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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의 바퀴가 멈추다

M.Salgado 2013.12.27 03:51 조회 4,810 추천 16


레알 마드리드에는 필드 밖에서의 인생도 있는 법이다. 선수 뿐 아니라 코칭 스태프들도 수많은 프로들이 이 팀을 위해 일했다. 물론 이 구단의 성공에는 이번에 소개할 사람의 덕도 있다. 페르난도 만소, 14년간 레알 마드리드의 버스기사를 맡아온 남자. 이케르 카시야스가 애정을 담아 '프레난도'라 불러온 그는 14년만에 운전대를 놓게 되었다.

지난 팜플로나 원정이 수백번이나 행하던 그의 마지막 업무였다. 갈락티코 드라이버는 그 버스에 이에로, 레돈도, 피구, 라울, 베컴, 오언, 호나우두, 지단, 로벤, 카카, 크리스티아누와 베일 등 수많은 크랙들을 태워왔다. "사람들은 이 일이 갖는 압박감이나 책임감을 상상도 못할거에요"

페르난도는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는 2000년 1월 첫 업무를 시작해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한 번의 UEFA 슈퍼컵 우승, 한 번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 다섯 번의 리가 우승, 한 번의 코파와 네 번의 수페르코파 우승까지 총 열네번의 우승 트로피를 싣고 달렸는데, 이는 카시야스와 같은 기록이다. 또한 스페인 축구협회에서도 20년간 일하며 월드컵과 유로 우승 멤버들을 태운 바 있다. "저는 공항으로 가서 우승자들을 태우기도 했었죠" 그는 회상했다.

그가 일하면서 겪은 일화만해도 수천가지다. 그의 추억은 애정과 감격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이 일은 제 자존심이자 명예였습니다. 새로운 기사 역시 최고이길 바랍니다"

아틀레티코 경관과의 마찰
델 보스케가 감독이던 시절 공항에 늦게 간 적이 있어요. 챔스 원정이었죠. 우린 교통을 통제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경관은 탐탁치 않았는지 우릴 막고는 서류를 요구하더군요. 저는 일단 보내주고 전부 처리하겠다 이야기했죠.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델 보스케 감독과 토니 그란데 코치에 이어 이에로와 피구까지 나서서 보내주길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저 사람 아틀레티구만" 버스안에서 농담이 들려왔죠. 결국 처리가 끝나기 전까지 우릴 보내주질 않더군요.

델 보스케: "페르난디토, 아들아, 가만있으렴"
산탄데르에서 비행기로 마드리드로 돌아가려는데 폭풍우때문에 지연되던 때로 기억합니다. 비때문에 다들 서둘러 버스안으로 돌아왔는데 완전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와 고양이들 같았죠. "페르난디토, 아들아, 가만있으렴" 델 보스케 감독이 그리 말한게 기억납니다. 그는 항상 저한테 농담을 던지는 그란데 코치와는 완전 딴판인 사람이었죠. "신경끄고 운전이나해"

글래스고로의 11000 킬로미터 왕복
팔년 정도는 유럽 전국을 돌아다녔죠. 모스크바는 제외하고요. 아홉번째 트로피를 목표로 하던 글래스고로의 원정이 제일 길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왕복으로 11000 킬로미터를 달렸죠. 경기 이틀 후에 바로 시벨레스로 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차고로 가기 전까지 두 바퀴나 돌았죠. 다들 우리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로또
오랜 기간동안 구단 관계자들이나 선수들은 버스 번호판으로 복권을 지르거나 했습니다. 구단을 떠난 사람들 중에서도요. 물론 단 한번도 당첨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지만 저도 여전히 사보고 있습니다.

다시 찾은 페예그리니와의 포옹
페예그리니 감독이 마드리드를 떠난 이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를 처음으로 찾았을 때 입니다. 전 그를 찾아가서 그와의 추억거리들을 이야기했죠. 5분이 지난 후 페예그리니 감독은 저에게 포옹을 하더군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려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무리뉴가 준 파티마의 성모상
무리뉴 감독은 부임 첫 시즌에 프레시아도 감독과 강한 대립 관계를 갖고 있었죠. 히혼으로의 원정은 정말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경기 후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당시 무리뉴 감독은 프레시아도 감독에 정면으로 맞섰죠. 저 역시 프레시아도 감독과 오랜기간 알아온 사이였기에 그에게 잘가라 전하곤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후 제가 버스에 오르니 무감독은 화를 내며 저를 밀쳤습니다. "당신이 뭘했는지 아나, 당신은 내 적과 포옹을 나눴어!" 저 역시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원정이 제가 마드리드를 위해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 되는 줄 만 알았죠. 그래도 무리뉴 감독은 자신의 강한 성격 아래 큰 아량을 숨긴 감독이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니 저에게 사과를 하며 포옹을 하더군요. 그러곤 코트에 손을 넣더니 파티마의 성모상을 주덥니다. "갖고있으면 행운을 줄 것이오" 그리곤 떠나기전에 포옹을 나눴죠.

Kiss FM에서 요즘 음악 CD까지
처음에는 Kiss FM 방송을 들었습니다. 이후엔 음악 CD를 준비했는데 여행길의 아주 좋은 친구였죠. 그런데 점차 선수들이 직접 음악을 추가하더니 나중엔 대중가요가 들은 CD를 주더군요.  감독들은 그에 관해 전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아, 무리뉴 감독은 패배하거나 경기력이 안좋은 날엔 금지시켰었죠. 뭐 그리 축하할게 있냐면서요.

버스에서의 위치를 잊은 선수들
선수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요, 구단의 전통입니다. 아무나 다른 자리에 앉을 수 없어요. 하지만 잊어먹는 선수가 항상 있죠. 특히 유스 출신들이요. 자신이 어디 앉아야할지 몰라 라울의 자리에 앉은 선수가 있었죠. "당장 구석으로 꺼져" 바로 혼나더군요. 그 꼬마는 곧장 일어나서 다른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디에고 로페스가 다시 돌아왔을 땐 경험이 있어 그런지 앉기전에 제게 묻더군요. "저 어디 앉을까요?" 디에고는 정말 멋지고 존경할만한 선수에요.



베컴이 부탁한 Las bolsas de pipas
베컴은 경기 전 다른 직원에게 피파스를 사오길 부탁했죠. 그는 빅토리아도 이걸 엄청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우리가 사긴 했지만 우리 돈으로 산적은 한번도 없어요(웃음). 논리적으로도 그러한 점에 토를 다는 사람도 없었지만요. 하루는 버스 시트에서 5유로 지폐를 발견해 보자마자 그에게 돌려준 일이 있었어요. 베컴은 내리기전에 "Muchas gracias"라 말하더군요.

보루시아전 이후의 침묵
도르트문트전 이후 베르나베우에 버스가 도착했을 때의 일을 절대 잊지 못할거에요. 팬들도 사나웠죠. 일반적으로 카스테야나에서 경기장으로 주차하는데 5분정도 걸리는데 그 날은 거의 20분은 필요했습니다. 전진도 제대로 못했죠. 휴대기에 녹화하겠다고 음악을 줄여달라는 선수도 있었어요. 순간 소름끼칠 정도의 정적이 흘렀죠. "처음 겪어보는 일이군" 모두를 대신해 무리뉴 감독이 말했죠. 경찰들도 어떻게 하질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지갑, 휴대전화 그리고 드느님의 귀걸이
버스를 이용할 때 마다 항상 뭔가를 잃어버리는 선수가 있죠. 지갑, 팔찌, 휴대전화... 하루니는 제가 드렌테의 귀걸이를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딱봐도 그가 애지중지하는 값비싼 물건이란 느낌이 들었죠. 왜냐하면 드렌테가 그걸 종일 찾았거든요. 건망증 왕은 엘게라와 셀라데스였어요.

버스로 던져진 당구공
라 코루냐 원정은 돌이 날라오니 그야말로 덜덜 떠는 하루에요. 창문 네개가 깨지고 땅으로 끌려지는 선수도 있던걸로 기억해요. 저번에는 아예 버스째로 불태우려하더군요. 돌에 폭죽을 붙여서 던져요. 세비야에선 저랑 베컴한테 당구공이 날라온 적도 있는데 다행히 버스에 맞고 튕겨나가더군요.

크리스티아누의 인성
사람은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움직이기에 크리스티아누는 자신에 대해서 비판을 해도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하길 바래요. 그는 정말 특별하면서도 멋진 사람이죠. 모든 면에서 좋은 사람인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출처: 마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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