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estion: 현대 축구에서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은 무엇인가?

플레이메이커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다시 한번 등장했고 이것은 4-2-3-1 포메이션의 발전으로 인해서 생긴 일이며 3명 중 최소 한명의 창조자가 없이 이 포메이션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래서 나는 플레이메이커의 혈통을 추적 해보기로 했다.그러던 도중 브레니 로네이가 나에게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는 누구인가 라고 물어왔고 나는 힘들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현재 아르헨티나에 있고 이곳에선 그러한 답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이곳에서 플레이메이커는 엔간체 ( enganche)라고 불린다, 10번 유니폼을 입고 뛰며 대게 4-3-1-2 포메이션이나 3-4-1-2 포메이션에서 보이며 아직 이 모습을 보이는 클럽들이 존재한다.그렇기 때문에 보카 주니어스가 리켈메의 나이가 32살이고 부상의 위험이 높아 질 수 있음에도 그와 4년 재계약을 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의문을 더 곤란스럽게 만들고는 한다.크로아티아에선 루카 모드리치가 플레이메이커로 간주되고는 하는데, 그가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뛸 적에 3-4-1-2 포메이션에서 엔간체 롤을 소화했기 때문이다.그는 토트넘에서 4-4-2 포메이션의 왼쪽에서 위치하고 있는데 과연 그가 1의 포메이션에 있지 않은데도 플레이메이커라 할 수 있을까? 센터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플레이메이커가 될 수 있는 것 인가? 여기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허들스톤도 주위에 공을 뿌리는데 그가 비록 모드리치와 타입이 다르다곤 하지만 그가 플레이메이커라고 할 순 없는가?
기원 (Origins)

플레이메이커는 팀에게 있어서 적은 창조자들이고 그들은 미드필더진과 공격진에 연결고리와 같다.축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무질서한 축구가 되고 있을 때에, 창조자들은 인사이드-포워드로서 윙-하프들과 센터 포워드 아니면 윙어들에게 공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첫 국제 대회 무승부가 나온 1872년에 잉글랜드는 1-2-7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펼쳤고 그러한 잉글랜드의 포진은 2-2-6을 들고나온 스코틀랜드 팀에 의해 당황스럽게 되고 말았다.
당시에 잉글랜드 팀이 그들의 포워드 라인을 어떻게 했는지는 확신하는 것이 어렵다, 현대 축구에서는 두 명의 윙을 두고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추측 해봤을 때에 패스를 하지 않는데도 어떻게 그들을 창조자로 간주 할 수 있는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우나 Cuthbert Ottaway와 Arnold Kirke-Smith가 인사이드-포워드의 롤을 소화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스코틀랜드의 2-2-6 포메이션에서는 조금 더 많은 증거를 찾아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인사이드 포워드가 Robert Leckie와 James Begg Smith였다는 것을 상당히 확신 할 수 있다.그들은 패스를 하는 선수들이였기 때문에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로 간주되는 것 이다.제대로 된 플레이메이커는 2-2-6이 발전 된 형태인 2-3-5 포메이션에서 발견 할 수 있었고, 남아메리카에는 인사이드-포워드가 더 깊숙히 가서 미드필더와 공격진을 연결하는 역할로 정착이 되었다.1920년대 우루과이 대표팀은 1924년과 1928년 두 번의 올림픽에서 우승을 했고 이러한 개념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 떄문에 최초의 플레이 메이커를 페드로 체아와 엑토르 스카로네라고도 할 수 있다.
아직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이상한 느낌이 있을지도 모른다 (1940년대 후반 리베르 플라테의 라 마키나 시절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가 나간 이후 5명이 있었음에도) W-M의 2-3-5 포메이션이 나오면서 (또는 3-2-2-3) 두 명의 인사이드-포워드 중에 한 명이 더 창조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 예로 허버트 채프만이 아스날 감독직을 맡을 때에 알렉스 제임스의 모습이였다.그는 수비진으로 부터 공을 모으는 일을 했고 철저한 역습 공격을 수행했다.윙어를 통해 공을 연결했던 그는 어찌 보면 영국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라고 할 수 있겠다.
4-2-4와 그 이후 (4-2-4 and beyond)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1940년대 후반 브라질이였고 그것은 다이고날 (대각선)의 발전에 의해서였다.1937년 브라질 플라멩구에 W-M 시스템이 헝가리 감독 Dori Kruschner에 의해서 도입이 되었고 그가 경질 된 이후 수석코치였던 Flávio Costa는 팀을 바꾸어 놓았다.그는 Kruschner의 기술적인 혁명에 대해서 준열한 의견을 보이고 있었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주었다.그는 W-M 시스템에서의 중앙의 사각형 형태를 조금씩 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마름모 형태가 되었다.왼쪽 사이드는 더 올라갔고 오른쪽은 더 깊숙히 위치하거나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인사이드-포워드는 ponta da lança (point of the lance) 라고 불리게 되었고 미드필더진과 공격진에서 역할을 하는 포지션으로 정의가 되었다.심지어 마름모 형태가 약간 더 밀렸을 때에 3-2-2-3 포메이션은 3-1-2-1-3 포메이션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러한 것이 4-2-4의 포메이션이 되었다.ponta da lança는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 로서 깊게 들어가는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롤은 195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펠레가 보여준 모습이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4-2-4로 변화는 과정에서 차이점을 보여주었고 그러한 것은 센터 포워드가 더 깊게 들어감으로서 였다.마티아스 진델라가 그러한 모습을 보인 최초의 선수이고 Wunderteam라고 불리던 휴고 마이슬의 오스트리아 대표팀은 4명의 공격수를 끌어다 와서 득점을 덜 하는 것 보다는 창조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현대적인 괌점에서 볼 때, 그는 아마 잉글랜드가 아닌 곳에서 보인 첫 플레이 메이커이겠지만 당시에 그는 이러한 것을 알지 못했을 것 이다.확실히 1953년 웸블리가 난도르 히데구티가 처진 센터 포워드로 활약해 잉글랜드를 격파했다.1947년 스위스를 상대한 잉글랜드는 알프레드 비켈의 활약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1953년에는 아르헨티나를 상대해서 호세 리카시아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물론 헝가리 대표팀의 난도르 히데구티나 인사이드-레프트였던 페렌크 푸스카스를 플레이메이커라고 하는 것은 어려울 지도 모른다.
브라질이 1958년 4-2-4 포메이션을 사용해서 성공을 거둔 이후, 다른 국가들도 이 포메이션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고 앞에 6명을 두며 약간의 수정을 하기도 했다.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을 거둔 1966년 그들은 안토니오 랏띤을 처진 앵커로 기용을 했는데 당시에 루이스 아르티메가 센터 포워드였으며, 오스카 마스는 왼쪽 윙이면서 공격수였었다.알베르토 곤잘레즈와 호르헤 솔라리는 미드필더진에서 셔틀과 같은 역할을 했고 오네가를 플레이메이커로 기용 하는 모습을 보였다.그 형태는 4-3-1-2의 기본이 되었고 이 토대는 그 이후 20년간 아르헨티나에서 유지가 되었다.
반면 대부분의 나라의 4-2-4 시스템에서 (잉글랜드와 브라질을 포함) 처진 윙어를 통해서 추가의 미드필더를 발견 할 수가 있는데, 네덜란드와 서독 그리고 USSR (소비에트 연방)은 센터 포워드를 처지게 한 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두 명의 윙어가 대칭적인 모습을 취하면서 4-3-3의 형태가 되었고 이러한 전술은 유연함을 지니고 있었다.그리고 리베로가 플레이메이커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나 요한 크루이프는 대부분 자신의 개성을 보였다.그것은 이레적인 일이였고 미드필더가 3명이기는 하지만 플레이메이커를 포함 할 유연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그리고 1972년 서독이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3-1로 격파 할 당시 긘터 네쳐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리베리 프란츠 베켄바워는 아마 최초의 처친 플레이메이커 였을 것 이고 그는 1980년대에 알려진 미드필더였다.1982년 브라질이 팔카오와 세레조를 처친 플레이메이커로서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코와 소크라테스는 조금 더 앞으로 나가는 롤을 맡고 있었던 플레이 메이커였다.
빌라도의 프로토콜 (The Bilardo protocol)
많은 혼란스러움이 있기는 하지만 전술적인 변화를 준 것은 1986년 월드컵 도중 아르헨티나 감독 카를로스 빌라도가 보여준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뒤의 세명을 많이 이동시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를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기용을 하면서 그의 뒤에 7명 (3-4 또는 4-3)을 두는 모습을 보였다.
빌라도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실용적인 이유 때문에 이동을 자제 시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가 센터 포워드였던 페드로 파스쿨리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그는 2라운드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승리를 이끌었던 공격수 였는데 말이다.그의 전술은 피지컬로 다가오는 잉글랜드의 수비를 대처 할 수 있었고, 그러한 스위치 움직임은 10년 동안 가장 전술 변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도 할 수 있겠다.한 때 플레이메이커가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이용되었고, 그러한 방법은 각자 퍼졌다.데니스 베르캄프는 플레이메이커인가 세컨드 스트라이커인가? 로베르토 바죠는? 지안프랑코 졸라는?
그들은 둘 다 아니면서도 둘 다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에매모호함은 4-2-3-1 포메이션이 퍼지면서 일어난 일이다.처진 플레이메이커를 통한 전술은 많은 이점이 있는데 사비 알론소가 홀딩 중 한 선수로 그러한 점을 보여줬다, 그렇기 때문에 팀은 수비측면에서 단단함을 보이면서도 창조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최근 4-2-3-1 포메이션에서 플레이메이커/세컨드 스트라이커가 1980년대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3명 보단 2명 뒤에서 활약을 하는 것이 더 나으며 플레이메이커들은 자신들의 기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스카로네와 제임스 그리고 펠레가 그랬던 것 처럼.1958년 센터 스트라이커와 두명의 윙으로 창조적인 모습을 보인 것과 흡사하게 말이다.
확실하게 플레이메이커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의를 할 순 없다; 사람들이 플레이메이커로 선수를 간주하는 데에 범위를 주는 것이며, 확실한 사실은 플레이메이커는 포지션이 아닌 마음의 상태라는 것 이다.
http://www.guardian.co.uk/sport/blog/2010/aug/18/what-is-a-playmakers-role-in-modern-game
*Jonathan Wilson 이라는 분이 쓰시는 글인데 전술책을 내셨다고 하고 그 이야기를 지금 현재 축구 상황과 연계 시켜서 칼럼을 쓰시는 분이라고 하네요.앞에 칼럼 한 29개가 있는데 그것도 시간이 있으면 번역을 해보고 싶네요.
*전술 칼럼이다 보니 여러가지 의역이 많고 어색한 문장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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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 2010.08.19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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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2010.08.19*<a onfocus=\'this.blur()\' href=http://stretford.egloos.com/
target=_blank>http://stretford.egloos.com/
</a>
이글루스의 스트레트 포드님께서 번역해주신 앞부분 칼럼 번역본이구요, 원래 쓰려던 공간론도 조너던 윌슨 이양반에게 탄력받아서 쓰려던건데 뭐 원고 한 번 떠내려가더니 다시 돌아올 생각을 안하네여 -
subdirectory_arrow_right El Diez 2010.08.19@U2 U2님 전술글 한번 보구 싶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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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당이 2010.08.19처음 보고 직접 쓰신줄 알고 축구전문 기자신줄 알았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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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영웅맥카 2010.08.19너무나도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덧글을 쓰고 다시한번 정독을 하고 싶을정도로 끌리는 글이네요... -
El Diez 2010.08.19예전 실용적 축구를 구사했던 채프먼 시절에 영국 최초의 플레이메이커가 나왔다니 좀 놀랍네요. 좋은 번역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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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phinx 2010.08.19감사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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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ReaL 2010.08.19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