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에A의 슬픔
축구 역사상 세리에A는 가장 위대한 리그 중 하나였다. 특히, 1985년에 일어난 헤이젤 대참사를 기점으로 프리미어 리그가 몰락하자, 세리에A는 유럽 대항전을 휩쓸며 8, 90년대를 자신들의 황금기로 만들었다. (현재까지 세리에A의 황금기에 필적할 수 있는 리그는, 오늘날의 라 리가 뿐이다)
또한, 이 시기의 세리에A의 클럽들은 미셸 플라티니와 지네딘 지단, 로랑 블랑, 티에리 앙리, 호나우도, 안드레이 세브첸코, 카푸, 야프 스탐,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파벨 네드베드 등과 같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해 세계 최고의 리그로 군림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보다 세리에A 우승이 더 어렵다”는 말까지 있었다.
비록 세리에A를 몰락으로 이끈 칼치오 폴리 사건의 여파가 있었지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세리에A는 세계 최고의 리그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리에A는, 그들의 옛 명성을 되찾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옛 위상을 되찾는 것은 이제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

1)뛰어난 재능들의 이탈
얼마 전 유벤투스의 수비수인 다니 알베스는 “파울로 디발라는 미래에 대단한 일을 해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재능을 좀 더 터트리고 싶다면, 언젠가는 유벤투스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분명히 다니 알베스의 발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알베스의 말이 거의 틀리지 않았다. 오늘날의 축구계는 세리에A를 떠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등과 같은 클럽들에서 뛰어야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AC 밀란의 히카르도 카카가 발롱도르를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10년 동안 단 한 명의 세리에A 선수가 발롱도르 최종 후보 3인에 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세리에A가 발롱도르 수상이 어렵다는 리그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금 자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오늘날 세리에A는 아이비 리그 대학교 진학을 위한 명문 고등학교나, 명성은 있지만 예전 같지 않은 오래된 대학교들 같다. 말 그대로 지금 세리에A는 뛰어난 재능들을 붙잡을 수 있는 여력이나 메리트가 거의 없다.
칼치오 폴리 사태는 유벤투스의 스타들이 세리에A를 떠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지안루이지 부폰, 다비드 트레제게, 파벨 네드베드 등과 같은 스타들은 유벤투스에 잔류했지만, 파비오 칸나바로와 릴리앙 튀랑, 지안루카 잠브로타 등과 같은 스타들은 해외로 떠났다. 또한, AC 밀란의 안드레이 세브첸코도 떠나면서, 세리에A는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스타들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은 극소수였다.
유벤투스가 세리에B로 강등된 이후, 인터 밀란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비롯한 세리에A의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압도적인 전력을 구축했다. 여기에 AC 밀란과 AS 로마 같은, 경쟁자들이 재정난으로 전력이 약화되자, 인터 밀란은 2010년까지 세리에A에서 독주 체제를 굳혔다.

하지만 인터 밀란의 마시모 모라티 회장도 대공황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이탈리아의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에, 제한적인 투자로 전력 보강이 미미했던 인터 밀란의 선수단은, 2009/2010시즌 트레블 달성 이후 빠르게 약화됐다. (인터 밀란의 몰락을 초래한 게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라고 하는 이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인터 밀란의 몰락을 야기한 것은 마르코 브랑카 단장이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호빙요 등을 영입한 AC 밀란이 인터 밀란의 세리에A 6연패를 저지했지만, 이들은 이브라히모비치와 티아고 실바 등을 매각하고 확실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들은 스스로 몰락했다.
이 시기에 유벤투스와 나폴리, AS 로마 등이 세리에A의 강팀으로 군림했지만, 유벤투스를 제외한 두 클럽은 과거 두 밀란 클럽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과거 인터 밀란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핵심 선수들을 지킬 수 있었던 반면, 이 두 클럽은 에딘손 카바니와 에세키엘 가라이, 에릭 라멜라, 마르퀴뇨스 등과 같은 핵심 선수들을 붙잡지 못하고 매각했다. 이것은 자연스레 세리에A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결정적으로 유벤투스와 인터 밀란, AC 밀란, AS 로마 등 세리에A의 빅 클럽들마저 라 리가와 프리미어 리그에서 주전 경쟁에 밀렸거나, 노쇠화로 재계약에 실패한 빅 네임의 노장들을 영입해 전력을 수혈했다. 이 때문에 몇몇 이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것은 세리에A가 ’실버 타운 리그’라는 소리를 듣게 만들었다.
세리에A가 리그 내에서의 경쟁력과 과거의 명성을 완전히 상실하자, 유벤투스 같은 챔피언 클럽도 전력 유출이 불가피해졌다.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은 더 큰 명성과 부를 얻기 위해 라 리가와 프리미어 리그 클럽들로 이적하기를 희망했다. 작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폴 포그바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폴 포그바는 지난 시즌까지 유벤투스의 선수로 뛰며 세리에A 4연패를 경험했다. 여기에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도 차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유벤투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과 같은 클럽과 달리 한계(언제든지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할 수 있는 자금력과 명성, 그리고 발롱도르의 수상 가능성 여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포그바의 에이전트인 미노 라이올라는, 그를 타 리그로 이적 시키기로 결정했다. 결국, 포그바는 유벤투스를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폴 포그바 사건이 터진지 1년 밖에 안 지냈는데, 유벤투스는 포그바에 이어 알렉스 산드로까지 뺏기게 생겼다. 이번 시즌 맹활약을 펼친 산드로는, 현재 첼시 이적에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산드로는 유벤투스에게 이적 의사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 산드로가 떠나게 된다면, 그 다음은 파울로 디발라와 마우로 이카르디 등과 같은 선수들일 것이다. 이카르디는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주도 하에 2015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뻔했다. 하지만 본인이 출전 시간 확보를 위해 잔류를 선언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도 인터 밀란이 이번 시즌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리고 또 다시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다면, 이카르디 역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해외 무대 진출을 다시 생각할 것이다.
파울로 디발라 역시 마찬가지다. 아리고 사키 감독이 “제2의 리오넬 메시다”라고 극찬한 디발라는, 현재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이적에 강하게 연결되고 있다. 특히, 사키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에게 디발라의 영입을 권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다니 알베스의 발언은, 디발라가 머잖아 유벤투스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는 발언일지도 모른다.
또한, 세리에A의 뛰어난 재능들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면서, 세리에A를 대표하는 명장들이나 좋은 감독들도 더 큰 부와 명성을 위해 세리에A를 떠나서 해외 무대 진출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해외 리그는 세리에A와 달리 전력 유출이 적으며, 감독이 원하는 선수단을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2)지안루이지 돈나룸마 사건이 의미하는 것
앞에서 언급했던 폴 포그바와 알렉스 산드로, 마우로 이카르디, 파울로 디발라 등과 같은 선수들은 모두 외국 선수들이었다. 이들과 달리 자국 이탈리아 스타들은 세리에A에 높은 충성심을 보여주며 잔류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머잖아 그들의 행동도 바뀔 수 있다. 필자는 현재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지안루이지 돈나룸마의 사건이 이를 어느 정도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안루이지 돈나룸마는 올해 만 18살이 되는 어린 골키퍼다. 하지만 그는 유벤투스의 지안루이지 부폰과 함께 세리에A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골키퍼로 성장했다. 이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골키퍼 디노 조프는 돈나룸마에게 “돈나룸마가 나 보다 더 낫다”며 그의 재능을 극찬했다. 또한, AC 밀란의 보드진과 서포터들 모두 돈나룸마가 원 클럽 맨 선수가 돼서 AC 밀란의 위대한 역사를 재건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안루이지 돈나룸마와 그의 에이전트인 미노 라이올라는 AC 밀란의 재계약 제의를 거절했다. 그들이 AC 밀란의 재계약을 거절한 이유는 많지만, 필자는 그들이 AC 밀란의 새로운 프로젝트와 재정의 안정성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안루이지 부폰이 20대 때만 해도 세리에A의 골키퍼들은 리그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명성 때문에 언제든지 세계 최고의 골키퍼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아니, 7년 전 까지만 해도 인터 밀란의 줄리우 세자르 역시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거론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지안루이지 돈나룸마가 명실공이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되려면, 세리에A를 떠나서 레알 마드리드 같은 클럽에서 뛰어야만 한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현재 세리에A에서 자신의 가치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지안루이지 돈나룸마의 사건은 AC 밀란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세리에A와 이탈리아 전체의 문제다. 만약 돈나룸마가 세리에A를 떠난다면, 돈나룸마 또래의 자국 유망주들도 돈나룸마처럼 해외 무대 이적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그동안 세리에A를 지탱했던 자국 스타들의 숫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3)세리에A의 재건은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리에A의 재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만으로는 세리에A의 위상을 회복하기 어렵다.
현재 세리에A는 자금력에서 라 리가와 프리미어 리그 클럽들에게 압도적으로 밀린다.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의 최하위 팀인 선더랜드는, 이번 시즌에 세리에A의 웬만한 빅 클럽들 보다 더 많은 중계료 수익을 기록했다. (선더랜드 중계료 수익은 약 9340만 파운드)
단순히 자금력 부분을 떠나서, 세리에A의 전체적인 명성과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현재 라 리가와 프리미어 리그는 전 세계적인 관심과 아시아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그들은 엄청난 중계료 계약을 체결해 막대한 부를 얻고 있다.
반면, 세리에A는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식어가고 있으며, 아시아 시장 공략도 생각만큼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세리에A는 지금 보다 더 낮은 중계료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세리에A의 재건 속도는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세리에A 클럽들은 주로 중계료 수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FFP룰을 맞춰야만 한다는 UEFA의 방침 때문에, 대부분의 세리에A 클럽들이 팀 내 핵심 선수들을 반 강제적으로 매각할 수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경영난으로 인해 파르마처럼 파산하거나, 인터 밀란처럼 외국 자본에 인수될 수 있다. 즉,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세리에A가 완전히 셀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배제 못 한다.
무엇보다 자국 유소년 선수들의 재능도 라 리가와 리그 앙, 분데스리가 보다 월등히 차이난다. 여기에 ‘세리에A에 남아있으면 손해다’라는 인식이 커져가면서, 자국 유소년 선수들의 미래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밝은 미래를 보려면 앞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세리에A는 앞을 볼 수 있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꿋꿋하게 허리를 세울 수 있는 힘도 잃어가고 있다. 세리에A의 미래는 더 이상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 타인의 손에 따라 달려있다.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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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2 ISCO 2017.07.01축구첨볼때만해도 젤쎈 리그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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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특공대 2017.07.01좋은 글. 추천 누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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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H 2017.07.01리그의 황금기는 돌고 돌기 마련이기 때문에, 세리에도 언젠가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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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악 2017.07.01당장 라리가가 몇년째 해먹고 있긴 하지만 메날두 세대교체와 스페인 경제를 생각하면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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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Benjamin Ryu 2017.07.01*@풍악 그래도 이번에 새로운 중계료 계약과 균등 분배로 타 라 리가 팀들의 수익이 급증하고, 관중들 동원력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등장으로 라 리가는 상황이 비교적 낫습니다.
메날두 세대 교체 문제도 제기되는 것은 맞지만, 레바뮌 세 클럽이 역대급 전성기를 구사했기 때문에 S급 선수들이 레바뮌 이적을 선호하는 것도 있죠. 지금과 같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지는 못 하겠지만, 명성은 유지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라울☆날둥 2017.07.01@풍악 라리가는 그나마 유스양성과 훌륭한 남미자원 덕분에 몰락하진 않을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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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리레알 2017.07.01선추 후독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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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이 2017.07.01양밀란이 빨리 살아나야 되는데. 일단 AC밀란의 다음시즌은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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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바페 2017.07.01좋은 글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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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향기 2017.07.01칼치오폴리라는 부패와 본인들의 행정적 무능으로 무너진 리그인데 이거가지고 감성팔이하는건 그냥 언더도그마죠. 유벤투스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자기들 주작질 반성도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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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San Iker 2017.07.01@그대향기 저도 이게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칼치오폴리 이후로 리그 위상이 아예 박살이 났죠. 승부 조작을 단체로 하는 리그였으니 위상이 안 떨어질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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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hie 2017.07.01마테라치랑 루이코스타랑 같이 있는 짤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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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IscoAlarcón 2017.07.01@Sephie 그냥 저정도의 레전드들이 한때는 양밀란에 있었다 이정도..?의 뜻 아닐까요 어떤 항목에 연관이 있다기보단 그냥 옛 세리에의 모습 정도로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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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Benjamin Ryu 2017.07.01@IscoAlarcón 그게 아니라 밀라노 더비 때 사진입니다
저때 홍염인가 그걸로 곤혹 치렀죠 -
Jorge Mendes 2017.07.01내용좀 퍼가도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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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Benjamin Ryu 2017.07.01@Jorge Mendes 네 출처 남겨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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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Star 2017.07.01칼치오폴리가 젤 컸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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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mbra 2017.07.01세리에 팬으로 팩트폭력에 후들겨 맞은 느낌 입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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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 2017.07.02*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맞는 말씀임에도 몇가지만 지적하자면
우선 가라이는 로마랑 나폴리에 있었던 적이 없습니당...
아마 라베찌도 이름이 에세키엘이다 보니 헷갈리신덧.
그리고 산드루는 몰라도 포그바는 맨유 유스출신 선수니 세리에 몰락을 상징한다기엔 좀 맞지 않는 느낌이 드네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Benjamin Ryu 2017.07.02@아모 엇 그러게요 가라이랑 라베치랑 헷갈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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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7.07.03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칼치오폴리 이후로 세리에가 정말 몰락했죠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