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10번, 레알마드리드의 10번.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번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레알마드리드의 팬이라면 당연히 7번이라고 생각 하실 수도 있고, 실제로 축구를 할 때 공격 보다 수비를 하는 분들은 4번을 중요한 번호로 생각 할 수도 있고, 축구왕 슛돌이에서 줄리앙 같은 선수를 좋아하는, 그러니까 예전 4-4-2로 대표되던 그 시절의 공격수들을 좋아하신 분들은 9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축구는 10번 같네요. 10이란 숫자가 가장 완전한 숫자이기도 하거니와, 90년대 이탈리아 축구가 주류를 이루던 그 무렵에 가장 중요한 선수에게 주던 그 번호이기도 하고, 온갖 축구만화와 영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중요하게 표현되는 번호가 10번이기도 하죠.
실제로 10번은 필드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레이를 하는 선수. 가 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팬들을 흥분시키고, 기대하게 만들고, 무언가 "의외성"을 플레이에 녹여낼 수 있는 선수의 번호.
7번이라는 번호가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선수의 번호" ,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팀의 주장의 번호" 라는 인식이 강하다면, 10번은 에이스 플레이어의 번호라는 인식이 강하죠.
우리 팀에서는 메수트 외질. 바르셀로나에서는 리오넬 메시입니다.
10 vs 10을 얘기하기에 이번 시즌에 외질이 보여주는 활약이 조금 미미했어서 (ㅠㅠ) 조금 섣부른 감이 있었습니다만, 최근 경기에서 완벽하게 폼이 올라온 모습은, 이제 레알마드리드의 10번으로서 그 활약을 이야기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네요.
우선 세상에서 젤 미운 10번. 그 꼬맹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잘하긴 잘합니다. 인정. 가장 축구다운 축구를 하는 녀석이죠.
재미있는건 그 꼬맹이가 10번을 달기 이전에 바르셀로나의 10번은 호나우지뉴의 것이었죠. 그 때 리오넬 메시의 플레이는 측면에서 주로 이루어졌고, 그의 가장 대표적인 플레이는 오른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오며 수비를 떨쳐내고 슛을 날리거나 패스를 하는 것. 이었죠.
당시 레알마드리드의 아르옌 로벤의 플레이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고 나서 호나우지뉴가 이적해가고, 08-09 부터 이 꼬맹이는 10번을 달고 경기를 하게 됩니다. 08-09때에는 최전방에 에투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도 있었고, 좌측에 앙리도 있었기 때문에 메시는 우측의 한 축을 맡아 공격하면 되었습니다.
09-10 때까지만 해도 샤비와 즐라탄, 이니에스타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도 있고, 지금 말하려는 리오넬 메시의 "10번으로서의 장점" 이 발휘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오넬 메시가 10번의 플레이에 눈을 뜨기 직전이었던 시즌이고, 이런 말 하면 분통터지지만, 그래서 우리는 이때 엘클라시코에서 비교적 플레이에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카카가 워낙 잘하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제 펩 과르디올라가 즐라탄을 내치고, 메시를 중앙에 놓는 지금의 전술을 완성시키면서, 녀석의 10번으로서의 재능은 만개합니다. 정확히는 월드컵에 다녀온 다음부터라고 할까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리오넬 메시의 우위를 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리오넬 메시는 "중앙에서도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베론이라는 플레이어를 선발해서 중원에서의 볼배분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메시는 베론과 이과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것을 주문받게 되죠.
즉, 원래 측면에서 플레이를 업으로 삼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최고의 윙포워드"로 분류되던 녀석이, 이제 중앙에서 플레이하는 법을 익히게 되는 거죠.
월드컵에서는 결국 8강에 그쳤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의 이 부분에 주목해서 계속 메시에게 이 역할을 맡기기도 합니다. 사실 파브레가스가 오기 전에 메시를 중앙 공격수로 놓는 그 전술이 바로 메시의 그 능력을 믿고 맡기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아르헨티나에는 없고 바르셀로나에는 있는, 그네들의 중원이 가운데에서 볼을 전개하는 메시의 움직임을 돕는 겁니다.
결과는 대성공. 최고의 측면 플레이어중의 하나였던 메시는 "중앙에서 볼을 분배하는 능력" 까지 옵션으로 장착하게 되면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한발짝 앞서나갈 수 있게 된겁니다. 그리고 측면에서도, 중앙에서도 플레이하는 메시를 효과적으로 봉쇄하지 못해서 엘클라시코에서 승리하지 못한 경기도 많았죠.
상대방 전술에 따라, 경기의 양상에 따라, 메시가 중앙에서 약간 아래쪽으로 쳐지면서 산체스-비야(또는 페드로)와 샤비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그것이 매우 효과적인 전술이 된다는 것. 이것이 그 꼬맹이의 진가라면 진가입니다.
호날두와 메시의 이야기에서 왠만하면 호날두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저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메시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더 얄밉구요. 이런 면에서, 맨유와 포르투갈이 시도했던 "호날두 원톱" 전술이 대실패로 끝난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호날두가 원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면, 메시와는 또 다른 언터처블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해도 측면에서의 효용성만으로는 호날두가 메시에게 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니셔로서의 기량은 메시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하구요. )
이제 우리의 10번. 메수트 외질에 대해서 볼까요.
사실 우리의 10번도 매우 훌륭합니다. 비교적 지금까지 레알마드리드의 10번은 "메디아푼타"의 역할을 하는 선수보다는, 팀에서 개인기량이 가장 좋은 선수에게 배분하는 느낌이었죠.
피구->호비뉴->스네이더->라스. 2000년 이후 우리 팀에서 10번을 달았던 선수들입니다.
이 중에서 전형적인 10번의 롤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스네이더 정도인데, 스네이더의 레알에서의 활약이란... 정말 안타까울 정도였네요.
그리고 이제 외질이 10번을 배번받았습니다. 사실 23번을 달고 있을 때의 외질의 움직임은 훌륭했죠. 오히려 두번째 시즌인 지금에 와서 첫시즌 만큼 못해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빌바오-바르셀로나전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폭발했습니다.
우선 확실히 외질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측면에서의 플레이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훌륭하다" 는 데에 있습니다. 레알로 이적해오기 전에도 측면에서 플레이했던 적이 있다고는 했지만, 영입될 당시에 외질의 플레이는 월드컵에서 본 그것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외질은 전통적인 10번. 중앙에서 볼을 분배하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로 여겨졌었죠.
그런데 이번에 디마리아가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면서, 외질은 왼발잡이가 가장 재미있게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해서 플레이를 하게 됩니다.
시즌 초반에도 무리뉴 감독이 카카와 외질의 공존을 시도하면서 외질은 우측 측면에서 플레이했으나, 그때만 해도 외질쪽의 우측 측면을 중심으로 상대를 공략한다기 보다는, 카카와 호날두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부분, 즉 좌측에 치우친 공격을 했고, 우측의 외질은 그 흐름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에 그쳤다고 본다면, 최근 경기들에서 보여진 외질의 오른쪽은 상대 수비를 벗겨내고 찬스를 만들어내는 주 공격 루트의 하나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바르셀로나에게도 통했다는 것이죠. 호날두가 이끄는 왼쪽이, 알베스와 푸욜의 거센 수비에 번번히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 디마리아가 이끄는 우측 공격은 마무리 패스의 정밀함이 떨어졌다고 한다면, 외질이 이끌었던 우측은 놀라웠습니다. 아비달은 영혼까지 탈탈 털렸고, 외질은 우측에서 계속 상대 수비를 끌어놓고 그걸 벗겨 가면서 플레이를 만들어냈으니까요.
외질이 왼발로 공을 접어가면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그렇게 좋은 선수인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팀에 드리블러는 디마리아 뿐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게다가, 외질이 측면에서 볼을 다룰 수 있게 되면, 그 자체로 측면 빌드업이 가능합니다. 바르셀로나의 이니에스타가, 그네들의 공격이 잘 안풀릴때, 그러니까 바르셀로나가 가장 자신있게 하는 플레이, 계속 볼을 소유하다 한번에 찔러주고 골을 만드는 그 플레이가 지지부진할때, 측면에서부터 새로운 빌드업을 해낼 수 있는데에 그 가치가 있는 선수라고 한다면요, 레알마드리드의 메수트 외질이 바로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중앙에서 동료들에게 볼을 배분하는 모습에 치중했던 지난 시즌과는 달리, 이번 시즌 외질은, 측면에서의 역할까지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지난 시즌에 비해 활용될 수 있는 폭을 넓혔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플레이가 측면에서, 혹은 투톱의 한 자리에서의 플레이로 한정된다고 했을 때, (사실 크리스티아누가 중앙에서 볼을 배분하고 공격 전개를 이끄는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워낙 그런 역할을 맡아 본 적도 드물구요) 메수트 외질의 측면과 중앙을 아우르는 플레이는 충분히 레알마드리드의 공격에 다양성을 더해주고, 위력을 배가시키는 증폭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호날두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젤 잘하는 것만 하면 됩니다. 호날두의 그 플레이를 얼마만큼 자유롭게 하도록 지원할 수 있느냐, 이것이 지금까지 레알마드리드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외질의 측면 플레이의 위력이 증명된 이때에는, 호날두의 플레이에 선택지가 더해지는 효과를 낼 수 있게 된 거죠.
메디아푼타로서 사용할때는 디마리아와 함께, 우측 크랙으로 사용할때는 카카와 함께. 이 두가지 패턴은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외질 스스로가 컨디션만 계속해서 끌어올려 주면 레알마드리드는 더 폭넓고, 더 위력적인 공격 옵션들을 장착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만큼 "멀티플레이어 외질"은 레알마드리드에게 핵심 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양팀의 10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꼭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아직은 외질이 나아가야 할 길이 멀죠. 그리고 메시는 원래 에이스로서 호날두와 비교되어야 하는 선수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최근 외질의 플레이가 멀티성을 띠면서 활용 폭이 넓어지고, 그것이 큰 효과를 보고 있다는 데서, 그네들의 10번인 메시와 묶어서 이야기 해봤습니다.
어차피 바르셀로나 vs 레알마드리드가 양 팀의 어떤 선수들 개인의 승패로 결과가 갈리는 것은 아니고, 팀대 팀으로서 더 많은 선택지와 확실한 공격 루트를 가진 팀이 승리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우리의 10번은 레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무기가 될 수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반기의 키플레이어가 디마리아였다면, 후반기의 키 플레이어는 외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면, 둘다 우측플레이어네요. 여태껏 마르셀로-호날두(넓게는 벤제마까지)로 대표되던 좌측마드리드에 또 다른 옵션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두 선수의 성장이 참..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레알 축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라네로-케디라(라스)-카카-외질-호날두-벤제마의 조합으로 유럽의 강호와 붙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론상으로는, 볼을 계속 소유하면서 정밀하고도 위력적인 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조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포메이션으로 맨유나 이런데를 한번 발라야 속이 시원할텐데 맨유가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ㅋㅋ (맨유 팬들 죄송해여)
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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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죽이 2012.02.11슈카님 글은 재밌으니 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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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rid]미니 2012.02.11감명깊게 읽었습니다 ^^
추천이요 ! -
Turtle Madrid 2012.02.11좋은 글 감사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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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날도 2012.02.11외지리가 살아나면 팀 전체가 살아나니.. 외지리가 언능 월클 반열로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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롹끠 2012.02.11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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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Boy 2012.02.11좋은글 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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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제마드리드 2012.02.11외질과 디마리아 , 외질과 카카.. 정말 기대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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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키 2012.02.11꼬맹이는 0809시즌부터 10번 달았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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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슈카님 2012.02.11@핑키 아 그렇군요. 판타스틱 4가 07-08이었군요 헷갈렸습니다. 수정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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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레 2012.02.11글 잙읽고가브니다 ^^
ㅊㅊ -
밤의황제 2012.02.11가장 좋아하는 등번호 10번... 라스는 좋아하는 선수지만 10번을 받았을때 왠지 찝찝하고 슬픈 느낌이 들더군요. 슈니가 이적한다기에 당연지사 카카가 받고 이제서야 제 주인 찾는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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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알 2012.02.11오랜만에 집중해서 글읽었어요..ㅋ.추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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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야신 2012.02.11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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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쩐다 2012.02.11좋은 글 춧현 ㅎㅎ 외지리 홧팅 넌 발롱 타야돼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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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_ 2012.02.11대박...ㅊ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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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2012.02.11잘 봤습니다 추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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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2012.02.11날두의 원톱은 날두가 포스트플레이가 약해서 그렇겠죠
공간개방하며 들어가거나 개방된 공간으로의 침투는 발군이지만
경합이 잘되는 친구는 아니니 -
V10 2012.02.11정말 좋은글이네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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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sillas 2012.02.11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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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agonist 2012.02.11다만 역활이 아니라 역할이에요..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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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슈카님 2012.02.11@Antagonist 으잉? 역활이라고 쓴 게 없는 것 같은데용...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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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Antagonist 2012.02.11@슈카님 엥 잘못봤나봐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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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ño-Cuoco 2012.02.11외지리 너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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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레알마드리드l 2012.02.11추천하고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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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2.1110ㅚ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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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eDiNE_카카 2012.02.11좋은글 잘 읽고가요 ㅎㅎ 앞으로 외질이 10년동안 레알에서 10번으로써의 대 활약을 펼쳐줬음 좋겠네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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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사발데스입니다 2012.02.11굳굳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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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동동 2012.02.12좋은글 잘보고 갑니다ㅎㅎ추천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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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2012.02.12일단 추천 누르고 감상! 오늘도 잘 보고 가영! 슈카칼럼 애독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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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HOLIC 2012.02.12이런글 너무 읽기 어려울것 같아서 잘 않읽었는데 재밌게 읽었네요 ㅎㅎㅎ
추천이요 ㅋ -
BELLATRIX 2012.02.12글 대단하세요 ㅠㅠ 정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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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ridStar 2012.02.12역시 레매엔 능력자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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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2012.02.12저도 카카 외질의 조합이 정말 괜찮을것 같은데 항상 아쉽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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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테 2012.02.14외질이 요즘 살아난 게 우리가 리그 우승 레이스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다만 디마리아가 복귀하면 또 어떻게 될지 과연 카카와는 공존할 수 있을지 궁금한 게 너무 많네요.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