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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 잔혹사

M.Salgado 2015.01.24 20:35 조회 6,838 추천 24


레알 마드리드는 2015년 1월 2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루카스 시우바의 영입을 발표했다. 브라질 국적의 루카스 시우바는 2014 브라질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뽑힌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 기대 받고 있다.

그러나 루카스 시우바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은 그리 순탄치 않다.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 자리는 끊임없는 위기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스페인 언론 마르카는 루카스 시우바가 지난 10년 사이에 영입된 열여덟 번째 중앙 미드필더라고 소개하며 그간 레알 마드리드를 거쳤던 중앙 미드필더 중 성공작은 손에 꼽힘을 강조해 루카스 시우바의 성공을 속단하지 말 것을 보도했다. 때문에 레알매니아도 이 기회에 18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소개해보자 한다.

토마스 그라베센 (2004/2005 ~ 2005/2006)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 잔혹사’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선수다. 왕성한 활동량과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불독’이라 불리며 덴마크 국가대표와 함부르크, 에버턴에서 맹활약했다. 2005년 6월을 끝으로 에버턴과 계약 만료가 되는 상황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2005년 1월 13일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영입했다. 당시 레알매니아는 ‘미친개’가 레알 마드리드에 영입되었다며 기대했으며 마르카는 ‘마드리드의 경호원이 나타났다’며 그라베센의 영입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라리가에서 활약하기엔 기술적인 한계가 뚜렷했으며 수비 실력 자체가 뛰어난 편이 아니었기에 결국 줄리우 밥티스타와 파블로 가르시아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여기에 2006년 8월 2일 동료 선수 호비뉴와 주먹질을 하는 모습을 보여 파비오 카펠로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의 눈 밖에 나버렸으며 바로 방출 명단에 올라 8월 30일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떠났다. 흥미로운 점은 그라베센이 셀틱 메디컬 테스트가 8월 28일에 가졌음에도 이틀이나 지난 후인 30일에 이적이 마무리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 때부터 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의 축구를 한 탓에 체력적으로 망가진 상태가 아닌가하는 추측이 있었으며 이런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라베센은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셀틱과 에버턴에서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못하며 조용히 현역을 은퇴했다.

파블로 가르시아 (2005/2006)
‘미친개’가 있었다면 ‘돌은개’도 있었다. 정확한 왼발을 겸비한 거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오사수나의 심장’ 프란시스코 푸냘과 함께 오사수나의 단단한 중원을 자랑했었다. 본래 그라베센의 백업 미드필더로서 영입된 가르시아였으나 그라베센이 적응에 문제를 겪음에 따라 2005/2006 시즌 28경기에 출전하며 사실상 주전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006/2007 시즌 이메르송이 영입되면서 출전 기회를 잡고자 셀타 비고로 임대 이적했으며 2007/2008 시즌에는 당시 주가를 올리던 페르난도 가고와 마하마두 디아라의 존재로 인해 레알 무르시아로 재차 임대 이적했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와 선수는 서로의 미래를 위해 상호 계약 해지에 서명했으며 파블로 가르시아는 그리스 리그에서 2013/2014 시즌까지 활약하다 만 37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여담으로 2006년 우루과이 국가대표 자격으로 대한민국을 찾아온 적이 있는데 ‘마이너스의 손’인 모운영자와 악수를 한 것이 저주의 원인으로 지적받기도.

이메르송 (2006/2007)
브라질의 2천년대를 대표하는 선수의 이름을 나열할 때 이메르송은 빠져선 안 될 선수다. 강인하면서도 날렵한 움직임으로 인해 ‘퓨마’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는 이메르송은 유벤투스가 일명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강등당하자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함께 레알 마드리드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나이가 서른에 접어들면서 그의 운동능력은 순식간에 하락했다. 오죽하면 스페인 언론에선 카펠로 감독은 욕을 덜먹기 위해서라도 이메르송은 원정 경기에서만 기용하라는 기사를 낼 정도. 결국 1600만 유로에 영입된 이메르송은 한시즌 만에 600만 유로라는 이적료에 AC 밀란으로 이적했으며 부상으로 고전하던 중 2009년 은퇴를 선언했다.

마하마두 디아라 (2006/2007 ~ 2010/2011)
디아라는 2천년대 르샹피오나 최고의 홀딩으로 군림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디아라를 상대할 때마다 벽을 상대하는 듯 했다. 그렇게 디아라는 레알 마드리드로 입성했다. 2006/2007 시즌 마지막 경기인 레알 마요르카를 상대로는 리가 우승을 확정짓는 역전골을 넣는 모습까지 보이며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마케렐레로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무릎 부상이 디아라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수술로 인해 출전은 물론 대체자로 영입된 라사나 디아라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상 복귀 이후에는 자랑하던 신체 능력도 떨어져 주제 무리뉴 당시 감독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 2012년부터 잉글랜드 풀럼과 인연을 맺고 있으나 부상으로 인해 장기 계약이 아닌 백업 미드필더가 필요할 때마다 단기로 계약하는 아르바이트 선수다.

페르난도 가고 (2006/2007 ~ 2010/2011)
가고만큼 레알매니아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선수가 있을까. 안정적인 볼배급 능력과 곱상한 외모와는 다른 거친 태클까지 수비형 미드필더가 갖춰야할 매력이란 매력은 모두 갖춘 선수였다. 아르헨티나 명문 보카 주니어스 소속으로 레알매니아에선 매주 보카의 경기 영상이 올라오며 가고가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을 날을 모두가 기대했다. 레알 마드리드 입성 이후에는 모두가 ‘차세대 레돈도’로서 가고의 성장을 지켜보았으며 라사나 디아라와의 조합을 ‘가골라쓰’ 듀오라며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고의 성장은 너무나도 더뎠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입어 주전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여기에 동료 페드로 레온과의 주먹다짐까지 일어나 2011년 8월 31일에 이탈리아 AS 로마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하지만 로마에서도 뚜렷한 활약을 하지 못한 채 발렌시아로 이적했다. 하지만 가고는 발렌시아에서 주전 경쟁이 힘들 것임을 직감하고 2012/2013 시즌의 후반기를 아르헨티나 벨레스 사르스필드에서 보내기로 결정한다. 비록 가고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벨레스가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했으니 결과적으로 이득이라 할 수 있다. 우승을 맛 본 가고는 더 이상 발렌시아로 돌아갈 맘이 없었고 결국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갔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부진과 부상을 겪었던 가고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에선 부동의 주전으로서 쏠쏠한 활약을 해줬다는 점이다.

루벤 데 라 레드 ( ~ 2006/2007, 2008/2009)
호세 마누엘 후라도, 디에고 로페스, 로베르토 솔다도와 함께 레알 마드리드 B의 새로운 황금기를 이끈 장본인. 유스 시절부터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레알 마드리드 승격 초기에는 데이비드 베컴의 백업으로서 오른쪽에서 주로 뛰었다. 2007년 헤타페로 이적한 이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뿐 아니라 센터백까지 완벽하게 소화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승선해 유로 2008 우승 멤버로 활약하여 헤타페 이적 한시즌만에 바이백 조항을 통해 복귀한다.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으로서 미드필더 모든 지역에서 활약 가능한 공수완벽의 올라운더. 하지만 세상일은 쉽게 풀리지 않는 법이다. 데 라 레드는 2008년 10월 30일 코파 델 레이 레알 우니온전에서 심장이 멎어 의식을 잃었으며 그 이후 다신 선수로 복귀할 수 없었다. 현재는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의 감독으로서 후진 양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비 가르시아 (~ 2006/2007, 2008/2009)
맨체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해 본 적도 있는 하비 가르시아는 레알 마드리드 유스 시절 ‘천재 홀딩’으로 이름을 떨쳤다. 유스 단계에서 월반해 두 살 형인 데 라 레드와 함께 호흡을 맞추던 하비 가르시아는 몸싸움 능력 뿐 아니라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도 뛰어나 레알매니아에서도 꽤나 인지도를 얻는 유망주였다. 절친 데 라 레드와 마찬가지로 2007/2008 시즌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하비 가르시아는 오사수나에서의 맹활약으로 인해 다음 시즌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재영입되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팀에서 뛰기엔 일천한 국제 대회 경험은 경기를 읽은 후에야 공을 넘기는 버릇이 든 하비 가르시아에 있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결국 주전 자리를 찾아 벤피카로 떠난 하비 가르시아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거듭났고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뛴 바 있다. 현재는 러시아 최강팀 제니트에서 돈 잘 받고 잘 살고 있다.

라사나 디아라 (2008/2009 ~ 2011/2012)
볼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주연이 되고픈 성격은 중원의 카리스마가 필요한 레알 마드리드에게 필요한 요소였다. 부상당한 마하마두 디아라를 대체하고자 영입된 라사나 디아라는 스스로를 ‘라스’라 불러달라며 디아라와 비교되길 거부하며 새로운 홀딩으로서 가고와 호흡을 맞췄다. 비록 우승은 실패했지만 가능성을 본 레알 마드리드는 라스에게 등번호 10번을 부여하며 중원의 에이스 역할을 맡겼지만 실상은 그저 문제아였다. 강한 자존심으로 팀워크에 문제를 일으키는 동시에 무리한 중거리 슈팅 시도로 혼자서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이별 역시 아름답지 못했다. 고연봉을 요구하며 재계약을 거부한 라스는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자유 계약자가 되어 팀을 떠나기로 했으며 2012/2013 시즌 리가 개막전에도 나섰다. 물론 경기력에서 열정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라스의 맘은 막판에 변했다. 이적 시장 마지막 날에 이적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적 시장 마지막 날이었던 2012년 8월 31일에는 UEFA 슈퍼컵 경기가 열리고 있었는데 운영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마르카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경기를 보다가 라스의 이적 선언 급보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이적 시장 마감 2시간 전에 새로운 미드필더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러시아 안지로 이적했던 라스는 용병 선수단과 러시아 선수간의 파벌 싸움에 휘말려 1년도 못 버티고 로코모티브 모스크바로 이적했으며 로코모티브에서도 감독과의 불화로 현재 방출된 상태다.

사비 알론소 (2009/2010 ~ 2013/2014)
레알 마드리드의 기대만큼 활약하고 서로가 웃으면서 떠난 유일한 케이스다.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노예 같은 활동량을 자랑하며 2002/2003 시즌 리가 준우승팀 레알 소시에다드의 기둥으로서 혜성 같이 등장했다. 2004년 잉글랜드 리버풀로 이적한 뒤에는 전성기가 도래하며 당대 최강 스페인 대표팀의 한축이 되어 명성을 세계에 떨쳤다. 2009년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개인 축구사에 정점을 찍는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하지만 알론소 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2014년 여름 돌연 이적을 요구한 알론소는 2014년 8월 28일 바이언 뮌헨으로 이적했다. 비록 전성기와 같은 적극적인 공격 전개와 수비는 보여주기 힘들지라도 실수 없는 숏패스와 경기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축구 지능을 무기로 삼아 맹활약하고 있다.

에스테반 그라네로 (2009/2010 ~ 2011/2012)
덥수룩한 외모와 애꾸 세레모니로 ‘엘 피라타’(해적)란 별명을 얻은 그라네로. 그라네로는 축구 인생은 뛰어난 볼컨트롤과 영리한 공격 전개 능력으로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의 지단’이란 칭호를 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헤타페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 A팀으로 돌아온 그라네로는 중원의 볼점유를 중시하는 마누엘 페예그리니 당시 감독의 신뢰 아래 주전 미드필더로 출전했었다. 그러나 주제 무리뉴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를 통치하게 되면서 그라네로는 주전이 아닌 교체 요원으로서 역할이 변했다. 결국 주전 자리를 원하던 그라네로는 잉글랜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했으나 박지성과 함께 팀을 망친 주범으로 지목받으며 현재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고 있다.

사미 케디라 (2010/2011 ~ )
뛰어난 신체 능력과 높은 축구 지능을 자랑하는 사미 케디라는 슈투트가르트를 우승으로 이끌며 본격적으로 주목받았으나 독일 연령별 유소년 국가대표팀을 착실히 밟아온 준비된 영재였다. 무리뉴 당시 감독의 요청으로 2010년 7월 31일 영입되었으나 특유의 스타일이 문제가 되어 팬 뿐 아니라 안티의 존재까지 감당해야했다. 2013년 11월 17일 독일 대표로서 이탈리아와 경기 중 무릎 인대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당했다. 현재는 높은 연봉을 요구하며 재계약을 거부해 레알 마드리드의 애물단지로서 남아있다.

누리 사힌 (2011/2012)
레알매니아 운영진 Raul.G의 가장 싫어하는 선수 랭킹에서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는 선수.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최고의 미드필더가 어찌된 일인지 마드리드에선 장염과 부상으로 고전했다. 무리뉴 당시 감독은 사힌을 레프트백으로도 기용해보는 등 여러 활용방도를 알아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리버풀을 거쳐 친정팀 도르트문트로 돌아갔다. Raul.G曰 “대신 욕먹은 카카에게 감사해야 할 선수”

마이클 에시엔 (2012/2013)
무리뉴 감독과 함께 첼시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선수. 하지만 십자인대 부상으로 전성기가 너무나도 짧았다. 위에서 언급한 ‘라스의 이적 요청 사건’이 일어난 직후 무리뉴 감독의 주문은 에시엔이었다. 이적 마감까지 2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첼시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임대생 신분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게 되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 레알매니아 회원은 “에시앙 졸라게 패고싶다”라는 댓글을 남겨 한때 레알매니아에선 “에시앙처럼 패고싶다”라는 댓글이 잠시나마 유행했다. 현재는 AC 밀란 소속으로 뛰고 있으나 방출 명단에 오른 상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관심을 갖고 싶어도 첼시와 같은 리그에서 뛰고 싶지 않다며 이적 제의를 오는 족족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루카 모드리치 (2012/2013 ~ )
성공작이었으나 홀연히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알론소와는 달리 모드리치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를 쓰고 있다. 안첼로티 감독 체제 아래서 완벽한 중앙 미드필더로 만개했다.

카세미루 (2012/2013 ~ 2013/2014)
운동선수에게 동기부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케이스. 중원에서 상대를 압박하며 브라질리언답게 공격적인 재능도 겸비하고 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주목받은 탓인지 일명 ‘연예인병’이 걸려 훈련에 지각하고 유럽으로의 진출만을 꿈꾸다가 컨디션이 흐트러지며 상 파울루에서 미운털이 박힌 선수였다. 결국 유럽 최고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시작은 A팀이 아닌 B팀인 카스티야. 하지만 유럽 진출 후 심기일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괜찮은 백업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현재는 FC 포르투에서 뛰고 있다. 아마 포르투로 완전 이적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2013/2014 ~ )
2012/2013 시즌 라리가 유망주상(신인상)의 주인공. 공수 연결에 재능이 있고 레알 소시에다드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비 알론소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3219만 유로라는 엄청난 이적료가 들었으나 애물단지였던 카카가 떠남과 함께 영입되었기에 우려보다는 환영의 분위기가 더욱 컸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선 무언가 족적을 남겨야한다는 부담에 짓눌린 탓인지 위태로운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적설에도 휩싸인 상태다.

토니 크로스 (2014/2015 ~ )
알론소와 맞바꾸듯이 바이언 뮌헨에서 영입된 미드필더.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 말기에는 포백 보호에 급급해 공격 전개면에서 큰 도움을 주지 못한 것과는 달리 크로스는 매 경기마다 후방 플레이메이커로서 제 역할을 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수준 높은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까지 탈 없이 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수준.

루카스 시우바 (2014/2015 ~ )
적극적인 커팅과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을 겸비한 브라질 미드필더. 셀레상(브라질 국가대표) 승선도 눈앞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이제 앞으로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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