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_list
벤피카목요일 5시

독일의 패인과 토니 크로스

온태 2018.06.18 19:46 조회 5,168 추천 13
독일이 잘 풀릴 때의 경기 양상을 보면 상대팀을 본인들의 어태킹 서드 안에 가둬놓고 쥐어패는 그림이 대부분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전적으로 토니 크로스 덕분입니다. 빌드업 리딩에 있어 현역 중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는 크로스가 아주 탄탄하게 공을 위쪽으로 끌어올려주기 때문에, 독일의 다른 선수들은 매우 높은 위치까지 전진해 공격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크로스가 완전무결한 선수는 아니라는 겁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크로스는 때때로 전문가나 주변 선수들의 평보다 저평가되는데, 이는 크로스의 장점이 눈에 확 들어오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느리고 민첩하지 못하다는 피지컬적 약점이 종종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월드클래스 선수답게 높은 수준의 테크닉과 움직임으로 이를 극복하곤 있지만, 상대가 아주 타이트하게 압박을 가할 경우 이러한 신체적 한계가 크로스의 장점을 최대로 발현하는 데 발목을 잡기 때문에 크로스를 중용하는 팀은 이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토니 크로스가 활약했던 팀들은 이런 대비책을 아주 잘 갖춘 팀들이었죠.

어제의 멕시코는 독일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크로스 중심의 빌드업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왼쪽을 틀어막고 공격 방향을 강제로 오른쪽으로 한정시키는 압박 방식을 채용합니다. 멕시코는 수비 시 4-4-2를 형성했는데, 독일이 후방에서 볼을 잡을 때 멕시코의 투톱인 치차리토와 벨라는 각각 훔멜스와 크로스에게 달라붙었습니다. 때문에 독일의 후방 전개는 대부분 보아텡의 발에서 시작되었고, 자연스레 독일의 공격 방향은 오른쪽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독일의 오른쪽은 주공으로서의 파괴력을 갖추지 못한 위크 사이드라는 데에 있었습니다.

독일의 오른쪽이 스트롱 사이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크로스를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크로스의 주 활동 영역은 센터서클 좌측 부근입니다. 때문에 크로스를 활용하는 팀의 좌측면 선수들은 온볼 상황에서의 파괴력과 영리한 움직임이 수반되는 선수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빌드업 리더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고, 강한 압박에서도 크로스에게 믿을 만한 선택지가 되어 크로스를 보호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좌측면에 팀의 온볼 역량이 집중되기 때문에, 상대 수비도 그에 따라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레 반대편 사이드는 넓은 공간을 확보하게 되고, 적재적소에 사이드체인지가 진행될 경우 이쪽 측면의 공격은 반대편에 비하면 한결 편한 상태에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이쪽 측면에 서는 선수들은 세밀한 테크닉보다는 활동량과 근면함이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



실제로 독일이 잘 풀릴 때의 패스맵을 보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 패스맵은 지난 3월 대 스페인전 패스맵인데, 슈테겐 대신 노이어가, 헥토어 대신 플라텐하르트가 들어간 걸 빼면 멕시코전과 정확히 동일한 라인업입니다. 빌드업을 주도하는 크로스 주변으로 많은 선수가 모여있고, 우측면은 킴미히가 거의 전담하면서 2선 선수들이 간간히 도와주는 형태가 대부분이죠. 이 경기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이자 이번 월드컵 우승 후보로 꼽히기에 이견이 없을 만한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이건 멕시코전 패스맵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보아텡이 후방에서의 볼 전개 대부분을 책임졌고, 이는 우측면의 키미히에게 거의 집중되었습니다. 공격이 우측면에 집중되다보니 자유롭게 로밍할 때 그 역량이 극대화되는 뮐러는 우측면에 고정될 수밖에 없었고, 중원에서 궂은 일과 1차 압박을 담당해야 할 케디라도 안풀리는 우측 공격을 위해 자주 전진해야만 했으나 온볼 파괴력이 변변치 못한 친구들이 크로스의 적재적소에 터지는 사이드체인지 패스도 없이 측면 공략에 나서봐야 좋은 결과물을 가져올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쪽 측면에 공이 집중되자 지나치게 전진하다가 뒷공간만 신나게 내줬죠.

이런 양상에서 가장 아쉬웠던 게 왼쪽 풀백인 플라텐하르트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크로스가 견제를 받을 경우 이를 왼쪽 측면의 선수들이 나서 분산시켜줘야 독일의 플랜이 제대로 실행되는건데 플라텐하르트는 라윤 하나를 상대하는 것도 굉장히 버거워해 크로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위의 멕시코전 패스맵만 보더라도 플라텐하르트는 굉장히 고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라텐하르트에게 향한 화살표는 아주 희미한 실선 세개가 다고, 플라텐하르트에게서 나온 화살표는 드락슬러에게 향한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매번 높은 위치까지 전진해서 역습 시 저지 역할도 제대로 못했고요. 훨씬 영리하고 기민한 헥토어가 정상 컨디션으로 나왔다면? 이라는 의문이 따라붙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독일의 패배로 시스템의 문제다, 감독의 보수성이 문제다 등등 굉장히 많은 얘기가 나오는 걸로 아는데, 개인적으로 멕시코가 대비를 굉장히 잘했고 독일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스페인과 당당하게 맞다이를 뜨던 팀이고, 예전 대회와 선수들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지만 이 선수들 대부분이 아직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라는 점에서 딱히 보수적인 선수 기용이 문제였다고 보이지도 않네요. 다만 마지막 평가전 즈음부터 보이던 전체적으로 헐거워진 수비 시 집중력과 협업이 본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경기들에선 반드시 보완해야 할 겁니다. 훔멜스도 그런 뉘앙스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format_list_bulleted

댓글 14

arrow_upward [르퀴프] 아자르 : 레알이 나를 원한다면... arrow_downward 반 더 바르트: 호날두 프리킥 썰 하나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