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과 센터백, 라모스와 바란 이야기.
1.
1990년대 축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키퍼가 아군의 패스를 손으로 잡을 수 없다는 룰의 도입이었다고 봅니다. 아마 옵사이드 규칙의 도입이후로, 축구 전술의 가장 극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킨 룰이라고 생각해요.
이 룰의 도입으로 인해, 예전보다도 공격수들이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10여년 가까운 시간동안 차츰차츰 벌어진 일이지만 ‘전방압박’의 개념 역시 이 룰의 도입으로 인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전방압박이 강화되며, 수비라인들은 위로 전진했고, 공격-미드필더-수비들의 간격은 보다 촘촘해졌으며, 그로 인해 지단류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반필연적으로 사장이 되고 맙니다.
전방압박의 형태 역시, 다양하고 촘촘해졌습니다. 그로 인해 탈압박의 개념이 보다 크게 대두되었고, 당연히 전술 생각이 있는 감독들은 키퍼를 빌드업에 참여시키는 방법을 고안해내게 됩니다, 결국 노이어와 같은 골키퍼의 등장, 펩과 같은 감독들의 등장으로 빌드업 키퍼는 이제 이 시대에서 어느정도 위치를 자리잡게 되죠.
2.
예전 같았으면 수비수들이 맘 편하게 키퍼에게 공을 돌릴 수 있었지만(심지어 센터서클에서도 키퍼에게 공을 돌리는 일이 많았죠), 상기 언급한 룰의 도입으로 인해 수비수는 예전보다 더 공을 다루는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했죠. 개인적으로 저 룰이 전격적으로 도입되고, 전방압박이 강화된 이후(대략 2005-6년 이후라 봅니다아...)의 수비수와 이전의 수비수는 조금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비수에게 요구되는 것이 단순히 수비력 이상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죠.
3.
물론 저는 틀딱이기 때문에, 과거의 수비수들을 낮게 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습니다. 경기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역대급 수비수였던 베켄바우어, 그리고 스위퍼의 교과서였다는 바레시와 같은 선수를 낮게 평가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저 분들의 공격전개는 상대의 가열찬 압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비교적 전방을 편안히 관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뛰어난 판단력과 높은 패스전개능력, 혹은 전진능력으로 해낸 것이라 보기에, 지금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글이 좀 아수라장으로 가는 것 같은데,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제 현대축구에서 수비수들은 마냥 수비만 잘하고 커버만 잘해서는 월드클래스라 부르기 힘들다는 겁니다. 상대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고, 공을 보다 더 잘 다루어야 한다는 거죠. 패스 전개 역시 훌륭하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맨시티전 참사 후에 쓰는 글이라 조금 뒷북이긴 한데, 사실은 라모스에 대해 여러 축구 사이트에서 평가가 나올때 쓰고 싶었던 글이긴 합니다. 기본적으로 시대와 환경이 다른 선수들을 비교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 요구하는 것들이 다르거든요.(심지어 같은 시대라 하더라도, 비슷한 롤이 주어진 선수가 아니라면 직접비교가 참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적어도 2000년대 중반이후로 라모스보다 뛰어난 센터백은 단연코 없다고 자부합니다(거친 플레이는 욕먹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그 라모스도 미스가 없지 않은 선수입니다. 올시즌만 해도 백패스로 한번 데였던 경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요. 하지만 공을 무서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시도 하고 본인의 역량을 보다 더 발전시키기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라모스와는 달리, 바란에게서는 공을 갖고 있을때 상대방이 달려들면 뭔가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을 여러차례 느낀 바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최고고 상대를 이겨내겠다는 그런 나르시스트적인 면모가 있어야, 최정상의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바란이 이 시련을 이겨내고 보다 더 위대한 선수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바란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라 보기 때문에.
댓글 12
-
애있짱나 2020.08.08사실 바란을 보면서 안타까운점은 이 선수가 분명 능력은 있는데 멘탈적인 부분이나 스타일때문인지 가진 능력을 다 발휘못하는 점이 좀 아쉬워요. 솔직히 바란 정도면 분명 볼을 못다루는 수비수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마요 2020.08.08@애있짱나 그렇게 생각하실법도 한 것이, 이 친구 프랑스 국대 가면 뭔가 스케일? 이 달라지는게 느껴지거든요. 보다 든든한 느낌을 주는데 묘하게 클럽에서는 좀 작아지는 것 같아요. 애국자라인인가...
-
subdirectory_arrow_right 애있짱나 2020.08.08@마요 바란이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건 라모스 이후 밀리탕과 짝을 이뤄서 나올때일거 같아요. 그래도 희망적인건 밀이탕이 오늘경기 꽤 괜찮았다는 점과 이친구가 피지컬만큼은 확실하다는 점인거 같네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힘내지단 2020.08.08@애있짱나 셀전 손오반..
-
장비 2020.08.08좋은 글입니다. 라모스가 한 시대를 대변하는 역대급 디펜더로 평가받아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죠. 가히 현대 수비수의 정의를 새로 내렸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선수같습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마요 2020.08.08@장비 프리킥 능력이나, 헤딩 공격력 같은 걸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동시대에선 최고의 수비수라 봐요. 유종의 미를 보여주었으면 하는데 ㅠ
-
챔스5연패 2020.08.08다들 아시지만 라모스는 언제나 완전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퇴장을 잘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하지만 언제나 옆에서 페페, 바란이 든든하게 지켜준 것도 사실입니다. 돌아보면 큰 경기에서 황당한 일도 많았고, 오늘 바란보다 더 심한 실수도 했었던 선수입니다. 그럼에도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이기고자하는 열망인거 같습니다. 경기가 지는 순간에도 절대 기세에서 밀리지 않습니다.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옆동네 메시처럼 한숨쉬고 하늘쳐다보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숨쉬기보다는 과격하게 들이박아버렸던게 라모스라는 선수이고, 현재에 팀에는 그런 기백있는 선수가 보이지가 않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Kroosco 2020.08.08@챔스5연패 공감합니다. 다른 것보다 오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멘탈리티였던 것 같아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세르히오람모스 2020.08.08@챔스5연패 333 지더라도 파이팅넘치고 팀을 위해 몸던지는걸 서슴치않게 하는 적극성있는 선수가 보이지 않네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El Secreto 2020.08.09@챔스5연패 극 공감합니다. 후아니토 정신? 아름다운 이야기죠. 그게 답니다. 실상은 라모스와 같은 선수 여럿 있는게 후아니토죠. 시티전에서 후아니토니... 결국 뛰는건 선수다 식 팀 운영의 문제점이 다 드러난겁니다.
-
온태 2020.08.10전 그냥 기술이 후달렸던 거라고 생각해요. 라모스의 자신감도 결국 완벽한 기술적 수준에서 나오는 거죠. 실수는 가끔 해도 상대 공격수에게 압도당해서 저지르는 실책은 거의 없는 선수. 바란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라모스에 비할 수준은 절대 못되는데 이번 경기는 바란에게 기술적으로 요구하는 수준이 유독 높은 경기였죠. 후방 전개도 리드해야 하는데 평소보다 훨씬 발로 볼을 굴릴 것을 요구받은 상황. 결국 그걸 넘어서지 못하고 걸려 넘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마요 2020.08.19@온태 공을 가지고 노는걸 기본적으로 좋아해야하는데 말입죠.. 이게 ptsd가 되진 않길 바래요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