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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센터백의 \'빌드업\'과 롤의 변화에 대해

라그 2021.01.25 18:51 조회 5,590 추천 13


너무 지단 얘기만 나오는 거 같아서, 좀 화제 전환을 하고 싶어서 올려봅니다. 요비치에 대한 얘기를 할까도 했는데 결국 지단 얘기로 흘러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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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축구 전술에서 모든 면을 아우르는 핵심은, 얼마나 같은 공간에서 많은 선수가 공수에 가담하느냐 입니다. 공격수가 공격을, 수비수가 수비를 하던 과거 축구에서 벗어나서 리누스 미헬스의 토털 풋볼, 아리고 사키의 사키이즘. 모두 11명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먹기 위해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소위 '판타지스타', '트레콰르티스타'가 축구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것도 당연한 흐름입니다. 수비 전술이 발달하면서 중앙에서의 공격이 비효율적이 되기도 했지만, 공격에만 집중하는 미드필더는 이제 팀에 많은 부담을 안게 되는 현상이 따라옵니다. 지금의 KDB처럼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로 경기장을 넓게 쓰지 않으면 오히려 안 쓰니만 못한 경우가 되버리게 된거죠. 비슷하게 득점 특화형 스트라이커가 빅클럽에서 외면 받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호날두정도의 극단적인 레벨의 선수가 아니라면, 여러 국면에 참여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거죠.


 점점 축구의 전술사에서 선수에게 높은 에너지 레벨, 혹은 고도의 포지셔닝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제는 어떤 포지션도 더 많은 역할, 롤을 요구하게 됩니다. 공격수에게 수비를 요구하고, 수비수에게 공격을 요구하는 시기가 되버린 거죠. 그 중 센터백에게 몇년 간 가장 많이 요구되는 전술적 롤이 '빌드업'입니다. 


 '수비는 수비부터 잘해야 한다' 라는 대전제조차 흔들리고 있는게 '빌드업'을 잘했을 때 팀에 가져오는 이점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2.

 센터백의 '빌드업'이 중요시 되는 것은, 전방 압박의 발달과 궤를 같이 합니다. 어차피 아군 진영에서 짧은 패스로 전달해주는건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게 예전 인식이었습니다. 이는 전방 압박이 약하던 시기에는 굳이 잘하는 선수와 못하는 선수 간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죠. 오히려 높이나 속도 등의 요소가 더 중요했습니다. 영국처럼 아예 롱볼로 전방에 빠르게 보내는 걸 중시하는 문화까지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전방 압박이 강해지면서 아군 진영에서 볼을 상대 진영까지 올리는 시작조차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면서 빌드업을 잘하는 선수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게 됩니다. 


 오히려 단순한 수비력보다 빌드업 자체가 수비에 기여하는 바도 점점 커져갑니다. 상대의 전방 압박을 무너뜨리고 공의 소유권을 지키는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빌드업 능력이 떨어지면 먼저 가장 먼저 늘어나는게 아군 진영에서의 백패스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공을 뺏기기도 싫으니 백패스를 해버립니다. 볼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해버립니다.  그게 아니면 정밀도가 떨어지게 롱볼로 멀리 차면서 상대방에게 공격을 다시 내줄 가능성이 늘어납니다. 이는 볼 로스트, 공격권의 상실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공격 기회를 잃고 실점 기회를 늘려줍니다. 


 꼭 최종 수비 뿐만 아니라 좀 더 앞선 단계에서의 수비에도 영향을 줍니다. 빠르게 공격 전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 진영의 수비가 무너지면서 턴오버 가능성을 줄어들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니까요. 볼을 오래 소유한다는 거 자체가 수비에 많은 기여를 한다는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버렸습니다. 


 센터백이 빌드업을 잘하면 팀에 공격적인 이점도 매우 큽니다. 먼저, 미드필더가 빌드업을 위해서 라인을 내려올 필요가 없습니다. 즉 항상 미드필더가 높은 위치에서 기다릴 수 있게 되서 어떤 국면에도 빠지지 않고 1명의 인원 수를 늘려줍니다. 즉, 팀은 라인을 올린 상황에서도 서로 간의 간격을 촘촘하게 짤 수 있게 되서 공수 전환이 빨라지게 됩니다. 이는 팀 공격의 시발점입니다. 다득점을 하고 많은 공격 횟수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센터백의 빌드업이 필요한 겁니다. 빌드업이 느리면, 그 사이 우리 진영까지 올라와서 헐거워졌던 상대 선수들은 다시 복귀하고 수비 대형을 갖춥니다. 우리의 공격 횟수는 감소하고, 공격 효율마저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크카모 3미들이 3연패 당시부터 지금까지 중원 싸움에서 무너진 적이 없는데, 이는 라모스의 빌드업이 기여하는 바도 상당합니다. 라모스가 빠르고 정밀하게 빌드업을 해주기 때문에 3명의 미드필더가 항상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중원을 헐겁게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3명의 역량이 제일 중요하긴 합니다) 



 


3.

 센터백의 빌드업에 가장 집착하는 감독 중 하나가 펩입니다. 이는 펩이 극도의 효율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형을 최대한 무너뜨리지 않고 촘촘하게 유지하며 지역 방어와 압박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낮은 단계에서 볼 흐름이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펩이 맨체스터 시티에서 유독 수비수에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것도 본인 기준에서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이언의 플릭이 좀 더 안정적인 뤼카와 보아텡이 있는데도 굳이 폼이 떨어지고, (이번 시즌 뿐만 아니라) 커리어 내내 센터백으로서는 수비 집중력이 떨어지는 알라바를 굳이 센터백으로 기용하는건, 알라바의 출중한 빌드업 때문입니다. 알라바의 xGchain(키패스와 슈팅을 제외하고 팀 xG 수치기여도)가 수비수 중 분데스리가 탑을 찍는 수준이기도 하고요. 


 반대로 빌드업 자체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고 빠른 공수 전환 능력 만을 따지는 무리뉴나 시메오네 같은 감독도 있습니다. 이는 상대를 최대한 끌어들인 다음 무너진 대형을 빠르게 공략하기 위해서, 정밀한 빌드업에 굳이 집착할 필요는 없는거죠. 극단적으로는 공격권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롱볼로 걷어내버리기도 합니다(물론 아군 진영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공격을 위해서 플레이메이킹을 필요로 합니다) 다만 이는 빌드업 되는 수비수를 입맛대로 구비할 자금이 안되는 언더독인 탓이 큽니다. 


 풀백에게는 상대적으로 아직 빌드업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풀백은 측면 터치라인 때문에 빌드업의 선택지 자체가 적어서 패스를 뿌리는 방식으로 효율적인 빌드업이 불가능하니까요. 우리 팀의 나초가 풀백으로만 나오면 상대 압박에 절절매면서 계속 바란이나 쿠르투아에게 백패스를 하는데, 센터백으로 나오면 잘하는게 빌드업과 압박 해소의 선택지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시야와 발재간을 100% 활용하면서 부족한 신체 능력을 커버해서 풀백일 때보다 훨씬 팀에 기여하는 바가 늘어나는거죠.  


 최종 방어선이라는 입장 상 아직 골키퍼는 발밑 정도를 요구하기만 하지만, 모든 포지션에 다양한 롤을 요구하게 되는 추세는 계속 흘러갈 거라 봅니다. 어제 샬케04 -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키미히가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이는 수비형 미드필더(현대 전술로는 2미들의 중앙 미드필더에 가까운 형태긴 하지만)도 다양한 롤을 수행할 수 있어야 팀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네요. 


 최종 수비, 속도, 득점, 플레이메이킹 등 각 포지션의 상징적인 롤과 능력은 당연히 잘해야겠지만, 고도로 완성된 빅클럽에서는 육각형 선수를 추구하는 방향성은 앞으로도 강해질거라 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선수 공급이 그렇게 맘대로 되지 않는 이상, 비주류인 특화형 선수들도 활약할 무대는 얼마든지 있겠지만요. 다만 빌드업이 되는 센터백, 포백 보호와 빌드업을 모두 수행하는 중앙-수비형 미드필더, 볼 소유와 포스트플레이를 할 수 있는 스트라이커. 이 3명이 없는 팀은 앞으로 정점에 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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