니다. 기계적인 라인 간격유지, 압박과 수비 커버, 공수 전환 속도조절 등의 조직적인 디테일과 짜임새가 흔들림 없이 운영됐고, 주도권이 넘어오고 상대를 틀어쥐게 됐을 때 정타를 꽂아 챙기는 실리까지. 내실 탄탄하고 뒷심있는 팀으로서 단판 토너먼트에 최적화 된 면모를 상대보다 한차원 위로 보여줬습니다. 그 절정이 12분 만에 퇴장으로 수적열세에 몰리고도 나머지 80분 동안 압도해 잡아먹은 16강 유벤투스전이었고요.

여기에 더해 선수 이탈이 일어나도 경기력에 편차가 없었습니다. 선수들이 전부 부여받은 역할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스템으로서 기능합니다. 16강 유베전에 조르디가 퇴장당했을 땐 아리바스와 블랑코가 역할을 분담하며 2인분 이상을 해냈고 후보인 신테스도 4강가기까지 충분한 역할을 해줬으며 결승에 우려했던 라타사 결장으로 대신 나온 파블로가 귀중한 선제골을 넣어준 건 화룡점정이었구요. 선수단 동기부여와 응집력이 좋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 토너먼트 4경기 선발)

#2 감독

라울은 4-1-4-1, 4-5-1에 좀 더 가까운 포진으로 대회 내내 운영했습니다. 그림보면 아시겠지만 포백부터 중원 척추라인까지는 변화가 없고 8강(조르디→마빈)이랑 결승(라타사→파블로)에서 카드트러블로 바뀐 자리 빼고는 거의 바꾼 게 없죠. 팀내 입지랑 실력으로 미루어 4강전 라인업이 베스트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위치상으론 사이드지만 8번 박스 투 박스 성향인 도토르를 좌측에 두고 기동력 있고 공격적인 마빈, 아리바스를 반대편에 몰아두는 비대칭 구성이 핵심입니다.

도토르, 블랑코, 모란테 모두 볼을 안정적으로 잡아놓고 앞뒤로 보낼 수 있는 선수들이라 이들을 중심으로 빠른 측면전환이 이루어지면 일대일에 자신있는 아리바스가 풀백과 협업으로 압박을 풀어냅니다. 버티기와 높이가 되는 라타사가 수비를 잡아두고, 미드필더들이 침투해 벌린 공간을 마빈이 빠른 발로 공략하는 속공 기반으로 실리를 알차게 챙겼습니다. 특히 측면에서 아리바스 개인능력으로 전개 후 순간적으로 박스 숫자를 늘려 시도하는 유효타가 상당히 먹혔는데 전진 미들인 도토르, 모란테, 아리바스, 마빈 전부 이번 토너먼트에서 득점한 것이 그 완성도를 시사한다고 보고, 8강과 4강에서 같은 코너킥 패턴으로 득점한 세트피스 부분전술 또한 우수했습니다. 라울은 카스티야에서도 8번 성향의 피달고를 좌측에 놓고 비슷한 운영을 줄곧했는데 어쩌면 꾸준한 연구 성과를 이번에 낸 것 같기도 하네요.

꼭 하나 짚고 싶었던 게 골키퍼 로테이션입니다. 푸이디아스-루이스로 16강부터 퐁당퐁당 로테이션인데 토너먼트에서 부상같은 변수가 아닌 이상 보기 힘든 특이한 선택인데요. 이 둘은 카데테 B(U-15)부터 같이 올라왔는데 평가는 루이스가 더 높은 편입니다. 스페인 연령별 대표도 뽑히고 올해 1군 경기 소집도 됐었고(38R 레가네스전) 결정적으로 팀내 주전도 루이스입니다. 챔스도 토너먼트 전까지 조별리그에서 루이스가 전 경기 선발이었고 푸이디아스는 루이스가 부상 당한 경기에서 교체로 10분 뛴 게 전부였죠. 아니나 다를까 푸이디아스는 4강전에 공중볼 실책, 펀칭미스를 수차례 저지르면서 위기를 만들었고 루이스는 결승전 동점 위기에서의 페널티킥 선방으로 평가를 증명했구요. 범인의 머리론 이해할 수 없지만 라울은 둘의 실력이 비슷하다고 봤거나 아니면 동기부여 의도, 둘 중 하나 아닐까 정도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3 선수

유스 챔스는 19세 이하 대회인데 20세 선수들을 와일드카드로 넣는 제도가 있어요. 서두에 팀을 이끄는 에이스가 없다고 했는데 그나마 기댈 구석이 카스티야 출신 페드로, 바에사였는데요. 이들은 조별리그에서도 상당히 활약하며 짬바를 보여줬는데 페드로는 장기부상, 바에사는 16강 며칠 앞두고 셀타로 이적해버리면서 그마저도 없는 전력누수를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기가 막힌 전화위복이 되었어요. 후보였던 아리바스, 라타사의 등용 기회가 되어 침샘이 마르도록 물고빨아도 부족한 최고의 활약을 해줬습니다.

주전 11명은 물론이고 후보로 쓰인 선수들까지 전부 역할을 충실히 해준 이번 우승이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수훈은 단연 아리바스입니다. 위치와 역할상 바에사랑 정확히 겹치는 선수라 조별리그에서는 교체 4경기, 선발 2경기에 그쳤는데 바에사 이적으로 본격적인 기회를 잡자마자 자기주도로 팀의 퀄리티를 바꾸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죠. 체구는 작지만 정교한 볼컨트롤과 빠르고 유려한 방향전환으로 측면이든 중앙이든 상대를 거뜬히 제압할 수 있고 위력적인 왼발 킥도 가졌으며 동료과 잘게 썰어가는 협업 등 부분전술 수행 역시 탁월. 볼운반, 전개, 탈압박, 마무리 패스 등 모든 플레이메이킹에 16강전 동점골/8강전 PK 유도 및 2도움/결승전 선제골 도움 및 자책골 유도 등 순도 높은 공격포인트까지 그야말로 이번 라울호의 알파와 오메가였죠. 팀에 다양한 공격옵션과 패턴을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가져다줄 수 있는 자원으로 향후가 무척 기대됩니다.

라타사는 토너먼트 2골, 대회 총합 7경기 4골이라는 준수한 기록 이외에도 꽤나 좋은 플레이를 대회 내내 해줬습니다. 스페인 내 어린 유소년 공격수 중에는 타고난 체구가 좋아도 훈련 습관탓인지 신체적 이점은 활용도 못하면서 안 어울리는 드리블이나 뒷공간 위주 플레이로만 일관하고, 그러면서도 몸은 커져서 움직임은 둔해지고 결국 이도저도 아닌 선수로 머무는 사례를 참 많이 봤는데요. 라타사는 배후 움직임으로 수비 괴롭히는 건 물론이고 측면으로 빠져서의 협업 수행, 또 밀집지역에서 버티고 잡아주는 포스트 플레이와 높이를 활용한 타깃 플레이까지 본인이 가진 베이스로부터 이해와 학습이 잘된 9번의 면모였습니다. 그리고 키가 크고요.

마빈은 상대가 진영을 갖춰놔도 측면을 단독으로 부수고 들어가는게 될 정도로 좋은 신체능력을 가진 윙어입니다. 문제는 그 속도와 힘의 제어와 약간의 세밀함인데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계속 앞쪽라인 선수들 위주로 이야기했는데 수비진은 실점 기록과 별개로 전원 나무랄 데 없는 좋은 플레이였습니다. 하나를 꼽자면 유스 챔스만 벌써 3년차인 베테랑 추스트인데요. 집중력 높은 수비를 기본으로, 압박에도 볼을 전방위로 잘 제어했고 어려서부터 강점으로 꼽혔던 앞을 보는 시야와 적재적소에 정확한 킥 빌드업까지 주장으로서 끝까지 팀을 잘 지탱해준 수훈입니다. 이제 나이가 차서 유스 챔스는 더 이상 뛸 수 없으니 높은 무대에서 날아오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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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 챔스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피지컬 굇수들이 즐비한 첼시나 포르투갈 팀들, 또는 바르셀로나 등이 강세인 대회인데요. 우리는 영입이 아닌 로컬 선수 위주로 충분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인데도 4강 문턱에서 번번이 그르치고 뒷심 부족해 떨어져 참 많이 답답했는데 올해처럼 좋은 과정을 통해 첫 우승을 해냈다는 게 얼마나 시사하는 의미가 큰 지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주목도가 있는 대외무대에서 낸 유의미한 결과물인 만큼 이번 계기로 ‘강한’ 우리 유스에 많은 애정과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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