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르 카시야스, 챔피언의 겸손 part two.
일주일 전에 올라왔는데, 이제서야 보고 올립니당! 원문은 요기*.*
(+왼쪽에 사진 넣고, 오른쪽에 글을 올리고 싶은데 그게 안되네요^.ㅜ)
으아니 재밌는 부분만 발췌해서 올렸다는데도 챕터 원이 이렇게 길면, 원래 책은 얼마나 긴건가 모르겠네영. 아, 그리고 혹시나 영어판 발매계획이나 스페인 국외에서도 공홈을 통해서 자서전 구매가 가능하냐고 이메일 보냈더니 없다고...시크하게 답장이 왔습니당.
스페인 구매대행을 찾아보아요.
파리로의 첫 여행.
열여덟명의 소년들이 최종선택을 받아 벤하민7 팀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케르도 그 중 한명이었죠.
그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Meudon 국제 토너먼트에 참가했었습니다. 그건 이케르의 첫번째 비행기 여행이었죠. 결승전은 이케르의 10살 생일날이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벤피카에게 승부차기에서 지고 맙니다.

1991-92 시즌에 이케르는 레알 마드리드(알레빈 B팀) 선수로써 처음 우승을 경험합니다. 그는 자기보다 한 살 더 많은 라이벌을 상대로 리그우승을 했죠. 이케르의 팀은 단 두 경기밖에 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케르는 모스톨레스부터 시우다드 데포르티바까지 일주일에 3일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항상 이케르를 차로 데려다주었고, 늘 훈련을 지켜보았죠. "이케르가 훈련하는 걸 지켜보는게 제 의무라고 생각했죠. 혹시나 아이가 다치거나, 비슷한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에 대비해서요. 그리고 이케르가 훈련하는 걸 지켜보는게 좋았습니다. 나중엔 이케르를 모든 경기에 다 데리고 다녔죠. 그게 제 부업이었어요."
다음 단계는 알레빈 A팀이었습니다. 알레빈A의 코치는 페드로 디아즈였는데, 그는 구티, 그라네로, 파본등을 감독한적이 있어나, 앞으로 감독할 사람이었죠. 그의 팀은 4년동안이나 무패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페드로 디아즈는 "이케르는 굉장히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얘기할때, 그가 아직 아이였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케르는 엄청난 관심을 보이면서 집중했죠. 이케르는 본인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모든 훈련과 경기를 거듭하며 그는 계속 발전했어요. 그는 매우 책임감 있고, 진지한 아이였습니다. 이케르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이 남아있네요. 이케르가 18살인가, 19살이었을때 이미 1군과 훈련을 하고 있었을때, 하루는 그가 시우다드 데포르티바에서 저를 보고 오더니 포옹을 해주더군요. 모두들 그러지는 않거든요."
나이키 컵, 그의 첫번째 big title.
이케르는 이제 인판틸 B팀으로 올라갔고, 거기서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시즌인 1994-95 시즌엔 파코 히메네즈가 감독이었던 인판틸 A팀으로 올라갔죠. 인판틸 A는 그 해 리가와 국내 나이키 프리미어 컵을 (14살 이하 축구선수를 대상으로 한) 우승하며 파리에서 열리는 유러피언 나이키 프리미어 컵에 스페인 대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1995년 5월 1일에 레알 마드리드는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이겼고, 결승전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는데, 이케르는 한번 선방을 했고, 다른 한번은 상대편의 실축이었습니다.
파리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결승전에서 만나게 됩니다. 경기는 1-1로 끝났고, (결승전에서 한골이 이케르의 토너먼트 전경기 첫 실점이었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마드리드가 5-3으로 우승하게 되었습니다. 이케르가 마지막 키커의 슈팅을 막아냈고, 대회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되었죠. 루이스 피구가 유로디즈니에서 시상을 했고, 나이키는 이케르의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고 3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나중에 1군과 스페인 대표팀에서 이케르와 다시 만나게 되는 파코 히메네즈는 그 때의 이케르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 대회에서 이미 이케르가 놀라운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동작은 엄청난 속도를 갖고 있었죠. 그는 굉장히 민첩하고, 굉장히 빨랐어요. 이케르는 환상적인 반사신경과, 주장이 되기위한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팀의 중심이 되는 아이들과 함께였지만, 굉장히 예의바른 소년이었고, 그가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걸 바로 알수 있었죠. 전 아직도 그의 아버지와 좋은 친구로 지냅니다. 우린 이케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그의 아버지는 이케르를 헌신적으로 응원해주었고, 지금의 이케르가 만들어진데는 아버지 도움이 컸죠."
대회 우승을 한 덕분에, 팀은 미국으로 포상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이키 본사가 있는 포틀랜드를 구경하고 LA도 구경했죠. 관광 중간중간 팀은 세번의 친선경기도 치뤘습니다. 그리고 마드리드에 돌아왔을때, 리그우승을 했던 발다노의 레알 마드리드가 베르나베우에서 파시요를 해주었습니다.
U-15 월드컵 in 볼리비아.
그건 1995-96 시즌이었습니다. 이케르는 라파 로페즈가 감독으로 있던 카데테B팀에 있었죠. 리그에서 팀은 25경기를 이기고, 한번의 무승부를 거뒀고, 나이키 프리미어 컵을 우승하며 볼리비아에서 열린 U-15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정은 안토니오 메스키타가 지휘하게 되었죠. 하지만 산타 크루즈 데 라 시에라의 호텔과 팀이 먹게 될 음식을 본 메스키타는 대회를 계속할지, 집으로 돌아갈지 클럽과 상의를 하게 됩니다. 최악은 첫날 밤이었습니다. 레스토랑의 음식이 도저히 먹을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메스키타는 팀에게 일어나 나가자고 말하죠. 그들은 결국 슈퍼마켓에 가게 됐습니다.
다음날, 메스키타는 미네랄워터와 먹을만한 음식을 달라며 대회조직위와 협상을 합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를 위해 남았고, 네 팀이 서로 경기를 하는 마지막 라운드에 진출했죠. 마드리드는 첫 두경기를 이겼고, 마지막엔 주최국 팀이었던 Tahuichi와 맞서게 됩니다. 주최측은 룰을 자기들 방식대로 해석하면서, (두 팀의 승점이 같았지만) 만일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다면 Tahuichi가 챔피언이라고 말했습니다. 메스키타는 물론 반발하며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도 진짜 규칙에 따른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챔피언이라고' 주장했죠. 그리고 정확히 그게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고, 레알 마드리드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었던 7분의 추가시간 끝에 챔피언이 되었죠.

그날 밤의 스타는 이케르 카시야스였습니다. 그는 거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죠. 경기가 끝나고 나서 이케르는 그라운드 위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가 긴장해 있다는건 목소리만 들어도 알수 있었습니다. 이케르는 굉장히 빠르게 말하고, 대답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죠.
"우리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들도 노력했죠. 이건 big win이에요. 그들은 챔피언처럼 싸웠지만, 우리가 골 평균으로 이겼습니다…그래도 골평균은 유효해요, vamos, vamos!"
리포터는 그에게 팀의 누가 가장 잘했냐고 물어봤을때 그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팀이니까요. 필드위에 있었던 열한명 전부 다 잘했죠. 우리 모두는 필드 위에서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 하고, 전 제가 할수 있는 모든걸 팀에 주는만큼 다른 선수들도 그렇게 하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팀을 응원하냐는 질문도 받았죠. 처음에 이케르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리포터가 다시 질문을 반복하자, 이케르는 "전 죽을때까지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해요"라고 했죠. 그리고 이케르는 그의 우상은 Buyo, Juanjo Valencia와 Schmeichel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라파 로페즈는 "내가 하나 실수를 했죠. 난 이케르에게 넌 4년만 있으면 1군에서 뛸거야, 라고 했지만 그건 3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열네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골대 사이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는 다이아몬드였어요. 이케르에 맞서 득점하기는 굉장히 어려웠죠. 1대1 상황에서 그는 절대 지지 않았어요. 결승전에서 난 이케르가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될 걸 알았어요. 그의 선방은 믿을 수 없을만큼 굉장했죠…클럽엔 제가 사인한 리포트가 있는데, 거기엔 그가 18살이 될ㄸㅒ쯤 1군에 있을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케르는 17살에 그걸 해냈죠. 델보스케도 그 리포트를 읽었어요."
Juanjo Martin Delgado가 코치로 있던 카데테 A팀에서도 이케르는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의 팀은 25승 1무로 리가에서 무패행진을 이어갔지만, 코파 데 마드리드 결승전에선 승부차기 끝에 지고 말았죠. 유러피안 챔피언십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클럽은 이케르의 가족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매달 25000 페세타 (150유로=23만원)씩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돈은 이케르 어머니가 관리하게 되었죠. 이케르가 샀던건 새 장갑 한 켤레뿐이었습니다.
몇년 후에, Juanjo가 벤피카의 Heynckes의 어시스턴트가 되기 위해 떠났다가 다시 시우다드 데포르티바로 돌아왔을때 이케르는 Juanjo에게 포옹을 해주기 위해 그의 차를 세웠습니다. 문 반대쪽에서 여성팬들에게 둘러싸여 갇히게 될 걸 알면서도 말이죠.
두단계를 뛰어넘다.
1997-98 시즌에 이케르는 Luis Palmero가 감독하던 후베닐 A팀에서 뛰었습니다. 델보스케는 전부 다 긍정적인 리포트들을 보고 이케르가 카데테 A에서 후베닐 A로 곧장 승격할수 있게 허가를 내주었죠. 팀은 리가에서 19점 앞선 1위로 우승했습니다. 그 시즌에 이케르는 3부리그에 있던 RMC에 가끔 소집되었죠. 이 때 이케르는 클럽과 처음으로 정식계약을 맺습니다. 3년 계약에 1.5m, 3.5m, 5m (30,000유로=4500만원) 계약이었는데, 다음해 이케르가 3부리그로 올라가며 새로 계약을 맺어야만 했죠. 새 계약은 30m, 35m, 40m (240,000유로=3억6천만원)이었습니다.
팔메로는 이케르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는 항상 모범적으로 행동했어요. 우리와 5시에 훈련하기 위해서 그는 세시에 학교에서 나와야했죠. 모스톨레스에서 기차로 여기까지 오려면 한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는 말썽을 부린적이 없었고, 우리도 그를 한번도 혼낸 적이 없었죠. 그는 지금보다 더 소극적이었어요. 그리고 굉장히 책임감 있게 행동했죠."
이케르의 첫 1군 경험은 그 해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Rosenborg까지 1군과 같이 갔지만, 경기에서 뛰지는 않았죠.
그리고 1998-99시즌 이케르는 RMC로 승격되며 다시 한번 Martin Delgado를 코치로 만나게 됩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에 이케르는 1군과 함께 훈련을 했죠. 몇몇 1군선수들이 그를 '날개 밑에 품었습니다.' 콘트레라스와 모리엔테스가 Rosenborg로의 여행에 대해 이케르에게 말을 걸었고, 이케르는 그들이 그걸 기억한다는데 놀랐었죠.

훈련이 아침이었고, 이케르의 아버지가 직장에 있어서 그를 데려다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케르는 시우다드 데포르티바까지 세개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먼저 그는 모스톨레스의 집에서 기차역까지 한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거기에서 마드리드의 아토차역까지 기차를 탔죠. 그 다음 기차를 갈아타고 차마르틴 역까지 간다음, 베고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해답은 5만 페세타나 했지만, 탈때마다 135 페세타인 기차나 165페세타인 버스보다 더 경제적인 월 정액권에 있었습니다.
그 시즌에, 이케르는 챔피언스 리그에 1군과 동행했었습니다. 그리고 클럽은 단 한번이라도 1군에 소집되었던 선수들을 모두 도쿄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컵에 초정했죠. 이케르는 써드 키퍼로 도쿄에 갔지만, 벤치에 앉지는 않았습니다. 대회 결승전은 Vasco de Gama를 상대로 12월 1일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케르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로베르투 카를로스의 첫번째 골을 보지 못했습니다. 잠시후, 그는 마드리드의 교체선수들을 까고 있던 Vasco de Gama의 선수 한명과 거의 싸움이 붙을뻔 했죠.
"라울이 득점했을때, 그들에게 뭔가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매너를 지키기 위해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전 제가 경기에 뛰었던 것 마냥 신났던 걸로 기억해요. 코파와 함께 사진을 찍고, 필드를 뛰어다니고, 라커룸에서 샴페인을 터뜨리고, 시벨레스에서 축제를 즐겼죠. 라울 옆에서 코파를 들어올리고, 팬들이 축하를 해줬는데, 그땐 정말 제가 거기 있다는걸 믿을수가 없었어요. 시벨레스에서의 경험이 절대 잊을수 없는 경험이죠. 저와 가장 말을 많이 했던 선수들 중 하나였던 모리엔테스가 제게 열일곱에 세계 챔피언은 아무나하는게 아니라고 말해줬었는데, 그가 맞았었죠…"
며칠뒤 12월 17일에, 그는 공식적으로 1군에 소집되어 오비에도까지 가게됩니다. 알만사는 부상을 당했었고, 오직 일그너만 남아있었죠. 이케르는 벤치에 앉아있었습니다. 월요일에 그는 영어와 수학 시험이 있었죠. 그는 공부를 많이 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팀은 1-0으로 졌죠.
그 해가 다 지나가기전에, 이케르는 베르나베우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허리케인 미치 피해자들을 위한 자선경기에서 데뷔를 했습니다. 그 경기에선 우리의 영원한 라이벌이 이겼죠.
그 다음 시즌, 이케르는 Paco Garcia Hernandez의 지휘 아래에서 2부리그에 있던 Real Madrid B에서 뛰었습니다. 1군에서 토샥은 일그너와 비자리 두 키퍼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었습니다. 일그너는 부상을 당했고, 감독은 훈련 경기 중에 두번의 굉장한 선방을 보여줬던 키퍼를 기억해냅니다. 그게 이케르 카시야스였죠. 그리고 일그너가 부상에서 돌아오자, 토샥은 비자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카시야스는 그의 팀으로 돌아왔죠.
그리고 비센테 델 보스케가 1군 감독을 맡게 되고, 그를 호출했을때, 이케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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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함 2011.12.24*그리고 비센테 델 보스케가 1군 감독을 맡게 되고, 그를 호출했을때, 이케르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ㄷㄷㄷ
좋은 글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진짜 책 영문판이라도 나왔으면 ㅠㅜ -
음파 2011.12.24이케르는 어릴때부터 엘리트코스를 착착 밟아왔군요ㅎㅎㅎ
그나저나 영문판은.... 이케르의 국제적 인기를 무시하는 처사인가... -
카카 2011.12.24누님이 솔로이시니 번역도해주시고 ㅠ-ㅠ
평생 솔로하실래여? ㅎㅎㅎㅎㅎㅎㅎㅎ
메리크리스마스 ^^ -
Raul 2011.12.24잘 읽고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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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2011.12.24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위엄쩐다..... . -
백의의레알 2011.12.27모든 타이틀을 거머쥔 키퍼계의 살아있는 전설...
그러나 사모라 상은 잘 못받는 평범한 키퍼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