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카]펠레를 설득하지 못했던 레알 마드리드
펠레는 지금까지 산토스가 배출한 선수 중 가장 위대한 선수이며 국내와 국제 대회의 성공이 그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그를 쫓는데 실패했었다.
15살에 성인 무대에 데뷔한 펠레는 유럽에서 뛴 적은 없지만 이는 클럽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펠레의 재능을 분명하게 알아보았고 그를 마드리드로 데려오기를 원했었다.
실제로 몇 차례 대회가 오갔지만 유럽에서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펠레를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펠레는 자신의 책에서 “어머니가 만든 쌀과 콩을 좋아했고 나는 브라질에서 편안하고 행복했다.”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살았다.”
“기온은 항상 25도였고 해변은 아주 좋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펠레와 처음 접촉한 것은 1959년 6월 산토스가 마드리드에서 친선경기를 했을 때이다.
비록 그 자신이 레알 마드리드에스 뛸 준비가 되지 않았었지만 펠레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완벽한 대체자로 여겨졌었다.
https://www.marca.com/en/football/real-madrid/2019/05/12/5cd7ef2222601dad058b45c9.html
펠레가 레알마드리드에서 뛰었다면 과연 어땠을려나요? 펠레가 가지고 있는 이력을 보자면....
역사상 유일한 월드컵 3회 우승 경력
1958 월드컵 때 17살에 주전으로 나가 토너먼트에서만 6골 넣고 결승전에서 2골 1어시
흔히들 버스라고 하는 62월드컵도 1골 1어시했는데 부상으로 못뛴거(선수교체란 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부상시키면 10명으로 싸워야 했던 시절입니다)
1970년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브라질 19골 중 4골 7어시 총 11개 담당해 MVP 받은 펠레
월드컵 결승전에서만 3골 3어시로 월드컵 결승전 통산 최다 공격포인트, 최다 득점
월드컵 통산 14경기 12골 10어시 (14경기 22개 공격포인트... 메시는 참고로 19게임 5골 6어시, 호날두는 17게임 7골 2어시)
메시맘들이 자랑하는 28살에 1골(그것도 페널티킥;;;) 넣고 받은 코파아메리카 mvp를 펠레는 19살의 나이에 득점왕+mvp 받고 준우승. 그 이후 브라질이 코파아메리카에 1군을 안보내서 아쉽게 타이틀 따지는 못함.
1962년 세계 클럽 축구사 최초로 트레블 달성팀 펠레의 산토스
1962년 인터콘티넨털컵(유럽 챔스 챔피언 vs 남미 챔스 챔피언)에서 에우제비오의 벤피카 상대로 2경기 5골 다음해엔 밀란 상대로 2골. 인터콘티넨털컵 2연패 달성.
펠레의 산토스는 유럽팀들 상대로 총 90승 20무 20패 (펠레 130경기 144골) 그것도 전부 원정경기로만. 펠레보고 유럽검증 받으란 이야기는 곧 메시인가 하는 선수보고 EPL 검증 받으란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 참고로 레알마드리드 상대로 1경기 1골, 바르셀로나 상대로 4경기 4골 넣기도.
심지어 1969년에 펠레가 방문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이지리아 내전을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하기로 합의할 정도의 위상.
1958년 월드컵 당시 펠레에게 밀려 벤치멤버가 되었던 주제 아우타피니는 AC 밀란 등에서 뛰며 세리에 A 역대 득점 랭킹 공동 4위에 올라있다. 아우타피니가 그렇다고 유럽 무대에서 못했느냐? 1963년 AC 밀란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전에 14골을 기록, 챔스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도 가지고 있던 선수.
"역대 최고는 펠레였다. 그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그리고 리오넬 메시의 혼합체였다."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감독)
"저는 그를 축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진정한 스페셜 원, 펠레를 가지고 있죠."
-조세 무리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펠레.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모두 특별한 자질들을 지닌 위대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펠레가 더 뛰어났다."
-디스테파노-
"제 이름은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실 필요가 없습니다. 펠레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로날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지금 그(메시)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그의 선수생활 내내 그랬다. 그러나 역대 최고는 펠레다. 나는 펠레와 같은 선수를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가 뉴욕 코스모스에 있을때 같이 뛰었는데, 그에게 공을 주면 그가 너무 빨라서 다신 볼 수 없었다. 펠레는 모든 것이 본능이었다."
-프란츠 베켄바워-
"나는 제2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될 수 있어도 제2의 펠레는 될 수 없다. 그의 축구는 우리 모두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크루이프-
"축구 역사에서 펠레가 마라도나보다 훨씬 더 나은 선수이다. 펠레와 다른 나머지 선수들 사이에는 천 마일의 간극이 있다."
-아마데오 카리소 (1950~60년대 활동한 아르헨티나의 레전드 골키퍼)-
"펠레는 축구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선수이다. 세계에서 펠레는 단 한명만이 존재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하지만 나는 지금의 리오넬 메시보다도 뛰어난 선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펠레다. 피치 위에서 그는 양발을 모두 사용했다. 그는 그의 왼발이 위험한만큼 오른발도 위협적이었다. 그는 공중에서조차 강력했다. 그리고 많은 찬스들을 창조해냈다."
-잔니 리베라- (밀란 최초로 발롱도르 수상자)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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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umbra 2019.05.17위 본문에 나오는 알타피니가 58년 스웨덴 월드컵 조예선 첫 경기에서 두 골 넣죠. 펠레는 3번째 경기부터 출전하여 토너먼트 3경기 6골( 웨일즈 1골, 프랑스 3골, 스웨덴 2골)로 활약하죠.
알타피니가 브라질 - 이탈리아 2중 국적선수인데 세리에A 진출하여 216골 넣는 레전드가 됩니다. 펠레가 유럽 진출했다면 대충 상상이 가죠. -
Elliot Lee 2019.05.17왔으면...선수때는 몰라도 레전드로 레알은 우승할 것이다, 누가 잘한다 이런말 해서 맨날 저주에 휘말리다가 우승 한번 못하는 팀이 되었을듯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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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구 2019.05.17펠레-푸스카스 투톱에 밑에서 디스테파노가 지휘했으면 어땟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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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데고르 2019.05.17왔으면 역사가 또 바뀌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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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 2019.05.17그러면 계속 레알에 있던 헨토옹은 유러피안컵 10회우승 찍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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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edine\' Zidane 2019.05.17*어머니의 음식과 고향에서의 행복 때문에 이적하지 않았다니 와 진짜 낭만적이다.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신이 괜히 펠레와 함께 하신게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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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의주장라모스 2019.05.17진짜 장난 아니네요 펠레 ㄷㄷ 지금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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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그바 2019.05.17*펠레가 나이를 너무 먹어서 노망이 들었나보다
-디에고 마라도나 -
뵨쟈마 2019.05.19브라질에 첫번째 우승을 안겨줬던 58월드컵 당시 4강에서 프랑스와 맞붙었는데, 당시 프랑스에 있던 선수들이 바로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단일 대회 최다 득점(13골)을 같은 대회에서 세운 쥐스트 퐁텐과 역시 같은 대회에서 단일 대회 최다 어시스트(9개)를 기록해 그 해 프랑스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한 우리 클럽의 나폴레옹 레이몽 코파였는데-
레이몽 코파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17세의 펠레가 여기서 월드컵 최연소 해트트릭을 터뜨려서 그 후로 레알이 계속 펠레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걸로 알고 있네요. 유럽에 진출하지 않았던 이유는 본문에 나와있는 어머니/가족, 고향에 대한 애착도 컸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유럽 팀들이 58월드컵 이후 계속 추근대는 것에 위기를 느낀 브라질 정부가 1961년에 펠레를 무려 국보로 지정해버려서(...) 국보는 브라질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원천봉쇄해버렸던 것도 컸다고 알고 있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