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지 칼럼 펌, 무리뉴와 존테리와 로만.그리고 세브첸코
화요일 10시 드레싱룸에서 세브첸코는 마이클 에시앙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었다. 세브첸코는 이 아프리카 최고의 미드필더한테 날개로 패스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는 조세 무링요의 지시도 아니고 다름아닌 로만 구단주의 지시였다. 과거 위대한 선수였던 세브첸코는 지금은 로만의 통역가 역할에 충실하고 있고...무링요는 이미 모든 권한을 잃어가고 있었다.
챔스경기 하루전날 무링요는 모든 선수들을 워밍업을 위해 불렀다. 그러나 단 한명만 참석하지 않았다. 다름아닌 그는 존테리.....존테리 그는 자신의 위치에 나름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번시즌의 부진과 이번시즌 초반에 첼시 대량실점등으로 무링요는 테리의 폼에 의구심을 품었고 메디컬 센터에 직접 문의했다. 그러나 테리는 이걸 굉장히 기분 나빠했고 묘한 말을 남겼다 "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이 말 이후 다음날 무링요는 해임되었다.
그리고 챔스 경기는 시작되었고 테리는 로젠버리전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무링요는 분노했고 테리를 질책햇으나 테리는 일체의 응답을 안했다.
첼시 초반에 무링요와 첼시 보드진의 관계는 좋았다. 그러나 균열은 서서히 시작되고있었다. 로만 구단주는 무링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네센을 영입했고 이는 무링요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아르네센과 그의 보좌관들에게 로만구단주는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의 영입을 요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말을 잘듣는 감독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전혀 그런 스타일의 감독이 아니었고 오히려 보드진과 맞서기 시작했다.
타이틀을 2년연속 차지한 무링요는 아이러니하게도 영입에 관한 모든 권한을 잃었다. 그는 보드진에게 갈라스의 요구대로 재계약을 해서 갈라스를 잡아주기를 바랬지만 보드진은 이러한 무링요의권한을 묵살했다.
한편 무링요는 세브첸코 문제가 자신을 압박하는것을 느꼈다. 무링요는 로만구단주의 친구인 세브첸코가 이미 자신의 전성기 폼을 상실한것을 알고 1월달에 스트라이커 영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드진에 대답은 세브첸코를 활용하라는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첼시 보드진은 무링요의 코치진을 바꾸라고 명령했다. 그 이유는 아브람 그랜트를 무링요 근처에 두라는 말이었다. 아브람 그랜트도 로만구단주의 친구였고 무링요는 거부했다. 그러자 무링요는 새로운 감독을 물색하라고 명령했고 수많은 루머가 난무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팀을 자신을 중심으로 결속시켰고 선수들이 무링요를 지지하자 로만도 한발짝 물러났으나 무링요 코치진은 해고하지않고 아브람 그랜트를 데려오는것으로 나름 합의를 봤다.
첼시 프리시즌도중 세브첸코는 훈련을 거부하고 골프 스윙연습을 하고있었다. 한편 무링요는 그 소식을 듣고 세브첸코를 2군으로 떨어트릴 준비를 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도 불가능했다.
이쯤 되니 무링요의 모든 권한은 없었다. 오직 있다면 경기중 전술뿐이었고 첼시의 내부 관계자는 " 이제 무링요는 구단에서 힘이 없어요. 팀에서 힘이 빠지고 있다는게 느껴져요"
드디어 운명의 수요일 첼시 보드진은 세브첸코 대우문제와 그리고 보드진에 대한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문제로 무링요에게 사임을 중용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거부했다. 그러자 첼시 보드진은 무링요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링요가 다른 구단 감독 부임 못하도록 방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무링요는 사임했고 이 스페셜원은 파란만장한 첼시감독생활을 마무리했다.
그가 떠날때 드록바와 램파드는 울었다. 한편 무링요가 해임된이후 금요일날있던 팀미팅에서 말루다 드록바 애쉴리 콜은 테리를 공격했다. 주장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그들은 언성을 높혔다.
한편 무링요 해임이후 아카데미 코치 brenen은 1군 코치로 승격했다.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알고보니 그는 로만 자식의 축구 전담 코치였다. 로만은 그의 노력을 높이 사 1군으로 승격시켜주었다.
[출처] 조세 무링요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英 가디언 칼럼)
챔스경기 하루전날 무링요는 모든 선수들을 워밍업을 위해 불렀다. 그러나 단 한명만 참석하지 않았다. 다름아닌 그는 존테리.....존테리 그는 자신의 위치에 나름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번시즌의 부진과 이번시즌 초반에 첼시 대량실점등으로 무링요는 테리의 폼에 의구심을 품었고 메디컬 센터에 직접 문의했다. 그러나 테리는 이걸 굉장히 기분 나빠했고 묘한 말을 남겼다 "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이 말 이후 다음날 무링요는 해임되었다.
그리고 챔스 경기는 시작되었고 테리는 로젠버리전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무링요는 분노했고 테리를 질책햇으나 테리는 일체의 응답을 안했다.
첼시 초반에 무링요와 첼시 보드진의 관계는 좋았다. 그러나 균열은 서서히 시작되고있었다. 로만 구단주는 무링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네센을 영입했고 이는 무링요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아르네센과 그의 보좌관들에게 로만구단주는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의 영입을 요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말을 잘듣는 감독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전혀 그런 스타일의 감독이 아니었고 오히려 보드진과 맞서기 시작했다.
타이틀을 2년연속 차지한 무링요는 아이러니하게도 영입에 관한 모든 권한을 잃었다. 그는 보드진에게 갈라스의 요구대로 재계약을 해서 갈라스를 잡아주기를 바랬지만 보드진은 이러한 무링요의권한을 묵살했다.
한편 무링요는 세브첸코 문제가 자신을 압박하는것을 느꼈다. 무링요는 로만구단주의 친구인 세브첸코가 이미 자신의 전성기 폼을 상실한것을 알고 1월달에 스트라이커 영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드진에 대답은 세브첸코를 활용하라는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첼시 보드진은 무링요의 코치진을 바꾸라고 명령했다. 그 이유는 아브람 그랜트를 무링요 근처에 두라는 말이었다. 아브람 그랜트도 로만구단주의 친구였고 무링요는 거부했다. 그러자 무링요는 새로운 감독을 물색하라고 명령했고 수많은 루머가 난무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팀을 자신을 중심으로 결속시켰고 선수들이 무링요를 지지하자 로만도 한발짝 물러났으나 무링요 코치진은 해고하지않고 아브람 그랜트를 데려오는것으로 나름 합의를 봤다.
첼시 프리시즌도중 세브첸코는 훈련을 거부하고 골프 스윙연습을 하고있었다. 한편 무링요는 그 소식을 듣고 세브첸코를 2군으로 떨어트릴 준비를 한다. 그러나 역시 그것도 불가능했다.
이쯤 되니 무링요의 모든 권한은 없었다. 오직 있다면 경기중 전술뿐이었고 첼시의 내부 관계자는 " 이제 무링요는 구단에서 힘이 없어요. 팀에서 힘이 빠지고 있다는게 느껴져요"
드디어 운명의 수요일 첼시 보드진은 세브첸코 대우문제와 그리고 보드진에 대한 권위에 대한 불복종을 문제로 무링요에게 사임을 중용했다. 그러나 무링요는 거부했다. 그러자 첼시 보드진은 무링요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링요가 다른 구단 감독 부임 못하도록 방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무링요는 사임했고 이 스페셜원은 파란만장한 첼시감독생활을 마무리했다.
그가 떠날때 드록바와 램파드는 울었다. 한편 무링요가 해임된이후 금요일날있던 팀미팅에서 말루다 드록바 애쉴리 콜은 테리를 공격했다. 주장의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그들은 언성을 높혔다.
한편 무링요 해임이후 아카데미 코치 brenen은 1군 코치로 승격했다.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알고보니 그는 로만 자식의 축구 전담 코치였다. 로만은 그의 노력을 높이 사 1군으로 승격시켜주었다.
[출처] 조세 무링요는 떠날 수 밖에 없었다(英 가디언 칼럼)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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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ilva 2009.06.01로만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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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2009.06.01전 첼시에 좋아하는 선수가 많긴 했지만(발락, 세브첸코, 에시앙 등) 여전이 사자엠블렘의 용병부대였던 예전 첼시를 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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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09.06.01원하던 말 잘듣는 감독을 이제 데려왔으니 좋겠네요 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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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d Schuster 2009.06.02첼시... 급성장한팀이라서 저런 문제는 어쩔 수 없는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