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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체일요일 5시

박주영만큼 철밥통이던 축구 선수 없습니다

정켈메시야스 2014.06.27 13:42 조회 5,205 추천 5



굵직한 체는 당시 주전급, 혹은 감독이 편애에 가까울만큼 따로 언급하던 사나이들. 대부분이 주전으로 도약했습니다.


1. 국내용의 대명사 : 이동국

괄호는 당시 경쟁 대상자였다가 탈락한 멤버들. 

1998-2000년 철밥통. 
2000년부터 시련에 직면

< 히딩크 시절 >
2001년 경쟁자 : 황선홍 최용수 차두리 안정환 설기현 최태욱 유상철* (서정원) (박성배) (전광민)
2002년 경쟁자 : 황선홍 최용수 차두리 안정환 (김도훈)

* 최종적으로 유상철 원톱, 설기현 원톱, 최태욱 원톱은 다 폐기처분되고 유상철 미드필더, 설기현 왼쪽 날개, 최태욱 오른쪽 날개 체제로 굳혀집니다. 당시 용돈 500원으로 스포츠 신문 하나 사와서 하루종일 읽고 분석하는게 중딩시절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히딩크가 오질나게 선수 뽑아대고 이동국 정말 하루종일 깜. 
 2001년 10월 당시 대표팀이 4-4-2 연습하면서 내세운 전략이 제공권이 좋은 최용수랑 유상철을 원톱으로 세우고 발빠른 이천수랑 최태욱을 쳐진 스트라이커로 세운다. 실제로 최태욱이 11월이랑 12월 3연전에서 굉장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2002년 1월 1일자 새해 특집 스포츠 신문 대문으로 이천수, 최태욱 대한민국 16강을 이끈다로 나옴.

<코엘류 시대>
2003년 경쟁자 (최용수) 안정환 (우성용) (김도훈조재진 

* 조재진이 코엘류가 오면서 사랑받기 시작했는데, 골은 정말 오질나게 못 넣지만 전방에서 활동량이랑 특유의 필사적으로 억울해 보이는 표정 덕에 많은 사랑을 받음. 별명이 오죽하면 제2의 황선홍. 실제로 당시 광주 상무(현 상주)에서 이동국이 10번으로 뛰고 조재진이 9번으로 뛰었는데 골은 오질나게 못 넣으면서 활동량은 겁내 많아서 이동국이랑 조합이 굉장히 좋았음. 물론 일본 진출하더니 스타일이 페널티 에어리어에 짱박혀 있는 걸로 바뀌어서 기대하던 입장에서는 피꺼솟. 


<본 프레레 & 아드보카트>
2004년 경쟁자 (최용수) 안정환 (우성용) 조재진 (정조국) (김동현) (남궁도) 박주영 
2005년 경쟁자 안정환 조재진 (정조국) (김동현) (남궁도) 박주영
2006년 경쟁자 안정환 조재진 박주영 

* 이때부터 이동국 까면서 나온게 '대안론'. 이동국은 이제 끝났다. 국내용이다. 대안이 필요하다. 대안이 많다. 그러면서 쭈욱 열거되던 후보 선수들이 정조국 김동현 박주영. 당시 국내 넘버원 커뮤니티던 알싸에서 하루에 한번씩 정조국 스페셜 올라옴.

2007년 망함(뽑히기는 했는데 경기를 거의 못 나옴)

<허정무 시절>
2008년 망함
2009년 박주영 (이근호) 염기훈 (설기현) (정조국)
2010년 박주영 (이근호) 염기훈 (설기현) (정조국) (노병준) (김신욱) (하태균) 안정환 이승렬 * 

* 안느는 주 경쟁자라기보다는 경험+특유의 아우라덕에 턱걸이 합격. 아마 이근호가 지금 컨디션이었다면 안 뽑혔을지도. 염기훈은 허정무가 마지막까지 어찌 써봐야하나, 하고 고민한 선수. 에콰도르였었나? 이동국이랑 염기훈이 투톱으로 나왔는데 둘 다 적당한 몸빵에 킥력이 좋고 패스도 그럭저럭이라서 나쁘지 않았었음. 

여기서 2012, 2013 최강희 시절에는 철밥통 아니였나! 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그때는 박주영이 연락 끊고 버로우 타다가 홍명보가 '내가 대신 군대 가겠습니다!'로 국대 복귀한 상황이었죠.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상황. 그리고 정작 이동국 삽질 펄때 최강희가 제외도 시켰습니다. 

<이란전 명단에서 제외된 이동국, 이정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n127&folder=14&list_id=12920390


<연락 두절 박주영 대신 이동국 발탁>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1194623
http://sports.media.daum.net/sports/worldsoccer/newsview?newsId=20120524134506000


그럼 이제 조금 더 시간을 돌려서 최용수, 황선홍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2. 2002 월드컵으로 인생 역전 : 최용수, 황선홍

둘 다 같이 기용된 1996부터

<차범근 시대> 
1996 황선홍 최용수 서정원 김도훈 (곽경근 노상래 김현석 박건하) *
1997 황선홍 최용수 서정원 김도훈 (곽경근 노상래 김현석 박건하 신병호 성한수) 이동국 
1998 황선홍 최용수 서정원 김도훈 이동국 

* 박건하옹은 최용수가 초창기 자리 잡지 못하고 황선홍도 부상으로 고생할때 대표팀을 먹여살리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시아 예선이 본격화되면서 최용수가 말 그대로 빨딱 서 버리면서 바이바이. 김현석은 울산 레전드. 노상래 역시 맞뒈슛으로 기대를 모으던 상황이었고... 곽경근이야 뭐. 부천 SK의 레전드...였죠. 지금은 불미스러운 일로 영원히 등을 지게 되었습니다만. 서정원은 3-5-1-1의 측면 날개로도 종종 나왔고 1 자리에서 휘젖는 역할도 많이 해줬던걸로 기억함. 

* 97 세계 대회 끝나고 유망주들을 굉장히 많이 테스트했습니다. 기대를 모으던 '거물 신인' 신병호, 성한수는 KBS 뉴스에 인터뷰로 어리버리 타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구요. 이때 이동국은 차붐이 따로 인터뷰로 언급한적이 있긴 했는데 정작 발목 부상으로 대표팀 정식 소집은 98년부터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허정무 올림픽, 국가대표 병행 시대> 

허정무는 올림픽이랑 국가대표팀이랑 병행하는 덕에 정말 많은 선수를 뽑고 탈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최용수가 주전에서 밀리는듯한 인상을 주었고 김도훈, 이동국이 본격적으로 중용받던 시대. 

1999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이동국 김은중 신병호 설기현 안효연 곽경근 이성재 유상철 ~헥헥
2000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이동국 김은중 안효연 설기현 유상철 

기억이 오락가락해서 그런데, 아마 99-2000은 황선홍은 잘 기용 안 되었을 겁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리턴했다가 1달만에 다시 일본으로 이적하고 이러면서 부침이 좀 있었음. 최용수는 이때 나이 2살인가 3살 속였다 논란이 터졌던걸로 기억함.(지금도 이건 축구 호사가분들께는 종종 나오는 소재. 거피셜급으로 나이 속인걸로. 다만 고의는 아니고 7080때 워낙 갓난 아기들이 쉽게 죽고 행정이 구려서 2년인가 있다가 신고했던걸로.)

이후 히딩크 시절부터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간혹 박주영 관련 이야기 나오면서 대안이 없다! 라고 하는데... 이게 딱 10년전에 박주영, 정조국 팬분들이 이동국 깎아내리면서 하던 대안이 필요하다! 라는 말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말이라서 참 기분이 묘하네요.


물론 풀핏 박주영이면 누구나 인정. 그런데, 지금의 박주영의 실력의 현실은 잉글랜드 2부격인 챔피언쉽 리그에서 벤치와 명단 제외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잘난 '큰무대에서의 한방' 믿고 뽑아놨더니 그렇~~~~~~게 국내용이라고 욕 먹는 A매치 26경기 3득점의 김신욱과 이근호가 훨훨 난 상황이구요.


근 20년 사이에 역대 대표팀에서 철밥통 논란 터지던게 2001-2년 홍명보. 4백 vs 3백 논란 터지면서 홍명보의 나이, 운동신경등이 논란이 되었고, 2004-2005 이동국은 본프레레 멱살 잡고 월드컵 올렸고. 2004-6 이운재(몸무게 98kg 시절)는 본선에서는 10kg 감량하고 프랑스전 원맨쇼였죠. 즉, 철밥통이었던만큼 보답을 해줬다는 겁니다. 


지금의 대표팀에는 경쟁이 필요합니다. 박주영만큼 성과 없이 철밥통이던 선수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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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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