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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3골리 시대: 네발, 두발, 세발

Elliot Lee 2015.06.11 17:39 조회 2,442 추천 7



3키퍼 시대: 골키퍼도 이젠 무한 경쟁


이미 2년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나이가 들고 부상으로 한동안 출전하지 못했던 이케르 카시야사의 기량이 과거에 비해 확 줄었다. 디에고 로페스는 카시야스가 주전을 꿰찬 이후 처음으로 카시야스보다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한 유일한 키퍼이다. 그렇지만 반짝이었다. 무리뉴가 나가자 그의 지원을 받던 로페스는 구단 내의 카시야스가 구축한 아성을 상대도 못해보고 자연스레 구단을 떠나야했다-두번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내침을 받았던 로페스를 보면 참 씁쓸하다.


최대 무기가 이젠 구식 무기: 순발력과 다른 능력들
카시야스는 원래 뛰어난 골리였다. 
01/02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교체 출전해 보여준 선방쇼를 보면 왜 레알 마드리드 키퍼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05/06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꼭지점 축구를 완성시키는 핵심적인 선수가 된다. 카시야스가 막고 호나우두가 넣고. 나머지 선수들은 하는게 없고.

카시야스가 급작스럽게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전을 차지하고 이후 마켈렐레와 이에로가 나간뒤 몇 년간 삐거덕대며 제 기능을 못한 수비진을 앞에 두고도 자신이 빛나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카시야스는 출중한 반사신경을 주무기로 하는 원맨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순발력과 반사신경이 좋은 카시야스에게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중요치 않다. 오히려 위기가 앞에서 일어날수록 그는 빛나게 되어있다. 판단력 부분을 빼놓았는데 기본적으로 순발력이 좋다고 해서 선방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카시야스의 판단력은 이전까지는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카시야스의 최대 장점, 즉 그의 최대 무기는 이제 구식이 되어버렸다. 
한살씩 먹을 수록 순발력과 판단력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진다-단적인 예로 나이드신 분중에 운전을 하시는 것을 보면 상당히 답답해보일 때가 있는데 이는 감각이 예전과 다르게 떨어져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거기에 신장도 그의 무력함을 배가시켰다. 만약 그가 수비조율과 공을 손발 모두로 잘 다루는 선수였다면 아마 자신의 단점들을 더 보완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아르벨로아로 인한 부상, 그것이 카시야스의 생체리듬을 망가뜨린 것 같다. 카시야스는 큰 부상없이 오랜 시간 많은 경기에 출전해왔다. 그런 리듬이 망가진 것은 바로 아르벨로아로 인한 부상때문이었다. 거기에 신체의 시계,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상 이전의 리듬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일 수 밖에 없다.

카시야스가 최근 구단 총괄부장인 호세 앙헬 산체스와 구단 잔류에 합의를 보았다고 이야기 했다. 언어로 보는 구단의 의중은 이전과 다르다. 예전 같으면 구단은 '주전 자리를 확보해주겠다'가 아닌 '남는 건 좋지만 경쟁은 불가피'로 바뀌었다는 대목에서 이미 카시야스의 위치가 절대적 주전인 '챔피언'에서 절대적 주전을 노리는 '챌린저'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순리다. 
과거의 공은 잊지말자. 그렇지만 그것이 현재의 판단에 지나친 편향등의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 카시야스만한 서브는 최고다. 그러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원클럽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역사를 써나갈 수 있다. 다만, 이는 카시야스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모든 것은 시작에서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냈다는 수수깨끼가 갑자기 생각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발 수에서 알수 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아이가 되간다는 말도 있다. 이는 축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 같다.

'단역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주연으로, 주연에서 조연으로'는 배우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주연급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연이 된 중견배우들의 역할이 주연보다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뿐이다. 한창 인기를 끌었던 정도전에서 박영규는 주연이 아니었지만 주연 이상의 여운을 남겼다. 카시야스도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자리를 찾아가 그 역할을 다할 때 그 가치가 더 올라간다고 생각해야한다.


나바스: 원래부터 제2의 옵션

나바스 이야기를 해보자

나바스는 이미 영입때부터 '절대적 주전'의 위상이 아니었다. 월드컵과 레반테에서의 활약으로 영입된 것은 사실이나 이것만으로 레알 마드리드 주전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위치가 만만한 것이 아니다. 

카시야스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점에서 구단은 아마도 '카시야스가 만약 더 못하거나 저 하락 추세가 유지된다면' 나바스에게 기회를 줄려고 했다고 영입시점부터 생각했다고 보는게 더 적절할 것같다. 실제로 나바스는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이는 영입 구상을 했던 처음부터 나바스의 위상은 '카시야스의 대체자' 혹은 '도전자'가 아닌 '카시야스가 못하면 기회를 받는 위치'였던 것이라고 예측된다.

나바스의 장점 또한 카시야스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
이것이 나바스의 가장 큰 무기이자 약점이었다. 카시야스가 혜성처럼 마드리드의 수문장으로 거듭난 것처럼 나바스도 매우 적었던 기회를 자신의 주무기로 살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출전 기회가 적어서 경기력이 하락했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카시야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좋은 발기술을 가지지 못했고 직접 관람은 한 경기에서 그의 킥은 프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부정확하고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참담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구단의 판단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물론 기회가 주어졌다면 또 모른다. 
디에고 로페스가 카시야스를 밀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카시야스가 가지고 있지 못한 큰 키를 가지고 안정감과 일정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인데 나바스는 어느것도 발휘하지 못했다. 냉정하게 프로는 기회가 올 때 잡아야한다. 그리고 냉정하게 프로는 철저히 보여준 실력으로 판단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나바스의 현재가 단순히 감독이나 카시야스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자신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결국 나바스는 데 헤아가 올 때도 데 헤아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도전자'가 아니라 혹시 데 헤아가 적응이나 경기력에 문제가 있을때 고려해볼만한 옵션의 위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바스는 물건을 할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더 사놓고 창고에 보관하는 여분이라는 것이다. 결국 '혹시 모를 사태'가 도래하지 않으면 절대로 창고 밖을 못나온다는 의미다. 

카시야스가 잔류한다면 눈으로 보고 배울게 많은 이점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3번째 골키퍼 자리에 어울리는 건 나바스가 아니라 유스이며 결국 나바스의 잔류는 구단과 나바스 개인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바스는 데 헤아가 오고 카시야스가 잔류하면 나가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고, 데헤아가 오고 카시야스가 나가면 지금까지 해온 서브역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난세영웅=치세간신, 모든 것이 순리일뿐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러한 골키퍼 경쟁이 심했던 적이 단 한번도 목격된 적이 없어서 이번 일은 참 기이한 일라고 밖에 생각이 안든다. 레알 마드리드에 이제 안전한 자리가 하나도 없는 무한경쟁이 도래했다는 생각도 든다-설마 바르셀로나 골키퍼 경쟁 체제를 따라하는 건 아닐테고. 카시야스가 이렇게 계륵이 되어버린 것도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영웅에서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는 것.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카시야스의 과거의 공은 과거의 것이다. 과거의 환호로 현재의 소리를 못듣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그의 과거를 깍아내리지 않고 그것을 존중하고 감사해야한다. 동시에 구단은 오늘과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야하는데 카시야스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재와 미래보다는 과거의 사람이 되간다. 특히 그 주기가 짧은 축구와 같은 스포츠에서는 더 빨리 과거가 되어버린다. 과거는 역사가 된다. 그리고 아무나 그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지만 카시야스는 해냈다. 그와 함께한 세월을 본 우리는 행운아다.

난세에는 영웅이었을지언정 치세에는 간신이 될 수 있다. 처칠도 전쟁당시에는 둘도 없는, 대체불가능한 영웅이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은 냉정하게 그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냈다. 결국 모든 이들이 시기적절하게 필요함에 따라 적재적소에 기용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 카시야스와 그를 둘러싼 나바스와 데 헤아의 얽히고 섥힌 관계을 보며 씁쓸함과 순리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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