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_list
오사수나일요일 2시

바르사 - 바이언전 단상

라그 2020.08.16 19:08 조회 2,658 추천 10

저는 사실 라리가에 대한 애정은 크지 않고, 바르사가 싫어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본 경기였습니다. 

안 좋은 축구의 예시를 들어야 할 때 가장 먼저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모든 면에서 잘못된 부분이 많은 경기였습니다. 감독의 장기적인 전략이나, 단기적인 전술 문제, 보드진의 선수단 운영, 선수 개개인의 역량, 팀을 이끌어야하는 리더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드진이 개판 친거야 뭐 그렇다치고, 메시가 리더로 적합한 스타일 아닌거야 뭐 이미 다들 아니까 넘어가더라도, 무려 8실점이나 한 배경을 찬찬히 생각해봤습니다.






1) 경기 시작 전 : 나름 궁리한 세티엔


 사실 바르사 : 바이언의 경기는 사실상 바르사가 이기기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세티엔은 그리즈만 활용법을 시즌 끝날 때까지 정립하지 못했고, 수아레즈/메시와 공존시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건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에 마냥 세티엔 탓만을 할 순 없지만, 그와 별개로 베스트 라인업이 완성되지 않은건 긴 휴식기간 동안 세티엔이 뭘하고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전술의 숙지가 안된 상황에서 좋은 경기력을 바랄 수 없죠.


 그런 상황에서 젊고 빠르고 예리한 선수단으로 구성된 바르사를 상대로 세티엔은 시메오네의 442를 모델로 한게 아닐까 싶은 수비적인 조합을 선택합니다. 데용과 세르지, 비달을 전부 투입해서 활동량 많은 선수들로 하여금 바이언의 측면 침투를 제어하고 중원의 수적 우세를 유지하면서 실점하지 않는 축구를 선언합니다. 언제든 뜬금골을 터트릴 능력이 있는 메시와 수아레즈가 있기에 만약 여기서 득점하면 좋고, 아니더라도 상대의 기운을 뺀 뒤에 그리즈만을 투입할 계획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경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 난 말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2) 경기 시작 전 : 그냥, 빠르게 털어버리자


 바이언은 이와 반대로 매우 공격적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초반에 알라바의 자책골을 포함해서 바이언의 수비는 그닥 완성도가 높다고 하긴 어려울 정도로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파바르의 부상으로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던 키미히가 다시 오른쪽 풀백으로 간 상황에서 바이언은 툴리소나 하비가 아닌, 티아고를 꺼내고, 고레츠카와 같이 높은 라인에서 미들 라인을 구성하고 빠르게 전진하면서 바르사의 미들 라인의 수적 우세를 없앴습니다. 바이언은 19/20 프라이부르크 원정처럼 키미히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지 않은 경기에서 포백 보호가 부실해지는 경향이 분명 있었고, 이를 오히려 오픈 게임으로 상쇄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이는 바르사 상대로 최고의 수가 되었습니다.  


바이언이 만약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무실점을 목표로 경기에 임했다면, 세티엔이 구상한대로 전반전 자체는 느리게 유지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급격한 템포에 바르사는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개개인의 역량이 바이언보다 한 수 뒤지는 상황에서 맞불 상황으로 흘러가버렸고, 시메오네나 무리뉴처럼 공격을 포기하고 철저하게 수비를 굳히기에는 바르사 본인들이 그런 스타일도 아닐 뿐더러 완성도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바이언과 비교해서 너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3) 전반 : 슈테겐과 부스케츠


바르사 선수 중 잘한 선수는 없다고 할 정도로 모두가 못한 경기지만, 유독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한 선수가 둘 있습니다. 슈테겐과 부스케츠입니다. 노이어와 국가대표 주전 이슈가 있어서 그런지 슈테겐은 유독 뻣뻣하고 긴장된 모습이었고, 킥만 했다 하면 상대방으로 볼을 넘겨주었습니다. 선방 자체도 그저 그랬고 위치 선정도 별로였습니다. 경험이 적은 선수도 아니고, 유일하게 바르사에서 안정적인 부분이었던 슈테겐이 무너진게 참사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아르투로가 빠진 상황에서 후방 빌드업과 포백 보호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부스케츠 뿐이기에 선발 출장했겠지만, 사실상 빌드업이나 포백 보호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습니다. 부스케츠가 전진해서 고레츠카를 끊어내든 뮐러를 제어했어야 하는데 바이언 선수가 옆을 지나가는데도 아무 견제도 하지 않는 정적인 수비만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뮐러가 바르사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자주 보이는 이유가 사실 부스케츠 때문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대의 장점이 그대로 발휘되게 만들었습니다. 세메두와 알바도 사실 바이언의 측면을 잘 제어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만, 부스케츠는 아예 자동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부스케츠 없이 10:11로 해도 별 차이가 없겠네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바이언은 느린 바르사를 상대로 공격 시에는 경기장을 넓게 쓰면서 진영을 무너뜨리고, 뒷공간을 계속 노출시켰고 수비시에는 경직된 빌드업 리더들에 대한 강한 전방압박으로 바르사의 전진 자체를 무너뜨렸습니다. 바이언의 피케, 랑글레, 부스케츠에 대한 압박은 집요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레반도프스키조차 계속 스위칭하면서 견제를 했고 바르사는 세메두나 알바를 통해서도 치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바르사 특유의 플레이가 제대로 구현되었다면 여기서 압박을 이겨내고 상대의 체력을 깍고 밀어붙였겠지만, 바르사의 볼 점유률은 고작 50.2%밖에 안 될 정도로 사실상 특기인 볼 소유권조차 제대로 관리가 안된겁니다. '한잔해' 상황 조차 못 만들어냈다는거죠. 






4) 후반 : 바르사, 그리즈만 투입으로 442 - 433 전환


결국 바르사는 후반 3점 차의 상황에서 그리즈만을 투입합니다. 수비진 보호를 다소 게을리했던 바이언을 상대로 수아레즈가 절묘하게 1골을 만회했고, 만약 1골만 빠르게 더 따라잡는다면 역전도 노려볼만한, 좋은 상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이언은 그 상황에서 공세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키미히와 알폰소 두 풀백의 공격 합작은 각기 이번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인 탑 풀백인 아놀드와 카르바할이 생각날 정도로 위력적이었습니다. 그리즈만을 투입하고 4-3-3으로 전환한 상황에서 바르사의 측면 경쟁력은 더 떨어져있었고, 개별 역량이 부족한 바르사의 선수진이 1:1로 매치업되는 순간 경합에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알폰소가 세메두를 돌파해내고 날린 패스를 키미히가 차넣으며 5:2, 사실상 바르사는 이 시점에서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메시나 세티엔, 피케 등 바르사 선수단을 리드해야 할 위치들도 사실상 손을 놓아버렸고, 이후 바이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특유의 끈끈한 집중력으로 교체 선수들마저 득점을 하며 경기가 8:2로 종료되었습니다. 이기고 있는 바이언은 정작 5교체를 모두 썼는데, 세티엔은 겨우 2장의 카드만 쓰며 라키티치, 푸츠 등의 자원도 꺼내쓰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한심한 모습입니다.







5) 복기 : 아무 것도 못한, 못할 바르사


사실 결과론적으로 따져도 뭘 했어도 이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운도 없었습니다. 슈테겐이 초반 실점만 막았어도, 혹은 초반 바르사의 골이 들어가기만 했어도 상황은 좀 달라졌을겁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전술적인 측면에서조차 세티엔의 안일함이 너무 컸고, 무너진 선수단을 독려할 주장단도 너무 무능했습니다.


꾸준히 바르사 몰락론에 대해 '쟤넨 도대체 언제 망하냐' 이런 얘기가 그리즈만 영입과 맞물려서 올 시즌 초에도 있었죠. 하지만 결국 축구는 정직합니다. 역량이 안되고, 고집도 없는 중위권 감독의 잇따른 영입으로 선수단은 특유의 색깔을 잃었고, 그렇게 데려온 감독들은 장기적으로 선수단의 메인 플랜조차 완성하지 못했고, 단기적으로는 상대의 수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으며, 보드진은 결과론적 가정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수단을 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푸욜, 사비, 이니에스타 등의 스타가 빠진 자리에서 메시, 피케 등은 위기 상황에서 팀을 리드하지 못하고 몇년째 챔피언스 리그를 원정 대패로 탈락하게 하고 있고요.


뭐 우리도 탈락한 상황이니 남말할건 아닙니다만. 바이언이 분명 잘했는데, 사실 약점이 분명히 있는 팀이었습니다. 가령 우리 팀이었다면 카세미루와 라모스가 뮐러를 제어하면서 일방적으로 유린 당하진 않았을겁니다. 정말 가정의 가정입니다만, 우리가 4-1로 전반을 마무리했다고 해도 무력하게 4실점을 더하진 않았을겁니다. 팀의 파이팅 스피릿 자체가 너무 빈약해요. 


메시가 떠날려고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메시를 비싼 값에 보낸다 라는 선택지도 힘들어집니다. '메시를 비싼 값에 팔고 리빌딩한다' 라는 마지막 가능성조차도 사라지는거죠. 이렇게 되면, 정말 바르사의 암흑기는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format_list_bulleted

댓글 25

arrow_upward 미사, 바르사를 거절한 레알 골키퍼 arrow_downward 포체티노 바르샤설이 솔솔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