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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링요 축구 한 눈에 보기 1편 - 무링요의 철학의 바탕

마인마이콘 2010.07.06 00:59 조회 1,738 추천 28

원래 레알행과는 별도로, 인테르 트레블 전후로 다룰려고 했었는데 레알 마드리드행이 결정나면서 현재 보드진에 대한 불만과 겹친 묘한 이질감 덕에 묻어놨던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레알행이 결정된 덕에 글의 분량이 애초에 기획했던 방향과는 달리 '무진장' 불어난 것도 사실입니다만..






작년 이맘때쯤에 제가 페예그리니가 이끌던 시절의 비야레알과 레알 마드리드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언급하면서 한번 긴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 있었는데, 아무래도 포르투라는 팀의 특성상 당시 경기를 전부 다 구해보기는 무리였고 구글링과 챔피언스 리그 하일라이트, 그리고 모나코와의 결승전에 많이 기댄 이야기입니다. 



누가 말했던가요? 과거의 팀에서 잘했던 감독이라고 현재의 팀에서 잘하라는 법은 없지만 못하라는 법은 없다구요. 하지만, 잘하고 못하고와 다르게 모든 감독은 어떤 팀을 가든 일관된 스피릿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딩크는 한국, 호주, 러시아, 아인트호벤까지.. 어디를 가나 강한 압박, 빠른 공수전환을 주무기로 삼았었죠.

 

 

여튼 일관된 팀스피릿을 주입하고자 노력했던 감독들 중에서, 나쁜 예로는 '차범근'이 있을테고, 좋은 예로는 지금 제가 언급할 '무링요'가 되겠습니다. 

 

 


 


차범근은 어느 팀을 가나 사이드에서 길게 올리고 최전방 포스트 플레이어가 떨구고 우걱저걱 우겨넣는 축구를 합니다. 수비는 1-2명의 '먼치킨'에게 기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구요. 그래서 차붐 축구는 재미가 있는 경기/ 없는 경기로 나뉘는 복불복 게임과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이겨도 재미없는 경기가 더 많다고 해야겠군요. 아무래도 자신이 뛰던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의 분데스리가는 빠른 체력과 강한 피지컬을 앞세운, 소위 말하는 '선 굵은' 축구를 했습니다.




90년 분데스리가를 대표했던 서독의 월드컵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3-5-2를 바탕으로 중원의 큰 맥락은 중앙 미드필더인 마테우스가 전담하고, 이따금씩 스위퍼인 아우겐탈러가 종적으로 넓게 움직이면서 롱패스와 중거리슈팅으로 경기의 흐름을 뚫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좌우 윙은 리트바르스키와 해슬러가 크게 흔들면서 다양한 공격옵션을 제공하는 식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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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개같아도 용서해주세여. 이거 나름 그림판에서 열심히 수정한거)


90년 독일의 전형을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데, 이런 초 절정 사이드 지향적인 포메이션은 당시 절대적인 체력과 뛰어난 축구 IQ를 바탕으로 베켄바우어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던 아우겐탈러와 마테우스의 역량을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습니다. 또한 뚫린다고 하더라도 당시 세계 최고의 키퍼였던 일그너가 막아주니까요.



이를 후에 98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고스란히 옮겨오는 단순한 차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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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도훈, 고종수, 이민성, 이임생, 강철, 노정윤등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큰 맥락에서는 저것과 비슷합니다. 딱 봐도 아시겠지만 홍명보, 유상철, 김병지 이 세명이 흔들리면 경기를 아주 그냥 말아먹는 라인업입니다. 유상철은 마테우스가 아니였고 홍명보는 아우겐탈러가 아니였고 또한 세계 축구는 진일보해 있었기에 98대표팀은 망할 수 밖에 없었죠.

 


 


기껏해야 2경기를 본게 전부인 90년대 독일 대표팀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여튼 선수가 크는 과정에 겪었던 팀들은 어떤 형태든 후에 감독이 될 선수의 케미스트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마라도나가 추구했던 현재의 대표팀의 완성형은 86년~94년까지 - 특히나 자신이 이끄는, 엔트리 전원이 원터치패스와 경기를 뒤집는 패스가 가능했던 86대표팀 - 을 롤모델로 삼았음은 자명하구요. 



이러한 맥락에서 라울이 감독이 된다면 장담컨데 공격축구는 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레알이 공격축구한답시고 죄다 공격수만 몰아넣었다고 라울 자신이 죽어라 수비하랴 공격하랴 고생했던 기억이 매일 떠오를테니까요. 


 

 

 

 


 


그럼 이제 무링요 이야기의 바탕을 깔아보도록 하죠. 




무링요는 다들 아시다시피 90년대중반부터 2000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통역관겸 어시스턴트 코치로 일하게 됩니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바비 롭슨이 경기력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을 하는데, 이어서 '괴장' 루이스 반갈이 취임을 하게 됩니다.


루이스 반갈의 전체적인 모토는 4-3-3을 기본으로 한 틀을 쓰게 됩니다. 뭉퉁그려 이야기하자면

 

 

(클루이베르트, 빅토르 바이아, 데 라 페냐등도 있었습니다만)

 

대충 이정도겠네요. 중앙 3미들은 수시로 위치를 바꾸기도 했고 .. 저 엔트리에서 많은 변화가 있기도 했습니다만, 한가지 눈여겨 보실점은 저때나 이때나 바르셀로나의 '간격'은 촘촘히 유지하고 있었으며 좌우 날개인 피구와 히바우도는 위치에 상관없이 사이드 돌파와 중앙 침투가 모두다 가능했던 요원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센터백인 나달과 데부어는 롱킥에 있어서는 당시 라리가 센터백 중 1-2위를 다투선 선수였습니다. 

 


 


이를 무링요까지 확대해보자면 무링요가 그토록 강조하는(타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밀조밀한) 팀의 간격유지에 대한 모토와, 또한 득점력을 지닌 사이드 요원에 유독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는 점 정도일것입니다. 기실, 그가 영입했었던, 혹은 다루었던 로벤, 더프, 콰레스마, 만시니, 판데브, 에투, 디마리아까지. 측면윙으로써 돌파도 좋지만 최전방 침투로 인한 득점에 용이했던 자원이라는 점이겠습니다. 또한 프랭크 데 부어라는, 공격 전개에 아주 유연한 센터백을 보면서 이후 카르발료-루시우 영입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를 보면 뚜렷해지며, 또한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공격전개만 놓고 보자면 루시우, 피케와 더불어 세계 최정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센터백 라모스를 그토록 원하는 것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후에 첼시편에서도 따로 언급할 예정이지만, 또한 여기서 에시앙이랑 람파드의 위치가 뒤바뀌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와 오밀조밀한 간격, 빠른 공수 전환, 측면 크랙 중심의 공격전개등.. 많은 면에서 닮아있습니다.)

 


또한 그 특유의 '경기는 산으로 가도 결국 이기면 명장', 이라는 철학을 확고히 하게 된 이유는 '괴장' 루이스 반갈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비 롭슨이 사임한 이후 아인트호벤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무링요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무링요는 루이스 반할에게 배울 것이 더욱 많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하던데, 실제로 무링요와 루이스 반할은 상당히 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또한 무링요는 시시각각 인터뷰에서 ' 이기는 팀이 강팀'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는데, 이는 루이스 반갈 특유의 어떻게든 이기는 축구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런 컬러위에 바비 롭슨으로부터 배웠고 이후 첼시에 정착하면서 다져진, 힘 좋은 중앙 미드필더에 대한 욕망 역시 마찬가지겠죠. (현재 레알이 제라드, 슈슈등과 루머가 나는데.. 만약 제라드, 슈슈같이 아무도 영입 안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맥락에서 가고는 죽어도 주전하기 힘들겁니다. 무링요 인생에 힘없는 중앙 미드필더를 중용한 역사는 없.습.니.다.. 물론 가고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피지컬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통뼈가 아니니까요.)



 


 

이런 철학을 하나하나 배우고 떠난 감독수행. 하지만 벤피카에서는 주변의 비판과 또한 바비 롭슨의 끈질긴 구애와 성적 부진으로 인해 3개월만에 그만두게 되었지만 불과 1달만에 라이리아라는 포르투칼의 그저그런팀을 맡아서 5위라는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잔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꾸준히 중상위권으로 팀을 이끌다가 명문 FC 포르투. 그의 인생에 대반전을 가져오게 되는 데코와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p.s 무링요가 지도하기 전이였던 99-00 리그 10위를 기록했던 UD라이리아는 무링요가 맡은 직후 리그 4-8위를 오가며 좋은 성적을 보이다가 무링요가 사임한 이후 10위, 15위, 8위같이 중하위권을 전전하다가 결국 강등되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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