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아재의 푸념
저는 라울 곤잘레스의 팬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보고 자랐습니다. 라울의 팬인 아버지와 달리 저는 지네딘 지단을 매우 좋아했었죠. 지단과 루이스 피구, 라울 이렇게 3명으로 이루어진 갈락티코 1기 선수들의 축구는 15년이나 지난 지금도 제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10대 시절 특정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반한 적이 많았습니다. 갈락티코 1기 멤버들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의 호나우지뉴 같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반했죠. 개인적으로 지네딘 지단처럼 테크니션 유형의 선수들을 좋아하는지라 저는 화려한 플레이나 개인 개성이 강했던 선수들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맨유 시절 CR7도 그 중 한명이었죠. 지금에야 안 좋은 소리 많이 하지만, 원래 저는 CR7 매우 좋아했습니다. 맨유에서 정말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제발 이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죠. 당시 CR7뿐만 아니라 프랑크 리베리라든가 AC 밀란의 카카 같은 선수들도 있었고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정말 특정 선수 한 명이 경기를 바꾸는 일이 많아서 선수 개개인의 개성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열광하게 됐습니다. 최소한 이런 흐름은 2013/2014시즌까지는 이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요즘 축구가 전술적인 부분이라든가 압박이라든가, 공간을 내주지 않거나, 혹은 조직적인 축구나 피지컬적인 부분이 중시되다 보니 예전 선수들처럼 지능적으로 뛰어나거나, 기술력이 뛰어난 선수들이라고 해도 몇 가지 부분에서 맞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쓰기 어렵다며 제외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청소년 대표팀이라든가, 유소년 팀 경기 볼 때도 이런 변화가 왔음을 느낍니다. 그나마 10대 대회는 선수 개개인의 개성이 좀 중시되는 성향이 있어서 전술이나, 이런 것보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보는 맛이 있어서 좋은데, 이들이 예전 선수들만큼 체계적인 교육과 전술적인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해도 예전 선수들보다 개개인의 개성이 더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물론, 정말 대단한 선수들은 본인만의 개성이 확고하지만, 이들 중 성인 무대에서도 지금과 같은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네요. 그만큼 전술이 세밀화되고 있고 압박을 중시하고 피지컬적인 부분을 강조하다 보니까 개성이 강한 선수들이 오히려 개성이 죽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게 단순히 축구만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즐겨 보는 야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도 비슷한 추세입니다. 시스템적인 부분이 강해지고 그리고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이 완전히 뿌리내리다 보니까 예전처럼 스포츠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열정이라든가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네요.
경기 관련 글 쓸 때마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게 내가 열광했던 축구일까” 말이에요.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할 것이기에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어렸을 때 저에게 줬던 그런 흥분이라든가 만족감을 더는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이번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성적 여부와 관계가 없습니다. 사실 축구에 대한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한 점은 2016/2017시즌부터였으니까요.
지금은 솔직히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재미로 살고 있지만, 경기 자체에서 재밌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스포츠 자체가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가치관과 워낙 차이가 심하다 보니 저만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경기를 뒤집는 것보고 “미쳤다”하고 흥분할 수 있고 “이것이 스포츠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특정 선수가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승리로 이끌었던 것에 희열을 느꼈던 예전의 그 감성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는 게 씁쓸하네요.
리오넬 메시와 CR7이 적지 않은 나이에도 지금 그 희열을 느끼게 해주지만, 이들의 시대가 이제 끝나면 이 둘처럼 특정 선수가 활약하는 것을 보고 감동하고 그 선수에 푹 빠졌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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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티옹 2019.05.0620대가 아재라구요? ㅂㄷㅂ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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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 2019.05.06글 잘 읽었읍니당
(우리 30대부터 아재인걸로 하면 안될까요 소곤소곤) -
economic 2019.05.06저도 그런 생각 들어요 ㅋㅋ 지금만 해도 어릴때의 그런 감정은 안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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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nim 2019.05.06예? 40대 기혼부터 아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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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10대 청년인데 동년배들 다 축구-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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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에브리 2019.05.0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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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mbra 2019.05.0640대 아재로서 공감합니다.
미야토비치...슈케르...
기억에서 삭제하고 싶...ㅠㅠ -
서울우유 2019.05.06압박은 몰개성화를 불러오고, 피지컬적인 선수들이 점점 더 대두되면서 플레이들이 보다 간결해지고 창의성이 결여되는거같아서 보는 입장에서 굉장히 현타 오더라구요. 결국 이 싸이클에도 적응되면 압박+피지컬쩔면서 기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팀들이 새로 나올텐데 그때까지 존 ㅡ 버하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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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sinMadrid 2019.05.06시스템 때문인지 나이를 먹기 때문인지 점점 축구장에 낭만이 사라지는 느낌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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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 2019.05.06저도 동감해요. 물론 이것도 시대의 특징이라고 보고 이 시대가 지나갈때 또 다른 변혁점이 올수도 있지만, 적어도 꽤 오랫동안 이런 시스템화된 몰개성 시대는 어쩔 수 없이 지속 될거라 봅니다. 이러다보니 \'갈락티코\'라 불릴만한 소재의 선수도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정말 낭만의 시대가 지나버린 현재와서 옛시절이 그리워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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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머함 2019.05.06*동감합니다..전술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함에 따라 선수들한테 요구하는게 너무 많아진 감이 있죠.. 예전같으면 하나만 잘하는 선수들도 충분히 좋게 평가받았는데 요즘은 여러가지를 동시에 잘해야되요.. 공격수면 골은 기본이고 연계,드리블,포스트 플레이,패스등 예전같으면 미드필더들한테 필요하다고 일컬어지는 능력까지 요구받는 상황까지 이르렀구요.. 미드필더나 수비수도 마찬가지죠..너무 발전한게 오히려 피곤함을 주게 되버린거 같습니다....본문에 언급하신 지단,피구,라울 같은 선수들도 지금시대에 뛰고 있었으면 꽤나 욕먹었을거 생각하니 시대가 변하긴 한참 변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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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oral 2019.05.06제 이야기를 보는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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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shed 2019.05.0620대가 아재?? ㅋㅋ 어쨋든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는 특정 능력치에 몰빵한 개성있는 선수들이 역할분담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는 하나의 부품으로 움직이는게 트렌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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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토니 2019.05.06개인적으로는 스포츠 외에 여타 문화적 요소들도 점점 획일화 되어가는게 느껴지더라구요. 갈수록 기계적이고 무개성적이 돼서 뻔해지는 느낌이라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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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알 2019.05.06*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탑 팀으로 올라가려는 팀이 늘어난 것도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포그바, 아자르 같은 경우에는 맨유나 첼시가 아니라도 저런 선에서 머무를까? 싶고 네이마르도 재능을 썩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의 영향력 때문에 팀 완성도가 높아야지만 본인 실력도 200% 실력을 보여줄텐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중간한 빅클럽들이 생겨나고 서로 선수가 묶여버리는 것도 문제를 끼친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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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갓알 2019.05.06@갓알 그리고 저 당시 갈락티코 향수도 많이 느끼시는 거 같네요. 퍼거슨의 맨유나 갈락티코 선수들도 지루한 경기도 많았는데 지금은 팀 전술 중요도가 올라가고 스타 플레이어는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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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 2019.05.06예전 공격축구의 시대가 가고 토탈 사커의 시대가 왔을때도, 사키의 전술 혁명이 도입됐을때도 그런 생각을 했을법하네요.
오늘날은 수비축구의 시대가 되어 어떤 면에서 그런 말을 하시는지도 알 법 합니다만 사람들은 경험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오늘날 축구를 보며 자라는 아이들은 메날두를 그리워하며 그때와 같은 시대가 지나니 이제 축구도 예전과 같은 맛이 없다며 그리워할지도 모를일이죠. -
subdirectory_arrow_right 뵨쟈마 2019.05.06@보나 22.. 공감되네요.
축구가 재밌는 이유는 말씀대로 팬들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그 시각이 다양할 수 있고, 같은 경기를 봐도 각양각색의 포인트를 짚어내게 된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축구를 일종의 장기/바둑 대국과 비슷한 느낌으로 바라봐요. 레매에 많은 축잘알 분들처럼 그 맥락을 훌륭하고 디테일한 언어로 풀어 표현할 순 없지만, 경기를 보면서 패스 하나 할 때 어떤 방향으로 한 선수가 내달릴 때 필드 위 22명이 그에 반응해 다양한 선택을 취하거든요. 선수의 몸짓이랄까 액션을 취하기 위한 행동, 눈빛 등을 보면서 동시에 전체 게임의 양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는 게 참 놀랍고 재밌어요. 누군가는 위로 올라가고 누군가는 옆 대각 아래로 뛰며 산택지를 늘려주고 또 누군가는 문전으로 달려들어가며 공의 궤적을 바라보는 총체적 그림이 재미있더라구요 -
타브리스 2019.05.07오래 봐서 질려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전 와우라는 게임 진짜 오래 즐겼고 인생게임인데, 시간이 갈수록 그 게임을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중간에 휴지기가 길어지더라구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게임을 너무 오래 해서 질려서 그런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축구도 저의 경우는 2010년 전후가 제일 재밌었고, 그 후로는 조금씩 재미와 몰입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네요 -
호날우도 2019.05.07해축 경력 15년 이상이라 아재라 표현? 한거겠죠..???!!! ㅎㅎ
제 대학생 딸도 초등때까지는 꾸레 LM10편이었지만 지속적 설명과 경기시청으로 이제는 어였한 레알과 호우팬이 되었는데...ㅎㅎ
팀의 조직적 탄탄함으로 승리하는 것도 좋지만 매지션같은 스타야 말로 보는 이를 짜릿하게 만드는 쾌감을 선사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