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KING , I'M THE HENRY (스압)
쉽게 읽자 ! 축구
칼럼, 솔직히 축구 좀 봤다하는 사람들도 정독하기 가끔은 어렵다.
그래서 선수 이름만 아는 정도면 축구 초보들도 쉽게 이해 하며 읽을수 있는
쉬운 글을 써보자는 취지하에 올리고 있는 칼럼 시리즈
1탄 : 2014 월드컵 아르헨티나가 우승할것 같은 7가지 이유
2탄 : 누가 무적함대 에게 돌을 던지는가
3탄 : 독일 vs 아르헨티나 상대과 아닌 징크스와의 대결일수도
4탄 : 사진으로 돌이켜 보는 2014 브라질 월드컵
5탄 : 미리보는 EPL : 서태웅과 윤대협 , 외질과 파브레가스
6탄 : EPL 개막기념 - Manchester "NEW"nited F.C 그 10가지
7탄 : 축구계의 가장 스페셜한 번호, 14번을 단 사나이들
8탄 :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중 역대 최고의 팀은 ? 결승, 그리고 바르셀로나 2011
9탄 : 지주 와 황제 그 사이 , 카림 벤제마
10 탄 : 축구선수들 . JPG
11 탄 : 차기 발롱도러는 누가 될것 인가 ?
12 탄 : 공격수 대장간 AT 마드리드 산 FW
13 탄 : # 데어클라시커 : BVB vs 바이에른 뮌헨 경기장 밖 이야기
14 탄 : 돌아온 EPL의 새로운 제왕 , 세스크 파브레가스
15 탄 : C. RONALDO ??? ⑦. RONALDO ! ! ! ♛ . RONALDO
16 탄 : E U R O 2016 : 레블뢰 의 "앙리 들로네 컵" 탈환 프로젝트
17 탄 : Four Four Two 선정 올해의 선수 1 위 ~ 100 위
18 탄 : "필립 람 & 슈바인슈타이거" 시작 , 치욕 , 그리고 영광의 순간을 맞기까지
19 탄 : La Masia 의 아이들
20 탄 : 지주 와 황제 그 사이 , 카림 벤제마 [리메이크]
21 탄 : I AM Z L A T A N E R A ! ! !
22 탄 : 맨체스터 시티의 "챔스 DNA" 이식 LESSON
23 탄 : 〓〓〓 LIONEL MESSIAH 〓〓〓
24 탄 : 발데스 는 정말 NO.2 를 위해 맨유에 왔을까 ?
25 탄 : 〓〓〓 Challenge Of Chelsea 〓〓〓
26 탄 : Play the Lead "Mesut Öz11"
27 탄 : 2008 + 2010 + 2012 = La Roja [EURO 08 편]
28 탄 : 2008 + 2010 + 2012 = La Roja [10 W.C 편]
29 탄 : E U R O 2016 : DIE ? Mannschaft !
30 탄 : 아스날을 향한 7 가지 고찰
31 탄 : Modrić - {El Croatićo} - Rakitić
32 탄 : Say Goodbye , Steven Gerrard ...
33 탄 : Great & Grace , "Dennis Bergkamp"
34 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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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Ti Ti ... "
나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어..
다들 에펠탑 으로만 기억하는 프랑스의 수도 이자 유명한 여행지 그 파리...
하지만 그 화려한 곳이 나의 세상은 아니였지...
내가 태어난 곳은 그런 곳이 아닌 여행자들은 잘 찾지 않는
' Les ulis '
라는 파리 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고 갱 , 매춘 , 부랑아 등으로 유명한 뒷 골목 이였거든...
그리고 나는 그 환경에 서서히 물들어가며 일명 "티티" 로 불리고 있었지..
티티란 뜻은 ' 도시의 비행 청소년 ' 이란 불랑 청소년을 칭하는 단어 였지만..
나는 내 검은 피부와 그 별명이 썩 잘어울린다 생각했기에 만족 스럽기도 했지...
나의 아버지는 사실 가나 의 축구선수 였는데...
프랑스로 이주한 뒤에도 그 직업을 이어나가실순 없었고... 외부 이방자 였기에 다른 직업을 갖기도 쉽지 않았지..
때문의 나의 아버지는 내심 내가 본인의 못 다이룬 꿈 을 이뤄주기를 바랬지만 ...
나는 밖으로 나돌기만 하였고 아버지도 그런 나를 안타깝게 지켜보시기만 하셨어...
그러던 어느날 ...
서로 위험한 무기 만큼은 가져오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나의 패거리와 다른 패거리의 싸움이 붙었는데
상대 무리중 한 녀석이 위험한 칼 을 가지고 왔지...
그 녀석은 싸움 중 흥분 하여 그 칼을 꺼내 나에게 칼을 휘둘렀는데
다행히도 나는 칼을 피했고 내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뒤에 있던 내 친구가 칼을 맞게 되었어....
나는 싸늘하게 죽어가는 친구의 모습을 뒤로한채 그 현장이 너무나 무서워져 도망쳤고
집에 돌아온후 그 죄책감과 공포 로 인해 1 주일 넘게 침대에만 누워있었지...
1 주일 뒤 내가 침대 에서 일어났을때 ,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말도 묻지 않고
그저
" 널 믿는다 "
라는 그 한마디와 함께 축구화를 건네 주셨어...
나는 그 축구화를 보자마자 펑펑 울음을 터트렸고....
새로운 꿈을 품게 되...
아버지의 꿈을 이어 최고의 축구 선수 가 되겠다는
이 세계의 "KING" 이 되겠다는 그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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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이름이 궁금하다고?
" I'M THE KING "
" I'M THE HEN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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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쉬를레알 입니다.
오늘 글은 "영혼의 단짝" 시리즈 2 편 이라 볼수 있는 아스날의 레전드 "티에리 앙리" 에 관한 글이지요.
33 탄 이자 단짝 시리즈의 1 편은 Great & Grace , "Dennis Bergkamp" 이였는데
안읽어 보신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겹치는 부분을 피하기 위해 베르캄프 부분에서 나오는 앙리 부분은 따로 있거든요.
사실 프롤로그는 저도 조사하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100% 사실 일화인지는 모르겠으나 C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아침공감" 이라는 프로에서 '티티와 아버지' 라는 주제로 방송이 되었다고 하니 어느정도 신빙성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한국 내한때 앙리의 인터뷰에서도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남아있겠냐는 질문 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고 이 점에 아직도 감사드린다.
지금에 와서 과거를 생각해보면 이제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거리의 부랑자로 남았을 수도 있다. 이제는 축구를 뺀 인생을 생각할 수가 없다"
라고 실제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아무튼 대부분의 축구선수들이 그렇듯이 앙리 또 한 불우한 환경에서 축구선수의 대한 꿈을 키우게 됬는데요.
오늘 편 역시 베르기 편과 마찬가지로 5 장 으로 나누어 선수의 일대기를 알아보는 시간이 될것 같습니다.
선수 편은 조금 미뤄두고 싶긴 했는데 3 연속 선수 글을 쓰게 됬네요...
앙리 편을 마지막으로 선수 글은 당분간 자제할까 합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바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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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Light & 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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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에 쓰일 내용이 프롤로그랑 나눠져서 좀 짧을수 있습니다 ㅠㅠ
프롤로그 까지 1 장이라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불량 환경을 벗어나 이제는 축구선수 로써의 확고한 꿈을 꾸게 된 티에리 앙리
잠시 육상부에 들어서 활동하기도 하긴 했지만 역시나 그가 결정적으로 꿈꾸게 된 목표는
반 바스텐 같은 위대한 축구선수 가 되는 것 이였습니다.
당시 앙리 세대에서 반 바스텐 이라는 공격수의 활약은 안보고는 못베기는 엄청난 활약상 이였으니까요.
앙리는 아버지의 지도 아래 축구를 배우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더욱 전문적인 체계 에서 축구를 배우기를 바랬고 앙리는
프랑스 축구 전문 기관인 클레르 퐁텐 에 들어가게 됩니다.
'Thierry Henry , William Gallas , Jerome Rothen'
소년은 그곳에서 훗날 대표팀 동료가 될 사하 , 갈라스 , 로뎅 같은 동기생들과의 인연이 시작됬고
(사진엔 사하 대신 다른 인물인데 누군지 잘;;)
축구에 대한 기본들을 다시 배우고 쌓으며 재정립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클레르 퐁텐에 있던 앙리를 눈여겨 보던 모나코는 92 년 그를 A.S 모나코 유스 로 영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나코에 입단하게 된 앙리는 훗날 본인의 커리어의 지대한 영향을 끼칠 한 인물을 사실 이때 만나고 접하게 되죠.
바로
"아르센 벵거" 감독 이였습니다.
벵거는 당시 유소년 팀에 있던 앙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당시로써는 매우 어린 나이인 77 년생의 유소년 선수를
94 년 1군 에 올리며 그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보고 있었죠. 그러나 아직은 이들의 인연이 이어지기에는 조금 일렀는지...
벵거는 당시 마르세유로 대변되는 리게앙의 승부조작 파문에 프랑스 축구계에 환멸을 느끼고 94 년 9 월 경 모나코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앙리 만큼은 1군에서 활약할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갔던것이죠.
그렇게 이른 시기에 1 군이 될수 있었던 앙리는 트레제게 같은 비슷한 동년배의 멋진 동료들과 함께
차근차근 모나코에서 경험을 쌓을수 있었고 96/97 시즌 및 컵 대회 더블 이라는 커리어를 쌓으며
98 프랑스 월드컵을 위해 유로 96 부터 "New France" 를 꾸려가고 있던
"에메 자케" 라는 프랑스의 대표팀 감독의 눈에 띄게 됩니다.
그렇게 모나코의 활약상과 청소년 대표팀의 활약상을 발판삼아 참가하게 된 "프랑스 월드컵"
그가 선택한 등번호는 어린 시절 그의 우상 이였던 반 바스텐 의 "12 번" 이였습니다.
비록 포지션은 윙 이였지만 주전 공격수인 9 번 기바라쉬 (0골) 의 극도의 부진을 틈타
그는 1998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 공격수 중에서 최다 출전시간 및 최다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잉 ? 호나우두 + 앙리 ??'
당당히 "세계 제패" 의 일원이 됩니다.
21 살 의 어린 나이에 월드 챔피언이 된 그를 유럽 유수의 명문클럽이 가만 둘리 없었고
앙리는 99년 1 월 유벤투스 라는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클럽 으로 이적 하게 됩니다.
" 모나코 시절 리그 우승 , 21 살이라는 나이의 월드컵 우승 , 최고의 명문클럽 입단 "
유망주로써는 이보다 좋을수 없는 황금빛 미래가 보장되 있을것만 같아 보인 최고의 시작 이였죠.
그러나 실상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일단 유벤투스에는 대표팀 동료이자 선배인 지단과 데샹도 있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팀 내 적응문제는 쉽게 해결할수 있었기에
앙리 역시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유벤투스에서 크나큰 족적을 남길수 있을것만 보였지만
"유벤투스" 에서의 상황은 쉽지 않았습니다...
' No.6 ....'
어울리지 않는 그의 등번호가 말해주듯... 유벤투스는 그가 가진 본인의 역량을 모두 발휘할수 있을만한 팀이 아니였고
지금으로 치면 "월드컵 거품이다 , 먹튀다 " 라는 평이 쏟아졌을 만큼 그에게는 힘든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 16 경기 3 골....
'지주의 표정이 모든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찾아온 99/00 새 시즌... 앙리는 이 팀은 본인의 팀이 아님을
오히려 빨리 나가지 않는다면 본인의 기량 이 더욱 정체될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단 6 개월 만에 이적을 택하게 됩니다. 바로 은사가 있는
" Arsenal F.C " 이였죠.
제 2 장
NEW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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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거는 유벤투스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앙리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위기의 돌파구 를 본인이 직접 만들어 주게 되죠.
하지만 앙리에게만 벵거가 필요한것은 아니였습니다.
벵거에게도 앙리가 필요한 시기 이기도 했습니다.
앙리와 같은 프랑스 축구 선수인 "니콜라스 아넬카" 를 2000만 파운드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시킨 상태 였거든요.
하지만 벵거는 앙리가 그만큼의 기량을 보여줄것이라 믿었습니다. 물론 EPL 에 적응할 시간이 ... 필요했고
또 벵거는 앙리가 윙이 아닌 스트라이커로 더욱 자질이 있음을 알아보고 스트라이커 롤로 그를 기용 하려 했기에
처음 몇 경기 동안은 유벤투스 시절에 이어서 그저 그런 선수 를 잘못 사왔다는 평들이 따라오기도 했죠.
앙리 또 한 모나코 시절 이후 다시 맡게 된 스트라이커 롤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 였던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 그에게 용기를 다시 불어 넣어준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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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아스날의 주전 수비수 "마틴 키언" 이였습니다.
그는 어느날 앙리를 불러내 비디오를 하나 틀어주면서
'너보다 발도 느리고 키도 작은 선수도 이 곳 (아스날) 에서 100 골 도 넘게 넣었다'
속뜻 : 너 라고 못할께 뭐가 있느냐 !
라며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었고 그때부터 앙리는 공격수 로써의 자신감을 되찾게 됩니다.
앙리가 보았던 그 비디오의 주인공 선수는
아스날의 또 다른 전설적인 공격수 "이안 라이트" 였죠.
이 것이 잉글랜드 축구 무대에 자신감을 갖게된 가장 처음의 이유 였습니다.
키언의 말대로 앙리는 속도와 개인기 가 중요시 되는 잉글랜드 축구에 최적화된 선수였고
패싱 축구와 공간 침투에 최적화 되있는 아스날의 축구는 피지컬 보다는 스피드의 의존하는 앙리에게 최고의 팀 이엿던 것이죠.
그리고 팀에는 그와 대표팀 동료 이자 뒤에서 그를 뒷받침 해주는
"비에이라" 와 "프티" 의 존재가 있었고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혹여 앙리가 몇 경기 부진하다 하더라도 그를 꾸준히 믿고 기용해줄
"아르센 벵거" 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3 박자 가 맞는 팀에서 재능이 없지 않는한 활약을 못하는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 였고
앙리는 아스날에서 첫시즌 리그 31 경기 17 골을 기록하며 시즌 통합 26 골 11 도움 을 기록하며
이 곳이 본인이 터를 잡을 곳임을 첫시즌 부터 각인 시킵니다.
아스날에서 폼을 찾음과 동시에 다시 참가하게 된 메이저 대회 유로 2000 에서도
팀 내 최다 득점 과 우승컵 을 들어오는 등 앙리의 전성기는 2000 년대를 맞음과 동시에 찾아오게 됩니다.
이제 그가 이제 목표로 삼을 타이틀은 모나코 시절 이후 한번도 맛보지 못한
"리그 우승" 타이틀 이였죠.
앙리를 떠나서 아스날에게도 리그 우승 타이틀 획득은 매우 중요한 때였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베르캄프로 대변되는 97/98 리그 더블 이후 아스날 역시 리그 우승을 따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거든요...
당시 퍼거슨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권력은 99,00,01 3년 연속 리그 패권 을 놓치지 않는등 절대적인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들은 다음 시즌인 01/02 시즌 도 리그 우승을 이뤄 4 년 연속 리그 제패를 목표로 삼고
아스날의 최다 득점자인 앙리마저 견제하여 EPL 무대의 모든 권력을 맨유의 것으로 만드려는듯
PSV 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던 "루드 반니스텔루이" 를 영입하기 까지 이릅니다.
실제로 앙리와 "득점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할만큼 반니스텔루이의 EPL 무대 첫 기세는 무서웠습니다.
외국인 첫 시즌 EPL 최다 득점 이라는 기록을 세울만큼 위력적인 모습이였지요.
(이 기록은 훗날 "토"씨라는 한 인물의 의해 깨지게 됩니다 ㅋ)
그러나 오히려 앙리의 리그 우승 및 생애 첫 득점왕 등극을 위한 도움은 "맨유" 가 도와주게 됩니다.
(맨유라 부르고 바르테즈라 칭한다...)
'A.S 모나코 시절 동료 였던 바르테즈 와 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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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는 하이버리에서 열린 아스날 과의 경기에서
"선제 득점" 을 올리며 아스날을 압박하게 이르지만
1:1 균형의 추가 맞쳐져 있던
79 분 : 승부의 승부처 에서 앙리의 대표팀 동료이자 어린 시절부터 그를 많이 돌봐줬던
파비앙 바르테즈 의 치명적인 실수를 놓치지 않고 앙리는 결승골을 넣었고
5 분 뒤
한 번 더 바르테즈의 "심장" 의
"비수" 를 꽂는 골을 넣습니다 !
비록 대표팀 동료이자 어린 시절 부터 알던 사이였던 둘에게는 조금 아픈 일이였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그런 사사로운 정 은 필요가 없는 것이였죠. 그리고 앙리는 맨유전을 발판 삼아





01/02 시즌 본인의 주력과 개인기를 주 무기로 꾸준한 득점 레이스 를 통해
결국 4 년 만에 아스날과 팀원들에게 리그 우승 및 FA 컵 우승이라는 "더블" 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앙리에게 이 순간은 은 본인 이전 프랑스 선수로써
유일하게 EPL "KING" 의 지위를 갖고 있던 에릭 칸토나 에게
그 지위 를 물려받듯
EPL 의 "NEW KING" 으로 임명 받은 순간 이였습니다 !
제 3 장
INVINCI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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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 시즌 11 월 16 일
vs 토튼햄 전
아스날의 지역 라이벌인 북런던 더비 에서 일명 '80 M 드리블 골' 을 선사하며
본인을 새로운 "KING" 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던 토트넘의 팬들 앞에서
본인의 "위엄" 을 알린 티에리 앙리
이 시즌 그는 다시 한번 득점왕 과 리그 수성을 위한 꾸준한 활약을 펼치기에 이릅니다.
그의 활약을 통해 리그 막판 전까지 아스날은 리그 선두 에 이르는 중이기도 했었죠.
01/02 시즌에 이어 다시 한번 리그 우승과 득점왕이 아스날과 앙리의 것이 될것으로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첫 시즌 앙리 못지 않게 본인의 가능성을 실현시킨 반니스텔루이의 활약 속에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시
그의 활약과 함께 끈질기게 따라왔고... 결국 맨유는 역전 리그 우승 에 성공하게 됩니다..
전 시즌 득점왕 인 앙리 역시 24 골 23 도움 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단 1 골차로 반니스텔루이에게 놓치게 되는등... 아쉬운 시즌이였습니다...
그러나 위기 뒤에 기회가 오듯이 다음 시즌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백미 로 뽑히게 되는 시즌이 찾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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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시즌
전 시즌 악재에 대한 보상을 받듯 ...
다행히 아스널은 리그 초반 대진운이 따르며 4 연승 을 달리면서 리그 선두를 질주합니다.
하지만 강팀 과의 경기가 연달아 잡힌 9 월 강팀을 만나기도 전에 첫번째 위기가 찾아오기도 하죠...
9 월 13 일 포츠머스 와의 홈 경기에서
선제골을 먹히고 주장 비에이라가 연속된 경고 2 장 으로 퇴장당하며
시즌 첫 패배에 대한 위기가 찾아왔던 것이였죠.
다행히도 이 위기는 피레스가 얻어낸 앙리의 PK 골로 인해 1-1 무승부로 위기를 넘길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불안한 경기력은 포츠머스 전 뒤에
바로 찾아온 챔피언스리그 조별 인테르 밀란 전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 챔피언스리그 이기 때문에 리그 무패 우승 커리어에는 영향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하지만 당시 시즌 분위기 상 가장 중요한 시기 였기에 언급하고 갑니다.
"홈" 에서 0-3 으로 형편 없이 질만큼... 아스날 의 경기력이 맥없이 무너졌던 것이였죠...
앙리의 PK 실축도 뼈아팠지만... 그나마 콜로 투레의 활약상이 아녔다면 0-5 로 져도 이상할게 없었다 평가 받았을만큼
당시 아스날의 경기력은 의문에 휩싸이게 됩니다...
더욱 문제 였던 것은 이 경기 다음 이어질 리그 4 연전이 맨유 - 뉴캐슬 - 리버풀 - 첼시 로 이어지는 죽음의 4 연전 일정 이였던 것이죠...
게다가 인터밀란 과의 홈 대패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아스날에게 주전 수비수 이자
"수비의 핵" 솔 캠벨 부친의 사망으로 캠벨 마저 당분간 전력이탈 을 해야하는 등 아스날은 악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아스날의 믿을 구석은 항상 "앙리" 만 있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럴땐 잠깐 여유를 가지고 오히려 형님들 에게 기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수 있었습니다.
아스날의 감독 아르센 벵거 과 팀의 대들보 데니스 베르캄프 는 벵거가 택한 전술적 변화속에 따라
(벵거는 이러한 위기나 경험에 익숙한 노장선수 베르캄프를 이 기간 피레스 와 융베리 대신 좀 더 중용합니다.)
오히려 죽음의 4 연전을 넘어 이 위기를 멋지게 넘겨 6 승 1 무 라는 멋진 성적을 거두며 흐름을 되찾아 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챔피언스리그 "인테르 밀란" 전
아스널은 비에이라 와 로렌이 부상으로.. 또 논 플라잉 더치맨 베르캄프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2 달전 PK 실축 굴욕을 당한 "KING" 은 그 굴욕을 되갚고자
1. 아스날 식 티키타카 골
3. 하프라인 돌파 골 ㄷㄷㄷ
4. 감각적 인 패스로 피레스 의 골을 돕는 앙리
아스날이 이날 넣은 5 골 중 4 골 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며 밀라노의 팬들에게도 본인의 위상을 과시하지요.
누가 뭐라해도 이 날은 "앙리의 날" 이였습니다. 비록 리그 무패 우승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기는 아니였지만
아스날 팀원들에게 "위닝 DNA" 만큼은 확고히 가져 올수 있던 "환타스틱" 한 날이였죠.
비록 인테르 전 에서 많은 것을 쏟았는지...
'북산이 생각나는구려...'
거짓말 같이 잉글랜드로 돌아와서는 오히려 리그 하위권 팀들에게 1 승 3 무 라는 저조한 경기력이 이어지며 앙리 역시
비록 1 달 동안 조금 저조한 득점력이 이어지긴 했지만 벵거는 중앙과 사이드에서 앙리를 뒷받쳐 줄 젊은 피의 수혈이 필요하단것을 인식하고
"안토니오 레예스" 라는 긴급 수혈을 04 년 1 월 선택해
미들스보로 전 부터 아스날은 파죽의 리그 9 연승 으로 이 난관을 타개 해 나갑니다.
리그 우승을 위한 질주를 시작한것 이였죠.
앙리 역시 8 경기 동안 10 골 을 터트리는 기록 적인 골 결정력을 보여줍니다.
비록 시즌 막판 아스날의 천적인 맨유가 태클을 걸며 연승 행진 에 분위기가 끊기긴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2004 년 4 월 9 일
vs 리버풀 전
'일명 하이버리 열광 골...'
본인의 03/04 시즌
"하이라이트 of 하이라이트" 같은 골 을 집어 넣으며
다시 한번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영웅 적인 모습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시즌 마지막 북런던 더비
'다른 시즌 사진 이지만 재밌어서 써봅니다... 1 번만 양해 부탁드려요 '
"KING HENRY" 를 돋보이게 하는 이 사진 처럼 아스날은 비록 이날 2-2 무승부를 거두긴 하지만
이 시즌 로만 첼시의 사실상 첫 도전을 물리치고 '숙적' 토트넘의 안방인 화이트 하트 레인 에서
※ 이 시즌 부진했던 맨유 대신 아스날에 이어 리그 2 위 였던 첼시가 같은날 뉴캐슬에게 패배해...
아스날은 이날 산술적으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음
"리그 우승" 을 확정 짓습니다.
2 년 만에 되 찾아온 리그 우승 이였고 지역 라이벌 의 홈구장에서 받은 소식 이였기에 2 배로 뜻 깊은 날 이였죠.
그리고 그들은 리그 우승에도 크게 방심하지 않고 정말 "무패 우승" 이라는 것을 이루고자
5 월 15 일 마지막 레스터 시티 전 까지 방심하지 않고 리그 무패를 잘 지켜
정말 " Invincibles" 를 이룹니다.
※ invincible : 천하무적의,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아스날이 이 엄청난 업적을 이룬데에는 아르센 벵거 라는 감독 의 휘하 아래
서브 팀원들의 공헌도 와
베스트 11 들의 뛰어난 활약이 있었지만...
누가 뭐라해도 이 시즌 invincible 를 이룰수 있었던 이유이자
"핵심의 선수" 는
"Thierry Henry" 였습니다.
제 4 장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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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 14 & RP 7 '
잉글랜드 리그 안에선 2번의 리그 우승과 함께 개인 타이틀로도 거의 모든것을 이룬 티에리 앙리
이어진 04/05 시즌 에도 그는 득점왕에 오르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그가 정말 세계 최고의 선수에 오르기 위해 얻어야 할것은 챔피언스리그 타이틀 이였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은 앙리가 온후 단 한번도 4 강 까지 가본적이 없었죠... 이것은 분명 본인의 책임도 있었습니다...
또
실제로 항상 챔스 타이틀을 갈망하던 앙리의 기나긴 시간 동료이자 아스날의 주장
"패트릭 비에이라" 는 04/05 시즌 FA 컵 이라는 영광스런 우승 트로피를 끝으로
챔스 타이틀을 위해 앙리의 이전 팀 "유벤투스" 에 이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아스날의 주장 은 항상 타 팀으로 떠난다는 징크스의 시발점 이였죠....
결과적으로 이 징크스를 잇게 되는 아스날의 다음 주장은 "킹" 이였습니다.
이 불길한 예감은 승승장구 하던 성적문제 와는 별개로 한 팬의 의해서 다시 한번... 부각되게 되는데...
바르샤의 한 열성팬이 티에리 앙리가 바르샤로 오기를 바란다며
한 경기 도중 그에게 바르샤의 유니폼 을 투척하고 갔던 사건 이였죠...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바르샤와의 불길한 인연은
아스날이 05/06 시즌 처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르게 되며 다시 한번 이어집니다.
당시 앙리와 함께 세계 최고의 선수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고 있던
"호나우딩요" 의 활약속에 바르셀로나 역시 챔스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이였죠..
번외로 앙리에게는 이 결승전이 다른 선수보다도 더욱 중요 했던게...
이번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의 무대는 본인의 고향 "파리" 였습니다.
이 경기만 이긴다면 "티티" 로 불리던 그 불량아가 본인의 고향에서
정말 현 축구계의 "킹" 이 됬음을 선포할수 있는경기 였죠...
※ 98 월드컵 도 파리가 결승전이긴 했지만 당시 앙리는 어린 선수였고
월드컵 결승전은 사실상 지주가 황제가 된 경기 였죠...
그러나 티티 는 고국에서 킹으로 인정받을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경기에서 "티에리 앙리" 의 아스날은 패배 했기 때문이죠....
때문에 빅이어 와 발롱도르는 호나우딩요 와 바르셀로나 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사실상 이 시즌 빅이어를 얻지 못한것이... 훗날 아스날로써는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경기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밑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한번 시작된 앙리의 불운 은 계속 됩니다....
2006 년 월드컵 준우승 을 시작으로....
에미레이츠 시대를 맞으며 긴축 정책에 들어간 아스날은
이미 떠난 비에이라 를 이어 본인의 단짝 베르캄프 ... 계약 문제로 비야레알로 떠난 피레스...
잉글랜드 선수 였던... 솔 캠벨 과 애쉴리 콜 까지 다들 각각의 이유로
본인과 함께 무적을 이뤘던 "하이버리의 팀" 은 이미 서서히 많은 흔적이 사라지고 있는 상태였고...
게다가 06/07 시즌 후 이어진 가정의 불화까지...
앙리는 이 많은 난관의 돌파구를 "바르셀로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쉬를레알의 사설
'05/06 시즌 빅이어를 들지 못한것이 천추의 한 인 이유...'
물론 이 시즌 챔스 우승을 했다고 하더라도 앙리가 떠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할순 없겠지만
비에이라가 그랫듯 사실상 에미레이츠 구장의 역사가 시작 되면 구단 이 긴축재정 에 들어가
몇 년간은 어려운 시즌이 이어질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앙리 역시 알고 있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몇 년간 이어질 어려운 시즌들은 사실상 빅리그 에선 본인의 커리어 말기 에 해당되는
30 대 의 시기 였죠...
때문에 만약 05/06 시즌 챔스 우승을 했다면 사실상 앙리는 본인이 커리어에서 얻을수 있는 모든 빅 우승을
해봤기에 본인을 키워주고 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스날 을 위해 남았을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가 단 한번도 맞춰보지 못한 퍼즐의 조각 인 "빅이어" 를 얻기 위해 06/07 시즌을 마지막으로...
바르셀로나로 떠났다고 보여지고 또 앙리가 실제로 밝힌 이유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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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주 포지션에서 멀어져야 한다는것 을 감안하면서도 얻고 싶었던
"빅이어" 타이틀 을 얻기 위해 07/08 시즌 결국 이적을 택한 티에리 앙리...
첫 시즌은 챔피언스리그에서 호날두로 대변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게 지며
챔스 4 강에 머무르지만 (물론 4 강전 골은 스콜스가 넣음)
08/09 시즌
그는 본인의 꿈을 이뤄주게 될 어린 감독 "펩 과르디올라" 를 만나게 됩니다.
비록 펩 의 페르소나 는 "리오넬 메시" 였지만 앙리 역시 괜찮은 활약을 펼치며
이제는 본인의 팀이 된 바르셀로나 의 다시 이어질 챔피언스 리그 결승행 에 일조합니다.
그리고 08/09 시즌 다시 만나게 된 맨유와의 결승전 에서 에투와 메시의 이어진 연속골로 인해 그는
본인의 꿈 을 결국 이루게 되죠.
하지만 당시 바르셀로나는 "앙리의 팀" 이 아닌 "메시의 팀" 이 였기에...
제가 생각했을때 앙리에게 있어 이 시즌 빅이어를 얻은 의미는 그에게 정말 100% 였을까 라는 여운을 남게 합니다....
앙리 역시 분명히 팀에 일조를 했고 그의 공헌도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따지고 보면 본인보다 10 살 이나 어린 선수의 활약에 의해 얻은 우승 이였기 때문이죠....
앙리의 바르샤 활약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도 바르샤 팬이고 메시의 의한 우승이 아쉽다는게 아닙니다... 앙리의 시점에서 봤을때라는 것이죠...)
오히려 저는 06 시즌 "그의 팀" 에서 본인의 동료들를 다독이며 함께 이룬
챔스 준우승이 오히려 더욱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정도 는 다른 사람이 대신 꿔준 꿈 이 과연 본인의 꿈 이라 할수 있을지.... 저는 의문이 들거든요...
다른 선수도 아닌 앙리 정도의 선수 였기에... 저는 이 점에 대해선 항상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앙리는 이 우승 이후 한 시즌 더 바르샤에 남긴 하지만
사실상 그의 영향력 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고...
킹은 ... 더 이상 킹 이라 불릴 만한 선수가 아니였습니다...
아스날에선 부상 복귀 시점을 제외하곤 희귀한 장면이였던
그의 교체출전 장면은 09/10 시즌 바르샤에선 간간히 볼수 있기도 했었죠....
(더 이상은 퍼스트 초이스 의 선수가 아니란 뜻입니다..)
앙리는 이 시즌 을 마지막으로
본인이 많은 업적을 남긴 유럽 무대 를 떠나게 됩니다...
사실상 축구계에선 변방의 리그 라 할수 있는 곳으로 떠나지요...
그의 새 본거지는...
MLS 의 뉴욕 레드 불스 였습니다...
제 5 장
THE RETURN OF THE KING
.
.
.
비록 유럽에선 한물 간 선수 로 인식될수도 있으나 ...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 의 기량은 MLS 무대에서는 아직 충분히 통할 정도의 기량이였고
첫시즌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는 어찌됬든 팀의 주장에 임명 될 정도로 팀의 핵심 이 됩니다.
그러나 구너들에겐 항상 뭔가 1% 의 기대감이 있었죠...
혹시라도 한번쯤은 그가 다시 한번 "아스날의 유니폼을 입고 뛸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일련의 기대감 말이에요...
그 1% 의 기대감을 품을수 있던 이유는 유럽 리그와 휴식기가 다른 MLS 의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였죠...
※ MLS 는 3 월 부터 10 월까지가 리그 기간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기적" 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데...
앙리 역시 구너 들처럼 본인이 아직 선수생활을 이어나갈수 있는 현역 생활에서 한 번쯤은
구너들 앞에서 구너들과 함께 구너들 앞에서 뛰며 골을 넣을수 있기를 갈망한것 같습니다.
때문에 앙리가 2 개월 간 아스날의 유니폼을 입을수
"기적" 이 양 구단의 협의 속에서 이뤄지게 된것 이였죠.
그렇게 킹은 단 1 시즌 밖에 밟을수 없었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잔디를 밟기 위해 돌아옵니다.
비록 번호는 어느새 본인의 번호를 달고 있던 월콧의 "14번" 을 받을순 없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또 국가대표 부터
본인의 번호 였던 "12 번" 을 달수 있었죠.
그렇게 월콧과 함께 동시 출격한 12 년 1 월 10 일 FA 컵 리즈유나이티드 전
"하이버리 의 왕" 은 그때와 같은 에미레이츠 의 팬들의 화려한 환영속에 경기장에 입성했고
"왕의 귀환" 을 알리듯 결승골 마저 선사합니다.
그리고 블랙번 전
본인의 인터셉트로 인한 팀의 7 번째 쐐기골
그리고 그의 임대 복귀 하이라이트 는 그의 임대 마지막 경기였던
2월 12 일 에 열린 리그 정식 경기 였던 선더랜드와의 25 라운드 경기 였습니다.
아스날은 이날 후반 90 분 까지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1-1 의 스코어로 경기를
마감하는듯 보였지만
인저리 타임에 "슈퍼 샤바" 아르샤빈이 올린 크로스를
앙리가 뛰어올라 본인의 아스날 커리어 마지막 골 을 완성시켰고
본인 없이 시즌 마지막까지 치뤄야 하는 아스날에게 귀중한 승점 3 점 을 선물해주고 갑니다.
이것이 선수로써는 그가 아스날에게 해줄수 있는 정말 마지막 활약 상 이였죠...
※ 아스날 통산 376경기 228골 92어시스트
어느 누구보다 아스날의 져지 가 잘 어울리는 사나이를 다시 다른곳으로
보내야 하는 사실이... 구너들에게는 많이 아쉬운 일이였지만...
그렇게 앙리는 2 개월 간의 짧은 임대 생활을 마치고...
(사실상은 1 개월 보름 정도)
다시 본인의 원 소속 팀인 뉴욕 레드 불스 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2014 년 12 월 그는 근 20 년간 이어온 선수생활의 은퇴를 선언합니다....
자신의 단짝 이였던 베르캄프 처럼 아스날에서의 은퇴는 아니였지만 본인의 커리어 말미를
관심있게 또 성원으로 지켜봐준 뉴욕 팬들 앞에서 나름 대로 뜻 깊은 은퇴 였지요...
사실
현 아스날의 홈 경기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는 그의 동상이 있습니다...
11 년 현역 선수 일때 이미 동상이 세워졌을 정도로 아스날에서 그의 업적은 너무나 뛰어난 것이였죠...
"제가 사랑하고 서포트하는 이 팀의 스타디움 앞에 이런 동상을
갖게 될꺼란 생각은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비록 그는 잠시... 떠났었지만
아스날에 있었을때 항상 본인의 모든것을 클럽과 팬들을 위해 쏟아 붇었다고 눈물을 보이며 이 날 말하기도 했었죠...
사실 생각해보면 잠깐 클럽을 떠났던 그 미안함 에 눈물이 나왔던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약간의 그 미안함은 이제 지도자 로써 팬들에게 되 갚을수 있는 기회가 올수도 있겠죠.
늦었지만 아스날 뿐만 아니라
총 5번 의 클럽 을 거치며 또 국가대표에서도 플라티니를 넘어 프랑스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된
축구사의 또 다른 전설로 남을 "티에리 앙리" 짧게나마 그 의 일대기를 살펴 보았습니다...
사실 그의 업적은 너무나 대단한것이라... 모두 표현 할수 없었던이 제 부족한 역량 에서는 너무나 아쉬운 일이지만...
※ 국가대표 활약상도 뛰어났는데... 아스날 부분만 다루기도 벅차... 빠진것이 아쉽네요...
이제는 선수 가 아닌 훌륭한 지도자 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마지막은 항상 어느 누군가의 명언 으로 끝냈는데...
오늘은 특별히 제가 해줄수 있는 저만의 찬사로 혹은 어린 꼬마 였던 "티티" 의 입장에서 이 글을 끝내겠습니다...
.
.
.
" I'M THE KING "
나는 내 꿈을 이뤘고
" I'M THE HENRY "
나의 이름은 앙리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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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혼의 단짝"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사실 두 선수를 묶어서 쓸까 싶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선수들을 한번에 다루는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고 또 분량상의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나눠서 얘기를 다룰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베르캄프 편 이 아닌 앙리 편 에선 베르기가 1 번 정도 말고는 나오지 않는데...
각자 다른 글이라 봐주셨으면 합니다...
어찌됬든 아스날의 두 레전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였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바쁘시겠지만 한번씩 "추천" 을
조금 궁금하시거나 얘기를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리플" 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
(리플은 다음 글을 위한 비타민이 됩니다 ㅎㅎ)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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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8s 2015.04.14앙리와 헨리 일화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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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구루쿠푸 2015.04.14@kr8s ㅋㅋ 그건 한 팬의 장난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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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kr8s 2015.04.14@구루쿠푸 그렇죠ㅋㅋ 제목보고 떠올랐어요ㅋㅋ 좋은글 잘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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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2015.04.14항상 좋은글 재밋는글 감사합니다 블로그 가서 매번읽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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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첼 2015.04.14정독했습니다. ^^ 좋은글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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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madrid 2015.04.14프랑스가 94월드컵 탈락이후로 에메 자케가 감독 된 이후 프랑스의 스타들인 지놀라,칸토나,파팽들은 과감히 배제시키고 앙리,트레제게등 영건들로 선수꾸린후 엄청 욕 먹었다고...하지만 결국은 올바른 선택이었다는걸 나중에 알 수 있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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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J 2015.04.1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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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2015.04.15몰랐습니다만 구루쿠푸님께서 바르셀로나 팬이셨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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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5.04.15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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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아 2015.04.18아스날의 레전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