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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내일 5시

[축게용]과거 미화에 대한 단상.

Fatzer 2010.11.12 03:15 조회 2,396 추천 10















  요즘 과거 미화와 관련한 쟁론들을 주욱 훑어보면은 의외로 '옛날이 나았다'는 의견에 호응하는 말이 적어서 놀라게 됩니다. 기실, 2, 3년 전쯤만해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과거 미화다'란 반박이 있어도 '그렇지만 98 월드컵이나 유로 2000을 생각해보면 말이지...'란 썰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며 무언가 아쉽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말이죠. '요즘 축구는 예전만 못해', '전술적으로 선수들이 개인기량을 발휘할만한 여지를 주지 않지', '피지컬이 우위가 되면서', '전에 비해 압박수비가 강해지면서', 등등등. 여러 분들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엔 그런 썰들은, 물론 간혹 나오긴 합니다만 이에 대한 공감도 전에 비해 줄었을 뿐더러, 반박하는 의견도 많지요. 제가 보아왔던 것도 그러하구요. 그럼, 여기서 자연히 어떤 의문 하나가 고개를 듭니다. 지금과 2, 3년 전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옛날이 나았다는 말에 고개를 젓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이 '과거미화(過去美話)'를 '과거미화(過去美化)로 만들었을까요?

  크게 보자면 바르셀로나의 08/09시즌 6관왕이, 인테르의 09/10시즌 트레블이, 카카와 날도의 영입으로 기수를 올린 제 2차 갈락티코, 스페인의 유로 08-남아공 월드컵 석권 등이 있었습니다. 2, 3년 전과 지금의 차이라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이처럼 탁월한 성적이나 화제를 불러일으킨 '위대한 팀'의 존재를 미화(美話)되곤 하는 전시대에도 찾아볼 수 있는데,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밀란 제네레이션과 크루이프의 드림팀, 프랑스의 98 월드컵-유로 2000 제패와 맨유의 트레블, 그리고 제 1차 갈락티코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팀의 존재는 쉽게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또한 그 이야기의 '연속성'을 담보하지요. 예컨대 지지난시즌 세계를 제패한 바르샤는 결승에서 그 전시즌 리그/챔스 더블을 했던 맨유를 만나 4강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고, 그러나 지난시즌 인테르와의 4강에서 패배하며 대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코파와 컨페더레이션스컵을 차지하며 독일 월드컵의 실패를 씻으려했던 브라질은 네덜란드에게 패하곤 다시 4년을 기다려야했구요. 라포르타의 2차 드림팀으로 세계를 휩쓸자 이에 질세라 페레스가 2차 갈락티코가 발기하고 전시대의 부진을 청산한 epl은 이미 한차례 유럽을 휩쓴 후 숨을 고르고 있습니다. 이와 호응할만한, 전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이야깃거리라면 내셔널 축구에선 한대회를 통해 인간사 희노애락을 모두 펼쳐낸 바죠의 이탈리아, 월드컵과 유로 제패 후 거짓말처럼 무너져내린 프랑스, 그 공백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비상한 브라질, 절정의 경기력을 뽐냈으나 결승을 목전에 두고 번번이 승부차기 때문에 고배를 마신 네덜란드 등이, 챔피언스리그에선 밀란의 뉴 패러다임과 유벤투스, 그리고 이후의 3M이 있겠지요. 이렇듯 강하고 매력적인 팀들은 선명한 캐릭터를 획득하며, 다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습니다. 즉, 시청자들 입장에선 각 팀들이 얼마나 강한지 체감으로 느끼기 쉽고, 이를 재미나게 지켜볼 맛이 나지요.

  그럼 좀 더 좁고 명시적으로, 선수들로 시선을 옮기면 라리가에서 신명나게 작두타고 있는 메시와 날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 둘의 존재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날려버리지 않았나 생각하는데요. 이미 20대 초중반 어린 나이에 가공할만한 실력과 커리어를 겸비한 둘을 보고 있으면 뭐하러 멀리 호나우도나 지단을 그릴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메시와 날도의 존재는 자연히 다른 이들 역시 '매력적'으로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 둘이 세상을 호령하기 앞서 본좌놀이를 하던 카카, 부상만 없다면 이 둘의 자리를 넘볼 수 있으리란 평가를 받던 로벤, 갈락티코의 희생양이 되었으나 보란듯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바르샤를 패퇴시키고 트레블을 달성한 슈니, 역시 바르샤에서 외면당했지만 올시즌 전성기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에투, 그런 슈니와 에투 곁에서 그보다 멋진 활약을 펼친 밀리토, 풀백이라고 믿기 힘든 존재감을 과시하는 마이콘과 알베스, 그런 알베스의 위치를 발 끝으로 지시하는듯한 샤비 등, 날도와 메시가 있기에 이들의 존재가 새삼스레 다시 다가오게 됩니다. 더군다나 위에서 언급했던 강력한 팀의 플레이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죠. 그리고 이리 재인식된 선수들은, 10여년 전의 그 선수들 못지 않게 매력적인 존재로 거듭나구요.

  그간 우리가 축구가 예전만 못하다, 못하다 되뇌었던 것은,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만치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었고 이를 생산할만한 팀이나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면, 있다손쳐도 전시대의 연장선에 있거나(앙리, 토티), 단발성에 지나지 않았죠(90년말, 00년초의 데포르티보나 발렌시아가 되지 못한 리켈메의 비야레알이나, 독일 월드컵과 유로 08에서 거짓말처럼 달랐던 이탈리아의 모습). 이는 여러 대회에서 단기적으로 폭발적인 성적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던 팀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며(03/04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유로 2004를 상기해보길 바랍니다) 그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해줘야할만한 선수들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강 잡아 팔십년대 초중반생들 말이지요. 이들 중엔 분명 걸출한 플레이어가 나타나긴 했습니다만 단번에 사람들을 압도할만한 이들이 없었습니다. 호나우딩요가 있다지만 그의 대적자는 외려 전세대인 앙리나 토티였고 유럽에선 그 진가를 잠시나 비춘 리켈메 정도밖에 없었죠. 그나마 그 전성기도 짧았구요. 그외에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평가받던 아드리아누나 호빙요, 카싸노, 로벤 등은 간혹 번뜩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뿐, 정오에 오를만큼 길게 그 빛을 이어가진 못했습니다. 그조차 대개 이들을 탓하기엔 그 전시대가 너무도 화려했다는 게 중론이었으니까요.

  허나 우리가 흔히 전시대라고 통칭하는 세대와 세대 사이엔 짧은 공백기가 있었음을 우린 알아야합니다. 그러니까, 마라도나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94년 월드컵과 호나우도의 첫 월드컵이었던 98년 월드컵까지의 4년간, 그리고 그동안은, 마치 유로 2004에서 유로 2008이 있기까지의 4년간과 굉장히 흡사하지요. 94 월드컵때 활약했던 바죠와 베르캄프는 각각 양밀란에서 죽을 쑤고 있었고, 아직 호나우도는 psv에 있었으며 지단은 보르도에 있었습니다. 드림팀과 밀란 제네레이션의 막바지였고 유벤투스와 레알이 등장하기 이전이었으며 아약스가 빅이어를 들었지요(물론 당시 아약스는 굉장한 세대였지만요). 국제무대로 눈을 돌리자면, 노장 마테우스와 그 반대파의 알력이 극심했던 독일이, 일부 탁월한 선수들의 미발탁에도 불구하고 유로 96을 차지합니다. 독일의 저력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만, 다른 식으로 보자면 그외 팀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고개가 갸웃하하게 되지요. 가만 살펴보면 다른 국가들도 비슷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네덜란드는 아직 아약스파와 반아약스파의 갈등이 정리되기 전이었기에 변변한 경기력을 펼쳐내진 못했습니다. 그럼, 당시의 축구팬들은 어땠을까요? 밀란 제네레이션과 드림팀을 봤던 그들은요? 플라티니와 마라도나, 호마리우와 바죠, 오렌지 삼총사와 게르만 삼총사, 밀란과 바르샤의 화려한 세대들을 기억하고 있던 그들도, 우리와 같은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우리처럼, 95년의 어느 단락에서, "요즘 축구는 예전만 못해"라고, 너무도 성급히 되뇌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많은 팬들이 유입되었던, 즉 박지성이 맨유를 입단했던 2005년의 축구판도는 꼭 그때와 닮아있지 않나요?

  다행인 것은 우리는 이미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미화로 치부할 근거를 속속들이 발견하고 있다는 겁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선수들이 있고 그들이 활약할 매력적인 팀들이 있습니다. 더욱 흥미진진한 건, 그런 존재의 수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이야기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 있는 것과 둘이 있는 것이 다르고, 그리고 둘이 있는 것과 셋, 넷이 있는 것이 다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차원이 다를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내고, 또 이들이 거울이 되어 전이라면 지나쳤을 이들도 한번 더 세심하게 보게 하는 빛이 되지요. 마치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처음 축구를 접했던 94년도나 98년도의 여름처럼 말입니다.

  날도와 메시를 기점으로 80년대 후반들과 90년대 초반생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요즘 축구판입니다. 하지만 그 약진을 마냥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건 전관 달리 약관을 갓 넘은 나이로 빛나는 별이 된 두 존재가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쉬이 저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갓 모습을 드러낸 신성들은 보다 높은 곳에서 내리쬐는 많은 빛깔이 비출 모든 곳을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 여기겠지요. 먼 위에서 빛이 내리고 있는 한 그들이 어딜 걷고 있는지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그 어느 쯤에서, 그들이 빛이 비추지 않는 곳까지 나아가길, 그리하여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곳을 달려나가길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원래 축게용 글이지만 축게에 글을 쓰기엔 레벨업제한이 있어서 자게에 올립니다. 양해구하구요. 운영자님께서 썩 괜찮다고 생각하시거든 축게에 옮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영진에 의해 게시물이 이동되었습니다. 각 게시판 이용 수칙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10/11/1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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