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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R9호두마루 2006.02.18 19:06 조회 2,394
싸웠다, 이겼다, 오줌 누었다, 졌다, 약물 검사를 통해 알칼로이드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졌고, 동시에 마라도나는 그의 94월드컵을 완전히 망쳤음은 물론 그의 축구인생 또한 엉망으로 끝내야만 했다. 알칼로이드는 미국과 기타 여러나라들의 프로스포츠에서는 흥분제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나, 국제경기에서는 사용이 금지되고 있다. 경악과 추문이 잇따랐다. 도덕적 처벌을 요구하는 우뢰와 같은 목소리가 세계 전체를 귀머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추락한 우상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슬픔에 잠기고 넋을 잃은 사람들은 비단 아르헨티나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방글라데시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곳에서도 많은 시위대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FIFA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추방자를 원상태로 복귀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국 그를 심판하는 것은 쉬웠고, 그를 처벌하는 것 또한 쉬웠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라도나가 수년 전부터 최고의 자리를 지켜 왔따는 과실, 다른 사람들의 입을 꼭 다물게 하였던 다양한 권력 남용 사례에 대해 생생한 목소리로 고발한 죄악, 그리고 왼발로 게임을 한 범죄, 즉 왼발이라는 것은 『라루세』사전에 의할것 같으면 <왼쪽으로>라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또한 <원래 그렇게 되어야 할 것과의 정반대로>라는 뜻도 있기 때문인데, 여하튼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완전히 잊는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는 시합 전에 자시의 체력을 몇 배로 증가시키기 위해 결코 흥분제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코카인을 복용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이미 영광의 포로가 되고 명예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러한 사실을 잊기 위하여 혹은 그들로부터 스스로 잊혀지기 위해서, 서글픈 축제에서나 복용했을 뿐이다. 그는 코카인 덕분에 잘 싸운 것이 아니라, 코카인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싸웠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중압감에 늘 괴로워했었다. 대중들이 그의 이름을 처음으로 외쳐 댔던 그 옛날부터 그의 척추 뼈에는 이상이 있었다. 마라도나는 자신의 등을 짓누르는 '마라도나'라고 불리는 부담스러운 짐을 늘 지고 다녔던 것이다. 자신의 몸은 마치 아름다운 문장으로 비유되어 포장되어 있는 것과 같았다. 늘 다리가 아파서 약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는 신처럼 뛰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매우 견디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머리에 왕관을 수년동안 얹고 다니며 초인간적인 경의를 독식하며,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끝없는 요구를 당하고,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증오를 당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내게 필요로 하는 것을 나 또한 필요로 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우상을 허물어뜨리는 즐거움은 우상을 가질 필요성에 따라서 직접적인 비례 관계를 지닌다. 스페인에서 고이꼬체아가 공과 상관없이 마라도나를 뒤에서 일격을 가함으로써 수개월 동안 출전 정지 처분을 당했을 때, 그 계획적인 살인 행위의 책임자를 관속에 넣어 운반하려는 광신자들은 거의 없었다. 반면에 가난에서 벗어나 허세와 건방의 사치를 떠는 그 신흥 갑부, 정상을 침범한 그 거만한 자의 파멸을 자축하려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넘쳐흘렀었다. 그 후, 나폴리에서 마라도나는 성녀 '마라돈나'였으며 성 젠나로는 성 '젠나르만도'로 바뀌었다. 길거리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왕관을 쓰거나 혹은 매 6개월마다 피를 흘리는 성인의 성스러운 망토를 걸친 모습에, 짧은 바지를 입은 성상(聖像)이 팔리고 있었고, 또한 실비오 베를루스꼬니의 눈물이 담긴 병과 이탈리아 북부 클럽의 관들이 팔리고 있었다. 어린이들과 강아지들은 마라도나의 가발을 쓰고 다녔다. 단테 동상의 발밑에는 공이 하나 놓여 있었고, 분수대의 '바다의 신'은 나폴리 클럽의 푸른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베수비오 화산의 노여움을 사서 축구장에서의 영원한 패배에 처해졌던 암담한 서부 도시, 그 도시의 팀은 반세기 동안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었으나, 마라도나의 덕택으로 마침내 그들을 멸시하던 백인들의 북부 지역을 꼼짝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경기장에서 나폴리 클럽이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고, 우승컵에 또 우승컵을 계속 타게 되자, 골 하나 하나는 역사에 대한 복수였으며, 기존 질서에 대한 신성모독이 되었다. 밀라노에서는 자신들의 위치를 벗어난 빈민들에 의해 행해진 이러한 모욕에 대한 책임자를 증오하게 되었고, 그들은 그를 '구슬 달린 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밀라노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즉, 90년 월드컵에서 대부분의 관중들은 마라도나가 공을 잡을 때마다 극심한 야유를 퍼부으면서 그를 괴롭혔다. 아르헨티나가 독일에게 패하자, 마치 이탈리아가 이긴 것처럼 축하 행사를 열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마라도나가 나폴리를 떠나길 원한다고 발표했을 때, 핀으로 곳곳을 찔린 밀랍 인형을 창문을 통해 그에게 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마침내 그는 그를 숭배하고 찬양하는 도시의 포로가 되고 그 도시의 마피아식 주인이 된 것이다. 이미 그의 다리와 그의 의지에 상관없이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코카인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그러자, 마라도나의 이름은 졸지에 '마라코카'로 바뀌고 말았다. 한참 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경찰이 검거하는 장면을 향유했던 사람들을 다시 한번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마치 축구 경기 중계라도 하는 듯이 마라도나가 체포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직접 보여준 것이다. <그는 이제 환자야> 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사람들은 <그는 끝났어> 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서부인들을 역사적 저주에서 구원하기위해 소환되었던 구세주 마라도나는, 또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패배한 것을 갚아 주는 복수자이기도 하여서, 속임수로 넣은 한 골과 멋지게 성공시킨 한 골로써 영국인들을 몇 년 동안 팽이처럼 뱅뱅 도는 얼뜨기들로 만들어 놓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몰락의 시간이 되자, 황금 동상 꼬마 아이는 이제 창부를 찾아다니는 몰락한 광대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마라도나는 아이들을 배반했으며 스포츠를 모욕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미 그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그 시체는 잠깐 사이에 다시 발딱 일어났다. 마라도나는 코카인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나자, 94 월드컵을 향한 마지막 가능성의 희망을 불태우고 있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소방수가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결국 마라도나의 덕택으로 월드컵에 진출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다시 한 번 과거와 같이 최고의 지위를 지켰는데, 바로 그 때 알칼로이드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그는 선수를 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실토했고 일련의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그 대가는 현찰로 에누리없이 부과되었다. 그러나 마라도나 자신의 스스로 떳떳함을 입증하기 위해 자살을 기도하였는데, 이는 수많은 그의 적들의 입에 접시를 통째로 바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자살미수 소동은 속임수로 판명되었고, 어린아이 같은 무책임한 그 행동은 그의 앞길을 산산이 쪼개 놓고 말았다. 확성기로 그를 몰아세웠던 바로 그 신문기자들은, 그의 안하무인격 오만불손함과 칭얼거림을 비난하며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책망하고 있다. 그들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마라도나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상, 그들은 마라도나가 종종 이야기했던 것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말대답 잘하고 칭얼거리길 좋아하는 이 땅딸막한 꼬마는 위를 향해 치받는 습관이 있다. 그는, 86년 멕시코에서, 그리고 94년 미국에서, 텔레비전의 전지전능한 독재에 대해 비난을 했는데, 그 때 텔레비전은 선수들을 햇빛이 이글거리는 정오에 시합을 하도록 억지로 경기장 안으로 밀어 넣었었다. 그 외에도 그의 사고뭉치 인생 역정 동안에, 그는 족히 천 번하고도 한 번 정도는 더 벌집을 쑤셔 놓고도 남을 정도의 농도 짙은 발언을 하였다. 물론 축구의 세계에서 그가 유일한 불복종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질문들이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한 것은 바로 그의 목소리였다: 축구에는 왜 세계 노동법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가? 모든 예술가들이 자신이 제공하는 쇼의 효용성을 알고 있는 것이 정상적이라면, 왜 축구 선수들은 축구로 다국적 부를 쌓은 다른 사람들의 비밀계좌를 알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해, 아벨란제 회장은 다른 일에 바빠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고, 공을 차 본 적은 없으나, 흑인 기사에 8미터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FIFA 관료 요제프 블래터가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 - 아르헨티나 최후의 스타는 디 스떼파노였다 결국 마라도나가 94월드컵에서 축출되자, 축구장은 가장 불평 많은 반역자를 잃게 되었다. 동시에 환상적인 선수 한 명 또한 잃게 된 것이다. 마라도나가 입을 열고 말을 할 때는 전혀 통제 불능이다, 그러나 그가 게임을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 경이로운 독창자의 난폭한 장난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는 절대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컴퓨터를 당황하게 만들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빠른 선수는 아니며, 다리가 짧은 새ㄱㄱㅣ 황소에 불과하지만, 공을 발에 꿰매고 다니며 몸 전체에 눈이 달려 있다. 그의 곡예술은 운동장을 환히 밝혀 준다. 그는 등을 돌린 채 돌발적인 슛을 그물에 꽂아 댄다. 상대편의 수많은 다리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면, 너무 멀어서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패스를 정확하게 성공시키면서 게임을 술술 풀어 갈 수 있는 선수이다. 그리고 상대편을 제치고 드리블하면서 전진할 때에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승리만을 요구하고 기쁨을 누리는 것을 금지하는 금세기 말의 냉혹한 축구 세계에서, 환상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인물 중의 한 명이 바로 그사람이다. - 마라도나의 골 1973년이었다. 유년 팀들인 아르헨띠노스 주니어스와 리베르 플라테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아르헨띠노스의 10번 선수가 골키퍼에게서 공을 받더니, 리베르측 중앙으로 드리블하면서 계속 전진하기 시작했다. 여러 선수들이 그를 맞으러 뛰어나갔다. 한 명을 맞아서는 부드럽고 탐스러운 여우꼬리로 공을 뽑아 냈다. 다리 사이로 또 한명을, 그리고 힐킥으로 또 한 명을 속였다. 그리고 나서는 주춤거리지도 않고서, 수비수들을 마비시켜서 꼼짝 못하게 해 놓고, 골키퍼는 땅에 스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공과 함께 수비벽 사이를 유유히 걸어서 골을 성공시켰다. 필드에 있던 아이들 중 7명은 시샘을 하고 있었고, 4명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꼬마 아이들 팀은 100전 불패를 기록하였고, 마침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선수들 중 한 명인 13살 짜리 아이 '독약'은 이렇게 말했다 : - 우리들은 즐기기 위해 축구를 한다. 우리들은 결코 돈을 위해 축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돈이 개입되면, 모두가 스타가 되려고 서로를 죽일 것이며, 시기심과 이기심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는 키가 가장 작고 가장 활기찬 선수로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던 한 선수를 얼싸 안으며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그가 바로 12살 짜리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서 방금 그 믿지 못할 골을 성공시킨 장본인이었다. 마라도나는 상대방을 밀어젖힐 때 혀를 내미는 습관이 있었다. 그가 성공시킨 모든 골들은 혀가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밤에는 공을 끌어안고 잠을 잤으며, 낮에는 그녀와 함께 기적을 일구어 내곤 했다. 그는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집에서 살았으며, 산업기술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에두아르 갈레아노 지음 - 축구, 그 빛과 그림자 마라도나가 말하는 어린시절 얘기 - 항상 공과 함께 였다. 나의 축구 연습장은 집 밖에서만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면 집안 전용의 축구공이 있어서, 좁은 집이었지만 언제나 침대나 가구 주위를 드리블하고 다녔다. 그공은 아빠가 내 생일에 사다 준 것으로, 프로의 시합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인데, 도저히 아까워서 밖에 들고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집이 작은 데 비해서 가족은 많았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없어서 나는 그야말로 집안의 통로를 드리블만 하는 정도였으며, 비가 오는 날에는 매우 좋은 소일거리가 되었다. 누나들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신경질을 부리며 나의 실내 축구를 비난하고 못하게 하려 했지만, 일에서 돌아온 아빠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며 구경만 하고 있었고, 엄마도 부엌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아뭏든 비좁은 집이었으나 나의 몸은 작았기 때문에 방에서 방으로 정해진 코스를 드리블해서 빠져 나가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거실에서 아빠의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부딪치지 않도록 즉시 옆으로 꺾어지면서 곧장 거꾸로 침대의 모서리를 직각으로 도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침실의 입구에서 무릎이나 어깨를 부딪치곤 했는데, 익숙해지자 원활하게 빠져 나갈 수가 있었다. 침대 앞에서 방향을 바꿔 곧 다시 꺾어지는 것은 연속기로써 몇 번 하는동안에 뒤의 동작을 전혀 의식하지 않더라도 처음에 꺾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연속해서 기술을 끝내고 나서 침대에 쓰러지는 것이 나의 3각 드리블의 기분좋은 마무리였던 것이다. 소파에 몸을 파묻고(물론 그러헥 고급스러운 소파는 아니었지만) 공을 이마로 받거나 이마 위에서 계속 세워 두는 것도 마음에 드는 장난의 하나였다. 비오는 날 사이좋은 다니가 놀러 오면, 현관 옆의 좌우 폭이 1미터밖에 안되는 곳에서 벽에 부딪치지 않고 몇 번 공을 받을 수 있는가를 서로 다퉜다. 잠을 잘 때는 항상 어린애가 봉제 인형을 안고 자듯이 나는 축구공을 안고 잤으며, 어쨌든 하루 중에서 공과 떨어지는 것은 목욕탕에 들어갈 때뿐이었다. 성장해서 훨씬 넓은 집에 살게 되었을 때도 집안에는 전용 공을 몇 개씩 굴려 두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집안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어릴 때는 벽축구를 많이 했다. 어릴 때는 어떤 식으로 축구를 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것은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공만 있으면 그곳에 있는 아이들을 둘로 나눠서 스웨터나 웃저고리나 근처에 떨어져 있는 막대기 같은 것으로 골문을 만들어 놓고 시합을 했다. 시계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지쳐 쓰러지던가, 저녁때 캄캄해질 때까지 뛰어다녔다. 날마다 똑같은 놀이를 하면서도 싫증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공은 가끔 어른이 가지고 있는 가죽제 공일 때도 있었으나, 대개는 고무공으로 잘 튀고 촉감이 부드러운 것이었다. 운동장은 집 근처의 자동차가 잘 지나다니지 않는 도로였다. 층계가 있거나 구멍이 뚫려있거나 해서 지금 뛰고 있는 잔디 운동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형편없는 것이었으나, 공이 부드러운 탓도 있고 잘 튀기도 해서 공을 띄워 그 구멍이나 층계를 피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리들 남미 선수들이 공을 띄워 처리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 곳은 모두 내가 어렸을 때처럼 부드러운 공과 형편없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축구시합을 하는 것이 어쨌든 노는 것의 중심이었지만, 친구의 수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인 경우나 자기 혼자서 놀아야 할 때는 흔히 '벽'을 이용해서 공을 찼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벽에 그려 놓은 표적을 향해 차는 일도 있었지만, 한번 잘못 차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려 그 공을 집어 오는 것이 귀찮아져서 나중에는 벽에 가까이 가서 공을 떨어뜨리지 않게 벽에 대고 치는 것만 하고 있었다. 머리로만, 인사이드만, 아웃사이드만, 발뒤꿈치로만, 넙적다리로만 하는 식으로 친구와 경쟁을 하고 기상천외한 공차는 법을 생각해 내거나 연속기로 여러 군데 몸의 부분에 맞추는 장난 등을 하며 즐기고 있었다. 공을 벽에 치고 있는 도중에서 일단 공을 머리나 가슴이나 발의 인스텝 등으로 멈추고 밑에 떨어뜨리지 않고 다시 벽치기를 시작하는 기술도 경쟁을 하는 동안에 몸에 익히게 되었다. 나보다 두세 살 위인 덩치가 큰 엔리케는 꽤나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나이가 어리고 꼬마인 내가 대게의 기술을 곧 마스터해 버리기 때문에 화가 나서 점점 복잡한 것을 생각해 내서는 나에게 해보라고 도전해 오곤 했다. 어떤 팀에도 소속되지 않고 무아지경에 빠져 공과 놀고 있던 그 시절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지음 - 마라도나의 수퍼축구 예전에 책보면서 옮겨놨던건데,,우연히 찾아서 올려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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