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경기들 리뷰
겸사겸사 본 옆동네 첫경기 얘기도 같이 해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쪽 경기를 더 재밌게 보기도 했고...
스포르팅 히혼 vs 레알 마드리드
예전에 썼던 글이나 맛살에서 언급했던 예상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여지로 남겨뒀던 것들이 대부분 안좋은 쪽으로 나타났다는 것이겠죠.
초반 진행된 epl을 연상케 하는 빠른 오픈게임은 앞으로 맞불을 놓는 팀을 상대로는 자주 보게 될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런 장면이 자주 연출되어야 베일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가릴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경기 초반 베일의 모습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습니다. 속도를 붙인 채 볼을 잡는 모습이 종종 나왔고, 골리를 제끼고 잠깐이나마 빈 골대를 마주하는 장면도 나왔습니다. 못 넣어서 문제지...
다만 이렇게 오픈 게임을 유도하려면 중앙의 두 미드필더는 자연스레 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두 선수의 커버 범위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중원 싸움은 중앙에서의 공간을 축소시키기 때문에 서로 치고받는 국면을 유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둘이 아래쪽에 내려가있기 때문에, 2선의 누군가는 3선과의 괴리가 너무 심해지지 않도록 종종 내려와서 2~3선을 연결해주려는 시도를 해주어야 하고, 이런 역할은 프리시즌엔 이스코가 도맡았습니다. 드리블과 주변 선수를 활용하는 부분전술 모두에 능숙하기 때문에 상대의 허술한 저지선을 허물고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기에 안성맞춤이었죠. 또 이스코의 이런 성향은 어그로를 끌기에 딱 좋아 2선의 호날두-베일에게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도, 수비 시 세번째 미드필더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올시즌엔 이스코가 하메스보다도 더 중용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이번 경기의 이스코는 개인적으론 가장 실망한 선수였습니다. 초반엔 템포를 따라가지 못했고, 2~30분 이후 히혼이 맞불을 포기했을 땐 체력이 모자랐는지 아예 전방에 박혀있는 모습이 종종 보였습니다. 때문에 팀은 공수분리 상황에서 측면 위주의 소수 역습에도 매우 휘둘리는 장면을 맞이해야만 했죠. 후반엔 베니테스의 지시였는지 아예 프리 포워드처럼 움직였는데, 물론 이런 롤은 이스코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롤이기는 합니다만, 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가뜩이나 질서없는 공격을 더 흐트려놨죠. 조립엔 재주가 없는 걸 알기에 애초부터 기대도 안했습니다만, 괜찮게 해내던 것도 영 시원찮게 해내니 실망이 클 수밖에요.
이렇게 극딜하긴 했지만 사실 이스코 개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비록 기용 방식에 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조립과 질서 잡기에 도가 튼 하메스가 들어가도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은 걸 보면 시스템 정착의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더구나 베니테스가 추구하는 공격 방식은 현란한 스위칭에 기반을 두는데, 현란함을 추구하는 만큼 그 시행착오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질서가 잡히기 시작하면 아마 수비도 많이 좋아질 겁니다. 질서가 살아나야 전방 압박의 체계성도 살아날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좀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프리시즌부터 실점 숫자가 적다는 점은 분명 칭찬받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번 경기도 마찬가지였죠. 보기엔 좀 아슬아슬했지만 골대를 맞은 장면을 제외하면 실상 큰 위기는 거의 없었습니다. 가장 칭찬받아야 할 선수는 라모스입니다. 안첼로티도 수비진의 능력을 상당히 많이 끌어다썼지만, 베니테스만큼은 아닐 겁니다. 이런 감독의 성향에 다재다능한 라모스는 100% 부응하고 있습니다. 홀딩 라인까지 올라가서 볼을 끊어내고, 풀백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그러면서도 본인 책임 지역의 선수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요새 완전히 물이 올랐습니다.
다만 이렇게 라모스의 능력을 극도로 뽑아내서 돌리는 수비 시스템은 라모스의 컨디션이나 출/결장 여부에 따라 그 안정감이 요동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죠. 때문에 주변 선수들의 분발이 필요한데, 특히 크로스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민첩성이 떨어지는 크로스는 모드리치와 달리 사이드 커버에 능숙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무리뉴 시절처럼 시프트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마르셀루의 빈자리는 라모스가 채우게 되는데, 이때 비슷한 단점을 가진 알론소와의 차이는 센터백 지역으로의 커버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이 빈자리는 바란과 다닐루가 한칸씩 당겨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마르셀루도 맘껏 공격에 전념하기 힘들구요.
다행스럽게도 바란과 다닐루의 커버는 훌륭했습니다. 특히 다닐루는 이적 당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쪽으로 만족감을 주고 있습니다. 베니테스가 다닐루를 더 선호한다는 루머는, 팀이 이렇게 덜 정비된 상황이니 피지컬을 활용한 커버가 아무래도 감독 입장에선 더 구미가 쏠릴 수밖에 없지 않나 싶네요. 팀이 안정세에 접어들수록 전환 상황에서 강점이 있는 카르바할의 출장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무래도 반대쪽 닥주전인 마르셀루가 의외로 그런 상황에 썩 능하지 못한 만큼 더욱 그렇겠죠.
더불어, 팀이 안정세에 접어들면 박찬하 해설이 경기 내내 지적한 좌우 폭의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 봅니다. 지금은 아무래도 커버 부담이 높으니 풀백들의 전진이 제한되고 또 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시스템이 정착할 수록 전방 압박이 살아나고 전환 시 대처도 자연스러워져 후방의 커버 부담이 줄어들테니 풀백을 활용한 좌우 측면 활용도 살아나게 되겠죠.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입니다. 곧 벤제마도 돌아올테고, 이번 경기에선 나오지 못했지만 시너지를 줄 만한 친구들도 많으니까요. 보강도 꽤 잘했고, 막판에나마 잉여자원들 처리도 잘 진행하고 있구요. 불안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13-14 안첼로티도 별의 별 얘기 다 들은거 생각하면 너무 비관론에 빠져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빌바오 vs 바르셀로나
수페르 코파를 보진 못했지만 빌바오가 어떻게 우승했는지 잘 알수 있던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승리하는 것도 오래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란 생각도 동시에 드는 경기였습니다.
빌바오가 기존의 두줄 수비로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던 팀들과 비교해 가장 돋보인 건 부스케츠의 견제입니다. 맨앞의 두 선수는 되도록 부스케츠에게 공이 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가며 센터백을 압박하였고, 부스케츠에게 볼이 전달될 경우엔 에라소가 지체없이 내려와 부스케츠를 마크했습니다.
이때 네이마르의 부재가 두드러졌는데, 바르셀로나의 센터백들이 위력 없는 롱패스를 강요받았기 때문입니다. 루쵸가 바르셀로나에 부임하면서 전술적으로 해낸 가장 큰 업적은 펩의 팀만큼 정밀한 축구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업템포로도 능숙하게 게임을 풀어갈 수 있는 팀을 만들어냈다는 점인데요. 이걸 가능케 한 요소 중 하나가 네이마르와 수아레스의 적극적인 활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내려와서 미드필더 지역에서부터 부분전술을 전개해나갈 수도 있고, 뒷공간 침투를 통해 상대 수비라인을 한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친구들입니다. 때문에 상대가 강한 전방 압박을 가하더라도 여러가지 선택지를 가져갈 수 있죠. 한명이 내려와서 압박을 풀어준다거나, 둘다 라인을 깨려는 시도를 통해서 롱패스의 위력을 끌어올리거나요.
그러나 네이마르 대신 나온 하피냐는 미드필더 성향이 짙은 선수입니다. 당연히 뒷공간 침투는 기대하기 힘들고, 볼 순환에 대한 이해도는 있지만 네이마르만큼 부분전술을 능수능란하게 가져갈 수 있는 선수도 못되죠. 수아레스는 어떻게든 센터백들을 물고늘어져야 하고, 메시는 능력이 충분하지만 뛰지 않으니(...) 전반 내내 바르셀로나의 공격 전개는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빌바오의 실수로 얻어낸 천금같은 pk도 메시가 퓨어골을 외치며 친히 날려주셨구요.
우리 입장에선 좀 불행이긴 합니다만, 루쵸는 모 게이머처럼 세번 연속으로 당할 만큼 고집쟁이는 아니었습니다. 후반전에 접어들며 루쵸는 부스케츠를 횡으로 넓게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전반엔 부스케츠가 비교적 중앙에 자주 머물렀기 때문에 빌바오의 두 선수는 센터백의 패스각을 쉽게 예측해 좁힐 수 있었지만, 부스케츠가 풀백 근처까지 움직이며 볼을 받아 전진시키자 에라소는 센터백을 포기하고 부스케츠를 마크하기 위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비로소 센터백들의 롱패스가 위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부스케츠가 측면으로 넓게 움직이면서 풀백들의 전진이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특히 알바쪽의 전진이 전반에 비해 눈에 많이 띄었죠. 측면을 통해 볼 순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때때로 롱패스가 위력있게 들어가면서 빌바오의 블록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발렌시아가가 불의의 부상으로 교체되며 수비 조직이 흔들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득점을 만들어냈습니다. 빌바오 입장에선 수사에타-데 마르코스가 상대의 왼쪽 라인을 굉장히 잘 봉쇄하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발렌시아가의 부상은 앞으로의 이탈 이상으로 아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빌바오는 심판의 트롤링과 몇몇 친구들의 집중력 결핍으로 잡을 수 있던 경기를 놓쳤습니다. 부심에게 멀쩡한 온사이드 상황을 몇차례 도둑맞았고, 주심이 준 pk도 논란의 여지가 충분한 것이었죠. 게임을 잘 짜왔음에도 흐름을 잃어버리자 선수들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두드러진게 엘루스톤도와 사빈이었죠. 특히 사빈은 세르지 로베르토를 여러 차례 놓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공격적으로도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주니옹 말씀을 들어보면 수페르 코파에선 꽤 잘했던 모양인데, 이번 경기에선 전반 끝나고 바꾸는게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르셀로나는 부스케츠빨로 승점을 챙길 수 있었는데, 이 부스케츠가 빠졌습니다. 땜빵으로 뛴 마스체라노는, 빌바오의 기세가 대단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수준 미달의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마스체라노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단 그만큼 부스케츠가 사기캐라는 겁니다만... 다른 글에서 강조했던 측면 속도싸움을 담당할 선수들이 대체로 몸이 무거워보였고, 아우베스는 장기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아우베스를 대체했던 세르지 로베르토는 비록 이번 경기는 잘했지만 앞으로도 믿고 쓸 만한 카드인지는 의심이 가구요. 아마 앞으로 한두경기는 승점을 떨굴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마침 상대도 말라가-아틀레티코로 바르셀로나를 괴롭힐 줄 아는 팀들이구요. 우리팀의 1라운드 삽질을 묻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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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첸 2015.08.26항상 온태님의 글은 선추천 후 정독합니다ㅠㅠ항상 감사합니다!덕분에 희망을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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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Gandy 2015.08.26이런글을 공짜로 볼수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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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나무 2015.08.26잘 봤습니다. 베법사 생각이 뭐건 간에 베일은 벤치에 앉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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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시 2015.08.26문체도 좋고.. 내용도 좋고.. ㅎㅎㅎㅎ 언제나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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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축덕 2015.08.27온태님 팬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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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쥬옹 2015.08.27*좋은 글 잘 봤습니다만.... 중간에 루쵸감독 비유로 든 모 프로게이머........ ㅋㄲㅈㅁ 주시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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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5.08.27@지쥬옹 그 문장 두번 쓰려다 참았습니다
그 문장 두번 쓰려다 참았습니다 -
진격의 베일 2015.08.27좋은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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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포 2015.08.27대단히 훌륭한 글, 언제나 잘 보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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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Rodriguez.10 2015.08.27온태님은 긍정적으로 봐서 안심이 되네용.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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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코사코 2015.08.27정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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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렌지캬라멜 2015.08.27ㅋㄲ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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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호렌지캬라멜 2015.08.27@호렌지캬라멜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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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라모스 2015.08.27부스케츠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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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2015.08.27굿 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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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토레 2015.08.27ㅋㄲㅈ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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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beard 2015.08.27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추천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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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stian_O 2015.08.27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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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치치 2015.08.27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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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zo 2015.08.27잘 읽었습니다. 추천을 한개밖에 할 수 없다는게 매우 아쉬울정도로 글이 상당히 고퀄리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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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5.08.27늘 잘 보고 갑니다 ㅎㅎㅎ 온태님이 긍정적으로 보니 안심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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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ic 2015.08.27온태님의 통찰력에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그리고 옆동네 부스케츠는 참 얄밉게도 잘하더군요. -
이스코알라르콘 2015.08.27추천드렸습니다. 저도 이렇게 축구보는 눈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존경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