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 리그는 어떻게 세계 최대의 자본 시장이 됐나?
오늘날 프리미어 리그는 순수한 축구 실력으로 치자면 ‘세계 최고의 리그’라고 부를 수 없지만, 자본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세계 최고의 리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지나치게 막대한 자본이 프리미어 리그에 유입되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프리미어 리그가 축구를 망치고 있다.’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리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잉글랜드 축구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몇 차례의 거대한 위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으면,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지 못 했을 뻔했다. 1992년에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하기 이전이었던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기간 동안 잉글랜드 축구는 세 번의 거대한 위기를 맞이했다. 첫 번째는 1958년에 발생했던 뮌헨 참사였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축구 팬들이 뮌헨 참사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즈음, 1985년에 발생한 헤이젤 참사와 1989년에 발생한 힐스보로 참사 등과 같은 거대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며 대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위기를 극복해냈고,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세계 최대의 자본 시장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프리미어 리그는 어떻게 세계 최대의 자본 시장이 될 수 있었을까?
1)영어의 장점
프리미어 리그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리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언어인 영어의 힘이 매우 컸다. 그 이유는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과 미국 등이 세계 초강대국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20세기 초까지 영국과 함께 전 세계의 패권을 다퉜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전 세계의 패권은 프랑스와 영국이 아닌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가장 강력한 초강대국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이 지속적으로 세계적인 강대국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전 세계의 정부는 자신들의 국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를 가르쳐야 세계화의 흐름에 조금이나마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고, 영어를 가르쳐야 미국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보내서 우수한 제도와 기술 등을 국내로 받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은 프리미어 리그가 다른 리그들 보다 뛰어난 상품성을 갖출 수 있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프랑스어와 에스파냐어 등을 비롯한 로망스 계통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에 많았지만, 이들 역시 영어를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특히, 지구의 인구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포함하여,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혹은 미국과 경제적 및 군사적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가졌다. 또한, 영어인 경우 로망스 계통의 언어들처럼 여성 명사와 남성 명사를 구분하지 않고 문법이 바꾸지 않는다는 장점과 악센트에 따라서 단어의 뜻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외국어를 접하는 입문자들 입장에서 영어만큼 쉬운 언어가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영어를 공부해야만 한다는 환경이 갖춰지고, 이에 따라 영어가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다 보니 프리미어 리그는 라 리가와 세리에A와 달리 대중적으로 빠르게 보급될 수 있었다. 라 리가와 세리에A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야만 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프리미어 리그인 경우 오늘날 전 세계가 영어 교육을 필수화하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프리미어 리그에 대한 정보를 다른 리그들 보다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었다.
이처럼 프리미어 리그는 자신들의 언어적인 장점을 제대로 활용했고, 이것은 오늘날 프리미어 리그가 세계 최대의 자본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영국의 기후가 가진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다
라 리가와 세리에A는 아시아 시간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싶어도 제대로 공략할 수 없는 제한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들의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뜨거운 지중해성 기후 때문이다. 정오가 지난 이후 4시까지 지중해 국가들의 날씨는 매우 뜨겁다. 그렇다 보니 오후에 야외 활동을 하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는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낮에 경기를 하는 것은 선수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뜨거운 날씨는 선수들을 빨리 지치게 만들고, 그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물론, 최근에 중국과 중동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라 리가와 세리에A 같은 리그 역시 프리미어 리그처럼 대대적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하기 위해서 그들의 경기 시간대를 조정하고 있지만, 프리미어 리그처럼 경기 시간대 조정을 하는 것에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영국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와 다르다. 영국은 365일 중에서 절반 이상이 비가 오고 습하며 연교차가 적은 대서양성 기후다. 이러한 대서양성 기후 때문에 영국에서는 우울증을 겪는 환자가 매우 많지만, 이러한 영국의 좋지 않은 기후는 프리미어 리그가 아시아 시장을 비롯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했다.
에스파냐와 이탈리아의 뜨거운 지중해성 기후는 분명히 오후 활동에 제한적이지만, 영국의 대서양성 기후는 오후 활동에 특별한 제약이 없다. 그렇다 보니 프리미어 리그는 아시아 국가들의 시간대에 맞춰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3)일찍이 형성된 거대한 금융시장과 ‘축구 종가’라는 고유한 브랜드, 그리고 언론의 역할
프리미어 리그가 이처럼 거대한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에 일찌감치 형성된 거대한 금융 시장과도 관련이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산업 강국이었다. 18세기 맨체스터와 리버풀 등과 같은 공업 도시들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은, 일찌감치 영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줬다. 또한, 그들의 막대한 식민지로부터 들어오는 면화와 홍차, 향신료, 금, 은, 상아, 다이아몬드 등과 같은 자원들도 영국의 경제를 부유하게 만들어줬다.
막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영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일찌감치 거대한 금융 시장이 형성되었고, 발전할 수 있었다. 비록 오늘날의 영국은 과거 그들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줬던 제철 산업과 모직물 산업이 노후화되고 외국 기업들에게 대거 인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국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다. 영국의 수도인 런던은 뉴욕과 함께 전 세계 금융 시장의 중심지이고, 전 세계의 갑부들은 런던으로 이주하여 금융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돈은 돈을 낳는다. 런던으로 모여든 전 세계의 대부호들은 금융업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이윤을 어떻게 좀 더 창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영국의 국민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축구 산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었다.
자본가들은 영국 서민들의 인생에서 축구가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훌리건과 같은 문제점들도 있었지만, 영국 서민들은 얼마의 돈을 지불하든지 간에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시즌 중 단 한 경기만이라도 보러 가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다. 즉, 영국의 서민들은 그 가치가 부동적인, 고정 고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막대한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서민들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분명히 클럽에 충성스러운 존재지만, 클럽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뭔가 효과적인 것이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자본가들이 결정한 것은 잉글랜드 축구가 가지고 있는 정통성과 유구한 역사를 활용하여 외국 시장과 관광객들에게 어필하는 것이었다.
최근에 축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가 중국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근현대식 축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가 영국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비록 영국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시작한 야구를 미국인들의 국민 스포츠로 내줘야만 했지만, 축구에서만큼은 유구한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유구한 역사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다가 ‘축구 종가’라는, 자신들만의 브랜드를 내세웠다. (물론, 이 축구 종가라는 자존심이 오늘날 잉글랜드 국가 대표 팀을 망치는 가장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곤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자본가들은 ‘잉글랜드=축구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전 세계에 대중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린 최종적인 선택은 언론들과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자본가들은 영국의 언론을 통해서 잉글랜드 축구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을 유도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자본가들과 영국 언론들의 움직임은 뮌헨 참사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잉글랜드 축구가 겪은 몇 차례의 위기는 오히려 잉글랜드 축구와 언론들,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기회였다. 1958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겪었던 뮌헨 참사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던컨 에드워스와 같은 맷 버스비 감독 시대를 대표했던 뛰어난 선수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했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영국의 언론들이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며 전 세계적으로 알렸기 때문이다. 이는 1949년에 먼저 발생했던 이탈리아 클럽인 ‘토리노’가 겪었던 ‘수페르가 비극’과 상당히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수페르가 비극은 뮌헨 참사 보다 축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가장 거대한 사건으로 평가받지만, 뮌헨 참사와 헤이젤 대규모 폭행 사건, 힐스보로 참사 등을 비교해보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건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당시 전 세계가 아직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탈리아의 언론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수페르가 비극이 축구 역사 전체를 통틀었을 때 거대한 사건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슬픈 것에 동정심을 발휘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적인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겪었던 비극은 전 세계의 사람들의 심리를 움직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많은 이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빨리 클럽을 재건하기를 원했고, 그 이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알지 못했던 이들도 뮌헨 참사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알게 되면서 그들의 절대적인 팬이 되었다. 이는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축구 팬을 보유한 클럽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분명히 뮌헨 참사는 슬픈 일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뮌헨 참사가 벌어진 이후 영국 언론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자신들의 클럽을 지금처럼 빠르게 재건하지 못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뮌헨 참사가 발생했던 1958년은 레알 마드리드가 전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시기였으며, 이러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뮌헨 참사는 오늘날까지도 영국 언론들과 프리미어 리그에게 거대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제공해줬고, 조지 베스트와 데니스 로, 바비 찰턴 등과 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징하는 선수들은 이 스토리텔링의 주역이 되었다. 사람들은 뮌헨 참사로 생긴 스토리텔링에 매혹되며 프리미어 리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축구 시장에 자본을 투자하며 조금씩 재정적인 이윤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리버풀의 훌리건들이 주도한 헤이젤 대규모 폭행 사건은 좋지 않은 쪽으로 영향을 줬지만, 이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이 좋지 않은 사건은 리버풀이 전 세계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홍보하는 효과를 줬다. 물론, 헤이젤 대규모 폭행 사건 이후 프리미어 리그는 그들의 축구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겪으며 세리에A에게 주도권을 내줘야만 했지만, 이 사건은 영국 언론들과 프리미어 리그에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거대한 과제를 던졌다.
때마침 이러한 분위기에서 등장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그가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전통 명문 클럽의 재건 과정, 그리고 이러한 퍼거슨 감독에게 맞서는 프랑스 출신의 감독인 아르센 벵거 감독과 그가 이끄는 ‘아스날’이라는 클럽의 재건 과정은 영국 언론들에게 흥미로운 소재 거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벵거 감독이 아스날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퍼거슨 감독이 던진 도발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의 맞대결을 극대화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아르센 벵거 감독 등과 같은 상대 팀 감독들의 대결은 ‘위기에 빠진 프리미어 리그를 누가 구해낼 것인가?’와 같은 흥미로운 주제를 영국의 언론들에게 던졌다. 영국 언론은 이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하나의 영웅담처럼 만들었고, 전 세계의 흥미를 프리미어 리그로 집중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21세기에 들어서 프리미어 리그에 등장한 주제 무링요 감독은 ‘스페셜 원’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형성하며 프리미어 리그의 거대한 스토리텔링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감독들뿐만이 아니다. 외국 자본가들의 이야기와 뛰어난 선수들의 일생, 그리고 선수 시절에 그들이 저지른 기행 모두가 영국 언론들에게 좋은 스토리텔링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영국의 언론들은 이러한 프리미어 리그의 인물들을 전 세계에 홍보하며 프리미어 리그 자체를 마케팅했고, 자본가들은 프리미어 리그를 거대한 자본 시장으로 만드는데 성공하며 막대한 재정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텔링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극성이었던 영국의 언론들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성이 되어 버렸다. 특히, 잉글랜드에서 배출되는 자국 스타들과 지도자들의 숫자가 감소하게 되면서, 영국의 언론들은 조금이라도 뛰어난 기량을 갖춘 잉글랜드 유망주들과 젊은 감독들을 지나치게 띄워준다)
여기에 러시아와 중국, 태국, 아랍 등지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하거나, 자신들의 나라에서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프리미어 리그를 인수한 외국인 자본가들의 유입도 컸다.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맨체스터 시티의 셰이크 만수르 구단주가 클럽을 인수한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취미 삼아서 축구를 하기 위한 이유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조국에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와 함께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특히,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를 인수했던 이유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사업을 좀 더 확대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러한 영국 언론들이 만들어낸 스토리텔링의 효과와 영국이 ‘축구 종가’라는 그들만의 브랜드, 자본가들의 투자, 앞서 언급했던 영어의 장점, 그리고 영국이 가지고 있던 기후적인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프리미어 리그’는 외국 관광객들과 대규모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세계 최대의 자본 시장이 형성되었다.
만약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거대한 금융시장이 일찌감치 형성되지 못 했더라면, 그리고 영국 언론들이 없었다면, 프리미어 리그는 지금과 같은 세계 최대의 자본 시장을 형성하지 못 했을 것이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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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스 2017.06.09좋은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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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대포 2017.06.091번 3번이 가장 큰 이유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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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고스트 2017.06.09아시아인들이 보기 편한 시간대로 이동해서 아시아 시장을 장악한것도 확실히 컸죠. 라리가도 그래서 뒤늦게 일부경기는 시간대를 이동해서 아시아권에서의 영향력을 넓히려고 하고는 있는데 이미 epl이 선점한 시장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는 아시아에서 epl의 영향력이 워낙 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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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쿠 2017.06.09영어가제일큰이유같고
2번은 선뜻동의하기어렵습니다. 여름에더울때는 프리시즌이고
박싱데이가 있는 겨울은 무지하게춥죠 런던조차도 섬나라라서
바람이 심하게불어 춥구요. 남미에서 온선수들이 잘적응하지못하는이유기도하죠. 춥고 햇빛이없으니 향수병에도 많이 걸려서 날씨좋은 곳으로가고싶다는 선수들도 엄청많죠. 특히 서북부 맨체스터,리버풀같은경우 엄청춥죠 -
오토레하겔 2017.06.09라리가는 밤경기에도 불구하고 푸에르타 사망 사건이 있어서 낮으로 옮기는건 무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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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7.06.11좋은 글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