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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목요일 5시

오발탄

Mr. 로벤꼬시기 2010.04.30 12:07 조회 1,584

바르사 전방 공격수 즐라탄은 여섯시가 넘도록 라커룸 한구석 자기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훈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격 포인트는 벌써 집어 치운 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동료들은 눈으로 시계 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경기 종료시간을 기다려 후닥닥 나가 버렸다. 그런데 득점도 못한 즐라탄은 허탈한 것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즐라탄님은 안 나가세요?"

 

이제 청소를 해야 할 테니 그만 나가 달라는 볼보이의 말에 즐라탄은 다 낡아빠진 어센틱 유니폼 상의 겨드랑이 사이에 깊속이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어서 무겁게 라커 위에 올려놓았다.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

 

볼보이는 저쪽 구석에서부터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먼지가 사정없이 즐라탄의 얼굴로 몰려왔다. 즐라탄은 어슬렁 일어섰다. 이쪽 모서리 샤워실로 갔다. 두 발을 끝에서부터 가만히 물 속에 담갔다. 아직 이른 봄이라 물이 꽤 발 끝에 시렸다. 즐라탄은 물 속에 잠긴 두 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축구화에 시달린 오른발 장지 첫마디에 콩알만한 못이 박혔다. 그 못에서 파란 명주실 같은 것이 사르르 물 속으로 번져 나갔다.

 

피! 이건 분명히 피다!

 

즐라탄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물 속에서 발을 빼내었다. 그러자 이번엔 밑바닥에 한 사나이의 얼굴이 보였다. 즐라탄의 눈을 마주 쳐다보는 그 사나이는 얼굴의 온 근육을 이상스레 히물히물 움직이며 입을 비죽거려 웃고 있었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대머리, 그 밑에 우묵하니 팬 두 눈. 깎아진 볼. 날카롭게 여윈 턱. 송장처럼 꺼멓고, 윤기 없는 얼굴. 그것은 까마득한 옛날, 바르사의 한 사나이였다.

 

즐라탄은 옆에 놓인 비누를 집어 들었다. 마구 두 손바닥으로 부볐다. 오구구 까닭 모를 울분이 끓어 올랐다.

 

그는 새삼스레 득점도 도움도 못해먹은 자기를 깨달았다. 뭐든가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짜릿한 마수걸이골 생각이 났다. 발 끝에 땀이 가득히 괴었다. 그는 어느 전신주 밑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서 침을 뱉었다. 그는 다시 일어섰다. 또 한번 오한이 전신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다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속히 경기장을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누 캄프쪽으로 허청허청 걸었다.

 

“챔스 득점.”

 

무슨 약 이름이기나 한 것처럼 한마디 일러 놓고는 그는 필드 위에 엎드려 버렸다. 또 입 안으로 하나 찝찔한 물이 괴었다. 즐라탄은 머리를 들었다. 경기장 안을 한바퀴 휘 둘러보았다. 머리가 아찔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문 밖으로 급히 걸어 나갔다. 골목에 있는 시궁창에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울컥 하고 입 안에 것을 뱉었다. 즐라탄은 유니폼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일어섰다. 그는 다시 큰길로 나왔다. 마침 택시가 한 대 왔다. 그는 손을 한번 흔들었다. 즐라탄은 던져지듯이 털썩 택시 안에 쓰러졌다.

 

“어디로 가시죠?”
 
택시는 벌써 구르고 있었다.

 

“마드리드.”

 

자동차는 스르르 속력을 늦추었다. 마드리드로 가자면 차를 반대쪽까지 몰아야하는 까닭이었다. 운전수는 줄지어 달려오는 자동차의 사이가 생기기를 노리고 있었다. 저만치 자동차의 행렬이 좀 끊겼다. 운전수는 핸들을 잔뜩 비틀어 쥐었다. 운전수가 몸을 한편으로 기울이며 마악 핸들을 틀려는 때였다. 뒷자리에서 즐라탄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주세페 메야챠로 가.”

 

즐라탄은 갑자기 1차전 패배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는 뒷자리 한구석에 가서 몸을 틀어박은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 앞을 돌고 있었다. 그때에 또 뒤에서 즐라탄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누 캄프로 가.”

 

눈을 감고 있는 즐라탄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바르사는 이미 탈락했는데 하고.

 

“누 캄프 앞입니다.”

 

즐라탄은 눈을 떴다.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그러나 곧 또 털썩 뒤로 기대고 쓰러져 버렸다.

 

“아니야, 가.”
“누 캄픕니다, 손님.”

 

조수애가 뒤로 몸을 틀어 돌리고 말했다.

 

“가자.”

 

즐라탄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어디로 갑니까?”
“글쎄 가.”
“하 참 딱한 아저씨네.”
“……”
“취했나?”

 

운전수가 힐끔 조수애를 쳐다보았다.

 

“그런가 봐요.”
“어쩌다 오발탄(誤發彈)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운전수는 기어를 넣으며 중얼거렸다. 즐라탄은 까무룩히 잠이 들어가는 것 같은 속에서 운전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리 듣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죠?”

 

그러나 머리를 푹 앞으로 수그린 즐라탄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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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magicarp.egloos.com/325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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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스포츠 밸리 돌아다니다가 재미있게 읽어서 가져왔습니다.

인테르, 진짜 장사한번 잘했네요-_-;;

에투+480억에 즐라탄 팔아서 선수 보강 다하고(...)

에투는 팀에 녹아드는데 즐라탄은 그야말로 오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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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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