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스의 혼’ 호아킨, 전설 그 이상의 존재

함께 있으나, 떨어져 있으나 구단·팬과 특별하고 애틋한 감성을 일관되게 공유할 수 있는 선수는 흔치 않다. 호아킨 산체스(36·레알 베티스)는 매일매일이 기록인 전설이자 로맨티스트다. 국내팬들에게는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의 기억으로 익숙한 선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 베티스 입단, 꿈의 여정 시작
스페인 카디스주의 항구도시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에서 태어난 호아킨은 지역팀 CD 로스 프라일레스와 CD 산 루이스를 거치며 축구의 꿈을 키웠다. 인구 5만5천의 주목 받기 힘든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그가 안달루시아 명문 베티스에서 꽃을 피우고 구단의 상징이 되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은 삼촌이다.
‘엘 치노(El Chino)’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호아킨의 삼촌은 베티스의 오랜 광팬이자, 과거 축구선수로 못 이룬 꿈을 품은 노동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술집을 운영하던 그는 호아킨의 멘토를 자처하며 물심양면으로 조카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외지에서 뛰던 조카의 재능을 알리고 수소문한 끝에 베티스 유소년에 입단하게 했고, 8형제를 기르느라 경제적 부담이 컸던 형님 가족을 도와 매일 훈련장 왕복 기차값 1000페세타와 축구화까지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삼촌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재능을 갈고 닦던 호아킨이 세상에 첫 두각을 나타낸 계기는 1998-99시즌 후베닐A(19세 이하) 코파 델 레이였다.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를 만난 베티스는 호아킨의 맹활약 속에 1-4 완승을 거뒀다. 당시 경기를 관전한 조제프 루이스 누녜스 바르사 회장과 루이스 판 할 감독이 특별히 호아킨에게 인사를 전하고자 라커룸에 방문한 일화는 오래전부터 유명하게 전해질 정도. 결국 베티스는 해당 시즌 결승서 레알 마드리드마저 2-1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될성 부른 떡잎’으로 떠오른 이후 그의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곧장 베티스 B팀으로 승격돼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2000-01시즌에는 1군 주전으로 올라서 세군다리가(2부 리그)에 있던 팀의 라리가(1부 리그) 승격을 도왔다.

# 스페인 축구의 희망으로 급부상하다
전국구적인 관심이 쏟아지는 라리가 무대로 입성하자 상승세에 더욱 탄력이 붙었다. 수준 높은 무대에서 오는 육체적·정신적 압박감이나 적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도 약관 스무살의 호아킨에게는 남의 이야기였다. 저돌적인 돌파, 송곳 같은 크로스,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천재성에 팬들은 열광했다.
꿈을 이루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삼촌이 그 해 세상을 떠난 것은 호아킨을 더욱 강하게 만든 계기였다. 훗날 “삼촌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나에게는 두 번째 아버지다. 매년 깊은 감사와 애정으로 삼촌을 기억한다”며 회상한 호아킨은 두 손을 하늘 높이 뻗는 골 세레머니로 고인을 기려왔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린 그는 시즌 34경기 4골 9도움을 올리며 베티스의 승격 첫 해 6위라는 대선전을 이끌었다. ‘라리가 신인상’도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3년 동안 유소년부터 3부 리그, 2부 리그, 1부 리그까지 믿기 힘든 수직상승을 이뤄낸 그에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 국가대표였다. 스페인 국민들은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의 잇따른 실패에 분노해 ‘개혁’을 외쳤고,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스페인 감독은 이케르 카시야스, 카를레스 푸욜, 챠비 에르난데스, 알베르트 루케 등 당시 신예격에 해당하는 선수들을 대거 발탁해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호아킨 역시 마찬가지. 2002 한일 월드컵을 넉달 앞두고 대표팀에 첫 발탁된 호아킨은 포르투갈과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평가전 3경기를 소화한 후 월드컵 엔트리에 합류했다. 카마초 감독이 의욕적으로 내세운 ‘신구 조화’의 끝자락에 포함된 막내였다.
그렇게 나선 첫 월드컵에서 호아킨은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 첫 선발로 나서 1도움을 올렸고, 라울 곤살레스·디에고 트리스탄 등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은 8강 한국전에서도 강렬한 플레이로 한국 수비수들을 여러차례 곤경에 빠뜨렸다. 운명을 가른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킥을 실축하기는 했으나 스페인 국민들은 자국 축구의 희망을 밝혀준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스페인 ‘엘 파이스’도 탈락 직후 호아킨을 “월드컵에서의 위대한 발견”이라며 극찬했다.
# 이적 or 잔류의 갈림길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호아킨에게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명문 구단들의 러브콜도 통과의례였다. ‘갈락티코’ 레알을 위시로 달콤한 유혹이 쏟아졌지만 베티스에 충성을 맹세했다. 이후 2002-03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큰 부상 없이 성공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호아킨은 자신의 경력을 순탄하게 가꿔오면서도 종종 고난을 마주할 때면 더욱 강하게 극복해왔다. 멘토인 삼촌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자신의 실수로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돌아섰을 때도 중심을 잃지 않고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맞이한 유로 2004는 그의 경력에 가장 큰 자극제가 되었다.
유로 2004를 앞둔 스페인 국민들이 호아킨에게 가진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일간지 ‘마르카’는 “호아킨이 2004년 스페인의 심장박동이 될 것”이라며 특필했다. 그렇게 높은 기대를 안고 개최국 포르투갈로 향한 스페인은 조별리그 탈락(1승 1무 1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돌아왔고, 호아킨을 필두로 대표팀을 짊어지리라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에게 질타가 쏟아졌다. 이냐키 사에스 당시 스페인 감독도 쫓기듯 팀을 떠나야 했다.
호아킨 역시 흔들릴 듯 보였다. 더욱 잦아진 이적설과 ‘발전을 위해 더 큰 팀에서 뛰어야 한다’는 자국 여론이 그의 주변을 지배했다. 때마침 베티스에도 재정난이 불어와 선수들이 속속 팀을 떠나갔다. 하지만 또 다시 잔류를 택한 그에게 2004-05시즌은 기념비적인 시즌이 되었다.
라리가 전 경기(38) 출장과 함께 4위를 견인, 구단 최초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어냈다. 또 15도움으로 라리가 도움왕(비공식)을 차지했으며, 베티스 소속으로 현재까지 마지막 우승인 코파 델 레이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팀·개인 경력 통산 최고의 시즌을 완성했다.

# 급작스런 이적 선언과 슬럼프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호아킨의 상황은 1년 만에 급반전되었다. 2005-06시즌 베티스는 시즌 14위를 기록하며 급락했고, 호아킨 본인도 이전과 확연히 비교될만큼 부진했다. 기록상으로도 베티스 입단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동기부여 결여가 주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대표팀에서도 자연스레 입지가 줄었다. 2006 독일 월드컵 플레이오프와 평가전서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고, 본선에서도 선발 자리를 내준 채 벤치를 지켰다. 스페인은 토너먼트 초입인 16강에서 프랑스에게 무릎을 꿇으며(1-3) 또 한 번의 국제대회를 실패로 마무리했다.
베티스와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부진이 지속되자 위기 의식을 느꼈다. 변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해 7월 호세 레온 베티스 회장과의 면담에서 “여태껏 해온 것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놓고 몇 주 만에 돌연 이적을 선언했다. 베티스 ‘원클럽맨’으로 남을 줄로만 알았던 호아킨의 이적 선언에 전 유럽이 동요했다. 결국 그는 이적시장 마감 며칠을 앞두고 당시 클럽 레코드(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인 2,500만 유로를 투자한 발렌시아와 계약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나선 새 집 살림도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팀·전술 적응에 애먹으면서 좀처럼 제 기량이 발휘되지 못했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2007-08시즌에는 포지션 문제 등을 놓고 로날드 쿠만 감독과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으면서 안팎으로 크게 흔들렸다. 당시 호아킨은 “쿠만의 말은 나를 괴롭게 한다. 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정이 필요한 선수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고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진이 계속되면서 2006년부터 서서히 줄어든 대표팀 입지도 회복될 리 없었다. 그 사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다비드 실바와 같은 신진들이 치고 올라와 자리를 꿰찼고,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의 지휘 아래 점유율·기술로 주조된 팀은 완성도를 더해갔다. 결국 호아킨은 2007년 11월 스웨덴과의 유로 2008 예선 11차전을 끝으로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고 1년 뒤 자국의 유로 2008 우승을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성공적인 스타일 변화, 제2의 전성기
오랜 부진에 허덕이던 호아킨은 스타일 변신을 주문한 두 은사를 만나면서 새로이 꽃을 피웠다. 우나이 에메리 발렌시아 감독과 마누엘 펠레그리니 말라가 감독이 그 주인공들이다.
2008-09시즌부터 발렌시아 지휘봉을 잡은 에메리 감독은 호아킨이 이전보다 스피드와 역동성을 잃었고, 수비수와 일대일로 맞설 때의 피지컬 능력도 떨어졌다고 판단해 그의 역할에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예전처럼 드리블 돌파에만 치중하기보다 주변 미드필더·수비수들과의 연계와 협업으로 공격을 만드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영향력을 높이고자 했다.
효과는 제법 나타났다. 잦은 방향전환으로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가는 드리블 대신, 패스와 킥 빈도를 늘려 팀 공격에 이바지했고 부상 빈도도 줄어들었다. 이후 주장단에도 합류하며 안정적으로 경력을 이어가던 그는 2011년 여름 펠레그리니 감독의 부름을 받아 말라가로 둥지를 틀었다.
호아킨은 훗날 펠레그리니 감독의 지도를 받은 것이 “집을 찾았다”고 느낄 만큼 편안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그는 펠레그리니 감독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면서 윙어뿐 아니라 중앙, 최전방 아래 등 폭넓은 역할을 노련하게 소화해냈고, 2012-13시즌 말라가의 챔피언스리그 8강 돌풍을 이끌며 새 전성기를 맞이했다.

# 화려한 귀환
첫 해외 무대 도전지로 택한 피오렌티나(이탈리아)에서도 호아킨은 특유의 축구지능과 건재한 테크닉으로 성공대로를 이어갔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 중반으로 향할 무렵부터 그의 머릿속엔 ‘베티스 복귀’가 싹트기 시작했다. “베티스에서 은퇴하고 싶다. 네 발로 기어서 돌아가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할만큼 복귀 의지는 확고했다.
2014-15시즌이 끝나면서 이적이 가시화됐다. 이적료와 연봉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가 베티스에게 걸림돌이었다. 당시 베티스는 세군다리가를 우승하고 갓 라리가로 승격한 상황이라 자금이 넉넉지 않았다. 이에 호아킨은 피오렌티나에서 받던 연봉 240만 유로를 100만 유로로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베티스 구단과 팬들 앞에 다시 서고 싶다는 의지가 가져온 결단이었다.
이윽고 이적시장 말일(31일)에 복귀가 성사되었고, 약 2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베니토 비야마린(베티스 홈구장)에서의 복귀 발표식에서 그는 “장난감 가게에 있는 소년이 된 것 같다. 베티스를 위해 싸우러 왔다. 이 구단은 나에게 모든 것을 의미한다”며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복귀 후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호아킨의 매 경기는 역사다. 베티스 소속으로 총합 283경기를 뛴 그는 어느덧 후아니토(276)와 루벤 카스트로(280)를 넘어 역대 최다 출전 2위를 달리고 있다. 1위 아르수(287)와의 격차는 단 네 경기. 남은 시즌 큰 이변이 없는 베티스 최다 출전 선수로 기록될 날도 머지 않았다.
여전히 나이가 무색한 수준 높은 플레이로 키케 세티엔 감독의 베티스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경력의 끝자락에 서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계약도 올시즌을 끝으로 만료된다. 축구화를 벗을 정확한 계획이나 시기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간 구단과 팬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의중이다.
‘마르카’는 호아킨이 최근 110만 유로를 투자해 베티스 구단 지분 2%를 사들였다고 전했다. 은퇴 후 구단 내부 요직(회장 등)을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호아킨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이것은 내가 구단과 팬들로부터 받았던 것들에 보답하는 방법이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항상 구단과 함께할 것이다”.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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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 2018.09.04이 형도 로맨티스트네요. 여윽시 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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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lgam 2018.09.04제2의 피구 소리듣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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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Iker 2018.09.04그아호 형님이 아직도 현역으로서 라리가 최고급 윙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죠. 대단한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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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 2018.09.04아직도...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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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 2018.09.04그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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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ti 2018.09.04소싯적에 레알로 왔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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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io canal 2018.09.04월드컵때 그야말로 한국을 개박살 낸 선수...
중2때 본 월드컵이지만 정말 충격적인 활약이었습니다 ㅎㄷㄷ -
라울스톡허 2018.09.05레알로 왓엇어야 햇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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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Lan 2018.09.05좌센테 우아킨 ㅎㅎ 좋은 글 잘봤습니다 상당히 고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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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_08 2018.09.05그
아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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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사는세상 2018.09.0530넘어서 피렌체에서도 공격자원 중에 제일 잘해줬습니다 속도는 엄청 죽었는데 드리블 돌파는 안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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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바할 2018.09.05제 기억엔 한일월드컵때 가장 위협적이였었음 드리블이 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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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dane21 2018.09.05참 늙어서도 여전히 쩌시는 레전드.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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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스5연패 2018.09.05마드리드 뛰었어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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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가이 2018.09.05그아호.. ㅠㅠ 추억이네요 02년도땐 중딩이라 암것도 모르고 실축 비웃었었는데 알면 알수록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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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9ofRM 2018.09.05그아호 박지성이랑 동갑인데 아직 현역이군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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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k 2018.09.08그래도 아직은 호아킨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