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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보스케:레알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진정한라울 2006.03.20 23:21 조회 2,291
델 보스케, 레알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 프리메라리가 2004/07/25 15:39







본격적인 04~05 시즌을 앞두고 있는 유럽의 전반적인 리그들은 곧 개막될 새로운 시즌을 위해 한창 담금질을 하고 있다. 다음달 9일(이하 한국시간) 개막을 앞두고 있는 터키의 수퍼리그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각 팀들은 마지막 전력 점검에 한창인 모습이다.

터키 리그는 지난 시즌 페네르바체가 3년만에 리그 우승을 되찾아 오면서 이스탄불의 3대 명문인 갈라타사라이와 베식타스가 지난 3시즌 동안 한번씩 번갈아 가면서 우승을 차지하는 군웅할거의 양상을 띠고 있다. 터키 3대 명문의 한 축인 갈라타사라이가 재정 위기와 함께 6위로 내려앉았으며 지지난 시즌 우승팀인 베식타스 역시 3위에 머물며 주춤했다. 04~05시즌 역시 이들의 3파전 양상이 될 것이라는 예상에는 이견이 없다.

이 중 베식타스는 오프 시즌 동안 스위스 각 도시들에서 소규모로 연달아 개최되는 알프스컵에 참가, 마무리 전력 점검을 하고 있다. 4팀이 참가하는 이 대회는 스위스에 훈련 캠프를 차린 팀들에게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 동시에 스위스 팬들에게는 흔히 보기 힘든 타리그 팀들의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 수년째 지속되어 오고 있는 대회이다. 이 중 베식타스는 덴마크의 명문 브론비와 함께 첫 주에 열린 대회는 물론 2번째 주에 열린 대회까지 계속 참여하며 마지막 전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베식타스의 벤치에서 반가운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으로 02~03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일군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었다. 알프스컵은 올 시즌 베식타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자리잡은 그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였던 셈이었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과 선수 시절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콧수염은 여전했고 무더위 속에도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델 보스케의 모습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델 보스케. 02~03 시즌 리가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을 견인하는 등 훌륭한 성적을 거뒀지만 정작 그는 팀을 떠나야만 했다. 팀 역사상 29번째 리가 우승을 팀에 선사한 뒤 그는 해고의 운명을 맞았고 구단주인 플로렌티노 페레스는 '구 시대적이지 않은 현대적인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말로 그의 해고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

물론 페레스의 해고에 대한 변은 이유를 위한 이유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듯, 델 보스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던 바 있다.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예롭게 레알에서의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는 레알의 연습장인 씨우다드 데포르티바(Ciudad Deportiva)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정든 자신의 집을 떠났다. 35년간이나 선수로, 그리고 감독으로 몸담았던 레알 마드리드와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델 보스케는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모두 레알과 함께 우승을 차지한 인물로 모두 7번의 리가 타이틀을 차지했다. 통산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 28~29 시즌 시작된 프리메라리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겨우(?) 6명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데, 그것도 모자라 타이틀 수에서 역대 3위에 올라 있으니 그가 프리메라리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영웅중 한 명인 요한 크라이프와 현 레알의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호르헤 발다노는 각각 5차례와 4차례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아름다운 도시 살라망카(Salamanca)에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 항상 연습장에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빠져나갔을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축구에 대한 넘치는 열정 못지 않게 가정에도 소홀하지 않는 가장이자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의 두 아들 중 막내는 선천적으로 다운 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경우였는데, 그는 둘째 아들을 키우면서 "인내하는 법과 모든 것 하나 하나에도 본연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또한 남을 위한 배려와 평점심을 유지하는 법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을 통해 배웠노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패자를 생각하며 감정을 자제하는 모습은 바로 그를 통한 배움이었다고 전한다.

호나우두, '델 보스케와 훈련 즐겁다' 훈련일지 기록

레알에서 사령탑을 맡은 3년 반 동안 그는 수많은 스타 선수들과 함께 해왔지만 이미 완성된 스타들의 조화를 추구한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레알을 이끌어갈 신예 선수들을 발굴, 육성하는 데에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카시야스, 파본, 포르티요, 미냠브레스, 라울 브라보 등이 바로 그의 손을 거쳐 리가에 안착한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그가 신예의 발굴에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84년 레알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직후 곧바로 시작했던 일이 유망주 발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찾아내 레알 유스팀으로 스카우트 해오는 일이 그가 레알에서 첫 프런트로서 했던 업무였던 셈이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가족의 품을 떠나 살라망카에서 마드리드로 건너온 델 보스케. 레알 유스팀에 입단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대도시에 입성한 그에게 마드리드에서의 생활을 너무나 힘들고 복잡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델 보스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 시골에서 갓 올라온 어린 청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살라망카는 정말 문명과는 동 떨어진 곳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 마드리드에서 단 한번도 보수주의자라고 취급받지 않았다. 오히려 진보주의 쪽에 가까운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이해되었다.”

레알 유스팀에서 2년을 보낸 그는 이후 3년간 카스텔론과 코르도바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73년 다시 레알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84년까지 무려 11년간 레알을 지킨 그는 귄터 넷쳐, 파울 브라이트너 등과 함께 5번의 리가 우승을 이끌며 대 활약을 펼쳤다. 26세의 나이로 레알에서 한창 활약을 펼칠 당시였던 그는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트레이너 자격증 과정을 함께 병행하게 된다. 이러한 부지런함 덕분에 그는 8년 뒤 34살의 나이로 현역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유스팀에서 코치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레알에서의 첫 프런트 직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유망주 발굴이었다. 유망주 발굴로 시작한 그의 프런트 직은 유스팀 감독을 거쳐 아마추어팀 감독 그리고 유스팀 총 책임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99~00 시즌 도중 해임된 존 토샥 감독을 대신해 감독으로 취임한 것이었다. 사실 93~94 시즌과 95~96 시즌 도중에도 잠깐이나마 임시 감독으로 자리했었던 바 있었기 때문에 레알의 감독직이 아주 낯선 것은 아니었다. 토샥의 후임으로 감독직에 올랐을 때에도 처음에는 이전의 경우들처럼 임시 감독직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후일 정식 감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는 결과적으로 후임인 케이로스 감독이 지난 시즌 부임할 때까지 3년 반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레알의 사령탑으로 재직한 셈인데 이는 102년이 넘는 클럽 역사상 손꼽힐 정도의 장수(?)를 누린 케이스였다. 정확히 102년의 클럽 역사상 1000일 이상 일관되게 레알의 감독으로 재직한 경우는 델 보스케를 비롯해 6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특히 최고의 팀을 표방하며 스타급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한 96년부터 99년까지의 3년간은 무려 7명의 감독이 팀을 맡는 일대 혼란기를 겪기도 한 바 있다.

그는 감독에 부임하면서 예의 권위적인 감독들의 전형적인 모습과 권위를 앞세운 기존의 지도 방식을 벗어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지도자 상을 정립했다. 오랜 기간 레알 맨으로 활동해오던 그로서는 당장 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기량면에서 그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 스쿼드를 보유하고 있던 레알이었던 만큼 세세한 주문보다는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선수들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어떤 위치와 어떤 전술이 최상의 조합인지를 함께 생각하며 선수단을 재정비한 것이다.

델 보스케의 이러한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14라운드 한때 17등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치던 리가 순위는 5위로 마무리함으로써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같은 리그의 라이벌 발렌시아를 3-0으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들 개개인이 모두 경기하는 즐거움을 찾았다는 점일 것이다.

훗날 레알에 합류한 슈퍼스타 호나우도의 훈련 일지에 적힌 글을 보면 델 보스케의 지도 방식이 얼마나 선수들에게 큰 믿음을 주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훈련과 모든 경기들에서 델 보스케와 함께 했기에 모든 상황들을 즐길 수 있었다." 이는 델 보스케의 해임이 결정된 이후 호나우도가 훈련 일지에 적은 내용이었다.

레알에서의 해임이 결정된 이후 델 보스케는 그간 레알의 감독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고충을 털어놓았다. "내가 레알에서 이루었던 성과들처럼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과들을 이룬 감독이라면 이어지는 다음 시즌은 매우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다음 시즌에 우승 타이틀을 건지지 못한다면 그 감독이 가야할 길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바로 팀을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 :사커라인  

감회가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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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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