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의 카시야스가 말하는 잊을수 없는 순간들

레알 마드리드의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25번째의 생일 맞아 스페인의 AS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자신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말했다. 이케르 카시야스는 레알 매니아의 자체적 인기 투표에서 1위을 하였다.
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번째 유로피언 경기, 첫번째 리그경기 등은 카시야스에게는 마법과 같은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린 선수가 이젠 25살의 청년이 되었다. 극 아스와의 첫번째 데뷔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날을 항상 꿈꿔 왔다.”라고 말했다.
모스토레스(마드리드)에서 보낸 시간: “그 곳은 나의 고향이고 나의 친구들이 있고 내 인생의 일부분인 곳이다.
나는 모스토레스에서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끼며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그 곳에서 보냈다. 친구들을 사귀었고 나의 축구에 대한 꿈도 그 곳에서 생겨났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번째 경기: “나는 나의 첫 경기에서 6골이나 실점했다.”
쓴 약을 삼키는 듯한 경험이었다. 나는 6골이나 실점했고 우리는 7-1로 졌다. 나는 내가 교체 당할 줄 알았다. 나는 로사다 팀에서 뛰었고 부요가 한 것은 내게 매우 매혹적으로 보였다.
나의 가족: 나의 아버지는 나를 골키퍼로 만들었다."
나의 가족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골키퍼로 만드셨다. 우리는 함께 축구를 했다. 그는 나는 상대로 골을 넣으려고 했고 나보고 골대 밑으로 가서 당신의 공을 막으라고 말씀하셨다.
U-16 유로 컵 챔피언(1997): “나는 페널트 킥을 막았고 그 것은 우리에게 타이틀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 것은 큰 고통이었다."
나는 페널트 킥을 막았다. 그렇지만 모든 시선과 공로는 감독이었던 산티스테반에게 돌아갔다. 뒷풀이 파티는 즐거웠다. 그 경기는 매우 힘든 경기였다.
메리디안 컵(1999): “가나 출신의 선수들은 우리보다 더욱 나이가 많아보였다.”
우리는 가나를 2-1로 결승전에서 이겼다. 그들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당신이 그들이 한 모든 것을 본다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열린U-20 월드컵(1999):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은 내가 레알 마드리드 1군에 오르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란주비아와 나는 돌아가면서 골대를 지켰다. 내가 준결승을 그가 결승전에 주전으로 발탁되었다. 그 것은 모험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그 경력은 내가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게 하는 데 일조했다.
나의 첫번째 노르웨이 여행: “나는 아직도 사실인지를 믿을 수 없다. 나는 내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 입어야 했다.”
그들은 학교에 있던 나를 불러냈다. 물론 나는 그 것이 장난인줄로만 알았다.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 나는 내 양복이 없어서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야 했다. 모두가 나에게 잘 대우 해주었다.
아슬레틱 빌바오전의 리가 데뷔(1999): “나는 이러한 순간을 항상 꿈꿔왔다. 왜냐하면 난 레알 마드리드에 7년간 이 것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날을 꿈꾸어왔다. 산 마메스에서 토샥이 내게 말했다. “좋았어, 너가 골키퍼다.”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소리에도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지난 7년간 준비해왔기 때문에…
8번째 유로피언 컵(2000): “나는 올드 트레포트에서의 경기를 잊을 수가 없다.”
18세에 벌써 유러피언 챔피언이 되었다. 그 해에 올드 트레포드에서 경기를 가졌는데 그 곳에서의 경기로 국가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카마초가 유로 컵에서 뛰기 전에 스페인 국가대표로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브라보 트로피(2000): “나는 내가 더 많은 우승컵을 들게 되길 원한다.”
나는 휴일을 나바라크루즈에서 보냈고 그리고 그들은 내게 리가 최고 유망주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었다. 이 것은 내가 첫번째로 매우 큰 영예를 얻은 순간이었다. 더 영예스러웠던 것은 디 스테파노가 베르나베우에서 내게 직접 수여했다는 점이었다.
첫 시즌: ”나는 적십자 차를 타고 경기장을 맴돌았다.
나는 적십자차틑 타고 구장을 맴돌아서 좋았다. 나는 시베레의 분수에서 사진을 찍었다.
스페니쉬 슈퍼컵(2001, 2003): ”이 것을 이긴다는 것은 순조로운 출발을 예견하는 것이다.”
슈퍼컵은 순조로운 출발의 상징이다. 진다면 잘못된 시작을 예언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두 번 이나 겪었고 이 것은 선수들에게 중요한 동기 부여를 한다.
벤치 신세(2002): “나는 내가 다신 뛸 수없게 되는 줄 알았다. 확실히 매우 힘든 순간이었다.”
델 보스케가 나를 벤치에 후보로 결정 한 이후 나는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다시는 뛰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9번째 유로피언 컵(2002): “나는 우승 후 2개월 동안 울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승한 이후 2개월 동안 울었다. 나는 마드리드에 있는 어머니께 전화했지만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소 체험했다. 운명은 내 꿈을 다시 실현 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로피언 슈퍼컵(2002): “우리는 2000때 진 복수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겼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상했다. 모리엔테스는 뛰지 않았고 그는 우승한 후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말했다. 우리는 2000년에 이루지 못한 것을 위해 노력했다.
인터네셔넬 컵(2002): “우리는 3개나 되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나의 첫번째 인터네셔널 컵 참여은 1998년이었다. 그렇지만 2002년에 주전으로 경기에 임하였다. 코파 델 레이 제외 하고 우리는 좋은 해를 보냈다.
한국 월드컵(2002): ”내 축구인생에 돌아가기 싫은 시기.”
나는 항상 이 때로 돌아 가고 싶지않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을 상대로 져서 매우 실망했다. 유로 컵에 대해서는 더욱더 말하고 싶지않다.
두 번째 시즌(2003): “그 날은 많은 것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큰 타이틀을 딴 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아무 타이틀도 따내지 못했다. 이 날 이후 우리는 타이틀과 멀어지는 듯 했다.
타이틀을 따내지 못한 3년: “우리는 2004년 코파 델 레이에서 패배했고 그리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매우 슬픈 나날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다시 세워야 했지만 우리는 계속 실패했다.
마뉴엘 아미에로: “나는 그의 충고를 따렀고 나의 인생을 잘 되었고 있다.”
그는 내 커리어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있고 나의 인생은 잘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나의 계약연장(2005): ”나는 내 계약이 2011년으로 연장된 후 한 숨을 돌렸다.”
나는 모든 것이 종료된 이후 한숨을 돌렸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계속 플레이하고 싶고 다른 구단에서 뛴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 다. 레알 마드리드는 나의 집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루 워 낸 것들과 이루 워 낼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스페인의 주장: “책임감이며 나는 이러한 의무를 좋아한다.”
스페인 주장 완장을 찬다는 것은 엄청난 자랑이며 나는 이 것을 여러 번 착용했었다. 나는 이러한 책임감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사진: “아스에 올려진 내 첫번째 광고는 나를 당혹 시켰다.”
나는 광고찍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아스와 마드리드의 라 피에네타 경기장에서 찍었다. 나는 매우 당혹 스러웠다. 지금은 여러 스페인 TV 시리즈에서 까메오로 종종 나온다.
아이들: “아이들이 내 져지를 입는 것을 보면 과거로의 여행과도 같다.”
유명해진이후 나는 내 고향에 나의 학교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독일 월드컵: “나는 스페인과 무엇을 이루 워 내고 싶다.”
웥드컵에서 스페인과 무엇을 이루 워 낼 때가 왔다. 우리가 승승장구한다면 준결승에서 브라질을 만나게 될 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있는 팀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표는 확고하다.
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번째 유로피언 경기, 첫번째 리그경기 등은 카시야스에게는 마법과 같은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린 선수가 이젠 25살의 청년이 되었다. 극 아스와의 첫번째 데뷔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날을 항상 꿈꿔 왔다.”라고 말했다.
모스토레스(마드리드)에서 보낸 시간: “그 곳은 나의 고향이고 나의 친구들이 있고 내 인생의 일부분인 곳이다.
나는 모스토레스에서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끼며 나는 나의 유년시절을 그 곳에서 보냈다. 친구들을 사귀었고 나의 축구에 대한 꿈도 그 곳에서 생겨났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번째 경기: “나는 나의 첫 경기에서 6골이나 실점했다.”
쓴 약을 삼키는 듯한 경험이었다. 나는 6골이나 실점했고 우리는 7-1로 졌다. 나는 내가 교체 당할 줄 알았다. 나는 로사다 팀에서 뛰었고 부요가 한 것은 내게 매우 매혹적으로 보였다.
나의 가족: 나의 아버지는 나를 골키퍼로 만들었다."
나의 가족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골키퍼로 만드셨다. 우리는 함께 축구를 했다. 그는 나는 상대로 골을 넣으려고 했고 나보고 골대 밑으로 가서 당신의 공을 막으라고 말씀하셨다.
U-16 유로 컵 챔피언(1997): “나는 페널트 킥을 막았고 그 것은 우리에게 타이틀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 것은 큰 고통이었다."
나는 페널트 킥을 막았다. 그렇지만 모든 시선과 공로는 감독이었던 산티스테반에게 돌아갔다. 뒷풀이 파티는 즐거웠다. 그 경기는 매우 힘든 경기였다.
메리디안 컵(1999): “가나 출신의 선수들은 우리보다 더욱 나이가 많아보였다.”
우리는 가나를 2-1로 결승전에서 이겼다. 그들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당신이 그들이 한 모든 것을 본다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열린U-20 월드컵(1999):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은 내가 레알 마드리드 1군에 오르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란주비아와 나는 돌아가면서 골대를 지켰다. 내가 준결승을 그가 결승전에 주전으로 발탁되었다. 그 것은 모험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회에서 우승하였고 그 경력은 내가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게 하는 데 일조했다.
나의 첫번째 노르웨이 여행: “나는 아직도 사실인지를 믿을 수 없다. 나는 내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 입어야 했다.”
그들은 학교에 있던 나를 불러냈다. 물론 나는 그 것이 장난인줄로만 알았다.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 나는 내 양복이 없어서 아버지의 양복을 빌려야 했다. 모두가 나에게 잘 대우 해주었다.
아슬레틱 빌바오전의 리가 데뷔(1999): “나는 이러한 순간을 항상 꿈꿔왔다. 왜냐하면 난 레알 마드리드에 7년간 이 것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날을 꿈꾸어왔다. 산 마메스에서 토샥이 내게 말했다. “좋았어, 너가 골키퍼다.”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소리에도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지난 7년간 준비해왔기 때문에…
8번째 유로피언 컵(2000): “나는 올드 트레포트에서의 경기를 잊을 수가 없다.”
18세에 벌써 유러피언 챔피언이 되었다. 그 해에 올드 트레포드에서 경기를 가졌는데 그 곳에서의 경기로 국가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카마초가 유로 컵에서 뛰기 전에 스페인 국가대표로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브라보 트로피(2000): “나는 내가 더 많은 우승컵을 들게 되길 원한다.”
나는 휴일을 나바라크루즈에서 보냈고 그리고 그들은 내게 리가 최고 유망주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었다. 이 것은 내가 첫번째로 매우 큰 영예를 얻은 순간이었다. 더 영예스러웠던 것은 디 스테파노가 베르나베우에서 내게 직접 수여했다는 점이었다.
첫 시즌: ”나는 적십자 차를 타고 경기장을 맴돌았다.
나는 적십자차틑 타고 구장을 맴돌아서 좋았다. 나는 시베레의 분수에서 사진을 찍었다.
스페니쉬 슈퍼컵(2001, 2003): ”이 것을 이긴다는 것은 순조로운 출발을 예견하는 것이다.”
슈퍼컵은 순조로운 출발의 상징이다. 진다면 잘못된 시작을 예언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두 번 이나 겪었고 이 것은 선수들에게 중요한 동기 부여를 한다.
벤치 신세(2002): “나는 내가 다신 뛸 수없게 되는 줄 알았다. 확실히 매우 힘든 순간이었다.”
델 보스케가 나를 벤치에 후보로 결정 한 이후 나는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다시는 뛰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9번째 유로피언 컵(2002): “나는 우승 후 2개월 동안 울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승한 이후 2개월 동안 울었다. 나는 마드리드에 있는 어머니께 전화했지만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소 체험했다. 운명은 내 꿈을 다시 실현 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로피언 슈퍼컵(2002): “우리는 2000때 진 복수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이겼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상했다. 모리엔테스는 뛰지 않았고 그는 우승한 후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말했다. 우리는 2000년에 이루지 못한 것을 위해 노력했다.
인터네셔넬 컵(2002): “우리는 3개나 되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나의 첫번째 인터네셔널 컵 참여은 1998년이었다. 그렇지만 2002년에 주전으로 경기에 임하였다. 코파 델 레이 제외 하고 우리는 좋은 해를 보냈다.
한국 월드컵(2002): ”내 축구인생에 돌아가기 싫은 시기.”
나는 항상 이 때로 돌아 가고 싶지않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을 상대로 져서 매우 실망했다. 유로 컵에 대해서는 더욱더 말하고 싶지않다.
두 번째 시즌(2003): “그 날은 많은 것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마지막으로 큰 타이틀을 딴 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아무 타이틀도 따내지 못했다. 이 날 이후 우리는 타이틀과 멀어지는 듯 했다.
타이틀을 따내지 못한 3년: “우리는 2004년 코파 델 레이에서 패배했고 그리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매우 슬픈 나날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다시 세워야 했지만 우리는 계속 실패했다.
마뉴엘 아미에로: “나는 그의 충고를 따렀고 나의 인생을 잘 되었고 있다.”
그는 내 커리어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그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있고 나의 인생은 잘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나의 계약연장(2005): ”나는 내 계약이 2011년으로 연장된 후 한 숨을 돌렸다.”
나는 모든 것이 종료된 이후 한숨을 돌렸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계속 플레이하고 싶고 다른 구단에서 뛴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 다. 레알 마드리드는 나의 집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루 워 낸 것들과 이루 워 낼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스페인의 주장: “책임감이며 나는 이러한 의무를 좋아한다.”
스페인 주장 완장을 찬다는 것은 엄청난 자랑이며 나는 이 것을 여러 번 착용했었다. 나는 이러한 책임감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사진: “아스에 올려진 내 첫번째 광고는 나를 당혹 시켰다.”
나는 광고찍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아스와 마드리드의 라 피에네타 경기장에서 찍었다. 나는 매우 당혹 스러웠다. 지금은 여러 스페인 TV 시리즈에서 까메오로 종종 나온다.
아이들: “아이들이 내 져지를 입는 것을 보면 과거로의 여행과도 같다.”
유명해진이후 나는 내 고향에 나의 학교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독일 월드컵: “나는 스페인과 무엇을 이루 워 내고 싶다.”
웥드컵에서 스페인과 무엇을 이루 워 낼 때가 왔다. 우리가 승승장구한다면 준결승에서 브라질을 만나게 될 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린 선수들로 구성되어있는 팀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표는 확고하다.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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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aldo Luiz 2006.05.22야신 대단하다!! 생일축하하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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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7 JoAqUin 2006.05.22앞으로 10년더 부탁할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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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ham☆ 2006.05.22카시야스도 레알의 레전드가 되볼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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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무애 2006.05.22ㅎㅎ.. 정말 어린나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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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9 2006.05.22진짜 카시야스도 사기 유닛?? ㅋㅋㅋ
나이가 25인데 하는거 보면... 노련하면서도 ㄷㄷㄷ -
Elliot Lee 2006.05.22아직 10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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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ZIDANE 2006.05.22사기유닛....ㅋㅋ 골키퍼는 수명도 긴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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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maker 2006.05.22나는 한국을 상대로 져서 매우 실망했다.-ㅋㅋ우리도 이길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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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_Nino 2006.05.22정말 아직 10년은 거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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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나르디 2006.05.22야신 내년에는 덜 힘들꺼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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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우도 2006.05.22한국에게 져서 실망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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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Pivote 2006.05.22이 노련한....선수가....이제 25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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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er 2006.05.22정말 믿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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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06.05.22정말 아직도 25살이라고 생각하면 참 행복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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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Ronaldo♥ 2006.05.22한국에게 져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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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간후안프란 2006.05.22한국한테 졌다는게.. 싫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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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DATOR 2006.05.22커리어로만 보면 칸 다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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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boflavin 2006.05.23생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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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르도 2006.05.23ㅡ ㅡ질수도있지 그런걸로 실망하다니..
아직은 덜성숙했나;;
프로는 패배를 받아들여야지; -
지네딘지성 2006.05.2325살.....후후훗..-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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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두리 2006.05.25멋있따 ㅋㅋ 2011년까지 열심히 해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