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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화요일 5시

재미로 보는 원클럽맨 베스트11

최유정 2017.03.25 01:09 조회 3,639 추천 3



주관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과도한 태클은 삼가주세요





GK 레프 야신





디나모 모스크바 1950-1970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골키퍼 유일 발롱도르 수상자 (1963)


189cm의 큰 신장과 동물같은 반사신경을 이용하여


야신 존 이라고 불리우는 사각지대까지 완벽히 방어해내었다고 하며


발롱도르를 수상한 시즌, 리그 27경기에 출전하여


고작 6실점만 했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아이스 하키팀 골키퍼였다가, 주전 골키퍼의 부상으로


축구로 전향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RB 베르티 포그츠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65 - 1979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의 주역


키커 지 월드클래스 등급 7회 (역대 3위)


샤냥개라는 별명답게 맨마크 대상을 악착같이 달라붙어


방어해낸것으로 유명하며,


대표적으로 1974년 월드컵 결승에서 요한 크루이프를 꽁꽁 묶어낸 적이 있다.


여담이지만 이 선수, 리프팅을 세번밖에 못했다고 한다.









CB 프랑코 바레시





AC 밀란 1977 - 1997


AC밀란 영구결번 No. 6



베켄바워, 보비 무어와 함께 역대 최고의 센터백을 논할때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


스토퍼로써 수비 능력도 출중했지만,


리베로로써 공격을 전개하고, 수비 라인을 조율하는 능력은


당대를 넘어 역대 최고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베를루스코니가 밀란을 인수하기 전부터 이미 밀란에서 뛰었으며


두 번의 강등 속에서도 끝까지 팀에 남아 충성을 다했던것으로 유명하다.


형인 주세페 바레시는 인터밀란 레전드로 유명하다.










CB 파올로 말디니





AC 밀란 1984 - 2009


AC밀란 영구결번 No. 3



프랑코 바레시와 함께, 영원한 로쏘네리의 주장


보통 사람들은 말디니를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기억하지만,


센터백으로 출전했을때도 그에 못지 않은 활약을 하였다.


프랑코 바레시와 함께 뛴 196경기 23실점이라는 경악할만한 기록은 덤


그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 역시 밀란에서 뛰었으며


두 아들 역시 밀란 유소년 출신, 3대가 밀란에서 뛴 진정한 원클럽맨











LB 지아친토 파케티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0 - 1978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영구결번 No. 3



카테나치오를 창시한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유산


니우통 산토스에 대한 유럽의 대답, 공격형 풀백의 시초


191cm의 큰 신장을 이용한 파워플레이에도 능했으며,


당시엔 생소했던 오버래핑이란 개념을 통하여


수비수이면서 공격 작업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베켄바워가 파케티를 보고 영감을 받아 독일식 리베로를 창시했을정도


국가 대표팀 주장으로 유로 1968을 우승했다.


말디니와 함께한 아주리 군단보다, 파케티와 함께한 아주리 군단의


성적이 더 훌륭했단것만으로도 이 선수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CM 폴 스콜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4 - 2013



퍼거슨의 아이들 중 한명이자, 패스 마스터


맨유 트레블의 주역이자 정확한 패스로 팀의 빌드업을 담당했다.


소위 말하는 뻥축구로 이름난 잉글랜드에서


개스코인의 뒤를 이어 뛰어난 테크닉을 갖췄으나 우승 기록은 없다.


사실 2011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맨유의 상황이 좋지 않아 은퇴를 번복하고, 2시즌을 더 소화했다.











CM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FC 바르셀로나 2001 - 현재



2017년 현재,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


뛰어난 테크닉과 화려한 개인기, 드리블 돌파 능력과 시야, 정확한 패스


모두를 두루 갖춘 그의 진가는 커리어만 봐도 드러나는데,


클럽에서는 세 얼간이라 불리는 챠비, 부스케츠와 함께


역대 최고 반열에 드는 미드필더 조합을 구성했으며,


리오넬 메시와 함께 2번의 트레블의 주역이었다.


국가대표에서 또한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의 주역


여담이지만 유럽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와인회사 오너 일가이다.


축구선수는 취미로 하는거라고........











AM 프란체스코 토티





AS 로마 1992 - 현재



로마의 황제


공격형 미드필더, 쉐도우 스트라이커, 또 팀이 필요할땐


최전방 스트라이커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그의 원 터치 패스는 우아하고, 치명적이었다.


매년 레알 마드리드가 그의 이름이 새겨진 10번 유니폼을 보내며 구애했으나


끝까지 팀에 남아 주장으로써 로마를 이끌었으며, 아직도 이끌고 있다.


국가 대표에선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의 주역 












RW 리오넬 메시





FC 바르셀로나 2004 - 현재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워, 크루이프, 디 스테파노와 함께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


169cm의 작은 키를 지녔음에도, 마라도나를 떠올리게 하는


드리블 능력과 정확한 왼발 킥력, 넓은 시야와 패스 모두 정상급


앞서 말한 이니에스타와 함께 바르셀로나 황금기의 주역이자 에이스


다만 국가대표에선 콩라인












LW 라이언 긱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0 - 2014



퍼거슨의 아이들, 로맨티스트


웨일스 출신의 후배 가레스 베일의 원조격 되는 선수,


전성기때는 매우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좌긱스 우베컴이라는 미친 조합으로


트레블을 포함한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나이를 먹어서는, 정확한 킥력을 살려 중앙쪽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그 무엇보다 화려했던것은 그의 가정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ST 우베 젤러





함부르크 SV 1953 - 1972



게르트 뮐러 이전, 독일 최고의 공격수


키커 지 월드클래스 등급 8회 (역대 2위)


함부르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169cm의 작은 키에도


온 몸을 이용하여 골을 넣는, 현대의 호날두같은 플레이를 하였다.


국가대표에서는 베켄바워, 슈넬링거와 함께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베스트 11











SUB




GK 제프 마이어





FC 바이에른 뮌헨 1962 - 1979



독일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다.


바이에른에서 422경기 연속 출전 기록도 가지고있는데... 흠좀무


여담이지만 굉장히 유쾌한 선수였는데,


경기장에 난입한 오리를 보고, 경기도중 오리를 잡으러 다녔으며


게르트 뮐러가 골까지 넣은 상황에서도 오리를 잡기위해 몸을 날렸다고 한다.


파넨카 킥을 최초로 허용한 골키퍼이기도 하다.












RB 주세페 베르고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79 - 1999



AC밀란에 바레시가 있다면, 인테르에는 베르고미가 있었다.


센터백, 풀백 모두 소화 가능한 선수였으며


피지컬을 이용한 파워풀한 플레이에 능했다.


바레시가 시레아에 밀려 벤치에 있을때, 당당히 주전으로


1982 스페인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CB 토니 아담스





아스날 FC 1983 - 2002



Mr. 아스날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중 한명이며,


191cm의 큰 키를 가지고 상대의 숨통을 틀어막는데 능했다.


앙리, 베르캄프, 허버트 채프먼, 켄 프라이어와 함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 동상이 세워진 선수












CB 카를레스 푸욜





FC 바르셀로나 1997 - 2014



바르셀로나의 심장


178cm의 센터백 치고는 작은 키를 지녔지만


집중력과 판단력, 테크닉, 일품인 태클 능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압박했다.


메시, 이니에스타, 챠비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함께 했으며


주장으로써 탁월한 리더쉽을 발휘했다.


국가대표 역시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의 주역












DM 다니엘레 데 로시





AS 로마 2001 - 현재



AS로마의 황태자


토티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만 축구 인생을 보낸 원클럽맨


투지 넘치는 성격과, 파이터형 스타일의 수비를 통해


중원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했으며, 강력한 킥력으로


중거리슛이나, 긴 패스에도 일가견이 있다.


다른팀같았으면 벌써 주장완장을 찼겠지만, 토티가 은퇴를 안한다....













AM 산드로 마쫄라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1961 - 1977



그란데 인테르의 주역


발렌티노 마쫄라의 아들로써,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뒤,


주세페 메아차에 의해 인테르 유스에 입단하고


쭉 인테르에서 축구 생활을 했다.


라이벌 지아니 리베라가 좀더 우아하고, 발재간이 좋고, 유려했다면,


그는 실속적이고, 강하고, 빨랐다.


국가대표에선 마쫄라가 전반, 리베라가 후반을 담당해 뛰었지만,


1970년 월드컵에선 거의 풀타임 출전했는데, 결승전 팀의 대패를 막지 못했다.












ST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 CF 1911 - 1928



레알마드리드의 수호성인


18년간 선수로써,


2년간 감독으로써,


7년간 단장으로써,


그리고 무려 35년간 회장으로써


레알 마드리드 한 클럽을 위해서만 헌신했다.


선수 시절엔 득점 기계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고,


회장직을 하는 동안,


디 스테파노, 코파, 푸스카스와 함께 레알마드리드 최전성기를 맞이했고,


Ye-Ye 마드리드 시절에도 회장직을 하며 팀과 함께했다.


오로지 죽음만이 그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떼어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바스 닮으셨다.









글 : 레알매니아 최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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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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