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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마드리드월요일 5시

즐라탄 자서전 Chapter 14 - 칼치오폴리

키라 2013.02.23 18:01 조회 7,295 추천 1

Chapter 14 



모지는 생색내는 법 없이 절로 존경을 샀고 말을 붙이기에도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모지는 또한, 일을 밀어붙일 줄도 알고 힘도 있는데다가 직관이 뛰어났다. 나는 첫 이적협상을 하러 모지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나로서는 무척 중요한 일이니만큼 더 나은 계약조건을 바라는 마음에 모지의 화를 돋우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모지를 거물로 인정하고 협상을 원만히 진행하고 싶었다. 


나는 미노를 대동했다. 그런데 미노는 도대체 먹어주는 법이 없이 마냥 천둥벌거숭이처럼 굴었다. 미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 모지의 의자에 주저앉고는 천연덕스럽게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야 이 화상아, 모지가 금방 들어올 텐데 계약 망치려고 작정했냐? 이리 와서 나랑 같이 앉아.”

“x까, 넌 잠자코 있기나 해.”

미노는 원래부터 그랬다. 나는 미노의 수완이 박사급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을 그르칠까 걱정스러웠다. 아니나다를까 모지가 시가를 입에 문 채 사무실로 들어오고는 발끈해서 외치는 바람에 더욱 심정이 조마조마해졌다. 

“뭐여, ㅅ x, 너 지금 내 의자에 앉았냐?”

“얼렁 앉기나 하시고 협상부터 합시다!” 

물론 미노는 자기 소임을 똑똑히 알고 있었고 모지와도 예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둘 사이에는 이런 식으로 서로 씹어댄 일화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게다가 꿀인 것은 더 나은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해주겠단 약조까지 받아 놓은 것이었다. 모지는 내가 꾸준히 최고 기량을 유지하면 팀 내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흡족한 계약이었다. 그러나 일이 꼬여가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두 번째 해에 훈련장이나 호텔에서 지낼 때 자주 아드리안 무투와 어울렸는데 잠시도 심심할 틈이 없었다. 아드리안 무투는 루마니아인이었지만 이미 2000년 중반에 이탈리아어가 능숙해서 크게 도움이 되어 주었다. 또한, 아드리안 무뚜라는 이 사내는 파티광이기도 했다. 나는 호텔방에서 무투가 들려주는 기상천외한 경험담을 듣고는 박장대소를 터트리곤 했다. 무뚜는 이전 클럽인 첼시에 있을 때 늘 파티를 즐겼다. 그러나 당연히 장기적으로는 본인한테 해가 되고 말았다. 무뚜는 피검사에서 코카인을 한 사실이 발각되어 해고를 당했고 출장정지를 먹은데다가 손해배상 재판 중이었다. 그러나 우리 팀으로 옮겨와서는 치료를 받고 멀쩡해진 상태였다. 우리는 그런 흘러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나 알다시피, 나는 무투와 견줄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욕조에 뻗어 잠이 든 이야기? 


또한, 그즈음 패트릭 비에이라도 이적해 왔다.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나는 그 즉시 강적을 만난 걸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가 훈련 중에 한바탕 붙게 된 것도 우연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는 이겨야지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기어오르는 놈들을 만나면 더욱 강하게 나가곤 했다. 더구나 나는 유벤투스로 이적해 오고 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저질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전사였다.


나는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었고 비에이라가 공을 차지하고 있었다.

“ㅅ x 패스 안 하냐?”

내가 비에이라를 보고 외쳤다. 물론 당시 나는 비에이라의 경력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패트릭 비에이라는 아스날 주장이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리그 우승을 세 차례 차지했다. 더불어 프랑스 국대로는 월드컵과 유로에서 우승한 적이 있었다. 비에이라는 평범한 축구 선수가 아니었다. 전혀. 그러나 나는 비에이라를 보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공 받기 딱 좋은 지점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이처럼 최고 레벨 축구에서는 서로 엿먹이는 짓을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닥치고 뛰기나 해라.”

비에이라도 날 선 대답을 해왔다.

“그냥 패스나 해라, 그럼 알아서 닥쳐 줄 테니.” 

우리는 맞짱을 뜰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솔직히 말해 별일 아니었다. 단지 우리 둘 다 승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건일 뿐이었다. 우리는 순해 빠져서는 패배하는 스포츠를 하고 있었다. 패트릭 비에이라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비에이라는 무엇을 하건 전력을 쏟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도 비에이라가 팀 전체를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날에는 나한테 그토록 존경을 살 만큼 역량 있는 선수가 드물다. 비에이라는 경기의 질을 바꿔버리는 선수였다. 나는 미드필드에서 내 뒤를 받치는 선수가 비에이라와 네드베드라는 사실이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유벤투스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나는 로마전에서 센터 필드 근처에서 에머슨의 패스를 받아 공이 땅에 닿기도 전에 백힐로 로마 수비수 사무엘 쿠포르를 넘겨버렸다. 로마 진영이 텅텅 비어 있는 걸 알아차리고 높이 공을 띄어버린 것이다. 나는 쿠포르를 제치고 앞으로 뛰어갔다. 쿠포르는 나를 따라잡지 못하고 옷자락을 잡으려다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떨어지는 공을 하프 발리로 때려 로마 골키퍼인 도니를 제치고 득점을 올렸다. 

“맘마 미아, 쥑이는 골이구먼!”

나중에 기자들이 들려준 말처럼 전도유망한 한 해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스웨덴에서 주는 골든볼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우수 선수상 부문이었다. 물론 기쁘기야 했지만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Aftonbladet가 시상식을 준비했는데, 나는 구원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 머물렀다. 토리노는 곧 동계올림픽이 열릴 참이라 어딜 가든 인파가 북적댔고 카스텔로 광장에서는 늘 파티나 야회 콘서트가 열렸다. 밤이 되면 헬레나와 나는 테라스에서 서서 광장을 구경했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래서 아이를 갖기로 했다. 혹은 그런 결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게 된 것 같다. 그런 일은 누가 정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일어난다.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때때로 말뫼로 가족을 방문하러 가곤 했는데 헬레나가 농장을 팔아버려서 엄마 집에서 지낼 때가 잦았다. 내가 엄마한테 사드린 바로 그 집에서. 나는 종종 엄마 집 잔디밭에서 공을 찼다. 그러다가 하루는 슛을 날렸다. 지옥처럼 강렬한 슛을.


공은 담장을 뚫어버렸다. 엄마는 담장에 난 구멍을 보고 나를 아작내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는 평소에도 한성깔 하시는 분이었다.

“당장 나가서 새 담장이나 사와. 어서.” 

당연히, 이럴 경우, 복종만이 살길이었다. 그래서 나와 헬레나는 Bauhaus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낱개로는 보드를 팔지 않아서 담장 전체를 사야 했다. 아담한 집 담장이었지만 차에는 모두 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보드를 짊어지고 2킬로미터 길을 걸어가야 했다. 마치 아빠가 내 침대를 나르던 때와 같이. 내가 담장 일을 마무리하자 엄마가 기뻐하셨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행복했다. 


그러나 축구장에서는 흐름을 잃고 있었다. 나는 몸이 무거워졌다. 몸무게가 98킬로그램까지 이르렀는데 대부분 근육하고는 상관이 없었다. 하루에 두 번씩 파스타를 먹어댄 게 큰 댓가를 치르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 폼을 되찾으려 몸무게를 줄이는 훈련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예를 들어 모지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대체 뭔 수작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계약을 갱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지는 차일피일 계약을 미루며 변명만 늘어놓았다. 모지는 늘 수가 무궁무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다음 주에, 다음 달에, 그런 궁색한 답변뿐이었다. 결국, 나는 짜증이 나서 미노에게 말했다.

“ㅅ x, 그냥 사인하자! 이제 다투는 것도 지겹다.”


막상 새 계약서를 받아보니 제법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계약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뭐, 모지는 좋다, 잘됐다라면서 며칠 뒤에 싸인하자는 말을 하기는 했다. 당장은 챔피언스리그전인 바이에른전이 우선이었다. 나는 토리노에서 열린 홈경기에서 바이에른의 중앙 수비수인 발레리엔 이스마일과 부딪히게 되었다. 발레리엔은 시합 내내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그러다가 꽤 지저분하게 나를 잡아채길래 발길질을 해주고 노란 딱지 한 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90분이 다 되어가고 있을 무렵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넘어졌다. 당연히, 가만히 있어야 했다. 우리는 2-1로 이기고 있었고 이제 곧 종료 휘슬이 울릴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때렸고 노란 딱지를 추가로 얻게 되었다. 당연히 카펠로는 화가 나서 나한테 호통을 쳤다. 카펠로를 탓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고 나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카펠로의 본업이었다. 


그런데 모지도 나를 가르치려고 했다. 모지는 새 계약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내가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했다. 화가 났다. 실수 한 번 했다고 재계약을 않겠다? 

“모지한테 가서 어떤 계약서를 들고오든 절대 싸인해주지 않을 거라고 전해.”

내가 미노한테 말했다. 

“이적해야겠다,”

“잘 생각하고 말해.”

나는 생각을 해보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참을 만큼 참았고 더는 인내심이고 뭐고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미노가 모지를 찾아갔다. 미노는 다음과 같이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즐라탄을 조심하세요.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미 x 놈입니다. 까딱하면 즐라탄을 잃을 수도 있어요.”

2주 후, 모지가 계약을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모지는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미노는 만날 자리를 예약했다. 그런데 그 지x을 하고 나서도 여행을 갈 거란 핑계를 대고 또 약속을 미루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미노가 전화했다.

“수상해.”

“수상하다니? 뭐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모지가 평소답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미노뿐만 다른 사람들도 이상 징후를 감지하게 되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떠돌고 있었다. 당시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라포 엘칸의 추문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라포 엘칸은 지아니 아그넬리(위키내용참조 1921-2003 파이트사 회장 역임, 한 때 이탈리아 최고 부자. 페라리, 유벤투스도 피아트사의 자회사)의 손자로서 나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죽이 맞지 않았다. 엘칸은 플레이보이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나와는 사는 세상이 달랐다. 게다가 엘칸은 유벤투스에도 거의 관여하지도 않았다. 실질적으로 유벤투스는 소유주가 아니라 모지와 지라도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라포 엘칸이 클럽과 피아트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나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옷 잘 입는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엘칸이 일으킨 추문은 무척 반향이 컸다. 


라포 엘칸은 코카인을 과다 복용했다. 그것도 성전환 매춘부를 토리노의 한 아파트로 데리고 가서. 엘칸은 구급차로 병원으로 옮겨져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엘칸의 추문은 이탈리아 전역을 뒤덮었다. 델 피에로와 몇몇 선수들은 미디어를 통해 엘칸을 지지하기도 했다. 물론, 축구하고는 전혀 무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뒷날 엘칸의 스캔들은 유벤투스의 파국을 상징하는 시발점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는 모지가 언제부터 경찰 수사를 알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미디어가 떠들어대기 전에 이미 심문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예전 약물복용 추문이 모든 일의 시초였다. 혐의를 벗은 바로 그 사건 말이다. 경찰은 당시 수사 중에 모지의 전화를 도청하다가 약몰복용건과는 관련이 없지만 뭔가를 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 모지는 분명히 유벤투스 경기에 “옳은” 심판을 배정받으려 애를 썼다. 그 점이 경찰이 도청을 지속했던 이유였다. 분명히 별별 소리가 오갔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기록을 모두 모아놓자 혐의가 그럴싸하게 보였다. 나는 그 증거라는 것들이 그다지 신통치않다고 느꼈지만 말이다. 나는 유벤투스가 일등이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확신한다.


늘 그렇듯이, 일인자는 질시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이 터진 시점이 우리가 리그를 지배하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물론 굉장히 고약하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다. 미디어에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대부분 헛소리였다. 심판이 우리를 봐줬다고? 이것 보소. 우리도 어렵게 싸웠단 말이오. 우리는 다리가 부러질 각오로 뛰었고 절대 심판과 한편이 된 적이 없소. 그리고 심판이 나를 봐주고 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오. 솔직히 말해, 내 덩치는 그런 도움을 받기조차 거부하오. 이것들이 백날 나를 건드려 받자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지들은 스치기만 해도 4미터를 날아갔단 말이오. 내 플레이 스타일은 그런 일과 맞지 않소. 


나는 절대로 심판과 친구가 된 적이 없었다. 우리 팀 누구라도 그랬다. 아니, 아니. 우리는 최고였고 리그를 씹어먹을 참이었다. 누가 뭐래도 진실이었다. 그리고 수사 결과도 석연치 않은 점이 허다했다. 예를 들어, 수사를 주도한 구이도 로시는 인테르와 가까운 인사였는데 인테르는 이상하리만치 조금도 혐의를 받지 않았다. 유벤투스가 최고 악당으로 보이도록 수사 결과에서 누락된 부분도 많았고 과장된 부분도 있었다. 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와 심판 연합도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모지의 전화가 샅샅이 도청당한 덕분에 우리가 가장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그 증거라는 것이 그다지 신빙성 있게 보이지 않았다. 맞다. 어떤 변명을 대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인정한다.


증거를 들어보면 모지가 이탈리아 심판 대장한테 좋은 심판을 배정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처럼 보인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형편없는 심판을 배정받았다고 호통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듀루가르덴과 붙을 때 주심을 본 판델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패한 2004년 11월 레지나전에서는 몇몇 심판이 드레싱룸에 남아서 헤어드라이기를 맞았다고도 한다. 또한, 교황 건도 있다. 당시 교황이 서거 직전이었다. 그래서 전 경기를 미루고 나라 전체가 애도를 표할 참이었다. 그런데 모지는 내무부 장관한테 전화를 걸어 경기가 열리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들리는 바로는 당시 우리와 붙게 될 상대팀은 부상 중인 선수가 두 명, 출장정지 중인 선수가 두 명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예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런 배후 공작은 축구계에서 노상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까놓고 말하는데, 도대체 심판을 욕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그리고 자기 클럽을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사건은 모지게이트라는 뜻으로 모지오폴리로 불렸다. 그리고 당연히, 내 이름도 수면으로 떠올랐다. 당국에서 팀 내 최고 선수인 나를 거론하리라는 건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다. 모지가 나와 반더바르트 사이에 생긴 싸움을 두고 내가 책임을 면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말도 있었다. 그놈 참 배짱 하나는 끝내주는구먼, 혹은 대충 그 비슷한 말을 하면서. 심지어는 내가 싸움을 걸도록 모자가 부추겼다는 말도 나돌았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흥미있어했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모지의 전형적인 일면과 이브라의 평소 행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라면서. 그러나 당연히 헛소리였다. 나는 누가 시켜서 싸운 게 아니라 그냥 내 맘대로 싸운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즈음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나돌았고 나는 5월 18일 아침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당시 우리 부부는 몬테 카를로에서 알렉산더 외스트문트 가족과 지내고 있었는데  경찰이 우리 아파트에 당도해 수색영장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즉시 토리노로 차를 달려 아파트 밖에서 경찰을 만났다. 참, 이 말은 꼭 해둬야겠다. 거기에 나온 사람들은 다들 신사였다. 단지 자기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유쾌한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내가 범죄자라도 되는 양 유벤투스에서 받은 지급명세서를 샅샅이 조사하려고 했다. 그리고 뒷돈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NAVER!”

그러자 경찰은 아파트를 뒤졌다. 그러나 내가 선수를 쳤다. 

“찾는 게 이거죠?”


나는 헬레나와 내 은행 서류를 모두 다 내줬고 경찰도 흡족해했다. 그리고 고맙다며 공손히 작별인사를 했다. 마치 내가 위대한 선수라서 경외한다는 태도로. 그즈음 유벤투스의 경영진인 지라도, 베테가 그리고 모지가 사임을 발표했다. 그들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저는 영혼을 잃었습니다. 제 영혼은 죽었습니다.”

모지는 신문에 그런 말을 했다. 


다음 날 밀라노 증권 거래소에서 유벤투스의 주식이 폭락했다. 그래서 훈련장에서 긴급모임이 열렸다. 영영 잊지 못할 모임이. 모지도 참석했다. 겉으로는 평소처럼 멀쩡해 보였다. 좌중을 휘어잡는 아우라와 멋진 옷매무새. 그러나 진짜 모지가 아니었다. 설상가상 그즈음 모지의 아들도 추문이 일었다. 바람을 피웠다나 뭐라나 하는 일로. 그리고 모지도 아들의 추문을 이야기했다. 정말 체면이 구기는 일이라면서. 나는 모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게 기억난다. 모지가 털어놓은 말은 축구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생활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 감정을 움직인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모지는 울음을 터트렸다.-좌중을 앞에 두고. 내 배가 다 울렁거렸다. 전에는 모지가 약해진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남자는 늘 군림하는 위치에 있었다. 모지는 권력을 발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모지는 얼마 전에 내 계약 건을 두고 장난을 쳐댔다. 그러나 지금은 갑자기 모지가 안쓰러웠다. 어쩌면 세상이 뒤집힌 이 마당에 모지를 딱하게 여기기보다는 비난을 했어야 옳았을지도 모른다. ‘자기 잘못은 스스로 탓하시오.’ 하는.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모지가 안쓰러웠다. 모지 같은 남자가 추락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훗날 좀 더 세상 물정에 밝아지고 난 후 이때를 곰곰이 되짚어 보고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모지가 왜 내 계약을 차일피일 뒤로 미루었던 것일까? 모지는 왜 내 계약건을 두고 그리 법석을 떤 걸까? 나를 보호할 의도였나?


나는 그럴게 믿기로 했다. 정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모지는 사태를 파악하고 유벤투스가 몰락하리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클럽에 묶인다면 ㅈ된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클럽에 남아야 하니깐. 나는 모지가 그런 상황을 고려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마 모지는 빨간 등이 들어 온다고 늘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것처럼 모든 규칙을 다 준수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직업 분야에서는 뛰어난 수완가였고 선수들을 잘 보살펴주었다. 나는 확신한다. 모지가 없었더라면 내 경력이 끝장이 났을 거란 사실을. 나는 그 점이 고맙다. 그래서 나는 온 세상이 모지를 비난할 때도 모지 편에 섰다. 나는 루치아노 모지가 좋았다.


유벤투스는 침몰하는 배였다. 세리에 B나 세리에 C로 강등될 거란 이야기도 나돌았다. 미친 이야기처럼 들렸고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팀을 재건하고 리그를 2연패 한 우리가 시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던 일로 모든 걸 잃게 된다고? 감당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경영진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아침 일찍 알레씨오 세코한테서 걸려온 전화가 기억난다.


알레씨오 세코는 예전부터 유벤투스의 팀 관리자였다. 그리고 나한테 전화를 걸어 훈련 일정을 가르쳐준 사람도 알레씨오 세코 단 한 명뿐이었다.

“내일 아침 열 시에 훈련시작한다! 늦지 않게 나와.” 거 참 말투하곤. 그런데 그 순간 알레씨오 세코가 모지를 대신해 새로 부임한 디렉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나는 알레씨오 세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나 알레씨오 시코는 그 첫 전화에서 개회사로 충고를 해주었다.

“오퍼가 오면, 즐라탄. 받아들여.”


그야말로 가장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한테서 들은 말이 그랬다. 그 이후, 상황이 험악해졌다.

다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씩 둘씩 선수들이 떠나갔다. 튀랑과 잠브로타는 바르셀로나로, 칸나바로와 에머슨은 레알 마드리드로, 패트릭 비에이라는 인테르로, 그리고 아직 떠나지 못한 자는 에이전트를 불렀다.

“나 좀 팔아라, 남은 옵션이 뭐야?”


절박함이 떠돌고 있었다. 더는 알레씨오 세코의 충고 같은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클럽은 목숨을 부지하려 투쟁하고 있었다. 경영진은 계약서의 허점을 이용해 우리가 떠나가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악몽이 따로 없었다. 나는 승승장구하던 경력이 꺾일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추락을 면치 못하게 되는 걸까? 우려의 시기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걱정이 커져만 갔다. 싸우겠어. 말도 안 돼. 2부리그에서 1년을 희생할 순 없어. 말은 1년이라고 하지. 하지만, 몇 년이 더 걸릴 수도 있어. 1년 만에 돌아온다고 해도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만큼 정상에 오르려면 또 몇 년이 더 걸릴 거야. 어쩌면 영영 회복 못 할지도 모르고.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날려버릴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수시로 미노한테 연락했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날 여기서 빼내야 해.” 

“작업 중이야.”

“꼭 그래야 해.”


그해 2006년, 나는 헬레나가 임신해서 행복했다. 출산일은 9월 말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까?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당시 나는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국대에서 훈련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독일로 올 예정이었다. 엄마, 아빠, 삽코, 사넬라와 남편 그리고 케키까지도. 그리고 늘 그랬듯이, 호텔, 여행, 비용, 렌터카 등등 내가 다 도맡아 처리해야 했다.


나는 꽤 일찌감치 짜증이 났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아빠가 빠져버렸다. 뭐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 티켓을 두고 법석이 일었다. 티켓을 어떻게 해야 하지? 누가 대신 갈래? 그런 난리통에 내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고 말 못할 것이다. 게다가 사타구니에도 이상이 생겼다. 아약스에서 수술받은 바로 그 자리에. 나는 국대 담당자한테 이야기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간에 나를 출전시키기로 했다. 나는 원칙이 있었다. 경기력이 나쁘더라도 부상 탓은 하지 말자. 무슨 말이냐면 부상으로 경기력이 나쁘다면 애초에 왜 경기를 뛰냐? 가만히 있지. 어떤 대답이든 궁색할 게 뻔했다. 일단 뛰기로 했으면 부상이고 뭐고 핑계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부상을 달고 뛰면 몹시 괴로운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7월 14일 드디어 마지막 선고가 이탈리아에서 날아왔다. 리그 타이틀 두 개를 무효로 하고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박탈.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세리에 B로 강등을 당해 아마 30점쯤 승점이 대폭 깎인 채 다음 시즌을 시작하게 된 게 가장 컸다. 나는 아직 침몰하는 배를 타고 있었다. 

 


유베에서 인테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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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와 미노의 협상 혹은 만담... 의 내용과 파트릭 비에이라와의 첫 만남, 

그리고 그 유명한 세리에 칼치오 폴리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즐라탄 자서전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이 재밌네요ㅋ 즐겁게 보시길~

출처는 알싸의 바찌오 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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