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한국 유망주들 이야기
미디어 게시판에.. 최성국 선수 이야기 풀다가
옛날에 유럽 축구는 베컴.. 히바우두.. 사비올라.. 클루이 베르트.. 코쿠.. 오베르마스.. 이에로.. 월드컵에 나왔던 애들 외에는 전혀 모르던 시절. 집에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전 금단의 avi파일도 고2때 처음 봤다지요. 애들에 비해 한 3년은 족히 늦게) 국가 대표팀, K리그, 심지어 tv에서 가끔씩 해주던 고등학생들, 경남 청소년 대표팀vs 경북 청소년 대표팀 이런 경기도 닥치는 대로 보던 시절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글 순서는, 기대한 순서와는 상관없이 생각나는 순서대로 적어갑니다.

1. 이동국 - 엘리트 코스는 죄다 밟은, 고비때마다 무릎 부상으로 망가진, 미완의 대기
뭐 이동국만큼 애증의 존재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전국민을 반으로 딱 갈라서 이동국을 '싫어하는 사람' vs 이동국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가를 수 있다고 할 정도일까요?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명백히 이동국은 70년대부터 이어진, 아시아 최고급이라고 인정받던 이회택-차범근-최순호-김주성-황선홍-최용수(김도훈)의 계보를 잇는 존재라는 겁니다.(김도훈은 지금의 조재진처럼 2인자 이미지가 확고히 박혀있었지요. 물론, 조재진과는 비교도 안되는 괴물이었습니다만)
왜냐구요? 저 위에 열거한 사람 중에서, 황선홍-최용수은 국민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았던 역사가 있고, 이제서야 황선홍이 '캬, 역시 황선홍은 그때 참 볼 하나는 잘 찼단 말이야'라고 조기축구 하시던 아저씨, 삼촌들이 이야기하곤 하지만, 제가 처음으로 조기축구회란걸 가입했던 초등학교 6학년때.. 99년도만 해도 전혀 다른 반응이였습니다.
' 동국이 봐라 안카나. 황선홍 그 빙시 색히는 30살이나 쳐문게 그정도도 못 찬다'
팬심은 여기까지 하구요. 이동국의 바이오그라피는 '모든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꿈꾸는 커리어'를 그대로 밟았어요. 그냥 각종 대회, 득점왕, 각급 국가대표팀은 다 휩쓸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선수'였지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대회의 득점왕, MVP는 죄다 휩쓸었어요.
그 덕에 19세 이하 아시아대표팀에서의 극적인 터닝슛.. 우승을 이끌고, MVP + 득점왕
만 18살때 국가대표팀에 데뷔했고, 만 19세때 월드컵에 나섰을 정도니 말 다했죠.
19살때부터 국가대표팀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
그리고 혹사의 여파로(심할경우에는 국가대표팀+올림픽 대표팀 + K리그까지 병행해서 한달에 9경기를 뛰었을 정도) 2000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서 쉴려고 했지만, 올림픽 대표팀 출장 + 아시안컵 출장까지.. 그 와중에도 올림픽 대표팀 3경기 1득점, 아시안컵에서 5경기 5득점으로 득점왕 까지

(아시안컵 8강전 , 골든골을 넣는 순간, 이동국의 오른쪽 무릎의 붕대가 눈에 띈다. 그리고 정확히 5년 반 후. 이동국의 오른쪽 무릎은 '아작' 나면서 월드컵 2회 연속 출전 실패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다)
그리고 독일에서의 실패와 2002월드컵 진출 실패
그리고 광주상무를 이끌면서 2004 본프레레, 2005-6 아드보카트까지.. 여지없이 그를 아시아 최고로 꼽으면서 부동의 원톱으로 기용했죠. 하지만 부상, EPL 진출 실패등으로.. 그래도 전북에서 살아나서, 현재 21경기 16골로 부동의 득점 선두.
이동국이 정말 크게 될 줄 알았습니다.
최소한 클루이베르트만큼은 말이죠.
재능탓도 있고, 부상 탓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봐도 90년대 후반의 이동국은 경악이네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줏어먹기만 하는 애가 아니라, 공격 작업의 절반은 이동국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어요. 김경일-이동국-김은중 트로이카의 경기력은 디에구-이아퀸타-아마우리의 청소년 버젼이네요. 그때의 이동국은, 혹사의 여파로 체력한계가 없던 이동국은 정말.. 이따위로 무시당할 선수가 아니였지요.

2. 박용호 - 수비에 대한 이해도 하나는 한국 역사상 넘버원
어찌보면 박용호에게 이런 고평가는, 다소 설레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가 이끌었던 2001 세계 청소년 대회를 준비하는 2000년 아시아 u-19 대표팀은 졸전 끝에 골키퍼의 자폭성 실책으로 8강에서 중국(아마도..)에게 어이없게 지면서 탈락했고, 2000년 안양 LG에 입단했지만, 거기서도 벤치워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직접 매번 인터뷰마다 '박용호는 홍명보를 넘을 재목'이라고 극찬을 했고, 직접 뽑아서 테스트까지 해봤던 히딩크가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엔트리에 넣으면서 가능성은 일찍이 입증받았죠.
그리고 2000년 안양은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최용수-정광민.. 일명 조류 2톱이라 불리는 파랑새-독수리 조합은 가히 살인 병기에 가까웠고, 이상헌-김성일-한성구의 마의 3백은 데니스 빼고는 뚫지 못한다,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그런 막강한 엔트리에 갓 프로에 데뷔한 박용호가 중용받기는 힘들었겠죠.
여튼, 박용호는 정말 '영리'했습니다. 잘생겼고, 키도 작지 않고(183cm) 무엇보다 든든했다고나 할까요? 질때나 이길때나 변함없이 열심히 그라운드를, 안정적으로 막아섰습니다. 또한 2002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한 안양에서나, 2005년 광주에 입단한 이후나, 2007년 귀네슈 서울로 복귀한 이후나. 부상때를 제외하곤 항상 박용호는 넘버원 선택이였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가 자랑하던 영리한 수비는 이미 조용형이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에게 없는 거친 몸싸움과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이용한 수비는 곽희주와 강민수, 그리고 그들보다 더 뛰어난 이정수라는 역사상 최강의 센터백이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이정수의 경우는 , 거듭 말하지만 K리그 팬들로부터 마토와 동급으로 취급받던 선수입니다. 네임벨류만 딸릴뿐, 그 발빠른 스피드와 영리한 수싸움까지. 그야말로 K리그의 철벽이던 선수였습니다. 조용형보다 못하다고 비하받던 생각이 나서 몇자 얼추 적어봅니다. 그의 진가는 이번 호주전때 더욱 분명해질겁니다.)
2000년대 초반, 홍명보의 좌우 파트너로 마땅한 선수가 없이 강철, 김태영, 윤희준, 이민성, 심재원, 서덕규등이 테스트를 받다가 , 더 나아가 홍명보마저 탈락하고 송종국, 김태영등이 수비의 핵으로 떠오를때 자리를 잡지 못했던 박용호.
생각해보면 기량의 한계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청소년 레벨에서 먼치킨이였을 뿐이지 말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그의 능력에 비해 너무 스포트 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것 말이죠.
예전에, 김학범 감독이 2006월드컵을 나서는 김영철을 일컫어 '홍명보의 파트너가 되지 못할 선수였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들지 못했다.'라고, 능력에 비해서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평가 절하 받던 선수라고 했는데, 박용호도 비슷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먼 발치 앞에는 홍명보, 코앞에는 심재원, 옆에는 조병국, 뒤에는 조용형까지..
하지만, 부디 꾸준히 K리그 최정상에 군림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용호 선수.

3. 정윤성
2000년 정도였을겁니다. 여느 때처럼 통학길에, 편의점에 걸려있는 스포츠 신문을 500원 주고 사서 학교에 가서 보는데, 축구 섹션에 '정윤성! 브라질 진출한다!'라는 큼지막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브라질 전지훈련을 갔던 u-16대표팀중에서, 정윤성이라는 선수가 현지 스카우터에게 눈이 띄여서 약 4개의 브라질 구단과 협상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조그맣게 몇몇 구단 관계자들의 실명과 사진이 언급되면서, 정윤성을 5년만 브라질에서 배운다면, 코리아노 호나우도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라는 어찌보면 지나치게 거품이 끼인, 하지만 그만큼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랬던 선수였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이동국이 부상과 독일에서의 실패로 부진할때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동국보다 더 빠른 월반을 통해서 A매치에 내보내서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 라는 말까지 듣던 선수였습니다.
이런 기대치를 반영하듯이, 2003년 당시 K리그 최고의 구단 수원삼성에 입단하게 되었고, 19살에 불과했으니, 2군에서 주로 뛰었으며, 광주상무에서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쌓은 이후, 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정윤성이 이적 의사를 내비치자, 차범근 감독이 너의 재능을 믿는다며 끝까지 잡아뒀었죠. 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고 부상에 시달리던 정윤성은, 경남으로 이적했고, 박항서 감독의 지도아래 , 2007년 후반기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경남에서 후반기동안 15경기에 출장해서 6득점에 3어시스트라는, 무척이나 좋은 기록을 보여주죠.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박항서가 빠진 이후, 경남에서 정윤성은 부상과 부진으로 하향세를 기록하고, 박항서가 있는 전남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여전히 부진합니다.
하지만, 고작 25살입니다. 보여줄 게 많은 선수. 잠시나마 기대를 그에게 걸었던 많은 K리그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4. 김도균 - 유상철을 쏙 닮은 플레이, 그리고 쏙 닮지 못했던 프로에서의 적응과 유리몸
아마, 올드팬 중들은, 이관우-김도균-윤정환-박진섭에 대한 향수가 많으실거에요. 그보다 더 축덕이라면 김경일, 최철우, 심재원 선수 정도도 기억하시겠네요.
김도균.
완벽했습니다.
185에 육박하는 큰 키
뛰어난 바디 밸런스
그리고 압박에도 볼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뛰어난 볼 배급
그리고 90분이 끝난 이후에도 달리고 있는 그의 체력
강력한 중거리슛과 주장으로서의 완벽한 리더쉽..
그게 끝이였어요.
97,98,99,2000,2001
아시안컵,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을 모두 거쳤지만
2001년 이후 그의 커리어는 내리막길의 연속이었습니다.
2차례의 크나큰 무릎 부상
일본에서의 실패
지금은 대학교 코치와 지역 유소년 축구팀 코치를 맡고 있다는데..
김도균.
전 아직도 가끔씩 생각합니다. 김도균이 .. 2002월드컵에 나왔다면.. 김남일이 4강전에 출장하지 못했어도 우리가 독일 이겼을거야.
고평가 아니냐구요?
노노.
97-2000년 사이의 김도균을 보신 분이면, 모두 다 공감하실거에요.
아스날의 파트릭 비에이라(전 그때 그렇게 불렀어요)를 연상시키는 괴물이였다고.
지금의 기성용이 받는 기대를(스타일은 다르지만) 한몸에 받았다고 하면 이해가 가실려나?

5. 박진섭 - 뛰어난 두뇌,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재치만점. 하지만 한참 커야할 시기에 갔던 상무행으로 인해 멈춰버린 재능
아이큐 156
재치만점
베컴의 오른발
베론의 영리함
저거 다 신문선이 애드립 친겁니다. 근데 거짓말은 아니였죠. 박진섭 '오른발' 크로스->이동국, 최철우, 안효연, 신병호 골은 한국의 대표공식이였습니다. 베론삘이 농후한 '칼패스' 축구대표팀 공식 아이큐 156.. 2002월드컵 히딩크 부임 직전에 히딩크의 황태자 송종국은 아오안이였습니다. 송종국 역시 청소년-올림픽 대표팀을 거친 엘리트였지만, 박진섭에 비할바는 못 되었죠.
박진섭에 대한 평가가 최고가를 향하자, 박진섭은 욕심을 좀 냅니다. 조기에 군 문제를 해결하고 이후 나와서 유럽에 느긋하게 진출하겠다.
하지만, 이 23살 미래가 창창했던 젊은이의 상무행은(당시 광주상무가 아니였습니다. 실업리그에 속했던 상무였죠) 실패로 돌아갑니다. 실업리그에서 뛰다 보니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고, 이후 히딩크의 눈에 전혀 들지 못했습니다. 우습죠? 대표팀까지 승승장구하며 최성용, 박태하가 버티던 오른쪽 라인의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고, 그의 백업에 불과하던 송종국, 박지성이 히딩크호에서 중용받을때 그는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다니 말이죠.
상무에서 제대하고, 울산-성남을 거치면서 최고의 K리그 선수중 한명으로 군림했지만,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히딩크가 물러나고 나서 코엘류-본프레레동안 나름 중용받습니다. 특히나, 2004년 아시안컵 도중에 쿠웨이트 전에 이영표와 나란히 좌우 윙백으로 나섰던 경기는, 근 4년만에 '좌영표 우진섭'라인의 부활이였죠. 그 경기에서 맹활약했지만, 이후 한국대표팀의 8강에서의 조기탈락. 그리고 다시는 입지 못했던 대표팀 유니폼.
말년은 부산에서 잘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32살.
그가 그토록 바랬던 유럽 진출도, 월드컵 진출도 한번 하지 못했던
뛰는 폼이 굉장히 독특했던 오른쪽 윙백은 이제는 추억속의 선수로 흩어져 가고 있습니다.
말년만 비교해보면, 이리저리 부진하고 기복이 심했고 2002월드컵 반짝이였던 송종국보다
꾸준히 국가대표팀 레귤러 클래스의 활약을 해줬던 박진섭을 더 중용한게 맞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히딩크 시절 송종국은 웽거가 극찬했을 정도니, 굳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얼마전 부산vs포항전 보니, 재치있는 플레이는 여전하더군요..
보고싶습니다. 국가대표팀 13번 박진섭
이외에도, 심재원, 김경일, 이관우, 최철우, 임유환, 양현정, 김동현, 신동근이 떠오르네요. 이관우, 임유환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행보를 걷고 있죠.
간략히 언급하자면
심재원 - 히딩크가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재능. 하지만 이후 독일에서의 실패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실패. 지금은 중국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중
김경일 - 부상으로 인해서 실패. 윤정환, 고종수, 기성용을 길러낸 고용옥 감독의 또다른 '천재 컬렉션'. 고종수, 윤정환보다 '2수는 위'라고 기영옥 감독이 직접 극찬했지만 부상으로 정말 망했음. 부상으로..
이관우 - 2차례의 불운한 사고. 멈춰버린 재능. 한계라면 한계. 스타일이라면 스타일. 그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팀은 돌아가지 않아
최철우 - 코엘류도 주목했던 재능. 딱 거기까지.. 현재는 n리그에서 활약중
임유환 - 전북의 수비의 핵.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까지 소화가능한 다기능 플레이어. 허정무 이후에 반드시 국가대표팀으로 뽑힐거라고 확신하는 선수
양현정 - 지금은 베트남.. 중국등에서 활약.. K리그 신인왕까지 받았으나, 이후에 완전히 몰락.. 정말 왼발 하나는 기가 막혔는데..
신동근 - 이영표를 넘을 재능이었음. 딱 거기까지. '넘을뻔한' 재능
김동현 - 김동현의 '피지컬'만 이용할 줄 알았던 차붐축구의 희생자. 수원이 아니라, 차라리 하부팀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갔으면 .. 하는 아쉬움이 드는 선수
++) 2000년 피파 2000당시 제가 구상했던 2002월드컵 대표팀은 3-4-3 기준으로
----안정환-황선홍-이동국----
이영표-김도균-유상철-박진섭-
---이임생-홍명보---심재원---
-----------김병지-----------
벤치에 김은중, 최철우, 설기현, 김상식, 고종수, 이관우, 강철, 김용대, 하석주, 박태하 ... 정도?
ㅋㅋㅋㅋㅋㅋㅋ
저 중에서 절반이 조금 안습인 말년을 걷고 있네요.
에휴..
부상으로 실패 - 김도균, 이동국
선택미스로 실패 - 박진섭
기량한계로 실패 - 정윤성, 박용호
옛날에 유럽 축구는 베컴.. 히바우두.. 사비올라.. 클루이 베르트.. 코쿠.. 오베르마스.. 이에로.. 월드컵에 나왔던 애들 외에는 전혀 모르던 시절. 집에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전 금단의 avi파일도 고2때 처음 봤다지요. 애들에 비해 한 3년은 족히 늦게) 국가 대표팀, K리그, 심지어 tv에서 가끔씩 해주던 고등학생들, 경남 청소년 대표팀vs 경북 청소년 대표팀 이런 경기도 닥치는 대로 보던 시절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글 순서는, 기대한 순서와는 상관없이 생각나는 순서대로 적어갑니다.

1. 이동국 - 엘리트 코스는 죄다 밟은, 고비때마다 무릎 부상으로 망가진, 미완의 대기
뭐 이동국만큼 애증의 존재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전국민을 반으로 딱 갈라서 이동국을 '싫어하는 사람' vs 이동국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가를 수 있다고 할 정도일까요?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명백히 이동국은 70년대부터 이어진, 아시아 최고급이라고 인정받던 이회택-차범근-최순호-김주성-황선홍-최용수(김도훈)의 계보를 잇는 존재라는 겁니다.(김도훈은 지금의 조재진처럼 2인자 이미지가 확고히 박혀있었지요. 물론, 조재진과는 비교도 안되는 괴물이었습니다만)
왜냐구요? 저 위에 열거한 사람 중에서, 황선홍-최용수은 국민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았던 역사가 있고, 이제서야 황선홍이 '캬, 역시 황선홍은 그때 참 볼 하나는 잘 찼단 말이야'라고 조기축구 하시던 아저씨, 삼촌들이 이야기하곤 하지만, 제가 처음으로 조기축구회란걸 가입했던 초등학교 6학년때.. 99년도만 해도 전혀 다른 반응이였습니다.
' 동국이 봐라 안카나. 황선홍 그 빙시 색히는 30살이나 쳐문게 그정도도 못 찬다'
팬심은 여기까지 하구요. 이동국의 바이오그라피는 '모든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꿈꾸는 커리어'를 그대로 밟았어요. 그냥 각종 대회, 득점왕, 각급 국가대표팀은 다 휩쓸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선수'였지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대회의 득점왕, MVP는 죄다 휩쓸었어요.
그 덕에 19세 이하 아시아대표팀에서의 극적인 터닝슛.. 우승을 이끌고, MVP + 득점왕
만 18살때 국가대표팀에 데뷔했고, 만 19세때 월드컵에 나섰을 정도니 말 다했죠.
19살때부터 국가대표팀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
그리고 혹사의 여파로(심할경우에는 국가대표팀+올림픽 대표팀 + K리그까지 병행해서 한달에 9경기를 뛰었을 정도) 2000년 무릎 부상으로 인해서 쉴려고 했지만, 올림픽 대표팀 출장 + 아시안컵 출장까지.. 그 와중에도 올림픽 대표팀 3경기 1득점, 아시안컵에서 5경기 5득점으로 득점왕 까지

(아시안컵 8강전 , 골든골을 넣는 순간, 이동국의 오른쪽 무릎의 붕대가 눈에 띈다. 그리고 정확히 5년 반 후. 이동국의 오른쪽 무릎은 '아작' 나면서 월드컵 2회 연속 출전 실패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다)
그리고 독일에서의 실패와 2002월드컵 진출 실패
그리고 광주상무를 이끌면서 2004 본프레레, 2005-6 아드보카트까지.. 여지없이 그를 아시아 최고로 꼽으면서 부동의 원톱으로 기용했죠. 하지만 부상, EPL 진출 실패등으로.. 그래도 전북에서 살아나서, 현재 21경기 16골로 부동의 득점 선두.
이동국이 정말 크게 될 줄 알았습니다.
최소한 클루이베르트만큼은 말이죠.
재능탓도 있고, 부상 탓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봐도 90년대 후반의 이동국은 경악이네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줏어먹기만 하는 애가 아니라, 공격 작업의 절반은 이동국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어요. 김경일-이동국-김은중 트로이카의 경기력은 디에구-이아퀸타-아마우리의 청소년 버젼이네요. 그때의 이동국은, 혹사의 여파로 체력한계가 없던 이동국은 정말.. 이따위로 무시당할 선수가 아니였지요.

2. 박용호 - 수비에 대한 이해도 하나는 한국 역사상 넘버원
어찌보면 박용호에게 이런 고평가는, 다소 설레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가 이끌었던 2001 세계 청소년 대회를 준비하는 2000년 아시아 u-19 대표팀은 졸전 끝에 골키퍼의 자폭성 실책으로 8강에서 중국(아마도..)에게 어이없게 지면서 탈락했고, 2000년 안양 LG에 입단했지만, 거기서도 벤치워머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직접 매번 인터뷰마다 '박용호는 홍명보를 넘을 재목'이라고 극찬을 했고, 직접 뽑아서 테스트까지 해봤던 히딩크가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엔트리에 넣으면서 가능성은 일찍이 입증받았죠.
그리고 2000년 안양은 상당히 무서웠습니다. 최용수-정광민.. 일명 조류 2톱이라 불리는 파랑새-독수리 조합은 가히 살인 병기에 가까웠고, 이상헌-김성일-한성구의 마의 3백은 데니스 빼고는 뚫지 못한다,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그런 막강한 엔트리에 갓 프로에 데뷔한 박용호가 중용받기는 힘들었겠죠.
여튼, 박용호는 정말 '영리'했습니다. 잘생겼고, 키도 작지 않고(183cm) 무엇보다 든든했다고나 할까요? 질때나 이길때나 변함없이 열심히 그라운드를, 안정적으로 막아섰습니다. 또한 2002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한 안양에서나, 2005년 광주에 입단한 이후나, 2007년 귀네슈 서울로 복귀한 이후나. 부상때를 제외하곤 항상 박용호는 넘버원 선택이였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가 자랑하던 영리한 수비는 이미 조용형이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에게 없는 거친 몸싸움과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이용한 수비는 곽희주와 강민수, 그리고 그들보다 더 뛰어난 이정수라는 역사상 최강의 센터백이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이정수의 경우는 , 거듭 말하지만 K리그 팬들로부터 마토와 동급으로 취급받던 선수입니다. 네임벨류만 딸릴뿐, 그 발빠른 스피드와 영리한 수싸움까지. 그야말로 K리그의 철벽이던 선수였습니다. 조용형보다 못하다고 비하받던 생각이 나서 몇자 얼추 적어봅니다. 그의 진가는 이번 호주전때 더욱 분명해질겁니다.)
2000년대 초반, 홍명보의 좌우 파트너로 마땅한 선수가 없이 강철, 김태영, 윤희준, 이민성, 심재원, 서덕규등이 테스트를 받다가 , 더 나아가 홍명보마저 탈락하고 송종국, 김태영등이 수비의 핵으로 떠오를때 자리를 잡지 못했던 박용호.
생각해보면 기량의 한계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청소년 레벨에서 먼치킨이였을 뿐이지 말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그의 능력에 비해 너무 스포트 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것 말이죠.
예전에, 김학범 감독이 2006월드컵을 나서는 김영철을 일컫어 '홍명보의 파트너가 되지 못할 선수였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에 들지 못했다.'라고, 능력에 비해서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평가 절하 받던 선수라고 했는데, 박용호도 비슷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먼 발치 앞에는 홍명보, 코앞에는 심재원, 옆에는 조병국, 뒤에는 조용형까지..
하지만, 부디 꾸준히 K리그 최정상에 군림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용호 선수.

3. 정윤성
2000년 정도였을겁니다. 여느 때처럼 통학길에, 편의점에 걸려있는 스포츠 신문을 500원 주고 사서 학교에 가서 보는데, 축구 섹션에 '정윤성! 브라질 진출한다!'라는 큼지막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브라질 전지훈련을 갔던 u-16대표팀중에서, 정윤성이라는 선수가 현지 스카우터에게 눈이 띄여서 약 4개의 브라질 구단과 협상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조그맣게 몇몇 구단 관계자들의 실명과 사진이 언급되면서, 정윤성을 5년만 브라질에서 배운다면, 코리아노 호나우도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라는 어찌보면 지나치게 거품이 끼인, 하지만 그만큼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식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랬던 선수였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 이동국이 부상과 독일에서의 실패로 부진할때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동국보다 더 빠른 월반을 통해서 A매치에 내보내서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 라는 말까지 듣던 선수였습니다.
이런 기대치를 반영하듯이, 2003년 당시 K리그 최고의 구단 수원삼성에 입단하게 되었고, 19살에 불과했으니, 2군에서 주로 뛰었으며, 광주상무에서 나쁘지 않은 커리어를 쌓은 이후, 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정윤성이 이적 의사를 내비치자, 차범근 감독이 너의 재능을 믿는다며 끝까지 잡아뒀었죠. 하지만, 기회를 잡지 못하고 부상에 시달리던 정윤성은, 경남으로 이적했고, 박항서 감독의 지도아래 , 2007년 후반기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경남에서 후반기동안 15경기에 출장해서 6득점에 3어시스트라는, 무척이나 좋은 기록을 보여주죠.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박항서가 빠진 이후, 경남에서 정윤성은 부상과 부진으로 하향세를 기록하고, 박항서가 있는 전남으로 이적한 이후에도 여전히 부진합니다.
하지만, 고작 25살입니다. 보여줄 게 많은 선수. 잠시나마 기대를 그에게 걸었던 많은 K리그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4. 김도균 - 유상철을 쏙 닮은 플레이, 그리고 쏙 닮지 못했던 프로에서의 적응과 유리몸
아마, 올드팬 중들은, 이관우-김도균-윤정환-박진섭에 대한 향수가 많으실거에요. 그보다 더 축덕이라면 김경일, 최철우, 심재원 선수 정도도 기억하시겠네요.
김도균.
완벽했습니다.
185에 육박하는 큰 키
뛰어난 바디 밸런스
그리고 압박에도 볼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뛰어난 볼 배급
그리고 90분이 끝난 이후에도 달리고 있는 그의 체력
강력한 중거리슛과 주장으로서의 완벽한 리더쉽..
그게 끝이였어요.
97,98,99,2000,2001
아시안컵, 청소년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을 모두 거쳤지만
2001년 이후 그의 커리어는 내리막길의 연속이었습니다.
2차례의 크나큰 무릎 부상
일본에서의 실패
지금은 대학교 코치와 지역 유소년 축구팀 코치를 맡고 있다는데..
김도균.
전 아직도 가끔씩 생각합니다. 김도균이 .. 2002월드컵에 나왔다면.. 김남일이 4강전에 출장하지 못했어도 우리가 독일 이겼을거야.
고평가 아니냐구요?
노노.
97-2000년 사이의 김도균을 보신 분이면, 모두 다 공감하실거에요.
아스날의 파트릭 비에이라(전 그때 그렇게 불렀어요)를 연상시키는 괴물이였다고.
지금의 기성용이 받는 기대를(스타일은 다르지만) 한몸에 받았다고 하면 이해가 가실려나?

5. 박진섭 - 뛰어난 두뇌, 지금까지도 변치 않는 재치만점. 하지만 한참 커야할 시기에 갔던 상무행으로 인해 멈춰버린 재능
아이큐 156
재치만점
베컴의 오른발
베론의 영리함
저거 다 신문선이 애드립 친겁니다. 근데 거짓말은 아니였죠. 박진섭 '오른발' 크로스->이동국, 최철우, 안효연, 신병호 골은 한국의 대표공식이였습니다. 베론삘이 농후한 '칼패스' 축구대표팀 공식 아이큐 156.. 2002월드컵 히딩크 부임 직전에 히딩크의 황태자 송종국은 아오안이였습니다. 송종국 역시 청소년-올림픽 대표팀을 거친 엘리트였지만, 박진섭에 비할바는 못 되었죠.
박진섭에 대한 평가가 최고가를 향하자, 박진섭은 욕심을 좀 냅니다. 조기에 군 문제를 해결하고 이후 나와서 유럽에 느긋하게 진출하겠다.
하지만, 이 23살 미래가 창창했던 젊은이의 상무행은(당시 광주상무가 아니였습니다. 실업리그에 속했던 상무였죠) 실패로 돌아갑니다. 실업리그에서 뛰다 보니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고, 이후 히딩크의 눈에 전혀 들지 못했습니다. 우습죠? 대표팀까지 승승장구하며 최성용, 박태하가 버티던 오른쪽 라인의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고, 그의 백업에 불과하던 송종국, 박지성이 히딩크호에서 중용받을때 그는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다니 말이죠.
상무에서 제대하고, 울산-성남을 거치면서 최고의 K리그 선수중 한명으로 군림했지만,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히딩크가 물러나고 나서 코엘류-본프레레동안 나름 중용받습니다. 특히나, 2004년 아시안컵 도중에 쿠웨이트 전에 이영표와 나란히 좌우 윙백으로 나섰던 경기는, 근 4년만에 '좌영표 우진섭'라인의 부활이였죠. 그 경기에서 맹활약했지만, 이후 한국대표팀의 8강에서의 조기탈락. 그리고 다시는 입지 못했던 대표팀 유니폼.
말년은 부산에서 잘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32살.
그가 그토록 바랬던 유럽 진출도, 월드컵 진출도 한번 하지 못했던
뛰는 폼이 굉장히 독특했던 오른쪽 윙백은 이제는 추억속의 선수로 흩어져 가고 있습니다.
말년만 비교해보면, 이리저리 부진하고 기복이 심했고 2002월드컵 반짝이였던 송종국보다
꾸준히 국가대표팀 레귤러 클래스의 활약을 해줬던 박진섭을 더 중용한게 맞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히딩크 시절 송종국은 웽거가 극찬했을 정도니, 굳이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얼마전 부산vs포항전 보니, 재치있는 플레이는 여전하더군요..
보고싶습니다. 국가대표팀 13번 박진섭
이외에도, 심재원, 김경일, 이관우, 최철우, 임유환, 양현정, 김동현, 신동근이 떠오르네요. 이관우, 임유환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행보를 걷고 있죠.
간략히 언급하자면
심재원 - 히딩크가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재능. 하지만 이후 독일에서의 실패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실패. 지금은 중국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중
김경일 - 부상으로 인해서 실패. 윤정환, 고종수, 기성용을 길러낸 고용옥 감독의 또다른 '천재 컬렉션'. 고종수, 윤정환보다 '2수는 위'라고 기영옥 감독이 직접 극찬했지만 부상으로 정말 망했음. 부상으로..
이관우 - 2차례의 불운한 사고. 멈춰버린 재능. 한계라면 한계. 스타일이라면 스타일. 그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팀은 돌아가지 않아
최철우 - 코엘류도 주목했던 재능. 딱 거기까지.. 현재는 n리그에서 활약중
임유환 - 전북의 수비의 핵.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까지 소화가능한 다기능 플레이어. 허정무 이후에 반드시 국가대표팀으로 뽑힐거라고 확신하는 선수
양현정 - 지금은 베트남.. 중국등에서 활약.. K리그 신인왕까지 받았으나, 이후에 완전히 몰락.. 정말 왼발 하나는 기가 막혔는데..
신동근 - 이영표를 넘을 재능이었음. 딱 거기까지. '넘을뻔한' 재능
김동현 - 김동현의 '피지컬'만 이용할 줄 알았던 차붐축구의 희생자. 수원이 아니라, 차라리 하부팀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갔으면 .. 하는 아쉬움이 드는 선수
++) 2000년 피파 2000당시 제가 구상했던 2002월드컵 대표팀은 3-4-3 기준으로
----안정환-황선홍-이동국----
이영표-김도균-유상철-박진섭-
---이임생-홍명보---심재원---
-----------김병지-----------
벤치에 김은중, 최철우, 설기현, 김상식, 고종수, 이관우, 강철, 김용대, 하석주, 박태하 ... 정도?
ㅋㅋㅋㅋㅋㅋㅋ
저 중에서 절반이 조금 안습인 말년을 걷고 있네요.
에휴..
부상으로 실패 - 김도균, 이동국
선택미스로 실패 - 박진섭
기량한계로 실패 - 정윤성, 박용호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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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실바와라 2009.09.05한국 축구의 최고이 재능은 고종수가 아닌가요?? 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축구에 관심도 없었던 제가 고종수땜에 축구를 보기 시작했고 세계에서도 통할 프리킥과 천재성은 절대 나카타 한테 뒤진다고 생각도 안했는데 그 죽일놈의 정신력떔에 이렇게 됬지만 한국 최고의 재능은 전 아직까지 고종수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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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M.Torres 2009.09.05@다비드실바와라 저도 고종수 재능 하나는 굉장히 높게 쳐요. 2000년 1월이였죠? 아리고 사키의 세계 올스타 vs 한일 올스타에서 칠라베르트 보내버렸던 고종수의 프리킥. 아리고 사키가 세리에A에서 통할 선수라면서 직접 가르쳐보고 싶다라고 했었죠.
딱 거기까지였죠. 부상을 떠나서, 자기관리에 충실했다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프로의식 부족이라고 볼 수 있겠죠.) 수원 삼성팬으로써 굉장히 실망한 선수였습니다. -
다비드실바와라 2009.09.05저도 확실히 고종수의 프로의식은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재능이 너무 뛰어난 선수가 너무나 아쉽네요
너무 천재천재라고 치켜세워 준것도 문제 인거 같아요 -
M.Torres 2009.09.05이정수가 무척 잘해주고 있네요
껄껄껄 -
자유기고가 2009.09.05서기복, 고창현, 김수형, 권집, 성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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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Diego 2009.09.06@자유기고가 서기복의 왼발은 거짓말 좀 보태서 고종수급이었는데 말이죠 , 고창현은 요즘 좀 살아나는 것 같긴 하더군요 . 김수형은 부경대 진학이 최악의 실수였고 권집은 시대를 잘 못 만난 안타까운 케이스고 ... 성한수는 김은중과 대전을 먹여살리던게 아직도 생각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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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e 2009.09.05여효진은 요새 뭐하는지... 히딩크가 칭찬 많이 했었는데-_-
남궁웅도 청대때는 괜츈했는데 지금은 시망; -
subdirectory_arrow_right M.Torres 2009.09.05@Maybe ㅠㅠㅠ 남궁웅... 드리블만 보면 정말 유럽 1류 윙어 떠올리는 스킬 소유자.. 근데 후반 20분 넘기면 지쳐서 헉헉대고.. 상대가 몸으로 붙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ㅠㅠㅠㅠㅠ
저도 엄청 좋아했었음. 정말 한때.. -
subdirectory_arrow_right D.Villa 2009.09.05@M.Torres 올시즌 K리그 중계가 워낙 없다보니 남궁웅 선수 활약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커로써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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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Diego 2009.09.06@Maybe 여효진 , 키도 크고 피지컬이 좋았는데 . 청대 때 관심 좀 받다가 어느 순간부터 잊혀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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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티 2009.09.05권집선수는어땠나요? 듣자하니 상당히 재능있는 선수였다고하던데... 윤정환선수너무아쉬워요ㅠ 적어도 3,4위 터키전에는 나올거라고생각했는데 갑자기 스코틀랜드전 보고싶네요흡ㅠ
오늘 이정수 정말 잘했는데 세트피스때 대인마크미스는 살짝아쉽네요 ㅎ -
태연 2009.09.05재능이라고해야하나... 한국 청소년대표팀에서 뛰었던 이동국이 기억나는거 같기도한데..그때가 초등학생 때였으니까.. 뭐.. 그때는 정말 잘한다 싶었는데.. 요샌 정말 못한다는 생각밖에는..물론 K리그에서 어떻게 뛰는지 못봤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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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당의라모스 2009.09.05전 고창현 선수디게 아쉽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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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nge@Real 2009.09.06이관우 교통사고만 아니었어도 ㅜ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