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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내 이야기”

Benjamin Ryu 2017.10.03 23:48 조회 4,114 추천 53




나는 내가 7살이었을 때를 기억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고, 내가 따뜻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바로 내 가족들의 이야기다.

 

당시 나는 이제 막 축구를 시작했다.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 고향인 마데이라 섬의 길거리에서 축구를 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몰랐다. 나는 정말 길거리였다. 거리에 차가 달릴 때 우리는 경기를 멈춰야만 했다. 이때 우리는 득점하지도 못했고, 경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 아버지는 CF 안도리냐의 킷 맨이셨다. 아버지는 나를 그 유스 팀에 데려가셨고, 매일 같이 나를 격려하셨다. 나는 그것이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첫 번째 날에 나는 많은 규칙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사랑했다. 나는 승자의 기분을 느꼈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것에 중독되고 있었다. 내 아버지는 사이드라인에서 내 모든 경기를 지켜보셨고, 그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정말 사랑했다. 하지만 내 어머니와 누나는 축구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매일 저녁마다 아버지는 내게 내 플레이를 보여 달라고 조르셨다. 그것은 마치 내 첫 번째 에이전트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매일 아버지와 함께 귀가하면서 그날 경기를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크리스티아누가 득점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 가족들은 , 훌륭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흥분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버지는 귀가한 이후 가족들에게 크리스티아누가 두골을 넣었어!”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들은 , 정말 잘 했어, 크리스라고 답했다.

 

가족들을 열광시키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저 득점하고, 또 득점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귀가한 이후 가족들에게 크리스티아누가 해트트릭을 했어! 정말 믿을 수 없어! 너희들은 그의 경기를 봐야만 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아버지는 스탠딩에서 외로이 앉아 내 경기를 지켜보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워밍업을 하면서 잠시 그라운드를 흩어봤을 때, 나는 내 어머니와 누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나를 친근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허들 위에서 나를 향해 소리쳤고, 박수를 쳤다. 그들은 이제까지 축구를 본 적이 없었지만, ‘크리스티아누라는 어린 소년을 보기 위해 왔을 뿐이다.

 

그들을 본 순간, 나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그것은 내게 정말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마데이라에서 거주할 때 우리 가족은 부유하지 않았다. 그곳의 삶은 투쟁이었고, 나는 내 형제들과 내 사촌들이 썼던 물건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당신(아무래도 CR7 본인을 지칭하는 말인 듯)이 어렸을 때, 당신은 돈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현재의 기분을 느끼는데 신경 쓸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내 스스로가 가족들에게 강한 보호심과 사랑을 배우게 했다. 포르투갈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그저 메니누 퀘리두 다 파미리아(가족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내 아이)’였을 뿐이다.

 

나는 그 시절의 향수를 가지고 유년기를 회상한다. 왜냐하면 그 시절은 내 삶에서 매우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구는 그런 내게 모든 것을 줬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사랑했던 집과 가족들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내가 11살이었을 때, 나는 스포르팅 리스본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은 미쳤다. 내 아들인 주니어가 7살인 지금, 나는 이제야 이것에 대해서 쓰고 있다. 나는 4년 동안 내가 파리나 런던으로 보내지는 화물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떠날 수박에 없었다. 그리고 매일 울었다. 나는 여전히 포르투갈에 있었지만,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외국에서 버려진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같은 포르투갈이었지만, 리스본에서의 문화는 마데이라 섬에서의 문화와 완전히 달랐다.

 

그 누구도 내가 느꼈던 극도의 외로움을 모른다. 오직 내 가족들만이 넉 달마다 나를 방문했고, 나는 매일 고통 속에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축구는 이런 나를 지탱했다. 나는 내 자신이 아카데미에 있는 다른 소년들이 필드 위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에 대해서 다른 소년들이 이야기했던 것을 여전히 기억한다. “너 크리스티아누가 플레이 한 거 본 적 있어? 쟤는 마치 짐승 같아

 

나는 언제나 그 소리를 들어왔다. 심지어 코치한테도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 꼭 누군가는 항상 내게 그래, 하지만 그는 그저 어릴 뿐이야라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정말 말랐다. 나는 근육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11살 때 내가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다른 이들 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소년들처럼 축구를 그만둘 수 있었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매일 훈련했다.

 

나도 그런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것은 내 내면에 있었다. 이것을 위해 나는 굶주리지 않은 적이 없다. 네가(유년 시절의 자신을 가리키는 듯) 경기에 졌을 때, 너는 굶어죽는 기분이었다. 네가 경기에 이겼어도, 너는 여전히 굶어죽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너는 그 작은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성장했다. 이것은 내가 이 글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다.

 

나는 매일 밤마다 운동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나는 조금씩 커지면서 빨라졌다. 그리고 필드 위에서 그것을 구현해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데, 저 아이 여전히 마르지 않았니?”라고 속삭이며 시기했다. 이제 그들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두 번 다시 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15살이 되던 때였다. 나는 팀 메이트와 훈련을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야.”

 

그 말을 들은 동료들은 내 꿈을 비웃었다. 나는 여전히 스포르팅 1군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꿈을 믿었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내가 17살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을 때, 내 어머니는 가까스로 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에스타디오 호세 알베라데에서 내 경기를 관전했다. 그리고 그녀는 경기를 하는 동안 긴장했다. 얼마나 심각했냐면, 그녀는 실신했을 정도였다. 결국, 내가 경기하는 동안 팀 닥터는 그녀를 진찰해야만 했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축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거 기억하세요?”

 

내 꿈은 점점 커져갔다. 나는 국가 대표 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것을 원했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TV를 통해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나는 빠른 경기와 관중들이 부르는 노래에 매혹됐다. 그리고 그곳의 열기는 나를 이끌었다. 내가 맨체스터의 선수로 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순간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내 가족들을 더 자랑스러워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로 내가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감격했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첫 번째 발롱도르를 안겨줬다. 하지만 내 꿈은 점점 커졌다. 내 꿈은 언제나 한 가지 목표에 있었다.


그게 뭐냐고? 나는 늘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것을 열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이 되고 싶었고, 클럽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록을 갱신한 위대한 레전드가 되고 싶었다.




그로부터 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불가능함을 극복했다. 하지만 진실로 당신에게 고백하건데, 내가 우승하면 우승할수록, 내 경력은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만들었다. 지난 2년 동안 마드리드에서 느꼈던 감정은 더욱 그랬다. 만약 당신이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들은 실패했다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 직업이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가 됨으로서 나는 이제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글로 묘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은 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시간만큼 특별하다. 나는 여전히 축구 선수지만,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하다.

 

내 아들은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을 늘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나는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카디프에서 개최된 지난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우승했을 때 우리는 역사적인 밤을 만들었다. 나는 파이널 휘슬이 울리자 전 세계에 특별한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내 아들은 필드 위에서 나와 함께 이를 기념했다. 그 순간, 내 모든 감정이 변했다. 주니어는 마르셀로의 아들과 함께 달리고 있었고, 그와 함께 트로피를 들며 그라운드를 누렸다.

 

아버지가 된 이후 나는 어떠한 단어로도 충분하지 않은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감정은 내가 마데이라에서 워밍업을 하면서 내 어머니와 여형제들을 봤을 때의 감정과 유사하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팀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돌아왔을 때, 주니어와 마르셀로의 아들은 필드 위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팬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아들을 보자, 나는 어린 시절, 마데이라의 거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볼을 찼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렸다.

 

메니누 퀘리두 다 파미리아(가족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내 아이)’

 

레알 마드리드와 400경기를 치르는 동안, 여전히 나는 야망에 굶주려 있다. 그러나 승리를 향한 감정은, 내 삶의 새로운 단계에 놓이게 되면서 바뀌고 있다. 나는 내 메큐리얼 부츠에 특별한 감정을 세기고 있다. 그리고 그 단어는 나를 치유해주고, 내게 동기부여를 심어준다.

 

엘 수에뇨 델 니뇨(어린 아이의 꿈)’

 

그래, 어린이의 꿈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제 나를 이해할 것이다.

 

끝으로, 내 목표는 항상 같다. 나는 늘 레알 마드리드에서 기록을 갱신하고 싶다. 이곳에서 나는 여전히 더 많은 우승을 원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내가 95살이 됐을 때, 나는 내 아들과 손자와 함께 걸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챔피언이 됐었을 때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우리가 다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https://www.theplayerstribune.com/cristiano-ronaldo-madrid-espan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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