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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내일 5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데르비

김민둥인니댜 2016.10.16 22:33 조회 3,271 추천 3

Derby, Derby Match: 주로 같은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의 라이벌 경기를 뜻하는 용어. 데르비. (이탈리아 발음)
Rival: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경쟁자. 적수라고도 함.






그렇다. 데르비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같은 지역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라이벌 경기였지만 현대로 들어와서는 그 의미는 붕괴되었다.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역사적 배경과 다양한 사건, 사고 등이 데르비를 탄생시켰고 또 그러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데르비가 있는 날에는 응원하는 팀이 없더라도 축구팬들은 치킨과 맥주를 들고 TV 앞으로 모인다.)
스페인에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엘 클라시코, 독일에는 도르트문트와 샬케 04의 레비어 더비, 잉글랜드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노스 웨스트 더비 등이 있다.
그렇다면 데르비 내에 스토리도 많고 치열하다고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데르비에는 어떤 경기들이 있을까?
이탈리아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주목하고 가장 치열한 데르비들만 모았다.



1.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밀란 더비): 밀란 V. 인테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밀라노를 연고로 하는 두 팀의 경기이다.
이 데르비 이름의 유래는 밀라노에 위치한 대성당에 있는 석상의 이름인 '마돈니나'에서 따왔다.
경기장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인테르 팬들은 인테르의 전설인 주세페 메아차의 이름을 따 경기장을 ‘주세페 메아차'’라고 부르지만 밀란 팬들은 라이벌의 전설을 경기장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경기장이 위치한 지역 이름을 딴 ‘산 시로’라고 부르고 있다.
이 데르비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데르비임은 물론 축구팬들 사이에서 흔히 불리는 '세계 3대 더비' 중 하나이다. (올드 펌 더비와 엘 클라시코 더비 그리고 밀란 더비)
같은 연고지의 라이벌이긴 하지만 두 팀은 역사적으로도 라이벌 의식이 굉장히 깊다.
밀란은 창단 당시 영국인과 이탈리아인들만 선수들로 인정했고 이런 정책에 반대해 국적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인테르의 창단 역사를 보면 인테르가 밀란으로부터 독립한 시기부터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2004-2005 UEFA 챔피언스 리그(이하 챔스) 8강 2차전 주세페 메아차에서 두 팀의 경기 도중 인테르 팬이 경기장에 응원용 발광탄을 던져 당시 밀란의 골키퍼였던 디다가 부상을 입은 일은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렇게 두 팀의 경기는 간혹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수많은 세계의 데르비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사건, 사고가 많이 벌어지는 편은 아니다.
현지에서는 친구들끼리 각기 로쏘네리, 네라주리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며 한 가족에서 두 팀 중 응원하는 클럽이 자연스럽게 나뉘기도 한다.
과거 인테르에서 활약한 주세페 바레시와 밀란에서 활약한 프랑코 바레시(둘은 형제이다.)는 각 팀의 주장 완장을 차고 데르비에 모습을 드러내 보기 힘든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 2009년 밀란 형제는 주니어 캠프를 공동으로 진행해 '로쏘네라주리'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었다.
밀란이 낳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수비수인 파울로 말디니가 은퇴했던 2009-2009 시즌 마지막 두 팀의 데르비에서 인테르 팬들은 그를 위한 문구를 준비했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20년 세월의 라이벌. 그러나 그대는 한 평생 충성을 바쳤다.’
말디니는 이 문구를 보고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인테르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라며 인테리스타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렇듯 두 팀은 단순 라이벌 팀을 넘어선 서로를 존중하는 '형제'에 더 가깝다.
두 팀은 또한 1996년부터 ‘산 시로 젠틀맨 어워즈’를 만들어 한 시즌 동안 신사적인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에게 산 시로의 기둥을 본 딴 ‘Albo d'Oro’라는 트로피를 수여하며 페어플레이를 약속하는 동시에 친목을 도모(?) 한다.
이렇듯 세상 어디에도 라이벌이라는 이름 안에 서로를 존중하는 형제 의식을 갖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데르비는 찾기가 여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밀란 기준) 216경기 75승 64무 77패이며 이 데르비의 최다 출장자는 밀란의 파울로 말디니(56경기)이고 그 뒤는 하비에르 사네티(47경기)가 자리하고 있다.
이 데르비의 최다 득점자는 밀란의 안드레이 셰브첸코(14골)이며 2위는 인테르에서 활약이 더 큰 주세페 메아차(인테르 12골+밀란 1골)이다.



2. 데르비 디탈리아 (이탈리아 더비): 인테르 V. 유벤투스


이름부터 강력하다. 이탈리아 더비.
이 데르비는 1967년 이탈리아의 저명한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지아니 브레라가 두 팀의 경기를 '데르비 디탈리아'라고 부르며 자연스럽게 이름이 붙여졌다.
아마 그렇게 칭한 이유는 그 당시에 두 팀만이 세리에 A에서 10회 이상의 우승을 경험했고(1967년 당시 세리에 A 우승 횟수: 유벤투스 13회, 인테르 10회, 제노아 9회) 유벤투스가 칼치오 폴리 이전에는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기 때문에(물론 인테르는 창단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팀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사실 두 팀의 데르비는 그렇게 거칠지도 않았고 단순히 우승을 다투는 이탈리아 대표 명문 팀들의 경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칼치오 폴리 터진 후 이탈리아 더비는 세계 그 어느 더비보다 치열해졌고 선수와 팬 모두에게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데르비가 되었다.
경기장 내에서는 물론이고 외에서도 두 팀의 싸움은 계속된다.
작년 9월 칼치오 폴리 대법원 판결문 전문이 발표되었고 칼치오 폴리의 주범인 전 유벤투스 단장 루치아노 모지의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경했다.
유벤투스의 공식적인 세리에 A 우승 횟수는 32회이지만 그들은 박탈당했던 2004-2005, 2005-2006 시즌의 스쿠데토도 우승 횟수에 포함하며 2005-2006 시즌에 인테르에게 스쿠데토를 빼앗겼다며 스쿠데토 반환과 배상금 청구 소송을 진행했지만 FIGC(이탈리아 축구 협회)는 "이미 인테르에게 부여된 스쿠데토를 되돌릴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기각했다. 또한 모지가 인테르 측도 승부조작에 가담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두 팀 간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 외 칼치오 폴리 관련 두 팀 간의 사건은 많지만 여기서 줄인다.)
2009-2010 시즌 인테르 트레블의 주역인 루시우는 인테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유벤투스로 이적해 인테르 팬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2009-2010 시즌 이후로 인테르는 하락세, 유벤투스는 상승세를 타면서 두 팀의 격차는 상당히 많이 벌어져있는 상태이다.
양 팀의 팬들 간의 싸움도 굉장히 흥미롭다.
인테르 팬들은 2014-2015 시즌 세리에 A와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했지만 챔스에서 우승을 실패해 트레블에 실패한 유벤투스에게 이번 시즌 주세페 메아차에서 펼쳐진 리그 경기에서 'CONTINUA A SOGNARE. (평생 꿈이나 꿔라.)'라는 조롱 섞인 문구와 더불어 데르비 디탈리아는 유벤투스의 강등으로 없어졌고 지금 하는 것은 가짜 데르비라며 비안코네리 팬들을 놀린다.
그러나 이 놀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유벤투스 팬들이 아니다. (그러면 애초에 라이벌도 아니겠지.)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유벤투스 기준) 229경기 103승 56무 70패인데 이 기록은 유벤투스가 인테르에 굉장히 강하다는 것은 보여준다.
유벤투스 팬들은 이 기록을 보여주며 "이게 무슨 데르비냐. 데르비가 데르비다워야 데르비지."라며 네라주리 팬들의 속을 긁는다.
이번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달성한 유벤투스는 2011-2012 시즌부터 우승 행진을 시작해 리그 5연패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세리에 A 4위를 기록한 인테르는 이제야 기나긴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자리를 굳게 지키려는 ‘Il Zebre (얼룩말. 유벤투스의 애칭)’
자신들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Il Biscione (뱀. 인테르의 애칭)’ 과연 두 팀 중 어느 팀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될까?



3.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로마 더비): 로마 V. 라치오


전쟁. 더 이상 이 데르비를 설명할 단어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냥 저 한 단어로 설명은 끝이 난다.
로마 더비라 불리는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는 로마를 연고지로 하는 로마와 라치오의 데르비다.
‘올림피코 스타디움’을 양 팀이 같이 사용한다.
잠깐, 본 내용이 들어가기 전에 질문 하나만 하겠다.
경기장에서 쇠파이프, 벽돌, 망치, 도끼, 칼을 들고 있는 관중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고? 그래, 없겠지. 아니, 당연히 없어야지.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냐고?
로마와 라치오 두 팀의 경기를 보면 저 물건들을 다 볼 수 있거든.
이탈리아 내에서 '로마노(로마인을 칭하는 말)'들은 가장 열정적이고 다혈질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특히나 양 팀의 '울트라스(광적인 축구 팬)'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누가 봐도 유럽에서 가장 극단적인 집단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내 생각으로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서다.)
그렇다면 단순히 같은 연고지 때문에, 원래 로마노들의 성격 때문에 이런 전쟁 같은 데르비가 됐을까?
아니다. 대부분의 데르비에 있는 역사적 사연이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에도 있다.
1890년대와 1900년대 이탈리아는 밀라노, 토리노, 제노아를 중심으로 한 북부 클럽들이 축구계를 접수(?)하고 있었다.
이를 본 파시즘을 주도한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로마의 클럽들을 합쳐 북부의 클럽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래서 1927년 Roman, Alba-Audace, Fortitudo 세 클럽을 합쳐 지금의 AS 로마를 창단한다.
하지만 라치오는 장군 조르지오 바카로 덕분에 통합되지 않고 그들만의 전통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곧 자연스럽게 라이벌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비안코첼레스티(흰색과 하늘색을 뜻하는 라치오의 애칭) 팬들은 지알로로시(노란색과 빨간색을 뜻하는 로마의 애칭) 팬들에게 자신들의 클럽보다 27년이나 늦게 창단된 클럽임을 조롱하며 지알로로시 팬들은 이를 로마 북부에서 온 아웃사이더들이라며 받아치곤 한다.
양 팀의 서포터들은 다른 어떠한 이익보다 데르비에서의 승리를 중요시하며 그저 상대팀에 속한 그 누구도 좋게 되는 꼴은 절대로 보지 못한다는 마인드다.
얼마나 심하면 본인이 의사인데 상대팀 서포터가 진료(치료)를 받기 위해 오면 진료(치료)를 거부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이다.
또 한 예로 2001-2002 시즌 인테르는 2위 유벤투스와 승점 1점 차로 앞서며 세리에 A 1위를 달리고 있었고 리그 마지막 경기가 라치오의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있었다.
당시 로마도 인테르와 승점 2점 차로 리그 우승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라치오 팬들은 로마가 혹시나 리그 우승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며 인테르를 응원하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라치오 팬들의 응원 덕에 로마는 우승에 실패했고 유벤투스가 스쿠데토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면 인테르는…)
로마 더비가 있는 날이면 로마시 경찰들에게는 지옥에 들어서는 기분일 것이다.
1979년 10월 로마 울트라스가 조명탄을 던져 라치오의 팬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2014-2015 시즌 세리에 A 37R 로마 더비 시작 전 올림피코 스타디움 근처에서 2명의 관중이 칼에 찔리는 사건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러한 여러 사건들에 대비해 이번 시즌 세리에 A 31R 로마 더비는 경기장 양쪽에 차단 벽을 설치했는데 이 열정적인 다혈질의 로마노들은 항의의 뜻으로 보이콧을 선언해 경기장이 텅 빈 채로 데르비를 치르게 되었다. 역시나 만만치 않다. (출처: 메디아셋)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라치오 기준) 164경기 43승 60무 61패로 로마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어떤가. 이 글을 읽고 나니 당신의 승부욕도 불타오르는가?
워워. 손에 든 무기는 내려놓고 얘기하자고.



4. 데르비 델라 몰레 (토리노 더비): 유벤투스 V. 토리노


토리노를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의 데르비다.
이탈리아 세리에 A 5연패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세 팀 중 두 팀의 대결이기도 하다.
(나머지 팀은 인테르. 유벤투스는 1930-1931~1934-1935, 2011-2012~2015-2016 시즌, 토리노는 1942-1943~1948-1949 시즌 5연패를 기록.)
토리노가 '수페르가의 비극 (1949년 5월 4일 토리노는 벤피카와의 친선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던 도중 비행기가 수페르가 언덕으로 추락한 사고. 이 사고로 18명의 토리노 선수들을 포함해 탑승한 31명이 전원 사망했다.)'을 겪은 후 지금까지도 침체되어 있는 상태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데르비의 우세는 유벤투스가 가져가게 되었다.
2014-2015 시즌 세리에 A 32R에서 유벤투스가 토리노에게 패하기 전 유벤투스는 토리노를 상대로 무려 17경기 무패(13승 4무)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현재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유벤투스 기준) 191경기 81승 54무 56패이다.
이렇게 한 팀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고 다른 한 팀은 중위권을 전전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두 황소의 싸움은 전혀 지루할 틈이 없으며 다른 데르비만큼이나 열정적이고 치열하다.



5. 데르비 디 시칠리아 (시칠리아 더비): 팔레르모 V. 카타니아


'데르비 디 시칠리아'라고 불리는 시칠리아 더비는 팔레르모와 카타니아 두 팀뿐만 아니라 트라피니나 메시나 등 그 외 많은 시칠리아 섬에 있는 팀들의 경기를 전부 다 시칠리아 더비로 통용한다.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고 주목도가 높은 팔레르모와 카타니아의 경기를 알아보겠다.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팔레르모 기준) 84경기 25승 39무 20패이다.
이 데르비를 보고 있자면 거의 테러와 흡사하다.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로마 더비)와 같이 최악의 폭력성을 지닌 데르비다. (아니 이쯤이면 두 데르비의 해당 팀들의 서포터들이 자존심 상해 할수도…)
전 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필리포 라치티 경관의 사망 사건은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이 이탈리아 축구에 반감을 갖게 되는 사건이다.
2007년 2월 2일. 안젤로 마시미노(카타니아의 홈구장)에서 카타니아와 팔레르모의 시칠리아 더비가 있었다.
득점 없이 경기가 진행되던 중 후반 10분 팔레르모의 안드레아 카라치올로의 선제골로 팔레르모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득점 과정에서 카라치올로는 오프사이드 위치였고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경기장에 최루탄이 날아오면서 연기에 휩싸였고 경기는 중단되어 15분 뒤 재개되었다.
경기는 팔레르모가 2:1로 승리하며 끝났지만 말 그대로 ‘경기만’ 끝난 것이었다.
경기 종료 후에도 난동은 계속됐고 최루탄과 폭발물을 던지며 싸움을 벌이던 양 팀의 서포터들을 저지하는 상황에서 필리포 라치티 경관이 카타니아 서포터가 던진 폭발물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이에 FIGC는 긴급회의를 통해 이후 계획된 이탈리아 내 모든 경기를 중단시킴과 동시에 카타니아의 시즌 남은 홈경기를 금지시키고 중립 구장에서 무관중으로 홈경기를 치르게 했다.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꼭 이 시칠리아 더비뿐만 아니라(로마 더비도 그렇고) 유혈 사태는 절대 축구계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끔찍한 일이다.
축구와 본인이 응원하는 팀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매너임을 (이 사건을 알고 있었든 오늘 처음 알게 됐든) 다시 한 번 모든 축구팬들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6. 데르비 델라 란테르나 (제노바 더비): 제노아 V. 삼프도리아


제노바를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데르비이다.
'데르비 델라 란테르나'는 ‘등대 더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제노바 항구의 등대인 ‘토르레 델라 란테르나’에서 따왔다.
양 팀은 루이지 페라리 경기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내 로컬 더비 중 가장 사건, 사고가 적고 깨끗한 데르비로 소문이 나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주리 군단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한 아주리의 명장 마르셀로 리피는 제노바 더비를 "이탈리아에서 가장 특별한 데르비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노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클럽(1893년 창단)이며 세리에 A 초대 캄피오네(챔피언)의 기록과 9회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삼프도리아는 클럽을 창단한지 70년밖에 되지 않았으며(1946년 창단) 제노아에 비해 우승 기록도 초라하다. (삼프도리아는 1990-1991 시즌 세리에 A 우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하지만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삼프도리아 기준) 94경기 35승 35무 24패로 삼프도리아가 앞서가고 있으며 최근 4시즌 양 팀의 대결에서도 (삼프도리아 기준) 8경기 2승 2무 4패로 삼프도리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7. 데르비 델라 스칼라 (베로나 더비): 헬라스 V. 키에보


‘마크안토니오 벤테고디’ 경기장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이탈리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인 베로나를 연고로 하는 헬라스 베로나와 키에보 베로나의 '데르비 델라 스칼라'이다.
이 데르비의 명칭은 스칼리제리 가문 또는 중세시대·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베로나를 통치했던 스칼라 귀족 가문에서 유래되었다.
보통 현지에서 베로나를 대표하는 클럽은 헬라스 베로나라고 알려져 있어 헬라스 베로나를 칭할 때는 그냥 '베로나'라고 칭하지만 키에보는 '키에보'라고 불린다. (키에보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나는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기 위해 '헬라스'와 '키에보'로 칭하겠다. 흠.)
아마도 그 이유는 헬라스가 1984-1985 시즌에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등 명성을 떨친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양 팀 간의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키에보의 상징적인 별명은 'Mussi Volanti (날아다니는 당나귀)'이다.
이 별명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키에보 서포터들이 아닌 헬라스 서포터들에 의해서 생겨났다.
원래 Mussi Volanti 라는 말은 헬라스 서포터들의 "당나귀가 하늘을 날면 세리에 A에서 데르비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조롱 섞인 응원가에 있던 말인데 "(하부리그를 전전하던) 키에보가 승격하기 전에 당나귀가 먼저 하늘을 날겠다."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분명 그 누구도 당나귀를 하늘에서 본 적이 없는데 2000-2001 시즌 세리에 B에서 키에보는 3위를 기록하며 사상 첫 세리에 A의 무대를 밟게 된다.
그렇게 2001-2002 시즌 세리에 A는 시작됐고 키에보는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5위를 기록해 UEFA 컵(현 UEFA 유로파 리그의 전신) 진출권까지 획득한다.
키에보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헬라스는 리그 15위를 기록하며 강등된다.
‘날아다니는 당나귀'’라는 라이벌 팀의 조롱의 말을 키에보 팬들은 스스로 "바로 우리가 하늘을 나는 당나귀다."라며 팀을 대표하는 하나의 명언 아닌 명언을 만들어 냈고 이를 계기로 엠블럼에도 당나귀를 그려 넣었다. 물론 그 당나귀는 그냥 당나귀가 아닌 하늘을 나는 당나귀일 것이다.
그 뒤로 키에보는 한 번의 강등이 있었지만 곧바로 승격(2006-2007 시즌 세리에 B로 강등당했지만 2007-2008 시즌 세리에 B에서 우승해 재승격) 해 지금까지 강등 없이 세리에 A의 탄탄한 중위권 팀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키에보가 성공적으로 역사를 써 내려갈 때 헬라스는 하부리그를 오르락내리락 해왔으며 2012-2013 시즌 세리에 B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세리에 A로 복귀에 성공했고 2014-2015 시즌에는 이탈리아의 베테랑 공격수 루카 토니가 구단 역사상 최초의 세리에 A 득점 왕에 오르는 등 나름의 성공을 보냈다.
그러나 이번 시즌 세리에 A에서 아탈란타를 상대로 승을 거두기까지 22경기 무승행진(11무 11패)을 달렸고 결국 이번 시즌 세리에 A 20위를 기록하며 다시 세리에 B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두 팀 간의 일화를 들으니 말조심, 자나 깨나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똑똑한(?) 축구팬이다.
공식 경기 기준 두 팀의 상대 전적은 (헬라스 기준) 16경기 6승 4무 6패(세리에 A: 8경기 3승 2무 3패, 세리에 B: 8경기 3승 2무 3패)로 엄청나게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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