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_list
오사수나일요일 2시

발베르데셀로나와 세티엔셀로나 이야기

세렌디피티 2020.01.28 16:17 조회 4,288 추천 20

* 본 글은 바르셀로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대한 드라이하게 적어보려 노력했으나, 불가피하게나마 필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굳이 바르셀로나 글까지 보기 싫다 하시는 분은 안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건설적인 비판과 의견 교환은 환영합니다.


2시즌 넘게 바르셀로나의 지휘봉을 잡던 발베르데가 사임하고 세티엔 체제하에 바르셀로나는 이제 3경기를 치뤘습니다. 꾸레들의 무한 발베르데 혐오가 낳은 반사 이익으로 세티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벌써부터 아쉬운 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죠. 심지어 이제 겨우 3경기가 지났음에도 그립읍니다 갓동님이라거나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걸 알았습니다등의 제목을 가진 유머글이 축구 커뮤니티에 돌아다니기도 하죠. 라리가 2, 국왕컵 1, 슈퍼컵 1회라는 준수한 커리어와 145경기 973216패 승률 66.9%의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발베르데가 도대체 왜 그토록 꾸레 사이에서 욕을 먹는 것일까요?

 

발베르데가 부임한 17/18 시즌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루쵸셀로나 3시즌을 거치며 기동성과 조직력이 와해 된 지 오래였습니다. 발베르데의 역량에 대한 의구심 또한 높았죠. 네이마르의 이탈과 뎀벨레의 패닉 바이로 인해 무관만 면하자라는 게 꾸레들의 목표치였을 정도로 시즌 전망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시즌 직후 치른 레알과의 수페르코파 2연전에서 일방적으로 발리며 그러한 불안이 현실로 되는가 했습니다. 하지만 발베르데는 이내 좌측 풀백의 위치를 높인 비대칭 433 혹은 실리적인 플렛 442 운영을 통해 팀을 잘 정비했고 후반셀로나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확실히 기억하는데, 이때만 해도 경기력에 대한 비판은 그리 많지 않았고 실리적인 축구라며 오히려 꾸레들의 평가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챔스 8강에서 로마 참사가 터지고 37라운드에서 무패우승을 눈앞에 두고 레반테한테 54로 패배하며 무패우승이나 노리자고 자기 위안을 삼던 꾸레들의 멘탈이 터지게 됩니다. 발베르데 외에도 보드진과 선수단을 향한 비판은 엄청났고 경질 여론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참사는 한 번의 실수니까 좀 더 지켜보자라는 의견과 도메스틱 더블이라는 성과 등으로 인해 유임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즉각적인 경질이 우세한 여론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패우승이란 과욕이 빚어낸 참패에 대한 자학이 좀 더 많았을 뿐이었죠.

 

레알 마드리드가 챔스 3연패를 이룩한 상황 속에, 여름과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르투르, 비달, 랑글렛, 말콤 등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챔스 탈환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18/19 시즌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지난 시즌의 참패로 인해 꾸레들은 발베르데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전술적으로나 경기력적으로나 유의미한 개선을 보이지 못하며 경기력에 대한 비판은 시즌 내내 제기되었습니다. (발베르데 입장에서도 크루이피즘에 기초한 433 좀 할라치면 뎀벨레는 누워버리고 쿠티뉴는 헤매고 있으니 핑계거리가 아주 없진 않습니다) 여하튼 중원에서의 기동성 부족 및 빈약한 측면 공격력 등의 고질적인 문제는 개선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승리는 따내는 상황이었죠. 시즌 후반, 경쟁자들이 알아서 리그 레이스에서 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바르샤는 챔스 토너먼트를 앞둔 시점에서도 로테를 돌리며 체력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베르데는 경기력으론 사실상 발린 1차전 라인업을 2차전에도 복붙하는 희대의 뻘짓을 시전합니다. 맞춤 전술이나 전술적 보완책 같은 건 1도 없이 오직 1차전 30 결과 하나만 믿고 나선 경기에서, 살라 없는 리버풀한테 역사에 남을 역전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제 겨우 꾸레 10년 차지만, 제가 라이브로 본 바르셀로나 경기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경기였다고 확신합니다. 당연히 발베르데에 대한 비판은 걷잡을 수 없었고 경질을 요구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죠. 하지만 바르토메우를 비롯한 보드진은 발베르데 유임을 선택했습니다. 여러 소스들을 종합해봤을 때, 이러한 선택의 이유는 대안이 없었고 선수단의 지지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유를 불문하고, 이젠 꾸레들이 발베르데를 지지할 껀덕지는 하나도 없는거죠. 19/20 시즌이 시작하고 나서는 발베르데가 뭔 짓을 하든, 바르셀로나가 어떻게 되든 꾸레들은 신경조차 안 쓰게 됩니다. 애초에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체감될 정도로 급격히 줄었습니다. 경기가 없는 날이든 있는 날이든 꾸코에 올라오는 글이 하루에 한 개나 될까 말까. 심지어 저조차 세티엔이 부임하기 전, 바르셀로나 경기를 라이브로 본 게 10경기도 안 될 정도니까요.

 

많은 분들이 꾸레들이 발베르데를 싫어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시는데, 발베르데를 비판하는 지점은 온전히 경기력에 있다 하기도, 결과에 있다 하기도 하기 힘듭니다. 앞선 문단들에서 상술했듯이, 이러한 비판은 일련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이 가시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지점을 찾는다면, 로마 참사 및 레반테전 패배라는 결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언급한 두 경기에서의 패배가, 이전부터 조금씩이나마 제기되던 발베르데에 대한 여러 비판을 증폭시킨 도화선이 되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도,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역사에 남을 상징적인 패배였단 점,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단 점에서 많은 꾸레들의 분노를 샀다고 봐야겠죠. 두 번째 시즌부터는 전 시즌의 문제점들로 인해 비판의 밀도가 한층 짙어지게 되고, 이때부터는 비판의 성격이 경기력측면에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꽤나 훌륭해진 스쿼드 뎁스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못한 채 관성적인 경기력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측면에서의 파괴력과 중원에서의 기동성/활력이 꾸준히 문제로 지적받았으나 개선되지 못했고, 결국 리버풀과의 2차전에서 종언을 고하게 된 거죠. 여기에 미흡한 경기 중 대처,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의 뻔뻔한 인터뷰 등이 첨가되어 발베르데 혐오가 하나의 밈으로 굳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정도면 꾸레들이 발베르데를 싫어하게 된 경위와 이유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설명을 마친 것 같네요.

 

세티엔 선임이 반가웠던 이유는, 그가 보다 정통적인 크루이프즘을 추구하는 고집스러운 전술가 타입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심해질 대로 한심해진 현 바르셀로나의 경기보다는 좀 더 다이나믹하고 콤팩트한 경기를 펼칠 것 같아서요. , 한마디로 보는 맛 있는 매력적인 축구를요. , 본인이 원하는 스쿼드를 쥐어주었을 때는 나름의 성과를 내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 3경기를 복기해보면, 아직까진 많이 미흡해 보입니다. 점유를 위한 점유, 소유를 위한 소유에 그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움티티의 기용, 쓰리백 전환, 부스케츠/아르투르/데용 3미들, 비대칭 공격 전술, 정발 윙어 기용 등 세티엔 축구의 전반적인 성향은 알겠는데 이것이 실질적인 경기력 개선과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네요. 더군다나 수년간 지속된 측면 파괴력 부재 및 활동량의 저하는 바르셀로나 스쿼드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어 단기간에 해결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요컨대,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는 발빠른 측면 공격수, 젊고 쌩쌩한 박투박 미드필더(발베르데 같은), 수아레즈 대체자, 공수겸장 풀백(카르바할 같은) 등 영입해야 할 포지션이 산재합니다. 직접적인 박스 공략이 가능한 팀을 만드는 게 시급하거든요. 남은 기간 동안 기대치는 다소 내려놓고 지켜보겠다는 꾸레들이 많습니다. 차악이 아닌 차선이란 선택에서 세티엔을 데려온 것일텐데, 회의감은 접어두고 일단 두고 봐야겠죠.

format_list_bulleted

댓글 58

arrow_upward 지단, 이번 시즌 리그컵에 베팅한다 arrow_downward 레알 마드리드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