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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잡지에 손병호 기자님이 자꾸 이상한 기사를 실으시네요.

아모 2016.03.16 17:22 조회 2,981 추천 4

포포투와 함께 국내 축구잡지계를 양분하고 있는 베스트 일레븐.

그 베스트 일레븐에는 'FC HISTORY'라는 특별 코너가 있는데요. 과거에 찬란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팀들을, 그 뿌리부터 하나씩 소개하는 코너로, 지난해 9월호에서 손병호 기자님에 의해 레알 마드리드가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손병호 기자님은 레알 마드리드를 '프랑코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던 클럽', '왕실의 비호를 받는 클럽' 이라고 지칭하시면서 잘못된 오해를 하고 계셨기에, 제가 항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항의 메일을 조금만 발췌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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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알폰소 13세는 레알마드리드에만 특혜를 주었다?

 

알폰소 13세가 "Real"의 칭호를 하사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허나 당시에 스페인 클럽들이 클럽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국왕에게 명예 구단주직을 위촉하고 칭호를 받는 경우는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비야레알,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 사라고사를 포함해 현재 수많은 클럽들이 알폰소 13세에게 'Real'의 칭호를 하사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알폰소 13세가 레알 마드리드에 특혜를 주었다고 보기느 어려우며, 알폰소 13세가 레알 마드리드를 '자신의 팀'이라고 여겼다는 표현은 더더욱 어불성설입니다.

 


둘째. 프랑코장군은 레알마드리드의 팬이자 비호자였다?

 

 프랑코가 처음에 응원하던 팀은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였습니다. 아틀레티코는 당시 ‘아틀레티코 공군’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아비아시온 나시오날을 병합시켜 군부대 축구팀으로 활약하였죠. 따라서 군부정권의 수장이었던 프랑코의 호감을 살 수 밖에 없었죠. 그러나 스페인이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1950년대, 국제 대회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눈부신 활약을 펼치자 정부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셋째. 디 스테파노의 이적은 독재정권의 만행이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news&mod=read&office_id=216&article_id=0000069054 

 

알기 쉽게 요약하자면 에이스인 쿠발라가 부상당한 바르샤가, 임금체납에 대한 파업 등으로 인해 복잡한 처지에 놓여있는 스테파노의 이적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고, 이 사이에 레알마드리드가 접근. 계약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에는 프리시즌에 미덥지 못한 활약을 펼친 스테파노의 권리를 레알 마드리드에 넘기는 대신 경제적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디 스테파노의 이적건에 관련하여 억압과 만행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증거가 없는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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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프랑코 장군의 재임 기간동안 레알 마드리드가 총통컵(지금의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횟수는 6회에 불과하며, 같은 기간 동안 빌바오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9회를 우승했다는 점,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기는 프랑코가 독재정권을 틀어쥔 시대부터가 아니라 디 스테파노의 이적 직후라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항의메일을 보냈습니다. 

물론 예전 레매에 계셨던 분들의 글을 참고하여 항의 내용을 작성했습니다.. 실비님이라던가, ryoko님이라던가...

물론 안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만, 모 기자분의 잘못된 책을 통해 널리 알려진 오해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혹시 오해를 하셨을 수도 있기에 최대한 정중하게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되려 지난 2월 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특집'편에 다시 한 번 비슷한 내용을 적으셨더군요.

1

프랑코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명칭을 바꾼 것은, 당시 프랑코가 스포츠 클럽명에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아슬레틱 빌바오가 아틀레티코 빌바오로, FC 바르셀로나가 바르셀로나 C.F.로 바꿔야 했습니다. 두 클럽들이 프랑코 독재 기간이 끝난 후 다시 클럽명을 원상복구 시킨 것과 달리, 아틀레티코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공군팀이 다시 독립했던 이유는 원래 합병된 팀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심지어 프랑코에게 핍박받았다는 해당 시즌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5-0으로 승리를 거두며, 현재까지도 마드리드 더비 역사상 아틀레티코의 최다 점수차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2

1904년 反 레알 마드리드 연대가 구성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反 레알마드리드 세력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흡수된건 사실이지만요. 또한 왕실의 비호를 받았다는 근거없는 표현이 다시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3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혔다는 것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나와있지 않아 반박이 힘들지만, 위에 나와있던 프랑코와 왕실이 아틀레티코를 괴롭히고 레알을 편들었다는 것이 그 '다양한 방식의 괴롭힘'이라면, 이는 명백히 틀린 표현입니다.

위처럼 자꾸 근거 없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칼럼에 사실이 아닌 내용을 적는 손병호 기자님께 대체 어떤 방식으로 항의해야 이런 날조를 그만두실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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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에전에 모 기자의 고소 사건도 있고 하니 지나친 비하나 욕설 같은 표현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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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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