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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이 고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Benjamin Ryu 2017.07.10 11:09 조회 2,773 추천 9
일단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CR7이 라울 보다 더 낫다, 라울이 CR7 보다 더 낫다 등 이런 식으로 비교할 생각이 절대로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다만, 왜 라울이 고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만 적겠습니다.

1)32년 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상황

라울이 고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32년 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레알 마드리드는 '예예 군단의 시대'로 프란시스코 헨토와 아마로 아만시오, 이그나시오 조코 등과 같은 자국 에스파냐 선수들만으로 팀을 꾸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예 군단이 1965/1966시즌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한 것을 끝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유로피언 컵 우승과 거리가 먼 팀이 됐습니다. 1960년대에는 에우제비오와 구트만 감독의 벤피카, 그리고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과 루이스 수아레즈, 파체티, 마졸라 등의 그란데 인테르의 시대였고,1970년대에는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를 비롯한 네덜란드 팀들과 프란츠 베켄바우어, 게르트 뮐러 등의 바이에른 뮌헨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중반까지, 그러니까 헤이젤 대참사 이전까지는 프리미어리그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AC 밀란의 밀란 제네레이션과 같은 세리에A 클럽들과 요한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 시대였습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이 사망한 이후 회장이 된 루이스 데 카를로스와 라몬 멘도사 모두 유로피언 컵 우승에 집착했지만, 우승에 실패합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카를로스 회장이 있었던 1980/1981시즌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리버풀에게 패배하면서 우승이 실패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대의 레알 마드리드가 약했던 세대는 절대로 아닙니다. 당시 선수들의 이름을 보면 정말 엄청난 선수들이 많습니다. 그저 다른 팀들이 역대급 세대였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가 유로피언 컵 우승에 실패한 것일 뿐입니다. 참고로 우리 팀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라고 평가받는 1950년대 중후반에 유로피언 컵 5연패를 달성했지만, 라 리가 5연패를 차지하지 못 했습니다. 그 이후에 라 리가 5연패를 차지했지만, 그 대신 유로피언 컵 우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라 퀸타 델 부이트레 군단의 시대가 아쉽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에밀리오 부트라게뇨와 미첼 곤잘레스, 마르틴 바스케즈, 첸도 등 유소년 선수들이 팀 전력의 80%를 차지했고, 우고 산체스라는 사기 캐릭터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가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다면, 이들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황금 세대로 평가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라울에 대한 평가는 지금 보다 내려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AC 밀란의 밀란 제네레이션에게 참패를 면치 못 했고, 그렇다 보니 2%의 아쉬운 세대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세대입니다. 그리고 라 리가에서 여포와 비슷했던 우고 산체스도 유로피언 컵에서는 라 리가만큼 힘을 쓰지 못 했습니다. 결국, 1980년대 라 퀸타 델 부이트레 군단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것은 라울에 대한 평가를 좀 더 높게 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라울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올드팬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재정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바로 라몬 멘도사 회장이 무리하게 추진했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리모델링으로 구단의 재정이 파산 직전까지 몰립니다. 이 때문에 멘도사 회장은 더 이상 구단의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며 사임했고, 우리 팀은 클럽의 존폐 위기에 빠집니다.

말 그대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라울의 등장으로 레알 마드리드는 작은 희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바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으로 클럽의 위상을 전 세계에 다시 알리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시기는 흔히 말하는 세리에A 7공주 시대로, 모든 이들의 이목이 전부 다 세리에A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세리에A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어떤 이는 세리에A 우승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 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했었습니다.

그만큼 세리에A 팀들이 유럽 대항전에서 독주 체제를 이어갔는데, 이 세리에A의 7공주 시대의 종말을 알렸던 팀들이 바로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특히, 라울은 만 18~19살이던 1995/1996시즌 때 챔피언스 리그에서 6득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웁니다. 아마 이 기록을 갱신한 선수가 음바페일 겁니다.

어쨌거나 라울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자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습니다. 우고 산체스를 비롯한 레알 마드리드의 특급 공격수이 라 리가에서 강했지만, 유로피언 컵에서는 라 리가에서 만큼 강세를 보여주지 못 했던 것도 무시못했죠. 하지만 라울의 맹활약으로 클럽은 30여년 만에 우승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집니다. 특히, 당시 팀 재정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라울과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다보르 수케르,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 등은 레알 마드리드의 꿈을 이뤄줍니다. 바로 1997/1998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벤투스에게 1-0으로 승리하고 32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우승이 높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32년 만의 우승도 있지만,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라 리가 성적이 4위에 불과했고, 유벤투스가 지네딘 지단과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우승이 더 높게 평가받는 이유도 있습니다. 실제로 경기 전에 많은 이들이 유벤투스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만약 라울이 1997/1998시즌 이후 등장한 공격수였다면, 그의 평가는 지금 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32년 만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당시 세계 최강의 전력을 갖춘 유벤투스를 꺾은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선수였기 때문에 그의 평가가 오늘날 까지도 높게 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2)디 스테파노 시대와 현대를 연결해주는 선수

예전에 호르헤 발다노 전임 단장이 왜 라울이 위대한 선수인지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답변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디 스테파노의 시대와 현대를 연결해줄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라울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로 뛰며 3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시기의 레알 마드리드는 1950년대 레알 마드리드처럼 압도적인 팀이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1950년대 레알 마드리드를 재현했다는 평가처럼, 그리고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를 계승했다는 평가처럼 수많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가 1950년대 레알 마드리드를 재현하고 있다고 보지만, 라울이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와 오늘날의 레알 마드리드를 연결해준 징검 다리 역할을 한 선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라울이 없었다면 갈락티코 정책도 어려웠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팀이 갈락티코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 없다면 스타 선수를 영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1997/1998시즌 이전까지 우리 팀은 여섯 번의 유로피언 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기록을 AC 밀란이 맹추격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AC 밀란 등 세리에A의 최정상급 클럽들이 더 매력적인 팀이라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라울이 없었다면 갈락티코 정책을 실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3)팀으로서의 레알 마드리드를 만들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는 2009년에 갈락티코 시절 때의 레알 마드리드와 자신이 뛰었던 1990년대 후반의 레알 마드리드의 차이점이 뭐냐는 질문에 "바로 팀으로서의 레알 마드리드의 차이다. 1990년대 후반의 선수들은 하나의 목적으로 단결했지만, 갈락티코 시절 때 레알 마드리드는 뭔가 난잡한 느낌이었다"고 답합니다. 그럼에도 라울만큼은 하나의 팀을 강조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목적을 상실시키고자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비록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라울은 하나의 팀을 만든 선수였고, 그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선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발롱도르 이야기도 나오는데, 라울은 마이클 오웬 때문에 발롱도르에서 피를 본 선수입니다. 이것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이야기인데, 챔피언스 리그 4강과 라 리가 우승 등을 이끌며 최고의 활약을 펼친 라울이 그저 UEFA컵 우승과 FA 컵 등 소규모 대회 우승을 차지한 오웬에게 밀렸기 때문입니다. 왜 오웬이 발롱도르를 차지했는지에 대해서는 각각 말이 다릅니다만, 저는 오웬이 영국 선수이기 때문에 영미권 기자들이 오웬의 손을 들어주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은 데이비드 베컴과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지만 발롱도르급 활약을 펼쳤던 업적을 세운 선수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오웬이 리버풀을 이끌고 수많은 우승을 차지하면서 잉글랜드 선수로 발롱도르를 수상할 수 있는 자격은 어느 정도 갖췄고, 이것이 결국 라울의 발롱도르 0회 수상을 세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봅니다.

또한, 당시에 CR7만큼 압도적인 선수들이 없었다기 보다 당시 라울처럼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어요. 당시 축구는 4대 스트라이커 시대와 뛰어난 수비수들이 즐비했던 시대입니다. 그만큼 발롱도르 경쟁자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발롱도르 횟수 가지고 라울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CR7의 업적을 폄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CR7은 오늘날의 선수들 중 가장 압도적인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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