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TV 알론소 인터뷰 Part 1
Q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Other Side', 샤비 알론소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죠.
A 전 늘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좋아했죠. 'Californication'음반을 제가 샀었는데 그 때부터 늘 제일 좋아하는 노래였어요.
Q 콘서트에 자주 가는 타입인가요?
A 네, 가는 거 좋아하죠. 때때로, 정말 가고 싶은 콘서트가 있으면 티켓을 구하고 가려고 합니다.
Q 잊지 못하는 콘서트는?
A 많죠. 첫째론, 산 세바스티안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극장에서 있었던 안드레스 칼라마로 콘서트에 있었던 적이 있었고, 리버풀에서 콜드플레이 공연을 보기도 했었는데 정말 좋았죠. 그리고 여기선, 호아킨 사비나 공연이요.
Q 조세 무리뉴가 말하길 그는 집에서 훈련장으로 올 때도 음악을 들으며 오고 훈련장에서 집으로 갈 때도 음악 들으면 간다더군요. 사비 알론소도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인가요?
A 네, 자주 들어요. 하지만 라디오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음악은 절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듣는 거 좋아해요.
Q 사비는 다른 동료들처럼 교외에 사는 대신 마드리드의 시내에서 사는 걸 더 선호하잖아요. 왜죠?
A 어렸을 때부터 전 늘 산 세바스티안의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어요. 늘 아스팔트 도시의 사람이었죠. 리버풀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마드리드는 제 아내나 저를 도시에 살고 싶다고 느끼게 했을 만큼 풍부한 여러 가지를 제공해주는 곳이고, 지금 우린 아주 흡족합니다.
Q 마드리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뭔가요?
A 굉장히 통합된 도시에요. 많은 외부출신의 사람들이 여기서 편안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죠. 또 여러 가지 문화나, 식당의 옵션도 가질 수 있고요. 또 분위기도 좋죠. 여기 사람들은 길에서 지내는 걸 좋아하는데, 그게 이 도시에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어요. 그 북적거리는 활기가, 저는 초조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더라고요.
Q 마드리드를 정말로 알아 보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졌었나요?
A 벌써 예전부터 알았는걸요. 산 세바스티안이 여기서 가까우니까. 뭐 네, 때때로 그런 시간들을 즐겼어요.
Q 당신이 아주 좋게 이야기하는 또 다른 도시는 런던이죠. 언제고 다시 방문하고 싶은 도시라면서요...
A 네, 런던..제가 살았던 곳은 아니죠. 전 리버풀에 살았었지만, 런던은 굉장한 도시에요. 거대하고, 무언가 다른 일들을 해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죠. 제가 늘 아주 좋아했던 것들이에요.
Q 카시야스나 라모스 말에 의하면 당신들은 로스 앤젤레스도 맘에 들었다고 하던데요.
A 뭐, 그렇네요. 운좋게도 그 도시도 방문해 볼 기회를 가졌었는데, 우린 거기가 맘에 들었어요.
Q 사비 알론소에게 대도시로 여겨지기 위해, 도시가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조건은 뭐가 있을까요?
A 아, 꼭 커야 되는 건 아니에요. 면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뭘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죠. 분명 저는 마드리드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제 도시는 산 세바스티안이에요. 뭐 볼 거리가 많은 도시는 아니죠. 더 작고, 더 한적하고, 모든 것이 다 손에 닿는 데 있어요. 그리고...뭐 몇 평방킬로미터나 되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그런 모든 게 다 있죠. 그런 게 마음에 들어요.
Q 산 세바스티안을 그리워하죠. 거기가 당신의 뿌리니까요.
A 네, 제 뿌리는 거기에 있죠. 그리고 운 좋게도 지금은 아주 가까운 데 살고 있으니까. 종종 거길 방문하곤 합니다.
Q 올해 거기에서 탐보르 데 오로 상(el Tambor de Oro)을 받았잖아요. 사비가 그렇게 감정적이 된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A 그게, 거기 출신 사람들에겐 특별한 일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엔 그 상이 개인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상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노벨상도, 플리처상도, 오스카도 아니고 탐보르 데 오로가요. 올해에 제가 그걸 받는 행운을 누렸는데 정말 큰 영광이었고, 아주 감격스런 날이었어요.
Q 저는 늘 사람이 성장을 하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성장한 어른의 모습에 투영된다는 말을 즐겨 하는데요. 사비 알론소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어떤 어린이였죠?
A 저한테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는 뭐, 착한 어린이였다던데요. 하지만 좀 장난꾸러기이기도 했대요. 제 생각에는 즐겁게 노는 법을 알았지만, 그래야 할 때가 되면 책임감도 가질 줄 알았고요, 저 하고 싶은대로만 굴지 않고 권위를 존중하고..그랬던 것 같아요.
Q 그 장난 중에 잊지 않는 장난이 있나요?
A 형하고 같이 장난질 엄청 많이 했죠. 하지만 제가 기억나는 건..우리가 오렌다인에 있는 할머니댁에 있을땐데요. 집 앞으로 지나가는 도로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차들에다 돌멩이 던지고 그랬는데, 심지어 숨어서 던진 것도 아니에요. 그러다 하루는 차 한 대가 멈추더니 운전자가 내려서 저하고 형을 잡아가지고 할머니께 데려갔죠.(웃음)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사실 의도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Q 라 콘차 해변에서의 오후에 대한 기억은요? 거기서 많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축구를 하고 그랬었겠죠.
A 아, 그럼요. 거기서 우린 정말 많은 여름날을 보냈었어요. 거기가 제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축구를 했던 곳이에요. 벤하민, 알레빈...아침 여덟시부터 거기 모여서 축구를 하던 게 기억이 나네요. 축구하러 갈 때마다 각팀이 막대 두 개하고 골 그물을 가지고 가서 각자 골대를 만들어야 했어요. 우리팀이 우리 골대 만들고, 상대 팀 애들은 걔네 골대 만들고 그런거죠. 그 지역 모든 초등학교들이 다 갖고 있는 전통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콘차 해변에서 축구를 시작하는 거죠. 아르테타, 이라올라, 저희 형, 데 페드로..많은 선수들이 거기서 축구를 시작했어요.
Q 아르테타가 같은 구역 출신이라니 신기한 일이에요.
A 네, 우린 아주 가까운 데 살았는데, 같이 축구도 하고, 프론톤(※el fronton : 벽을 세워놓고 하는 바스크식 공놀이)도 하고, 테니스도 하고 그랬어요.
Q 그럴 때 당신 아버지도 같이 축구를 하곤 했나요? el gran 페리코 알론소 말이에요.
A 그럼요, 그럼요. 축구만 같이 한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 했어요. 우리 형제하고, 친구들하고, 모든 스포츠를 다 했죠. 자전거, 스케이트 보드도 타고, 테니스, 프론톤, 농구, 핸드볼...이거저거 다 했어요.
Q 때때로 축구 선수의 아들이 된다는 거 어려운 일이기도 하나요? 예를 들어, 비교같은 거 말이죠. 쟤는 쟤네 아버지가 간 데 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없을 거야. 그런 것들..
A 아뇨, 제 경우엔 한 번도요. 유리한 점이 된 적도 없지만, 불편하다고 느낀 적도 없어요. 그걸 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왜냐면 저희 아버지는 전축구선수나 감독이기 이전에 늘 아버지로 계셨거든요. 그러니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저희 형제는 어떤 순간에도 그 사실에 압박감을 느낀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지에 대한 압박도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건 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어차피 자기 자신의 길을 가야하는 거잖아요.
Q 아버지는 아들들이 축구선수가 되길 원하셨나요?
A 아뇨,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아버지는 그보단 저희가 하는 일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되길 원하셨어요. 집에서는 저희 어머니가 저희한테 많은 걸 강조하셨었죠. 그 첫 번째는 공부였어요. 축구가 아니라요.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았을 때, 그 과목을 다시 통과할 때 까지 축구를 못하게 해버리셨던 게 기억나네요. 그런 식이었어요. 그게 좋은 방식인지 나쁜 방식인진 모르겠지만, 저희 형제한텐 그 방식이 먹혔죠.
Q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 인상인데요.
A 어, 뭐..엑셀런트한 학생까진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잘했어요. 다 통과 했으니까(웃음)
Q 당신은 축구선수였던 아버지가 압박이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산 세바스티안, 라 레알, 바르셀로나, 사바델을 거쳤으며 감독으로서는 톨로사, 산 세바스티안, 베아사인, 에이바르, 에르쿨레스를 거친 그 분이라는 건 어깨가 좀 무겁지 않나요?
A 무겁죠,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게 해주고 축구의 세계에 둘러싸여 있을 수 있게 해줬달까요. 전 어렸을 때부터 축구와 함께 살 수 있었고, 프로페셔널로의 한 발짝을 뛰어넘던 순간에도 어렸을 때부터 이미 이 세계에 살아왔고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걸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 제가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겪을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매우 기쁩니다.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샤비,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이제 네 차례구나.”
Q 사비가 어렸을 때 매주 일요일이면 라디오에 찰싹 붙어있었다고 누가 저한테 얘기해줬어요. 그 땐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어서, 경기가 어떻게 됐나 달리 알 수가 없으니 라디오에 매달려 있었다고요.
A (웃음) 네,네 물론이죠. 그 때에는, 저희 아버지가 세군다B 리그의 베아사인 팀 감독이셨는데 원정을 가실 때면 우리 모두 저녁 여덟시까지 라디오 채널 켜놓고 기다렸어요. 그 때는 지금 같지 않아서 세군다 B 경기 결과를 알려주는 라디오 채널이 하나였죠. 홈에서 경기할 때에 경기를 보러 가면 됐지만, 원정을 가시면 알 수가 없으니. 그래서 형이랑 제 동생이랑, 어머니랑 다같이 라디오에 매달려 있었어요.
Q 이 얘기를 해볼까요, 16살의 나이에 사비 알론소는 영어를 배우러 아일랜드로 갔죠.
A 글쎄요, 제가 간건지 부모님이 절 보내버리신건지, 모르겠네요.(웃음) 네, 전 한 영어학원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영국이나 미국에서 온 또래들이 아주 많았고, 거기서 판타스틱한 한 달을 보냈죠.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전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진정성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주 개성있고,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자랑스러워하죠. 저한텐 참 좋았어요. 영어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 그렇게 많이 배우지도 않았지만, 다른 나라를 접한다는 점에서요.
Q 거기서 게일릭 풋볼(※Peil Ghaelach : 아일랜드 고유의 스포츠. 손을 사용할 수 있는 등 축구와는 아주 다르다)을 해봤다는 게 진짜에요? 축구랑은 많이 다르죠?
A 맞아요. 저 해봤는데, 축구와는 영 관계가 없어요. 전 플레이 했다기보다도, 스틱을 잡은 다음 그냥 경기장 위를 막 뛰어다녔죠.
Q 안티구오코에서 보낸 축구선수로서의 첫 날들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A 많은 기억이 있죠. 안티구오코는 레알 소시에다드 같은 프로 클럽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거기 사람들은 프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굉장한 열정과 헌신을 갖고 있었어요. 늘 훈련할 시간과 뛸 수 있는 경기장을 찾곤 했죠. 운이 좋았는지 우리는 친구였던 애들하고 같은 그룹에 합류하게 됐고 플레이도 좋았어요. 그러면서 인판틸, 카데테, 후베닐에서 라 레알(소시에다드)이나 아틀레틱과도 경쟁할 수 있었죠. 우리는 아주 가까운, 어쩌면 평범한 환경에서 선수로서 성장했어요.
Q 그 소년들의 그룹에서 사비 알론소 말고도 프로선수까지 도달한 사람이 더 있나요?
A 아르테타, 아두리스, 이라올라, 저희 형, 그리고 아마 더...꼭 거짓말 같지 않나요? 그냥 지역 축구팀에서 두 세대, 혹은 세 세대 만에 1부 레벨에 있을 만큼 좋은 선수들이 이렇게나 나왔다는 게.
Q 레알 소시에다드가 당신을 불렀던 때에 대해선 뭘 기억하죠?
A 우리가 후베닐에서 맞은 두 번째 시즌이었죠. 우리는 믿을 수 없을만큼 좋은 시즌을 보냈어요. 그 시즌 오노르 리그(※Division de Honor Juvenil : 스페인 유스 리그 중 최상위 리그)에서 레알 소시에다드의 뒤를 이어 2위를 했죠. 코파 델 레이에서는 우리가 셀타 비고와 발렌시아를 탈락시켰고, 레알 마드리드가 구 시우다드 데포르티바에서 우릴 탈락시켰어요. 그리고는 모든 프로팀에서 우리를 보러 왔죠. 아틀레틱, 바야돌리드, 레알 소시에다드...저는 레알 소시에다드 팬이었고 레알 소시에다드가 절 부르자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거기로 갔어요. 레알 소시에다드의 유스팀에 들어갔죠.
Q 로그로녜스를 상대로 했던 레알 소시에다드에서의 데뷔는요? 잊을 수 없는 일이겠죠?
A 물론이죠, 모든 데뷔는 잊혀지지 않는 법이니. 홈구장에서, 내 인생의 팀과 함께, 지켜보고 있는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팬들 앞에서 하는 데뷔라면 정말로 특별한 무언가고요. 우린 그 날 졌어요.(웃음) 하지만 후일담이 될 만했죠. 그 날의 셔츠를 간직하고 있답니다.
Q 당신의, 혹은 상대 선수의 셔츠를 몇 장이나 가지고 있나요?
A 제 셔츠는 제가 있었던 모든 팀들의 셔츠를 각 모델별로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상대 선수 셔츠는 좀 골라보고 싶네요. 제가 존중하고 또 존경하는 선수를 상대로 뛸 때면 그 셔츠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죠. 그래서 많이 갖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셀렉션이 있어요. 지단, 앨런 시어러, 로이 킨, 폴 스콜스, 파벨 네드베드...보물들을 좀 갖고 있죠. 저희 아버지도 셔츠로 가득한 상자를 갖고 계셨는데 저하고 형이 어렸을 때 그걸 열어보면 거기엔 마라도나, 슈스터, 지코...같은 위대한 선수들의 셔츠가 있어서 저희를 매혹시키곤 했죠. 어쩌면 나중에 제 아들 욘도 어렸을 때의 저희처럼 제가 모은 셔츠들을 가지고 그럴지도 모르죠.
Q SD 에이바르 팀 셔츠도 있나요?
A 그럼요, 당연하죠.
Q 거기서 임대로 뛰었었죠. 힘들던가요?
A 저는 희망에 차있었어요. 그 때 제가 18살이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늘 비슷한 또래들과 같이 라커룸을 썼었죠. 그 때 처음으로 28살에서 30살 사이의 성숙한 사람들, 프로페셔널의 라커룸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저 스스로에게 많이 배우게 될 거라고 말했었어요. 게다가, 에이바르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정비소에서, 아니면 어느 사무실에서, 여덟 시간을 일한 후에 훈련장으로 오는 사람도 있었죠. 그 라커룸에선 정말 많이 배웠어요.
Q 레알 소시에다드로 복귀했고, 거기서 화려한 시기를 보내게 되었죠...
A 저는 팀이 강등을 당할지도 모르는 복잡한 상황에서 복귀하게 됐어요. 그 무렵의 경기들은 정말 힘든 경기였죠. 그런 경쟁적인 경기들은 사람을 빠른 속도로 성숙하게 만들어요. 그 후에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시즌을 보냈는데 타이틀을 놓고 레알 마드리드와 경쟁을 했었어요. 벌써 7.8년은 지난 일이지만 레알 소시에다드와 함께 결승에 도달해보았다는 것은 제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있고 앞으로도 절대 떨어지는 일이 없을겁니다.
Q 그리고 리버풀에 도착했죠. 축구선수에게 리버풀과 같은 팀에 간다는 건 놀라운 일일 거에요. 그렇지 않나요?
A 그렇죠. 우리같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성지가 있기 마련인데 안필드는 그런 성지 중 하나에요. 전통과 가치에 대한 존중의 혼합, 또 빛나는 역사가 있지만 한편으론 헤이젤, 힐스보로와 같은 암흑의 순간들도 섞여있는, 그런 것들에 많은 자긍심을 가진 클럽이고, 당신에게 축구의 다른 측면이라던가, 그 곳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리버풀이란 팀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해요. 리버풀은 제게 많은 걸 줬고 그 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아주 인상 깊은 시기였죠.
Q 리버풀의 선수로서 경기장으로 나오는 터널에서 ”You'll never walk alone”을 듣는 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할 수 있나요?
A 제가 좀 과장하는 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있어 그 순간은 동기를 부여해주는 순간이에요. 경기에 뛰어들게 하는 순간이죠. 리버풀을 둘러싼 다른 전설들을 떼어놓고라도, 그 노래는 리버풀의 선수가 경기에 빠져들게 해요. 그리고 안필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장도, 가장 아름다운 구장도 아니지만, 가장 많은 마법을 지닌 구장 중 하나죠. 나가서 뛰고 싶게끔 만들어요. 팬들은 정말 열정적이고, 희생적이며, 그들의 응원은 조건이 없어요.
Q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죠.
A 네, 이적한 첫 해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니. 전 “와, 이보다 나을 수가 없겠는데.”라고 말하곤 했어요.
Q 결승전에 대한 기억들을 말해주세요. 경기 전과, 또 경기 후에 대해서요.
A 경기 전은 모르겠어요.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치만 경기 후나, 경기 중의 기억들은..정말 많은 감정들을 겪었죠. 왜냐면...왜냐면 전반전이 끝났을 때 우리는 벌써 3-0으로 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들 “안되겠는걸”하고 말했었죠. 45분 동안 다시 만회하고 올라서는 건 미션 임파서블같아 보였죠. 하지만 우린 경기장으로 나아가서 6분만에 세 골을 넣었어요. 그리고 3-3으로 그 때 당시 거대한 클럽인 밀란에 비겼죠. 그리고 그 다음엔..제르지가 승부차기에서 움직였고...아마 믿지 못할 거에요. 기대치 않았던 일이었죠. 제 생각엔 아마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챔피언스 결승전이 아닐까 싶어요.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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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algado 2011.03.13고생하시네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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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라 2011.03.13알론소는 정말 축구 안 하고 공부했어도 굉장히 열심히 잘 했을 거 같죠 ㅋㅋㅋ 자주 하는 말이, 부모님이 축구가 다는 아니다 공부 열심히 해야된다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는 인터뷰 ㅋㅋㅋ
알론소의 산 세바스티안에서의 축구 이야기는 간단하게는 알고 있었지만 디테일하게 보니 막 어린 시절의 알론소가 상상이 되어서 좋으네요ㅠㅠㅠㅠㅠ -
카르발료 2011.03.13차에다가 돌멩이를;;;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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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당이 2011.03.13질문들이 참 좋네요~ 어린시절 얘기 부터 해서..
한 사람에 대해 진솔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거 같아요 ㅎ
추천! -
hanaca 2011.03.13레알티비 인터뷰 매주 하는거 정말 너무 재밌고 좋아요 정말 진솔한 인터뷰 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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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 2011.03.13알론소가 리버풀에 참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항상 인터뷰를 보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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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짱이다 2011.03.13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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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u 2011.03.13레드핫칠리페퍼 Otherside 한동안 미친듯이 들었었는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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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김손 2011.03.13@Cafu 레닷ㅎㅎㅎㅎㅎㅎ........
진짜 레닷 넘 조음여ㅇㅇ -
레알쩐다 2011.03.13알론소 우리팀이랑도 무슨컵이든 들어야지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