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레알마드리드의 최고에 오르기까지......
라울은 스페인의 전형적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이었고, 아버지 페드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홈구장 비센테 칼데론 스타디움 근처의 공장에서 일하던 유명한 ‘꼴초네로스’(아틀레티코 써포터)였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틀레티코 유스팀에 입단한 라울은 왜소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재능을 선보이며 그곳에서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12세 소년 라울은 아틀레티코가 재정 문제로 유스팀을 일시 해체하면서 새로운 팀을 찾아나서야 했고, 결국 또 다른 마드리드 연고의 명문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와 인연을 맺기에 이른다.
1994년 10월,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 클럽 역사상 최연소 기록인 17세 4개월의 어린 나이로 성인팀 경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 라울은 데뷔 시즌이었던 94/95 시즌에 9골을 터뜨리며 ‘스페인의 미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당시 라울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성인팀 무대에 데뷔시킨 주인공은 훗날 ‘갈락티코 레알’의 단장으로 활약하게 되는 호르헤 발다노 전 감독이었는데, 이후 라울은 발다노, 카펠로, 하인케스 등의 감독들로부터 일관적으로 굳은 신임을 확보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선수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당시 라울은 좌∙우 날개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주로 활약했다.
히딩크 감독의 휘하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보직을 변경한 라울은 98/99 시즌에 25골을, 00/01 시즌에 24골을 폭발시키며 득점왕을 거머쥐는 등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구가했고, 특히 2001년에는 간발의 차로 발롱도르 2위와 FIFA 올해의 선수상 3위를 차지하며 스페인을 넘어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구, 지단, 호나우두, 베컴 등이 연달아 영입되며 ‘갈락티코 시대’를 맞이한 이후에는 그 거대했던 존재감이 조금씩 엷어지기 시작했고, 03/04 시즌부터는 눈에 띄게 득점력이 저하되며 깊은 슬럼프의 터널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와중에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다골 기록 및 스페인 A매치 최다골 기록 등을 모두 갈아치우는 등 꾸준히 축구역사의 페이지를 새롭게 써내려간 라울은 지난 07/08 시즌 들어 모처럼 득점포를 재가동시키며 오랜 부진을 딛고 부활의 전주곡을 울리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만큼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스스로의 힘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카리스마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지만, 팀의 주장 및 리더로서 변함없이 동료들을 정신적으로 지탱하는 라울의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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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 2009.02.14아빠는 꼴초엿군요..... 잘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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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itan Raúl 2009.02.14그저 카피탄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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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레알 2009.02.14라울 페라리 시절.... 그래도 요즘 꾸준히 스텟을 찍어주시는 라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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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부 2009.02.14라울 정말 멋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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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Reme_#R 2009.02.14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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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랍구티y보영 2009.02.14라울최고/.!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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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ada 2009.02.14이렇게 오랫동안 레알에 남아계셨다는게 그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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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크파브레가스 2009.02.14라울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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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현석 2009.02.14그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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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all 2009.02.15라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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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aldo 2009.02.20라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