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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브라질로 보는 '역사는 돌고돈다' - ②

마인손오공 2011.02.14 17:27 조회 2,547 추천 6
다소 이름이 덜 알려진 선수는 진한 글씨체로 알아보기 쉽게 해놓았습니다.
부족하지만 과거의 브라질의 발전방향을 큰 틀에서 다시금 보고자 하는 노력이 담긴 글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http://realmania.net/bbs/zboard.php?id=openbbs&no=39337

↑ 1편 주소입니다.



3-2. 1990년 이태리 월드컵의 실패 곱씹어보기

잠깐 94년, 모처럼 브라질이 우승하게 된 대회를 언급하기 이전에 1990 이태리 월드컵에 참가한 브라질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호마리우, 로차, 실라스정도가 백업으로 출장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4-3-1-2와 3-5-2를 혼용하는 시스템을 썼는데요. 이는 당시 베켄바우어, 쿠만, 레이카르트등을 거치면서 전세계에 퍼지기 시작한 리베로 시스템을 적극 차용한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로 보나 자료로 보나, 21번을 달고 있는 가우방(DMF)이 이 리베로 시스템의 중심이였습니다. 가우방은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을 고루 거친 기대주로써 이미 86년 월드컵에도 24살의 젊은 나이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죠. 

다만, 브라질에는 이 리베로 시스템이란걸 굳이 도입하면서까지 조직력을 맞출 필요가 없었던 것이 브라질의 주전 센터백이던 히카르도 고메즈(CB)*1가 상당히 공격전개가 좋은 선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선수가 히카르도 고메즈선수였는데요. 레알의 레전드 센터백인 페르난도 이에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선수였습니다. 발이 빠르지는 않으나 허슬플레이가 뛰어나 공격진의 맥을 끊는데 일가견이 있고 이따금씩 올라와서 왼발로 전개해주는 공격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다만 이대회에서 경기를 망쳐놓는 백태클로 퇴장당했고, 이후 94년 미국 월드컵에 수비수로써는 전성기에 해당하는 3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제외되고, 이후 아쉽게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되죠. 

개인적인 생각인데 16강전인 아르헨티나전때의 백태클을 제외하면 이번 대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수비수였습니다. 브라질의 제공권은 90% 이 선수가 책임지는 수준이고 말이죠.

쉽게 생각하면, 한일전을 월드컵 16강에서 치루고 있습니다. 근데 브라질의 혼다에게 백태클을 어떤 수비수가 했고, 그래서 그 선수는 퇴장. 그리고 한국은 탈락하게 되면 그 선수를 다시 국대에서 중용할 수 있을까요? 정말 뛰어난 선수가 아니고서야 중용하기 힘들겠죠. 근데 이것과 마찬가지로 한일전 못지 않은 중요한 대회에서의 실책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히카르도 고메즈는 꾸준히 뽑혔었습니다. 
 

그리고 센터백 파트너인 모제르(CB)*2는 리카르도 고메즈와 월드컵직전까지 벤피카(디 마리아 친정팀)에서 좋은 호흡을 보이며 주전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월드컵에서도 공격수 한명을 전담마크하는 활약등을 보이긴 했습니다만 밑에서 언급할 여러가지 공수 밸런스의 문제로 스코틀랜드전부터는 대인마크보다는 경기를 크게 보고 위치를 잡아나가며 수비할 줄 아는 히카르도 로차가 주전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또 왼쪽 풀백인 브랑코(SB) 선수는 공수를 폭넓게 움직이는 동시에, 안정적인 볼공급과 무리수 던지지 않는 경기력이 인상깊었는데요. 슈팅에 도가 튼 말디니느낌이였습니다.


그럼 브라질의 문제는 무엇이냐? 리베로 시스템이란건 수비시에는 한명의 스위퍼가 뒤를 마크하며 안정감을 더하고, 공격시에는 스위퍼가 일순간에 중앙 미드필더라인까지 올라가면서 변수를 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홍명보, 바레시, 레이카르트, 마테우스, 베켄바우어, 잠머등등.. 이름만 들어도 축구멘탈이 甲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는 선수들이 주로 맡던 롤이였죠. 

그런데 이 가우방(브라질의 리베로)이란 녀석은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공격한답시고 올라가고 수비시에는 자유롭게 막는데 영 활약이 없다.. 이거죠.

또 공격시에 기회가 나면 고메즈도 굳이 마다하지 않고 공격에 올라가 전개를 시도합니다. 그렇다면 빈공간으로 가우방이나 둥가가 내려와서 커버를 해줘야 하는데, 이러한 면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상대방이 공격적으로 올라오면 수비적으로 인구는 많았으나 크게 효율적인 모습도 부족했구요.

보아하니 당시 라자로니 브라질 국대 감독이 탄탄한 경기 운영을 원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공격시에는 공격수 2명, 미드필더 3명, 풀백 2명.. 이렇게 보통 6-7명정도가 올라와서 가둬놓고 놀기를 좋아하는 브라질 특유의 공격장면은 드뭅니다. 항상 5-6명정도로 안정적으로 경기를 가져가고, 세트플레이때는 헤딩이 좋은 고메즈(CB), 로차(CB), 둥가(DMF)등이 페널티 에어리어안에서 적극적으로 공을 따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때의 둥가는 생각보다 페널티에어리어안으로 쇄도가 잦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선전 3경기와 16강전..총 4경기동안 대충 페널티에어리어안에서만 슈팅 시도한것만 해도 3개네요. 둥가의 파트너로 기대를 모았던 알레망선수의 경우 생각보다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근데 굳이 제가 이 실패한 90년 월드컵 엔트리를 왜 물고 늘어지냐면, 카레카(CF)*3라는 스트라이커를 다시금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회에서 빛나는 브라질의 공격수는 오직 카레카뿐입니다. 2선에서 재치있게 넘겨주는 로빙패스와 그리고 어느샌가 최전방으로 돌아와 헤딩을 따내고, 또 역습에서 드리블로 수비를 2-3명 농락하며 슈팅을 시도하는둥. 

진짜 군더더기가 없네요. 때려야 할때는 냅따 때리고, 또 2선으로 내려왔다가 원투패스로 순간 스피드로 수비수 한명 떨궈내고 단독찬스 만들고 발리로 때리는둥(이건 월드컵에서는 잘 안 나오네요.)스트라이커의 교본 같습니다. 



여튼. 이 모든 감상을 정리하자면..

1990 이태리 대회에서의 브라질은 불운했습니다. 둥가가 활발하게 공수를 책임지고, 알레망이 뿌리고, 바우도가 방점을 찍으면 카레카, 뮬러가 넣는다... 이런 모토였으나 전.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둥가는 활발하게 뭔가 해볼려고 하지만 정말 어쩡쩡 그자체구요. 그냥 많이 뛰는거 하나는 인정. 브라질다운 아기자기한 맛도 없고.. 그냥 밋밋. 잉글랜드축구?

또 경기를 제압했던 16강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골대를 맞는 불운이 3번이나 겹치고, 주장히카르도 고메즈(CB)가 퇴장을 당하는등의 불운으로 결국 쓸쓸히 짐을 싸고 맙니다.


그리고... 드.디.어

1편에서 언급했던. 브라질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수비중심의 스타일을 추진하지만서도 동시에 가장 믿음직스러워하는 두 인물 - 페레이라(94, 2006 월드컵 감독)와 둥가(전 브라질 국가대표팀 주장/ 전 브라질 국가대표팀 감독)가 선수와 감독으로 조우해서 거함 셀레캉을 이끌기 시작합니다.


*1 : 히카르도 고메즈 감독은 박주영을 모나코로 데리고 온 감독입니다. 전 브라질 국대 에이스 센터백->감독 테크를 밟고 있죠. 

*2 : 카를로스 모제르는 이후 벤피카에서 은퇴하고, 무링요 밑에서 감독 수업을 받게 됩니다. 현재는 포르투칼 1부리그 나바르라는 팀에서 일하고 있네요. 

*3 : 카레카.. 자신이 주축으로 뛰었던 86, 90년중 한개라도 타이틀을 들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드는 선수입니다. 이후 노쇠화 + 뮬러, 호마리우, 베베토, 호나우도같은 선수들의 등장으로 94년 대표팀 엔트리.. 최후까지 경쟁하지만 결국 떨어지고 맙니다. 90년 월드컵에서 볼만한 선수는 카레카, 리카르도 고메즈만이 마치 홍명보, 황선홍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4. '축구제국' 브라질의 부활 : 1994 미국 월드컵

사실 90년 대회를 끝내고 브라질 내부에서는 어느정도 여론의 다툼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공격축구로도 안되고, 수비축구로도 안되니 어떡하냐.. 이런 논의가 아니였을까 싶은데요. 결국 그들이 택한건 밸런스축구였죠. 

90년이후 2년가까이 보복성 국대 제외를 당한 둥가(DMF)는 결국 페레이라(94, 2006 월드컵 대표팀 감독)가 다시 부르면서 과거의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선수'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았고, 이후 둥가(94-98대표팀 캡틴)는 98월드컵 준우승까지 팀을 묵묵히 받치는 역할을 합니다.


브랑코(SB), 마징요(CMF)가 16강전부터 왼쪽 풀백, 오른쪽 미드필더로 완전히 주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큰틀에서 경기를 보자면, 공격시 모습을 보면 완전히 지공상태가 아니고서는 공격진이 많지 않으며 앞선 두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쓰고 중앙 미드필더라고 읽는다)는 마치 첼시시절 발락, 람파드조합을 보듯이 밑에서부터 빌드업을 도와주는 역할에 치중합니다. 수비에도 적극적이구요.마우로 실바(DMF)가 마켈렐레 느낌. 둥가(DMF)는 에시앙처럼 공격 4: 수비 6으로 90년에 비해 확실히 업그레이드. 

바이에른 뮌헨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유럽의 거친 템포에도 적응한듯한 조르징요(SB)는 90년 월드컵에서의 좀 뭔가 부족한 모습과 달리 시종일관 상대팀의 왼쪽을 부수고 있었고 원래 측면윙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SB)*4는 브라질의 왼쪽 풀백으로 나와서 상대방의 오른쪽을 부수고 있었습니다. 다만 16강전 미국전에 불필요한 퇴장으로 이후 벤치에서 브랑코(90년 월드컵 주전왼쪽풀백)에게 자리를 완전히 내어주고 말죠.*5 

수비시에는 호마리우(CF), 베베토(CF)가 돌아가면서 한명씩만 프리롤로 남을뿐. 나머지 필드플레이어 9명 전원이 적극적인 압박을 시도합니다.  공격전개는 답답하지만 득점이 많은 이유가 이런 방식으로 상대팀에게 적은 공격찬스를 주고, 반대로 많은 공격찬스를 만들면서 골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라이(AMF 91-93 브라질 국대 에이스), 마징요(CMF), 징요(CMF)등의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베베토의 좋은 볼배급과 호마리우의 개인기량으도 다 우걱저걱 극복합니다.(이 대회에서의 호마리우는 98, 2002 호나우도 그 이상이라고 봅니다. 정말 혼자서 다 합니다.) 마징요, 라이, 징요는 왜 이 대회이후 더이상 국대에서 중용받지 못했는지 잘 알 수 있을것 같네요. 브라질리언다운 맛이 떨어집니다. 라이는 스페셜 영상으로 보건데 강인한 피지컬과 뛰어난 키핑력을 구사하는, 클래시컬한 10번이였던거 같은데.. 아쉽네요. *6

또 마징요(CMF)는 국대와 인연이 없던 브라질의 많은 천재들중 한명(?!!!)이였는데, 이후 페레이라(94, 2006 브라질 국대 감독)가 지독한 득점루트 부족으로 차라리 '골을 못 넣을바에는 골을 먹지 말자'라는 마인드로 헌신적인 수비가담 하나 보고 뽑았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주전으로 자리잡고 본선에서는 베베토, 호마리우의 위치에 따라 좌우 스위칭을 넓게 가져가고 열심히 돌아다녔으나 딱히 큰 소득이 없었고, 결국 페레이라 이후로 국대에서 사라졌더군요.

그리고 원래 주장이였던 라이가 벤치로 가면서 캡틴 둥가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브라질의 10번을 받은 라이는 90년 이태리 월드컵에서 10번을 받았지만 내내 벤치만 지키던 실라스의 저주를 이어가게 되구요. 


수비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수비시 문제점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전방압박이 좋고, 또 수비들의 개개인 기량이 좋은 탓일까요?*7

여튼 이번 대회에서의 브라질은 공격의 답답함 아닌 답답함을 제외하면 큰 문제가 없던 팀이였습니다. 4-2-2-2였습니다만, 저것은 '수비적'인 4-2-2-2였지, 우리가 상상하는 화려한 4-2-2-2가 아니였죠브라질은 정말 약점이 없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의 공격력 부재와는 별개로 활동량과 볼터치자체는 많았고, 어떻게든 베베토, 호마리우가 득점을 했으니까요.

실제로 결승전은 사실 호마리우, 베베토의 연이은 실수만 아니였다면 능히 브라질이 이길 게임이였습니다. 팔류카(GK, 이탈리아)의 결정적인 실책이 아쉽게도 실점으로 이어지지 않는 행운이 이태리에 따랐죠. 바레시 혼자서 미쳐서 이태리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확실히.. 94 미국 월드컵 브라질을 복기하면서.. 느낀 점은
이 대회 우승 못했으면 욕 먹었겠다, 라고 생각이 두는게 전통적인 브라질특유의 아기자기한 맛이 좀 떨어지고, 베베토, 호마리우, 레오나르도, 조르징요..외에는 개인기를 오래 쓰면서 제치는 느낌이 없습니다. 진짜 "브라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세계최강자 인증해도 재미없다고 인기 없는 유일한 팀일듯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브라질을 지탱하는 지독한 ego겠죠. 죽어도 수비를 농락하고 이긴다....

그리고, 세계축구가 본격적으로 미디어 폭풍에 힘 입어서 더 이상 유럽, 남미에만 머무르지 않는, 세계인의 '진정한 축제'의 시작이라고 이야기되곤 하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정말 브라질 다운 대표팀을 이끌고 대회에 오르게 됩니다.


*4 : 레오나르도는 이후 AC밀란에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은퇴한 이후에는 AC밀란 스카우터, 감독등을 거쳐 현재 인터밀란 감독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5 : 레오나르도, 브랑코 이후 우리의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주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6 : 국대의 10번. 지코의 후계자이던 라이의 쓸쓸한 하락세.. 그리고 이 뒤를 잇는 것이 베티스를 멸망에 몰아넣은 데니우손(LMF)과 잠깐이지만 브라질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던 프란싸(CF)입니다. 특히나 프란싸는 브라질이 98월드컵 우승 이후 공황상태일때, 2000년 화려하게 국대의 베스트 넘버를 받으며 대표팀에서 활약했지만 결국 호나우딩요, 카카, 호나우도에 밀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되죠.


*7: 원래.. 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대 주전 센터백은 히카르도 로차(CB. 90년 월드컵 주전 센터백), 히카르도 고메즈(CB. 90년 월드컵 주전 센터백), 마르시우 산토스(CB)의 차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영민한 플레이어 히카르도 고메즈(CB. 90년 월드컵 주전 센터백)가 부상으로 시즌아웃을 선고받고, 그러자 아우다이르(CB, AS로마 레전드)가 '깜짝' 발탁됩니다.(실제로 91-93년 사이에 아우다이르는 A매치 경험이 0경기입니다.)그리고 실제로 '새내기' 아우다이르보다 대표팀 터줏대감 마르시우 산토스가 수비에서 더 돋보입니다. 다만, 그다지 좋은 위치선정이나 볼처리를 지니지 못했던지라 이후에 거짓말같이, 정말 95년부터 쭉 하락세를 겪게되죠. 네덜란드, 브라질, 브라질 2부리그, 중국등을 떠돌면서...


..next?



5. 98-2002 진정한 브라질 축구?

- 호나우도, 히바우도

6. '축구제국' 브라질의 몰락? 혹은 쉼표?

- 둥가, 페레이라, 아드리아노

7.'넥스트 축구황제'를 꿈꾸는 유망주

- 마르셀로, 루카스, 네이마르, 간소 등



p.s 쓸데 없이 글이 길어진 관계로 5편과 6편은 브라질로 보는 '역사는 돌고돈다' - ③으로 넣던가.. 아니면 그냥 싹 입 닦고 모른척 하던가 할게요.. 카레카, 히카르두 고메즈가 쓸데없이 90월드컵에서 잘해가지고.. 글이 길어졌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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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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