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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일요일 2시

인테르전 얘기

온태 2020.11.04 21:21 조회 3,808 추천 31

1. 못이기면 끝장인 경기이니만큼 지단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전방압박은 굉장히 높은 위치에서부터 시도하긴 했지만 그 목적이 탈취 후 숏카운터에 있던 건 아니었고 비교적 높은 위치에서 볼을 뺏어내더라도 볼을 최대한 소유하면서 템포를 유지하는 선택지를 가져가려는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전환이 많아져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일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이 무색하게도 팀은 쉬운 플레이에서도 잦은 실수를 범하며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좋은 템포로 전개가 되는 상황에서도 부정확한 패스로 흐름을 끊어먹기 일쑤였고 쉽게 클리어링이 가능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연결을 시도하다가 위기를 자초하는 상황도 수차례 나왔습니다. 팀이 공을 쥐지 않은 상황에서도 집중력이 결여된 장면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무리하게 나서서 잘 잡아놓은 압박/수비 대형을 깨트리는가 하면 동료가 비워둔 공간을 제대로 커버하지 않고 내버려두다가 상대에게 쉽게 전진을 허용하는 등 보고 있자니 짜증이 솟구치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죠. 아마 이런 자잘한 실수들을 조금만 줄일 수 있었다면 전반을 2-1이 아니라 3-0 이상으로 끝낼 수 있었을 거에요.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우실줄'을 해낼 수 있었다면 훨씬 나았을 경기.




2. 멘디는 경기 내내 하키미를 상대하는 데 주력했고, 그 결과 서로 경기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볼터치가 적었던 건 아니지만 특유의 터치라인을 폭발적으로 오가며 측면을 찍어누르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고 경기 내내 크로스도 단 한차례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하키미도 별 영향력이 없었으니 된거 아니냐는 얘기도 일리는 있습니다만 제가 볼 때 둘이 같이 사라지면 더 손해보는 쪽은 레알입니다.


기본적으로 백3 시스템에서의 윙백과 백4 시스템의 풀백 간 상성은 백3의 윙백이 더 낫습니다. 수비부담이 덜하고 라인 형성에 대한 제약이 적기 때문에 훨씬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이 지워지더라도 하키미는 하프라인 위쪽에서 멘디를 찍어누르는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는 상대적으로 측면에 더 많이 투자하는 시스템으로 나온 레알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멘디가 정상적으로 하프라인 위쪽으로 전진하게 될 경우 크로스는 그림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터치라인의 멘디를 통해서 아자르를 하프스페이스로 집어넣을 수 있고 벤제마가 좌측면 하단으로 내려오는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상대 수비를 끌어냄과 동시에 순간적인 수적 우위를 만들어내며 템포를 급격하게 끌어올릴 수도 있죠. 이런 구도가 원활하게 작동할 경우 아자르는 빨간색 부채꼴 모양의 방향으로 공을 잡아놓을 수 있습니다. 전진패스 구도가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도 후방의 카세미루와 라모스를 통해서 공을 다시 한번 순환시키거나 한번에 반대편으로 넘겨 비교적 널널한 공간을 확보한 아센시오나 라이트백을 통해 공격을 다시 한번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기처럼 멘디가 제대로 전진할 수 없는 경기에서는 아자르가 하프스페이스를 제대로 확보하는 게 어렵습니다. 더구나 이번 경기의 인테르는 백3를 쓰는 팀이고, 멘디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자 그림처럼 아자르에게 둘을 붙여버립니다. 당연히 크로스가 좋은 템포로 공을 넘길수도 없고 넘기더라도 빨간색 부채꼴 모양처럼 후방을 바라보며 첫 터치를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벤제마가 도와주러 가더라도 오른쪽 스토퍼를 통해서 수비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가게 되고요. 그러니 할거라곤 반대편 측면으로 길게 넘겨주는 것뿐인데 상대 입장에서도 뻔한 선택지인데다 후술하겠지만 이번 경기는 미들이 측면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은 경기였기 때문에 우측으로 볼이 넘어가더라도 창조적인 플레이를 기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3. 프리시즌이 없었던 영향인지 선수단의 피지컬 핏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올시즌 지단은 종적인 동선이 길어지는 경기들에서 크로스를 내리고 카세미루를 올리는 카세미루 시프트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크로스가 종적으로 동선이 길어지고 전환이 잦아질수록 약점이 부각되는 선수기도 하고 카세미루도 주변 동료들과 거리가 멀어지면 전개에서 뇌절이 생기는 편인데 생각보다 박투박으로서의 자질은 괜찮은 선수라서 둘의 동선을 바꿔 효율을 올리기 위함입니다. 이번 경기 인테르는 백3에 3미들, 투톱까지 필드 10명 중 8명을 중앙에 배치한 팀이고 이런 팀들은 팀의 앞뒤 간격을 넓게 벌려서 선수들의 공간을 확보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미들 써드의 밀도는 낮아지고 미드필더들의 종적인 동선은 길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미들 간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 포지셔닝을 안쪽으로 더 좁혀야 합니다. 이는 뒤에 백3를 앞에 투톱을 둬 공수 지원에 대한 부담이 덜한 인테르 미들보단 백4에 양 윙을 배치한 레알의 미드필더들에게 더 좋지 않게 작용합니다. 측면과 더 활발히 연동해야 하는 팀은 레알이기 때문. 이걸 극복하려면 더 우월한 기동력으로 찍어눌러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단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경기에 접근했고 따라서 리드를 확보한 후부터는 상대에 맞춰가기 위해 카세미루 시프트를 가동했습니다. 문제는 이럴 경우 카세미루가 수비라인 앞쪽에서 닻을 내리고 안정적인 위치를 잡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올라가다가 잘리면 당연히 카세미루가 지켜야 할 자리는 텅텅 비게 되고 어느정도 내려온 위치에서 공격을 맞이하더라도 본인의 동선과 리듬이 계속 변하고 본인 움직임에 따라 동료들 위치도 변경되니 집중력이 한결같을 수가 없어요. 이건 카세미루가 볼을 전개하는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 개인의 핏과 폼도 좋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유독 뇌절이 늘어난 건 동선 탓도 안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사실 선수단 핏이 좋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어느 정도는 팀적으로 극복이 가능한 문제이긴 해요. 전유럽 최고의 수미로 손꼽히던 지난 시즌에도 카세미루가 미들 개입하는 빈도가 적었던 것도 아니고 본인 성향도 가능하다면 최전방까지 올라가는 걸 마다하는 편도 아니고요. 지난 시즌을 예로 들면 순간적으로 미들에 구멍이 생겼거나 이번 경기처럼 전술적 의도를 갖고 전진해서 수비 앞쪽 공간이 비게 되면 양쪽 풀백이 간격을 좁혀서 센터백 앞쪽을 커버하려는 모션을 가져갔습니다. 스쿼드 내에서 운동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기민한 선수들이라 커버 범위도 굉장히 넓고 경합능력도 탁월해서 안쪽으로 몇발만 좁혀주더라도 상대가 수비 앞으로 과감하게 볼을 집어넣질 못했습니다. 측면으로 내주더라도 워낙 빠른 친구들이라 금방 쫓아가기도 하고 라모스나 바란이 사이드 커버를 굉장히 잘하는 선수들인 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고요. 일단 지연만 어느정도 되면 카세미루를 비롯한 윗선 선수들이 금방 내려와서 자리를 다시 잡았기 때문에 수비가 잘 이루어졌죠.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멘디가 하키미와 묶여 있었다는 점이 뼈아프게 작용했습니다. 멘디가 본인의 역량을 하키미를 묶는 데 몰빵했기 때문에 카세미루가 올라갔을 때 수비 앞공간은 취약해지고 이를 라모스가 올라오면서 아슬아슬하게 커버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라모스가 마크하던 라우타로의 발이 풀리게 되죠. 자연히 라우타로는 라모스의 뒷공간을 파고들게 됩니다. 실점 두개가 다 노란 공간으로 튀어나온 라모스 뒤를 공략한 라우타로 발에서 나왔어요. 특히나 첫골은 바렐라가 저 노란 타원 공간으로 튀어나온 라모스를 바보 만들고 라우타로가 그 뒤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넣은 골이었고 이 골에서 영감이 왔는지 콘테는 후반 내내 바렐라를 저기에 집어넣어서 라모스를 괴롭혀댔죠. 축게 보면 바란 욕이 많은데 개인적으론 여론이 바란에게 굉장히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전문 수비수도 아닌 바스케스를 끼고 투톱을 상대로 라모스가 튀어나가는 공간까지 막으라고 하면 차력쇼를 바라는 거죠. 그렇다고 지난번 맨시티전처럼 눈에 띄게 큰 실수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사실 왜 바란이 타겟으로 잡혔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실점 장면에 두번 다 나와서 그런가...




4. 이겼으니 다행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참 짜증나던 경기이긴 한데 사실 개인적으론 상성이 나쁘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루카쿠가 있었다면 훨씬 무서웠겠지만 후방이 두툼하다거나 미들과 수비 사이 간격 조정이 좋다거나 하는 느낌은 못 받아서요. 이렇게 벌려놓고 미드필더 간 개싸움 매치업을 유도하는 팀을 효과적으로 상대하는 법을 우리는 이미 지난 시즌에 본 바 있습니다. 5미들인데요. 느리고 답답한 시스템이긴 한데 그만큼 확실한 땅따먹기가 가능하고 아자르가 있다면 속도를 더해 대 강팀전 결전병기로 활용도 가능해지죠. 이번 경기 아자르가 썩 잘하진 않았습니다만 최근 두경기를 보면 올 2월이나 6월보단 확실히 건강해보이긴 하거든요. 카르바할이 없고 멘디가 또 묶일 수 있다는 걱정이 있기는 한데 그때쯤이면 외데고르도 복귀할 테고 이스코와 아자르의 핏도 끌어올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충분히 활용이 가능할 거라고 봐요. 최근 경기들을 통해 비니리구가 지친 상대에겐 충분히 먹힌다는 걸 확인했으니 5미들을 통해 템포를 지배하면서 상대를 말려놓고 상대가 못견디고 벌리는 타이밍에 비니리구로 대응한다면 원정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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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1

arrow_upward 진심으로 가끔 여기가 팬 커뮤니티가 맞나 싶습니다. arrow_downward 바란이 많이 못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