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현실의 거울이다

축구는 현실의 거울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시대에 접어든 현대 축구-
제(齊) 왕 한신은 한(漢) 고제 유방을 도와 천하 통일에 공헌했다. 그러나 통일 이후 고제의 견제를 받아 감시하기 쉽고 제나라보다 세력이 약한 초(楚) 왕으로 작위를 옮겼다. 그리고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를 받고 회음후로 강등됐다.
이에 한신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더니 내 꼴이 그렇다(狡兎死 走狗烹)”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리고 진희와 반란을 꾀했다는 명목으로 여후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기원이다.
오늘날 사회는 토사구팽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업은 과거 뛰어난 성과를 거둔 직원이라도 높은 연봉을 받고 나이가 많으면 해고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저렴하고 힘 있는 젊은이들을 고용한다. 이런 흐름은 현재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축구도 마찬가지. 점점 비즈니스적인 측면이 강화되면서 선수들은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활용 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➀빨리 뜨고 빨리지는 시기
10년 전만 해도 31살의 베테랑 선수들은 가치가 있었다. 많은 구단이 선수의 경험과 명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보다 3살이나 적은 28살의 선수들도 ‘늙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매물이 적은 공격수나 전성기가 긴 골키퍼는 좀 낫지만, 28살이 넘은 선수가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연봉이 높고 노쇠화가 진행되는 까닭이다.
뛰어난 유소년 시스템 발전으로 선수들의 데뷔 시기가 점점 빨라지다 보니 베테랑 선수들의 입지가 줄어든 점도 크다. 과거에는 10대 후반의 유망주가 성인 무대에 데뷔하는 것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오늘날에는 17살 선수가 성인 무대에서 주전으로 뛸 만큼 데뷔 시기가 빨라졌다.
선수들의 데뷔 시기가 앞당겨진 이유는 비즈니스적 영향이 크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유망주들은 상대적으로 연봉이 저렴하고 오래 쓸 수 있다. 그리고 비싸게 매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베테랑 선수들은 전성기가 길지 않고 연봉이 높아 나중에 처분하기가 어려워진다.
전술의 발전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 축구는 전체적으로 경기 템포가 빠르고 강한 전방 압박 능력을 요구한다. 이는 그만큼 경기가 격렬해졌다는 뜻으로 근육과 뼈에 받는 압박의 강도도 늘어났다고 봐야만 한다.
인간의 신체 조건은 이전 세대보다 좋아졌지만, 진화하지 않았다. 이 말은 선수들이 받는 신체적 충격이 옛날 선수들이 뛰었을 때보다 더 많아졌다는 뜻으로 신체적 하락 시기도 앞당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적 하락은 기량 저하로 이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28살은 최전성기에 접어드는 시기였지만, 오늘날에는 노쇠화가 진행되는 시기로 평가받는다. 어떤 선수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재기에 실패하는가 하면, 또 다른 선수는 피로 누적으로 과부하가 걸려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리를 잃는다.
따라서 다수의 구단이 유망주들을 더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극소수의 선수들만이 전성기를 유지하는 시대다.

➁다재다능한 시대
몇 년 전만 해도 특정 부분에서 강점이 있던 선수들이 대접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선수들은 ‘반쪽짜리’라 불리며 저평가받는다.
오늘날 전술은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가지만 잘 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패스가 좋아야 하고 넓은 시야와 속도 기술력, 그리고 전방 압박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공격수는 수비에 가담해야 하고, 수비수는 공격을 부담해야만 한다.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주전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만큼 주전 경쟁도 치열해졌다. 경쟁에서 패하거나 전술에 맞지 않는 선수는 과거의 업적 여부와 상관없이 버려진다. 선수를 지지했던 팬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를 잊어버린다. 프란체스코 토티 같은 원클럽맨 선수가 앞으로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➂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우선
최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레알 마드리드의 재계약 문제로 시끄럽다. 호날두는 자신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와 비슷한 연봉을 요구했지만, 구단은 이를 받아줄 수 없다며 거절하고 있다. 해당 문제를 바라보는 다수의 레알 마드리드 서포터도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며 서로 대립하고 있다.
연봉 인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지난 5년 동안 4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했지만, 리오넬 메시와 네이마르보다 더 적은 연봉을 받는다. 최고의 선수답게 대우를 해줘야 한다. 두 번째, 호날두는 지난 4시즌 동안 레알 마드리드가 3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세 번째, 호날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구단을 소모품처럼 취급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커질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연봉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첫 번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대단한 선수지만, 선수 한 명에게 지나치게 막대한 연봉을 준다면 세르히오 라모스를 비롯한 고액 연봉자들도 재계약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연봉이 적은 선수들도 불만을 품을 것이다. 즉, 주급 체계 자체가 무너질 것이고 훗날 선수들을 정리하고 새로이 영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두 번째,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와 재계약을 맺은 지 2년도 안 됐다. 아직 계약 기간이 3년이나 남아있고 그러잖아도 받는 연봉이 많은데 머잖아 만 33살이 되는 선수와 재계약을 맺기에는 위험성이 크다. 세 번째, 이번 시즌 호날두는 극도로 부진하고 있다. 노쇠화가 뚜렷한 현 상황에서 재계약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응한다.
분명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헌신한 것은 맞다. 이제까지 호날두가 보여준 성과를 고려하면 그의 연봉 인상해주는 것이 옳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축구는 비즈니스적 측면이 강해지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만 33살이고 이번 시즌 뚜렷한 노쇠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와 재계약을 맺는다면, 구단의 주급 체계가 붕괴할 수 있고 선수 수급을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즉,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잃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가 무조건 비판받아야 할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는 암흑기와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팬들은 스타 플레이어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이전에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계속 유입돼야만 하는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는 이상 선수 수급 문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 호날두가 예전처럼 많은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간단한 예로 뉴욕 양키스와 LA 레이커스를 예로 들자. 이들은 전설적인 선수들을 대접해주기 위해 막대한 연봉과 엄청난 계약 기간을 보장해줬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그러나 이때 두 선수는 30대 초반으로 노쇠하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급격한 하락세에 빠졌고 구단의 미래를 방해하는 ‘암 덩어리’와 같은 존재가 됐다. 뉴욕 양키스와 LA 레이커스는 스타 플레이어를 우대한 대가로 암흑기에 빠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한 시간은 중요했지만, 이제 호날두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해당 문제는 비단 레알 마드리드만 겪지 않을 것이다. 지난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떠난 웨인 루니처럼 30대에 접어든 선수들은 앞으로 구단에 남기 힘들 것이다. 프란체스코 토티와 같은 원 클럽맨 선수는 이제 나오기 어렵다.

➃쉽게 흥미를 잃는 시기
현대 세대는 쉽게 흥미를 느끼고 쉽게 잃는다. 물질적으로 워낙 풍족해서 주변에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축구 팬들도 마찬가지. 과거 구단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부진에 빠지면, 처음에는 선수를 응원하지만, 기간이 질어지면 그를 내치고 새로운 인물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팬들의 인내심이 예전보다 못한 이유도 있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크다. 오늘날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자본과 시간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기거나 뛰어난 경기를 보고 싶지 지거나 재미없는 경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돈과 황금 같은 시간을 경기에 투자한 만큼 보상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자리 잡았다.
또한, 인간이 더 좋고 새로운 물건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자가 남들보다 더 많은 재물을 원하는 것처럼 좋은 선수들을 가진 팀의 팬들일수록 더 좋은 선수들을 욕망한다. 즉,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팬들의 심리에 깊게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오늘날 선수들은 이전 세대보다 팬들의 마음을 쉽게 얻고 쉽게 잃는다. 팬들은 특정 선수에 목맬 이유가 없고 선수 역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냉정한 상황이 왔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기업은 입사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대학교는 기본이고 뛰어난 외국어 능력과 컴퓨터 활용 능력 등 다양한 스펙을 요구한다. 그만큼 기업과 자본가의 선택폭이 넓어졌다.
기업은 인재에 목맬 필요가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원하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기존 직원들은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어도 나이가 들거나 부족한 성과를 내면 가차 없이 해고된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얻었다. 그러나 오늘날 스포츠는 예전만큼의 위로와 감동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약육강식 사회의 면모를 배운다.
스포츠는 그저 현실을 닮아갈 뿐이다. 그리고 축구는 현실의 거울이 되고 있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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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 나달 2018.01.27이 글에 매우 공감하는 바입니다.. 호날두 재계약 상황은 서로의 주장이 너무 타당한 상황... 좋게 결말을 지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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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이레알? 2018.01.27필력이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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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센시오 2018.01.27확실히 비니시우스 같은 초특급 유망주들 선점하는게 중요한 시대인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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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oral 2018.01.27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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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자 2018.01.27닥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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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naldo[7] 2018.01.27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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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_좌절금지 2018.01.27선추후독 언제나 좋은글 올려주셔어감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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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레하겔 2018.01.27누가보면 그동안 카르바할처럼 낮은 주급으로 뛴 줄 알겠네요.
충분히 구단 역사상 최고액으로 주급 줬는데 뭘 더 올려주어야 합니까.
올시즌 퍼포먼스도 별로인데 -
S.Ramos 2018.01.27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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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의레알 2018.01.27재계약은 솔직히 어렵다고 봅니다. 호날두의 마케팅적인 가치도 2~3년 정도가 유효 기간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주급을 인상하는 재계약엔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계약 기간까지는 그동안의 공로를 생각하여 우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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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광장의 태양 2018.01.27안타깝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죠. 회사에서도 뭔가 자신의 포지션에 이상이 생기면 수명이 다해가는 걸로 알아야죠. 슬퍼....
