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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목요일 5시

Great & Grace , "Dennis Bergkamp" (스압)

구루쿠푸 2015.04.14 11:36 조회 3,880 추천 4

 

 

33 번째 이야기 ...

 

 

 

Oranje

 



 

 

 

Gunner 들 에게

 

 


 

 

 

본인

 



 

 

 

 

위대함

 

 



 

 

 

우아함

 

 



 

 

 

선사 하고 떠난 한 선수 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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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 Grace

 

 

"Dennis Bergk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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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쉬를레알 입니당.

오늘 글은 첫 레전드에 관한 글이 될텐데요.

인트로에서 봤다시피 "데니스 베르캄프" 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사실 옛 선수들은 자료나 사진 들이 한정적이여서 그동안 피한것도 있는데

제라드의 고별식을 보니 ... 제가 실질적으로 처음봤던 은퇴식인 베르캄프가 생각나서

그의 이야기에 흥미가 끌리더군요. 찾다보니 재밌는 일화도 많고...

사실 제가 이 시리즈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베르캄프 때문 이기도 합니다.

제가 02 월드컵이 끝나고 유럽축구 에 관심을 갖게된 초중학생 시절

베르캄프에 대한 성장기나 현재까지의 일대기가 궁금했는데...

 

 

(사실 제대로 안찾아본 제 잘못도 있지만)

뭔가 제대로 깔끔하게 제대로 알려주는 글이 없었었습니다.

 

때문에 나이가 먹고 생각해보니 현재 그때의 제 또래 학생들에겐 즐라탄 이나 , 슈슈 람 같은 선수들의

00년대 초중반의 스토리가 궁금할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이 시리즈를 꾸준하게 연재하게 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제가 선수글을 쓰는 이유가  베르캄프 때문 이기도 합니다.

​ㅎㅎ 제 글의 팬분들은 베르캄프에게 잠시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도 좋으실듯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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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고 본론이나 말해 !)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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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 길었죠 ;;; "

오늘 글은 제라드 편과 마찬가지로 5 장 으로 구성 될것 입니다.

 

​​시작은 역시나 유소년 시절부터 입니다.

  

 

 

 

 

 

제 1 장

 

 

 Flying - Dutc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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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에서 1969년 5월 10일 태어난

이 ​아이 의 이름은 "Dennis Nicolas Maria Bergkamp" 입니다.

데니스 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엔 아버지가 서포트 하는 선수의 영향이 매우 컸죠

 

​'Denis Law'

 

당시 소년의 아버지 세대에서는 영국​ 예찬론자들이 많았고

소년의 아버지 역시 "데니스 로" 라는 맨유의 10 번 을 단 선수의 열렬한 팬이였기에 아들에게도 같은 이름을 주고 싶어했죠.

 

(아버지는 데니스 로 의 팬이였지 맨유의 팬은 아니였다고 합니다.  훗날 베르기도 비슷한 경우인데 뒤에서 말씀드릴께요) 

 

​물론 암스테르담 시 공무원이 'Denis' 라는 철자로는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아  'Dennis' 라는 철자는 다르되 발음만 비슷한 이름이 되었긴 하지만요. ​

 

(1 가지 일화가 더 있는데... )

 

'Denis' 보다는 'Dennis' 가 덜 여성 스럽다는 반응때문에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합친 복합적인 이유로 지금의 이름이 된것 같습니다.​

이렇듯 ​이름부터 아버지로 인해 축구선수에 영향을 받은 그였기에 그 역시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되는것은 훗날 축구선수가 된 많은 선수 들이 그렇듯 당연한 수순 이였습니다.

 

 

 

그가 축구를 보며 가장 좋아했고 우상이라 생각한 선수는 토트넘에서 뛰던

​"글렌 호들" 이였죠.

(베르기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호들의 팬 이였지 토트넘의 팬은 아니였다고 합니다.)

우아하고 완벽한 볼터치를 구사하는 그가 데니스는 뭔가 다른 선수들 보다 특별하고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공중에서 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 은 더더욱 말이죠.

​소년은 그렇게 축구를 흥미를 가지며 축구를 배워갔고 어느새 네덜란드 최고의 클럽

 

"아약스" 의 유스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사실상 그의 축구 인생은 시작 되지요.

소년이 처음 만나게된 본인의 코치는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 였습니다.

소년은 큰 겁을 먹었지만 오히려 크루이프는 베르캄프에게 편안하게 말을 붙여줬고

" 너의 플레이를 하렴 , 그냥 게임을 즐기라고 "

말하며 그에게 힘을 붇돋아줬습니다.

왜냐 당시 클럽에선 베르캄프는 연약하고 공격적인 부분이 부족한 아이라는 비평들이 이어지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요한 크루이프는

"베르캄프는 재능이 있는 아이야"

 

 

라고 말하며 어린 시절부터 그의 지지자가 되어줍니다.

또 85 년 부터 크루이프는 직접 1 군 감독 이 되었고 유소년 선수의 1 군 선발 권한 역시 베르기를 눈여겨 보고 있던

크루이프 에게 있었기에 베르캄프에게는 여러 유리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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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를레알의 사설

 

​ 조사를 하다보니 시기상으로 살짝 안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설명을 하고 가야할것 같습니다.

베르캄프의 유소년 시기는 1981-1986 년 도 인데 .. 크루이프역시 80 년대 초반 까지는 선수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는 81-83 년 아약스에 돌아와 선수생활을 이어갔는데 아마도 이 시절 인것 같네요.)

때문에 크루이프가 베르캄프의 코치였다는 것은 산술상으론 말이 되지 않는데... 저 멘트 부분은 베르캄프의 포포투 인터뷰에서

실제 본인이 한 말이고 ...  거짓이 아니기에 생각을 좀 해보자면

 

 

정식 코치라기 보단 아마도 이제 노장 선수 로써 미래의 감독을 꿈꾸고 있었기에 미리 미래의 본인의 선수가 될

 

 

어린 선수들의 기량을 간간히 확인차 봐준게 아닌가 싶네요.

몇몇 분들중 " 팩트 " 가 아니라고 생각​하실분들이 계실것 같아서 확실히 짚고 갑니다.

 

​그러나

 

크루이프 역시 베르캄프의 단점은 꼭 고쳐야 한다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소심한 성격' 말이죠

그래야만 프로선수로써도 경쟁력을 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요.

실제로 1 군 진입을 앞두고 17 세의 베르캄프는 "올라가고 싶지 않다" 라고 말했습니다.

실력 문제가 아닌 ... 1 군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이유 때문이였죠.

​때문에 크루이프는 다른 강경책을 씁니다. 그를 1 군에 진입시키기 보다

오히려 당시 그의 당시 레벨 팀 보다 1 단계 강등 시켜 포지션도 그의 기존 포지션이였던 라이트 윙이 아닌 풀백으로 뛰게 합니다.

​그를 자극 시키고 수비를 해야하는 다른 포지션을 경험시켜 "터프함" 을 키우기 위함 이였죠.

그리고 1 달 뒤 그가 좋은 기량을 찾아 다시 원래의 팀으로 돌아 왔을때 크루이프는 한 번 더 엉뚱한 말을 던집니다.

 

크루이프 : "넌 내일 유스팀 경기에 뛰지 못할꺼야"

베르캄프 : "-_-???"

크루이프 : "내일 부턴 넌 1군에 합류 해야하니까 "

 이렇게 크루이프 의 여러 배려 속에 1 군에 합류하게 된 베​르캄프

아직 은 17세 정도의 학생이였기에 원정경기에 갈때마다 학교측에 허락을 받으며 떠나야했고

 또 원정길에도 숙제를 가져가며 선수 외적인 학생생활을 병행해야 했기에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어찌됬든 그의 선수생활은 이렇게

시작해 나갑니다.

 

 

​막 1 군에 합류한 베르캄프가 속한 1군 엔 대들보 가 되는 2 명의 인물 이  있었는데 일단 첫번째 인물은 위에서 말한

감독 요한 크루이프 였고 , 대표선수는 마르코 반 바스텐 이라는 네덜란드 최고의 공격수인 선수 가 있었습니다.

비록 ​본인이 20 살이 되기도 전에 본인의 첫 프로 감독 인 크루이프와

 

 

아약스의 대표스타 반바스텐은 차례대로 바르셀로나 와  A.C 밀란 으로 로 떠나가긴 했지만

크루이프 의 팀에서 반 바스텐 같은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뛸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축복 이였습니다

 어린 베르캄프에게는 팀의 레전드 들에게 많은것을 배울수 있는 시간들이였죠.

크루이프가 떠나가고 클럽의 코치는 몇번씩이고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또 다른 인연이 닿은 ​감독 중 한명은 "루이스 반할" 이였죠.

베르캄프에게 반​할의 부임 은 그의 커리어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훗날 뮌헨 재임 시절 윙이였던 슈슈의 중앙 포변을 이끈 반 할은 이때도 베르캄프의 기존 포지션을 변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라이트 윙에서 뛰던 베르캄프에게 "10번" 이라는 번호를 줌과 동시에 중앙에서 뛰게하며

 

센터포워드 뒤에서 직접적으로 골을 노릴수 있는 "쳐진 스트라이커"  의 역할을 맡기게 된것이죠.

 

 

그것이 베르캄프의 전성기의 시작 이였습니다.

 

 

 

 

​'아약스 시절 베르캄프의 터치 및 스킬을 볼수 있는 골'

 

 

 

' 아약스 시절 베스트 골 1 위에 뽑힌  감각적인로빙 슛 ' ​ 

 

윙 이 아닌 스트라이커 가 되어 ​물 만난 물고기 가 된

 

 

그는 네덜란드 3시즌 연속 리그 득점왕 과 리그  최고의 선수 가 되어갔고

 

※ 총 7시즌동안 리그에서 185경기 103골, 컵대회까지 합치면 총 237경기에서 122골을 기록

 

 

 본인의 아약스 선배 였던 반 바스텐 과 같이 출전하게된

 

 유로 92 에서도 오히려 반 바스텐 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하여

 

 

 

 

 

대회 최다 득점자 가 되는 등


 

 

 

 

 92/93 발롱도르 순위 에서도 3 순위 안에 드는 유럽이 주목하는 선수가 되었기에

 

 

유럽 유수의 많은 명문 클럽이 그를 영입하고 싶어 합니다.

 

바르셀로나를 이끌던 크루이프 역시 그를 원했지만

 당시 베르캄프는 이탈리아 무대에 대한 동경심이 있었습니다.

베르캄프에겐 몇몇 선택지가 있었지만

 이미 굴리트 와 반 바스텐 등 본인의 대표팀 선배 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A.C 밀란은 그의 관심대상이 아니였고 그는 다른 밀라노 의 팀을 택하게 됩니다.

 

 

"Inter Milan F.C"  이였죠​

 

 

 

 

제 2 장

 

 

Internaziona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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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시즌 밖에 보내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짧습니다.​

비록 ​오렌지 3 총사 가 이끄는 당대 최강 A.C 밀란 의 명성에 밀리고 있긴 했지만

인테르 밀란 또한 세리에의 강팀 중 한 팀 이였습니다.

​그들은 게르만 3 총사 가 떠난 빈 자리를 다른 젊고 유능한 선수들로 채워 빈자리를 대체하려 했죠.

베르캄프 또한 세리에 A 의 대한 동경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이적은 서로의 윈 윈이 될 이적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무대는 베르캄프에게 맞는 무대가 아니였습니다.

일단 인테르 밀란은 이적 전 베르캄프에게 "공격축구" 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그를 영입했지만

그것은 단 1 개월 뿐이였고... 인테르는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냐 ?  이탈리아 축구 는 공격도 공격이지만 실점 을 하지 않는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곳이 였고

이탈리아의 축구와 팬들은 어찌됬든 결과를 중시 하는 경향 이 컸기 때문이죠.

 

 

※ 어느정도 였냐면 A.C 밀란 과의 가벼운 45 분 간 미니 게임에서 0-1로 진것 마저 비판을 가했을 정도...

 

 

 

 

 

그러나 베르캄프가 그동안 배워오고 행해온 네덜란드의 축구 는 달랐습니다.

 

 

공격을 하지 않으면 야유를 받거나 더 더욱 공격을 하라는 식의 팬들 사이에서 축구를 해오던 그에게

 

 

이탈리아의 새로운 축구 와 팬들의 문화 는 적응하기 어려웠던것 이죠...

 

 

​심지어 부진한 베르캄프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언론들의 태도도 그를 지치게 했습니다..

※ 이주의 얼간이 상 이라는 최악의 선수를 뽑는 상의 타이틀을 이주의 베르캄프 상 이라는 제목으로 비꼬는등

베르캄프가 머리를 새로 자른 다음 날에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있다고 비꼬기도 하였습니다.

 

베르캄프 의 잘못도 한가지 있긴 했습니다.

 

이태리어를 아예 구사하지 못했던 것인데... 배우려고 큰 노력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료들과 얘기할때 영어로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긴 했찌만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합중에 이태리 동료들에게서 나올 말들은 이태리어 였고 

 

 

마찬가지로 감독도 아약스 시절 처럼 본인과 동향인 크루이프 와 반할 같은 네덜란드 감독이 아니였기에...

 

 

시합 중 커뮤니케이션 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동료들과의 사이

 

 베르고미 , 니콜라 베르티 같은 팀내 주축 들 과도 친하게 지내는등 다른 선수들과는 별 다른 문제는 없었지만

 

​(그라운드 내 융합의 문제는 있었던건 맞지만 팀원들과 사이 크게 나쁘지않았다고 합니다.)

 

​단 한명 ,

 

그의 포지션 라이벌이자 투톱 동료인 루벤 소사 와 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우루과이의 핫한 공격수)

 

소사는 베르캄프에게 동료 의식 보다 경쟁 의식을 더욱 느끼고 있었던 탓 때문 이였죠.

 

소사는

 

 ​"베르캄프가 이태리어를 배우지 않는것은 나랑 대화하기 싫어서 그런거 아니냐 ! "

라며 ​공개적으로 베르캄프를 비난 하는등 베르캄프를 공격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당시까진 비교적 어린편에 속했던 베르캄프 는 묵묵히 참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속안에선 많은 것들이 뒤틀리고 있었죠. 

 

그의 힘든 속마음은 UEFA 컵 우승 을 하고 난뒤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약스 시절보다 현저히 떨어진 골수도 골수 이지만

 

본인을 미워하는 선수가 있고 본인이 원하는 축구를 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그는 더이상 축구를 할수 없다고 생각 했던 것이죠.

 

베르캄프의 마지막 시즌 구단주 였던  모라티 는 그의 적응을 위해 집 앞에 베르캄프의 고향

 

네덜란드 같은 환경 을 만들어주고자  풍차까지 만들어줬을 정도 였지만

베르캄프는 결국 이 곳은 나의 무대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이탈리아를 떠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가 새롭게 선택한 팀은 런던....

그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 될 팀

 

"Arsenal F.C " 였습니다.

 

 

 

제 3 장

 

 

ICE MAN

​.

.

.

 

비록 인테르에서 실패적인 시즌을 보낸 베르캄프 였지만 아약스 시절 그가 보여준 가능성과 기량이 너무 뛰어났고

네덜란드 대표팀 소속으로 꾸준히 메이저 대회를 참가하며 그가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였기에

 

​(부진했던 인테르 시절에도 참가한94 월드컵에서도 5 경기 3골 을 넣어주는 활약상) 

 

그의 명성과 가치는 여전히 세계적인 선수 였습니다.

 

때문에 베르캄프를 영입하기전 시즌 이였던 94/95 ​시즌 리그 10 위 로 시즌을 마친 아스날에게

그의 영입은 ​현재로 비유하자면 마치 2013 년도 셀링 클럽으로만 보여져가던

 

클럽 에 " 메수트 외질 " 이 이적해온 정도의 센세이션 이였죠.

(현재 EPL 리그 10 위 정도의 팀이 네덜란드 주전 공격수이자 유로 최다 득점자를 영입했다고 대입해보시면 이해가 빠르실듯 합니다.) 

​그의 영입은 당시 팀내 선수들과 팬들에게도 엄청난 자신감을 더해주는 클래스 있는 선수 의 영입이였습니다.

 하룻밤 사이의 아스날의 수준이 몇 단계나 올라간 셈 이라고 평 받았죠.

 

 

"우리는 베르캄프와 같은 선수를 갖고 있어 , 우린 정말 대단한 팀인거야 ! " ​

 

​아스날의 수비수 출신 레전드 인 리 딕슨 은 당시 베르캄프의 계약 소식을 들은 순간을 ↑ 이렇게 말했을 정도 니까요

 

(마치 13 년도 외질 이적후 구너들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나요?)

이렇듯 베르캄프 ​의 도착은 아스날 스쿼드에 굉장한 신뢰감을 불어넣는 의미있는 사건 이였습니다.

​비록 떠들기 좋아하는 언론들은 처음 7 경기 동안 무득점인 베르캄프을 향해 이탈리아 언론 같은 자극적인 공격을 하긴 했지만

베르캄프가 골을 터트리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면서 그러한 비평들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96/97 시즌 새 감독으로 아르센 벵거 가 오며 베르캄프는 더욱 중요한 선수로 신뢰를 받았고

 

97/98 시즌 그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 이 3 골 이면 모든 설명이 가능할것 같아 삽입해 봅니다.

다같이 한번 감상 해보시죠 ~

'코너킥 상황을 이용 정확한 킥으로 첫번째 골' 


'동료의 정확한 패스를 받아 이어진 두번째 골'



 

 

' 구너들은 한번 쯤 보셨을 베르캄프의 환상적인 3 터치 해트트릭 완성 골 '

 

 

이렇게 멋진 레스터 시티전 해트트릭 을 포함 그는 시즌 22 골 을 넣으며 그는 그 시즌 선수 협회가 선정한

협회 및  기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 로 선정 되었고 레스터 시티 전 골 중 마지막 골은

 "올해의 골" 로 선정되는 등 리그에서 거의 모든것을 이룹니다

 

 ​리그 우승과 FA 컵 우승 을 이루며 97/98 시즌 "더블" 의 주역이

그였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였고

​그렇게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그의 환상적이고 우아한 발은 다시 한번 국가를 위해 쓰여 지게 됩니다.

 

 

" 98 프랑스 월드컵 " 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죠.  ​

​당시 히딩크가 이끌던 네덜란드는  프랑스에서 무서운 기세로 우승을 향해 달려갑니다.

중심 엔 어느덧 대표팀에서 사라진 반바스텐 , 레이카르트 대신 팀의 고참급 선수가 되어있던

 

"베르캄프" ​​​ 가 있었죠.

​그는 우리에겐 5:0 참사 로 기억 된

 

 

조별예선 한국 전

 71 분 3:0 을 만든 골

16 강 진출 후 ​

 

 

 

 

16 강 유고 슬라비아 전

38 분 1:0 선제골

 

 

 

등을 넣으며 팀을 8 강 까지 이끌었고

 


 

 

 

8 강 아르헨티나 전

 

 

 

​89 분 팀의 역전골 이자 사실상 4 강 진출 확정 골인

2:1 역전 골 을 넣으며 ​본인에게 짊어진 무게감은 별거 아니라 말하듯 팀을 캐리합니다.


이 골은 대회 최고의 베스트 골 로 선정되기도 하는등 다시 한번 메이저 대회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확연히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죠.

 

 

 

 

 

 

비록 4 강 전...

 

 

신성 "호나우두" 의 브라질에게 승부차기 까지 이어진 경기 끝에 분패하긴 하지만...

 

 

베르캄프에겐 마지막 중요한 메이저 대회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자국과 벨기에 에서 열리는

 

 



 

 

"유로 2000" 이였죠.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이고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미리 선언했기에

그는 국가대표의 마지막 은 꼭 "우승" 이라는 화려한 끝맺음으로 마치고 싶어했죠.

​후배들도 그의 마지막 마음을 알았는지 클루이베르트 로 대표 되는 유로 2000 네덜란드 대표팀은

 

​후배들의 화려한 활약 속에 4 강 무대 까지 막힘없이 진전합니다.

※ 어느정도였냐하면 98 월드컵 우승국가 이자 이 대회 최종 우승팀인 프랑스를 조별리그에서 3:2로 꺾었고

유고슬라비아 를 6:1 이라는 화려한 스코어로 꺾었을 정도  4 연승을 거둡니다.

 

 

"그의 패스가 없었다면 나는 절대 득점왕이 될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베르캄프는  대회 골은 없었지만 이 대회 득점왕이 되는 "클루이베르트" 의 발언처럼

골 외적인 면에서 팀에 대들보가 되주었고

 

4 강 무대를 치룰 경기장은 본인의 홈 구장 이라 할수 있는 아약스의 홈 구장

​"암스테르담 아레나" 였습니다.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또 다른 힘으로 삼아 베르캄프는 본인의 첫 메이저 대회 결승행 을 꿈꿉니다..

그러나​

 

​대회 본인의 첫 골 의 기회 가 골대 를 맞고 날라갔고



​정상 경기 중 얻은 2 개의 PK  는  데부어 와 클루이베르트의 실축 등으로 날라가는 등...

신 은 베르캄프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 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120 분 이 끝난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도 톨도의 대활약 이 이어졌고

​홈 팀 네덜란드 는...

홈 팬들 앞에서 결승 진출 실패 라는 쓴 약을 마시게 되죠...

​그리고 대회 전 발언한 대로 이 경기는 베르캄프 라는 네덜란드 축구 사 중 한명의 레전드가

마지막 오렌지 색 유니폼 을 입고 뛴 경기가 되었습니다...

​※ A 매치 78 경기 37 득점 기록

 

 

 

거의 모든 메이저 대회 마다 대표팀에서

 제 몫 이상을 해주던 "ICE MAN" 의 씁쓸한 퇴장이였죠...

.

.

.​

 

 

moon_and_james-68

 

※ 쉬를레알의 사설

 

'그는 왜 이른 대표팀 은퇴를 선택했을까 ? '

69 년 생 인 베르캄프가 유로 2000 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으니 당시도 그렇고

 

 

지금 기준으로도 그렇고 상대적으로 꽤 이른 대표팀 은퇴 였다고 보여집니다.

 

 

(베르기와 3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72 년생인 지주 나 피구 같은 경우는 06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

 

베르캄프는 06 년 을 끝으로 프로 은퇴 .... 프로생활에 비해 대표팀 공백기가 꽤 있는 편이죠

 

 

지주 같은 경우는 06 년 선수 동시 은퇴이긴 합니다만...)

그 이유에는 사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94 월드컵 이후 비행기 공포증 이 생겨버린 베르캄프는

 

2002 년 아시아 에서 열리는 한일 월드컵은 사실상 갈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결정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따지고보면

 98 월드컵 과 유로 2000 이 본인의 조국 과 가까운 혹은 조국에서 열리게 되었던 것도 그의 축구 인생 에선 운 아닌 운 이였을겁니다.

만약 98 월드컵이 유럽 대륙이 아닌 다른 대륙에서 열렸거나 유로 2000 이 러시아 같은 이동거리가 먼 대륙에서 열렸다면

 

 

그의 대표팀 경력 은 진작에 포기했을수도 있던 상황이거든요....

​사실 그가 비행기 를 아예 못타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코치가 된 지금은 타고 다니기도 하구요.

다만 선수생활 당시엔 거리가 먼 원정 경기를 앞두고 혹은 경기 중에 이 경기가 끝나면 난 또 불안하게 돌아가야 겠구나...

같은 불안감이 ​경기 중인 그라운드 안에서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아예 이럴바엔 원정 경기 를 가지 말자라는 결론을 내린것이죠..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 단순한 우연인지는 알수 없지만

 

고참이자 구심점인 베르캄프가 없어진 네덜란드는 정말 오랜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되지요...

 

​제 4

 

 

 HENRY

 

 

.

 

.

 

.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아스날에는 어린 나이에 이미

 

 

베르캄프가 꼭 우승하고 싶었던 2 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자 이자

 

 

공격진에서 본인과 함께 호흡을 맞출 동료가 있었습니다.

 

 

바로

 

 

​" 티에리 앙리 " 였죠.

앙리는 99/00 시즌 을 통해 이미 아스날에 합류해 팀원들과 호흡을 맞춰가고 있었습니다.

​베르캄프와 마찬가지로 앙리 역시 초반 적응 문제로 인해 여러가지 말들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EPL 에 잘 적응해 나갔고 시즌을 마친뒤 참가한 유로 2000 에선 프랑스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어

프랑스의 유로 우승의 주역 중 한 명이 되는 등 미래가 보장되어있는 좋은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진 "좋은 선수" 라는 평가가 딱 적당했던 앙리를  " 킹"   으로 거듭나게 한

그의 투톱 동료는

선수는​ 이제 국가대표 은퇴후 본인의 축구 인생 후반전 남은 모든 시간을

 

아스날에게 쏟기로 결정한 "데니스 베르캄프" 였죠.  

 

Many people call me 'Scorer'

 

 but I think I'm 'Assistant.'

많은 사람들이 나를 " 골잡이 " 라 부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도우미" 이다 .

이제는 본인을 골잡이가 아닌 " Assistant " 로 불러달라는 그의 요청 처럼

베르캄프의 지원 속에 이 두 콤비는 훗날 "영혼의 단짝" 이라 불릴 리그 최고의 콤비가 되었던 것이였죠.

01/02 시즌 은 ​앙리의 득점 페이스 및 활약 도 대단했지만 베르캄프 또한

 

 

축구에 관심있는 분이시면 누구나 한번쯤 보셨을

 


 

 

뉴캐슬 전 말도 안되는 터치 의 골을 넣는 등

 

 


 

 

앙리가 아스날의 "실적" 을 책임 졌다면

 

 

 

 

베르캄프는 아스날의 "품위" 를 책임 지는 듯한 모습으로

 

 

 

 

이 콤비 는 그 해 리그 더블 이라는 업적에 크나큰 바를 공헌 합니다.

 

 

그리고 대망의 03/04 시즌 은 두 콤비의 하이라이트 같은 시즌 이였죠.



앙리의 "골 폭풍" 이 터진것은 물론

 




베르캄프 역시 득점의 빈도는 적었지만 그의 득점포 역시 팀이 필요 로 할땐 나타나주었고

 

그는 정말 아스날의 시즌 무패 우승 을 이뤄주려는듯 시즌 마지막 라운드 까지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 아스날은 이미 4 월 25 일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음

리그 우승을 확정한 아스날은 이날 방심한듯

레스터 시티의 폴 딕코프 라는 선수에게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애쉴리 콜에게 찔러주는 환상적인 로빙패스'

​애쉴리 콜의 오버래핑을 이끌어낸 환상적인 패스로  PK 를 얻어냈고



'비에이라 에게 이어진 환상적인 스루...'​

'그의 시야는 헬리캠 수준 ㄷㄷㄷ'

 

이어서 비에​이라의 환상적인 골도 직접적으로 도우면서

 03/04 시즌 무패 우승 의 마지막 라운드를 본인의 힘으로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실질적으로 2 개의 골을 만들어내며 본인의 말대로 "도우미" 로써의 본분을 다 한것이죠.

아 , 애쉴리 콜이 얻어낸 PK 는 누가 찼냐구요 ?

 




당연히 베르기의 단짝 "킹 앙리" 였죠.


 

​이렇듯 둘은 조력자 혹은 킹 & 킹메이커 같은 사이가 되어

 

 

이 시즌 아스날을 잉글랜드 의 무패 제왕 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훗날 EPL 의 후배 듀오 들 중에서는 그들의 위상을 얻고 싶어한

 

 

 

 

"GOOD"

 

(좋은)

Suarez Sturridge

 

 

 

​"BETTER"

(좀 더 좋은)

Ronaldo & Rooney

4 명의 2 팀 콤비들이 있었지만 아스날 의 이 콤비는

 

 

단언컨대

​"BEST"

 

​(최고의)

 

Henry & Bergkamp

EPL  "최고" 의 콤비 였습니다.

 

 

 

제 5  장



 

" 10 "

.

 

.

 

.

 

 어느덧 은퇴 시즌을 앞둔 노장의 선수가 된 베르캄프...

사실 ​무패우승 및 수많은 FA 컵 탈환을 비롯 EPL 무대에서 이룰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이룬 그 였지만

은퇴를 앞두고 ​클럽무대 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가장 중요한 트로피가 있었습니다....

 

바로​

 

 

" 빅이어 " 였죠...

​트로피가 없다하더라도 베르캄프가 그동안 축구사에서 보여준 위대한 플레이들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것이였지만...

역사상 베르캄프 정도의 전설들은 1 번 씩은 다 이 트로피를 들고 은퇴를 선언했기에 그에게 이 트로피는

(대표적으로 딱 생각나는 예외가 1 명있죠... 호돈 씨라고...;;)

마지막 "꿈" 같은... 트로피 였을겁니다..

 

 사실 아스날이 잉글랜드 무대 에서 얻어낸 호성적 과는 다르게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무대에선 챔스 4 강 이상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매우 초라한 성적을 거둔 원인 에는

 

 

 "베르캄프"  때문이라는 평도 있었습니다...

 

 

 

 

왜냐 ?  

 

 

 

 

'대체적으로 잉글랜드 쪽에서만 볼수 있었던 영혼의 듀오...'​

 

 

 

잉글랜드 내 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거리 정도는 홈/어웨이 모두 참가하여 팀원들과 화려한 호흡을 맞출수 있었지만

 

챔피언스리그 같은 유럽 무대를 대상으로 한 먼 원정 거리 의 어웨이 경기에서 그의 등장은 쉽게 바랄수 없는 상황 이였거든요.

 

 

 그가 아스날에서 참가한 유럽 대회 48 경기중 11 골  모두 "하이버리" 에서 나온 골들 이였다는것은...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이지요...

 

 

누군가는

 

 

 단순히 1 명 이 빠진것이 아니냐 라고 말할수도 있었지만...

 

 

당시 아스날 팀원들에게 원정 경기시 베르캄프의 부재는

 

 

 

"팀의 공격 접근 방법 자체를 모두 바꿔야 하는 일"

 

 

이였다고 훗날 누군가 밝힐 정도 였습니다.

 

 

공격 접근 방법도 방법 이지만 그런거 다 떠나서  "뉴캐슬전" 같이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터치를 보여줄수있는

 

 

상대방도 예측할수 없는 한 방을 가진  팀 내 또 다른 에이스의 부재는 아스날에겐 확실한 핸디캡이 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베르캄프의 마지막 시즌 이였던 05/06 시즌 만큼은 그동안 아스날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기 승점
잉글랜드 아스널 6 5 1 0 10 2 +8 16
네덜란드 아약스 6 3 2 1 10 6 +4 11
스위스 6 1 1 4 4 9 -5 4
체코 스파르타 프라하 6 0 2 4 2 9 -7 2

 

 

조별 리그를 5 승 1 무 라는 가뿐한 성적으로 통과했고

 

 

 

 

 

베르캄프 또 한 조별 리그에서 1골 을 보태며 본인의 마지막 유럽 무대 타이틀 을 위한

 

 

열정 " 을 보여줍니다. 어느정도 였냐면

 

 

16 강전

 

 

레알 마드리드 와의 1 차전 은  육지를 통해서라도 마드리드 까지 가겠다는 의지 를 내비칠 정도였습니다.

 

 

​물론 해결은 그의 영혼의 단짝 앙리 가 해주었지만요 ^^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후에도 승승 장구해



아스널 잉글랜드 2-0 이탈리아 유벤투스

 

 

 

 

 

유벤투스

아스널 잉글랜드 1-0 스페인 비야레알

 

 

 

 

비야레알 까지 꺾으며 마침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간 아스날 ...

 

베르캄프 역시 파리 에서 열리는 결승전 이였기에 미리 육지를 통한 교통편으로 

본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준비합니다.

 

비록 ​

 

 

선발 출전 은 아니였지만 , 언제든 벵거 의 부름에 응답하여

경기에 출전할수 있는 서브 명단에


 

' 10  Dennis Bergkamp ... '

 

 

그의 이름 이 포함되어 있었죠...​

 

​그러나 경기는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아스날은 경기 초반 레만의 퇴장 때문에 교체카드 한 명을​ 알무니아 로 낭비할수 밖에 없었고

​솔 캠벨 이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후반전 에투와 벨레티의 연속된 골로 인해

​그의 마지막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단 1분도 뛰어보지 못한채 그렇게 끝났습니다...

.

 

.

.​

 

2006 년을 끝으로 더 이상 아스날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볼수 없는 "하이버리" 와의 작별 처럼

이제 하이버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 번" 이였던 그 역시 보내줄 시간 이였죠....​

 

​하지만 파리에서의 이 경기가 그가 아스날 져지를 입을수 있는 "마지막" 경기는 아니였습니다.

 

 

 

하이버리 시대를 마치고 새로운 홈구장으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을 개장한 아스날은

 

이 경기장의 개장 첫 경기를 "베르캄프" 의 은퇴식으로 지정한것이지요.

이 은퇴 기념 경기는 베르캄프의 "일대기" 를 한눈에 확인 할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은퇴경기에 참가한 멤버들은 앙리를 비롯한 아스날의 현역 팀원들은 물론 이고

 

더 이상은 아스날의 현역 선수가 아닌

카누 , 비에이라 , 이안 라이트 , 프티 , 나이젤 윈터번, 마틴 키언, 토니 아담스, 오베르마스 , 리 딕슨 , 시먼 등등

 

​베르캄프의 아스날 생활을 시작부터 같이 동고동락 해준 대표적인 멤버들이 거의 참가했고

상대 팀인 베르캄프의 퍼스트 팀 아약스  역시 현역 들을 포함

 빈테르, 프랑크 데 부르, 용크.  에드가 다비즈, 프랑크 레이카르트, 로날드 데부르

 

같은 그의 대표팀 동료이자 아약스 시절 동료들이 대거 참가해준것 이였죠..

 

 


 

가장 뜻깊었던 것은 본인의 프로커리어 의 시작을 같이 해준

노장 의 크루이프 와 당시 네덜란드의 수장 반 바스텐 까지 참가하여

그의 "시작 과 ​마지막" 을 같이 해준것이 너무나 뜻 깊은 일이였습니다...

비록 베르캄프는 선수 커리어에서 가장 크고 중요하다고 볼수 있는

월드컵 이나 빅이어 같은 최고의 트로피를 얻고 떠날수는 없었지만



 

항상 그를 위해 같이 뛰어준 동료 들과

항상 그를 기억하고 사랑해줄 팬들 앞에서

 

 

​하이버리 의 마지막 "10 번" 이자



에미레이츠 의 첫번째 "10 번" 이 되어

행복한 은퇴를 선언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스날 역사상 가장 우아 하고 위대한 플레이어 ​를 떠나보내게 된것이였죠....

.

 

.

.

아스날 은퇴후 아약스의 코치가 되어 예전 그때의 크루이프 처럼

당시 본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했던 베르캄프...

※ 현재는 아약스 1 군 수석 코치 라고 하네요

 

크루이프가 본인에게 말했듯이 아이들에겐 항상 즐기며 웃으면서 플레이 하라고 당부하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코치님도 선수시절에 항상 차가웠으면서 ~ "

 

 

라는 반문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

 

(ICE MAN 이라는 별명의 유래가 사실 베르기의 경기중 차가운 표정 때문이죠 ^^;;)

 

 

 어언 10 년전 은퇴한 아스날의 레전드 이지만... 그 10 여년 사이 베르기 같이 훌륭한 플레이어가

 

아스날엔 현재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것이 사실 가끔은 슬프기도 하네요...

 (뭐 잠깐 나왔던것 같긴한데...-_-;; 윌셔야 각성하자 제발...)

 

 ' 1986 ~ 2006 '



 

너무나 ​위대했던  선수의 일대기 를 이제 끝 마치려 합니다.

축구 역사에 그가 어떤 선수로 남을지는 이 한마디 로 표현이 가능할것 같네요.

 




 

​" 그가 만들어낸 특별한 순간은 "


다른 이의 평생 만큼 이나 위대 하다 "

.

 

.

 

 

.​ 

  Great &  Grace

​"Dennis Bergkamp"

편을 마칩니다...

​=========================================================

PS.처음 써보는 첫 레전드 에 관한 글이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썼던 선수들과는 달리 제가 태어나기도 전 부터 선수생활을 했던 선수라 ​

그의 일대기를 잘 찾을수 있을지 또 잘 표현할수 있을지 저조차도 이번 편은 도박 아닌 도박 이였는데...

오히려 아스날 시절은 저보다도 잘 아실분들이 많다고 생각을 했기에 외질 편 처럼  초반부에 스토리를 집중했던 경향도 있는것 같습니다.

어찌됬든 시리즈의 한편이 또 완성 됬네요 ^^

 

moon_and_jame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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